직후, 대장간의 드워프들이 탐욕으로 눈을 벌겋게 물들이며 달려들었다.
“우와아아아!”
“잠깐만요, 저도 좀 만져보게 해주십쇼!”
“내가! 내가 만질거야!”
“아! 아! 어떤 새끼야? 누가 망치로 치고 갔어!”
“드, 드래곤 님의 비늘 한번만 보여주시면······! 으푸흡!”
“내가, 내가 먼저다!”
“이 미친놈! 입 닥쳐!”
난장판이 벌어졌다.
늘 똑같은 재료와 금속만으로 연마해온 장인들에게, 미지의 대상이 나타난 탓이었다.
‘과연. 페르디키온이 비늘을 걸 만했군.’
눈이 뒤집힌 드워프가 기어이 룬에게 손을 뻗으려는 때였다.
쾅!
“정숙!”
노성이 터졌다.
머리를 쥐어뜯기는 통에 허우적대다 발을 헛디딘 드워프가 어이쿠, 하고 뒤늦게 쓰러지며 돌아보았다.
쿠안은 망치로 작업 테이블을 내려친 채 부리부리한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서 있었다.
그제야 드워프들의 소란이 멈췄다.
“뭐하는 짓들인가! 드워프 장인의 자존심들은 용광로에 처넣었나!”
쿠안의 일갈에 다들 고개를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욕심에 눈들이 뒤집혀선.”
쿠안이 룬을 돌아보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부디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그래.”
룬을 잡아먹을 듯 눈을 빛내던 드워프들이 눈치를 보며 얼어붙었다.
그들을 쭉 둘러본 룬은 팔짱을 끼고는 천천히 고개를 까딱였다.
“이게 ‘전통파’ 드워프들이란 말이지.”
“!”
그 순간, 얼굴이 화끈해진 드워프들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어떻게 이런 위압감이…… 다 자라지도 않은 해츨링에게서 나온단 말인가!’
룬은 굳은 표정을 짓는 쿠안과 드워프들을 서늘한 시선으로 둘러보았다.
“형님께서 허락해주셨으니, 말 해둘게.”
룬은 자신의 비늘을 쿠안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번 <장인 대회>의 우승 상품은 레드 드래곤의 비늘뿐 아니라, 여기 블랙 드래곤의 비늘도 함께 걸 예정이야.”
“!”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드워프들이 침묵했다.
아니, 침묵 속에서 탐욕과 열망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들어보니, 대장기술이 굉장하다던데. 덕분에 기대가 커.”
감정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그들의 귀에 꽂혔다.
“부디, 오만이 아닌 실력으로 증명하길 바라.”
룬은 미련 없이 돌아서 자리를 벗어났다.
***
“와! 다들 엄청 배고픈 눈으로 룬 님을 쳐다봐요!”
“무시해.”
‘왜들 하나같이 귀찮은 건 똑같은 거냐.’
전통파 대장간에서 나온 직후, 개혁파 드워프 대장간까지 연달아 들린 룬은 이글이글한 시선을 등 뒤로 느끼며 걷고 있었다.
비교적 젊은 드워프로 구성된 개혁파 드워프, 콰탄의 대장간.
또 다른 의미로 귀찮았던 곳이었다.
‘아예 대놓고 피부를 만지겠다며 들러붙을 줄은.’
그는 방금 나온 개혁파 대장간에서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질문부터가 이미 과하다 못해 숨 막히는 관심으로 가득했다.
“취미는 어찌 되십니까?”
“선호하는 색상이 따로 있으신지요?”
“서번트에게 입히고 싶은 옷 취향이 있으시다면 적극적으로 말해주시지요. 귀여운 것도 좋지만 약간의 세련미를 넣어서…….”
하나하나 대답 해 줄 수 없을 만큼 말이 너무 많았다.
비늘을 보여줬을 때는 또 어땠는가.
“아, 아니! 룬 님 본체……, 아니, 비늘 한번만 보여주시면……! 으푸헙!”
“으악, 내 다리! 이 미친놈아!”
“닥쳐! 내가 먼저 볼 거야!”
“나도! 나도 만질거야!”
입에서 불을 뿜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분위기를 정리한건, 마찬가지로 개혁파 마스터 대장장이인 콰탄이었다.
“조용히 안 해!”
버럭 소리를 지른 콰탄이 씩씩 거리며 달려왔다.
그제야 힉, 하고 새는 숨소리와 함께 드워프들의 동작이 굳었다.
“야, 이, 미련한, 것들, 아.”
딱. 따악. 딱. 딱. 따악!
콰탄이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나무판으로 된 서류철 같은 것으로 소란스러운 드워프들의 머리를 한 대씩 두들겼다.
“무슨 추태야. 제대로 안 해?”
익숙한 광경이었다.
룬은 개혁파의 드워프들에게 전통파 드워프에게 했던 도발과 거의 같은 이야기를 남기고, 그들이 벙 쪄있을 때 일행들과 빠져나온 참이다.
페르디키온이 멋쩍은 얼굴로 물었다.
“룬, 괜찮냐?”
“응. 파벌과 분위기만 다르지, 근본은 똑같은 놈들이더라.”
‘덕분에 미묘한 도발이 잘 먹혔고.’
원래 완전히 다른 것보다 비슷한 것이 비교가 쉬운 법.
호수와 새를 비교하는 것보다, 참새와 독수리를 비교하는 게 호불호와 차이점을 느끼기 훨씬 쉬웠다.
그러니 드워프들 역시 서로 상대방 파벌과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있을 터.
현재로선 상대를 이길 방법은 장인대회에서 실력으로 승부하는 것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몇 번 더 살살 긁어주면 되겠군.’
