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가 꿈틀거리면서 조립되기 시작했다.
“……?”
달각. 달그락.
다각. 다각. 다가각!
처음에 룬이 소생 언령을 걸었던 큼직한 갈비뼈까지 자석처럼 뼈 무더기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따각!
뼈는 생전의 골격을 갖추더니 스스로 다리를 세우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
네 발 짐승 같은 모양새를 갖춘 뼈다귀.
그중 머리뼈 부분이 정확히 룬 쪽으로 향하며 몸을 바로 세웠다.
“날 보는 건가?”
룬의 말에 답하듯 짐승 뼈의 입 부분이 달그락거렸다.
울음소리를 내려 했던 것 같았지만, 뼈 말곤 있는 게 없으니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설마?”
룬의 의식과 동시에 움직이는 뼈다귀에 대한 정보가 적힌 창이 떠올랐다.
- 종족 : 절벽 산양 (언데드)
돌산에 살던 산양.
먼 옛날 드워프 족이 레드 드래곤의 영토로 피난할 때 데려온 산양의 후손.
드워프들이 기르는 가축의 일종이며 젖과 고기는 식량으로, 가죽은 옷이나 잡화 등에 쓰인다.
현재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
※ 특이사항 :
살을 내어주고 죽은 산양의 해골은 블랙 드래곤의 부름을 받아 다시 생을 얻었다.
- 룬 이클립스(Lune Eclipse)에게 귀속
- 서번트(Servant) 화 완료.
- 성향 : 충직한, 활기찬
<새로운 재능이 개화했다!>
- 네크로맨서 : 죽은 자를 소생시키는 자.
“…….”
그가 상상했던 건 싱싱한 재료였을 뿐.
눈앞에 있는 강아지처럼 꼬리뼈를 살살 흔드는 산양 뼈다귀가 아니었다.
‘살다 살다 이젠 무당이 된 건가?’
룬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그 와중에 뼈만 남은 산양은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활기차게 감자를 짓밟았다.
‘저놈 이대로 두면 안 될 텐데. 어떻게 없애지.’
그 때였다.
따각거리며 날뛰던 산양의 뼈가 한순간 와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뼈는 언령의 힘을 잃고, 그 자리에서 도로 뼈무덤이 되었다.
룬은 능력에 대해 알아볼 셈으로 죽은 짐승의 뼈에 언령 마법을 몇 번 더 사용해 보았다.
그 결과.
‘대충 알겠군.’
우선, 언령 마법을 사용하는 자신의 격이 상승하여 죽은 뼈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
아쉬운 건 지속시간이 짧았다.
심지어 한 번 소생 마법이 걸렸던 사체에 재차 걸었을 경우, 지속시간과 효과가 현저히 떨어졌다.
마법은 발동 중에도 룬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 취소가 가능했다.
그는 허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쓸 만하게 만들지?’
그에 대한 정보가 즉시 떠올랐다.
* 네크로맨서 : 죽은 자를 소생시키는 자.
- 성장 조건 : 관련 언령 마법 <소생>에 대한 이해와 숙련도 상승.
‘반복과 심화 학습이라는 소리네.’
그저 과일과 고기를 신선하게 만들고 싹이나 틔우던 언령 <소생>.
정보를 보고 나니, 왜 이렇게 성장하게 된 건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이건…… 내가 흑미를 언령 마법으로 되살리는 걸 성공했기 때문인가.’
마계 장미에 깃든 몽마인 서큐버스 혼이 지닌 능력.
그에게 귀속된 여우 구슬.
마스터인 룬의 꿈을 매개로 혼을 연성해 탄생시킨 결과였다.
‘운이 좋았다.’
희박한 확률과 우연이 겹쳐 만들어낸 성장이었다.
‘죽은 자를 수족으로 부리는 능력이라.’
본질만 보면 상당히 괜찮은 능력이었다.
다만, 주위에 이 사실을 알렸을 때 좋은 결과가 돌아오리라는 상상은 하기 힘들었다.
‘숙련도를 올려서 지속시간 문제만 해결하면 쓸 만해질 것 같긴 한데.’
하필이면 악마의 힘처럼 사악해 보이는 게 문제였다.
죽은 자를 수족으로 삼는 능력이 있는 자와 동료가 되고 싶어 할 자는 아무도 없을 터.
혹시라도 동료를 죽여서 언데드 재료로 사용할까 꺼림칙해서라도 기피하기 딱 좋았다.
‘나라도 못 믿겠다. 뒤통수 따가워서 같이 있고 싶겠냐고.’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능력은 수련해둬야겠지. 젠장.”
당분간 이 능력은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룬은 굳게 결심했다.
***
그날 저녁.
미리 언질을 받은 드워프 넷이 왕궁 응접실로 향했다.
“페르디키온 님의 만찬 초대라니.”
“밥 한번 먹고 드워프들을 탄압했던 역사를 지우겠다는 심보가 아닌가 모르겠어.”
갈색 수염의 드워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고작해야 장인 대회 하나 열어주고 과거 청산했다는 듯 구는 게 아주 얕아빠졌지.”
“쉬, 그쯤 해둬. 기본 성정이 어디 가겠어? 괜한 소리 했다가 또 패악을 부릴지도 모르네.”
“커험! 뭐, 듣자하니 이번 만찬은 페르디키온 님의 생각을 변화시킨 해츨링이 직접 준비한다고 그러긴 하더군.”
“아! 그 어둠의 일족 해츨링 말인가.”
이제까지 비난을 일삼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같은 드래곤이지만 그분은 예외지. 면식도 없는 우리들 사정을 헤아려 준 자가 아닌가.”
“패악질 하던 레드 드래곤이 그나마 조용해진 게 다 의형제라는 그분 덕이었지.”
“그래.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린 지금도 대장장이로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지도 몰라.”
그들의 중심이 되는 드워프가 자신의 풍성한 수염을 매만졌다.
“레드 드래곤들은 한참 반성해야 하지만, 우리의 고충을 해결해 준 은인과의 식사를 홀대할 수는 없지 않겠나.”
“그래. 요즘 돌산 산양의 개체 수도 줄어 고기 배급량도 줄었으니 말일세.”
못 이기는 척 식사 자리에서 예의를 갖춰주자는 그들은 문이 열리기도 전에 풍기는 기름진 고기 향에 코를 벌름거렸다.
“이게 무슨 냄새지?”
“평소 먹던 향신료 냄새와 다르군. 좀 더 신선하고 짙은 고기냄새가 느껴져.”
주식으로 일삼던 고기가 마른 육포였던 드워프들이 입맛을 다셨다.
이윽고, 베르딘이 나와 인사를 하고 문을 열었다.
“!”
“허. 이 무슨 호화로운 만찬이란 말인가!”
그득하게 쌓여 육즙이 흐르는 고기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거칠지만 맛깔나게 그릴 자국이 난 토마호크 스테이크와 바비큐.
심지어 탁한 흑빛의 맥주가 아닌 벌꿀색 크림 맥주가 오크통 하나 가득하게 차올라있었다.
검은 머리와 수염을 지닌 드워프가 야들야들한 육전이 수북하게 쌓인 접시를 보며 침을 삼켰다.
“내가 천국에 와 있는 것 같군.”
꿀꺽.
눈으로는 벌써 고기를 가득 삼켜 넣은 드워프들이 너도나도 목울대를 움직였다.
“왔나.”
가장 상석 자리에 앉아있던 페르디키온이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험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문 앞의 드워프