만족스러운 상념에 빠진 룬을 힐끗 본 페르디키온이 이동 마법을 준비하며 충고했다.
“아우님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리하지만 말아라.”
“무리할 게 뭐 있겠어.”
‘장작만 좀 넣어준 게 다인데.’
주문이 끝나자 장소가 바뀌었다.
성 안에 있는 이동용 마법진 위.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베르딘이 반색을 해왔다.
“허허! 다녀오셨습니까.”
사람 좋은 웃음으로 일행을 반긴 베르딘이 손에 작은 상자를 들고 다가왔다.
“그건?”
“룬 님께서 부탁하셨던 물건입니다. 특이한 주문이라 즐겁게 작업했습지요.”
‘빠르네.’
왕실 소속의 실력 있는 대장장이라더니, 그새 룬이 주문해 두었던 식칼 세트를 만들어 둔 것이다.
“형, 얘들 쉴 만한 방 좀 마련해주라. 난 따로 할 게 있어서.”
“뭘 할 생각이냐.”
백야와 흑미를 페르디키온에게 맡긴 룬은 식칼이 담긴 상자를 열어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대회까지 시간도 좀 있고, 이걸로 요리연습이나 해보려고.”
이제 소생언령을 연습할 차례였다.
“그래. 안 그래도 부엌에 식재료를 좀 가져다 두었다. 안내 부탁하지, 베르딘.”
“알겠습니다. 맡겨주시지요.”
제법 싹싹하게 대답한 베르딘과 함께, 룬은 그를 위한 전용 부엌으로 향했다.
42화 운이 좋았다
왕궁에서 마련해준 전용 부엌에 도착한 룬은 내심 감탄했다.
크리스티나의 레어에 있는 부엌보다 조금 더 작을 뿐 거의 같은 구조와 재질로 꾸며둔 것이다.
‘완벽하네. 하루 이틀 만에 재현할 만한 규모가 아니었을 텐데.’
그때, 베르딘이 물었다.
“룬 님, 마음에 드십니까?”
“응. 언제부터 준비해 둔 거야?”
룬의 반응에 베르딘은 흐뭇한 얼굴로 어깨를 폈다.
“룬 님께서 수면기에 드시는 동안, 페르디키온 님과 골드 드래곤 장로께서 함께 준비하신 겁니다.”
“그럼, 이 식칼도?”
“식칼은 제가 만든 게 맞습니다. 다만 도마나 가위, 계량컵 같은 다양한 조리도구는 미리 골드 드래곤 장로님이 일러주셨지요.”
‘크리스티나의 도움이 있었군. 어쩐지 따로 요리도구는 챙겨주지 않더라니.’
냉장고를 열어보니 익숙한 식재료들이 이미 한가득 들어있었다.
‘흠. 예상은 했지만.’
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베르딘을 불렀다.
“베르딘, 부탁 좀 하자.”
“네, 무엇입니까?”
“드워프들이 일반적으로 찾는 식재료들도 적당히 구해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페르디키온 형님에겐 오늘 만찬은 내가 준비할 거라고 알려주고.”
“오늘 바로 말씀이십니까?”
첫날부터 요리를 하겠다고 나설 줄은 몰랐던 베르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대신에 조건이 있는데. 오늘 모이는 드워프는 <폐광 던전>에 관계된 이들로 해주면 좋겠어.”
베르딘은 눈을 껌뻑였다.
“혹시 이유를 여쭈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뭐, 별건 아냐. <폐광 던전>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거든. 던전에 묻힌 보물이라든가, 몬스터에 대해서 말이지.”
“아하. 알겠습니다.”
베르딘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기껏해야 어린 해츨링이 던전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모습 정도로 보겠지.’
완벽한 흐름이었다.
자연스럽게 던전에 대한 정보를 지닌 드워프와 만날 자리를 잡은 셈이었으니.
***
베르딘이 다녀간 뒤.
룬은 언령 실습재료를 잔뜩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드워프 왕궁 창고에서 공수해 온 식재료들을 쭉 둘러보았다.
‘고기조각이 붙은 육수용 뼈. 식용 곰팡이가 핀 치즈. 소금과 향신료에 절여 훈제한 식용 몬스터 고기.’
물이 안 좋으니 가축을 기르기 어렵다.
심지어 신선한 생고기는 구하기도 어려운 장소.
덕분에 말리거나 훈제한 식재료, 혹은 식용 몬스터 고기 의존도가 높았다.
그는 푹 끓여서 육수를 내어 마시는 용도라는 짐승의 뼈를 물끄러미 보았다.
‘이건 화염 저항이 있는 짐승의 고기라 했던가.’
더위 탓인지 슬슬 쿰쿰한 냄새가 나며, 핏물이 붙은 고기 살점의 질이 좋지 못했다.
‘……이걸 신선하게 만들 수 있다면 신선한 고기를 얻기 편하지 않을까?’
기대와 궁금증이 생겨났다.
그는 반쯤 호기심으로 적당한 갈빗대 하나를 빼어들고 언령 마법을 실험해 보았다.
“소생하라.”
파앗!
손에 들린 뼈가 하얗게 빛이 나고, 뼈 사이사이의 고기 색이 신선하게 바뀌었다.
10년 만에 해보는 언령 마법이 잘 작동할지 걱정도 됐지만 이 정도면 제법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좋았어.”
고개를 끄덕인 룬이 뼈 무더기에 손을 뻗었다.
‘그럼, 이걸 굳이 하나하나 언령을 쓸 필요는 없지. 한꺼번에 처리한다.’
모아놓고 보니 살만 거의 발라내고 뼈만 남은 짐승을 통째로 가져온 모양새였다.
룬이 손을 뼈 무더기로 향했다.
“<소생하라!>”
파앗!
뼈 무더기가 빛에 휩싸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달그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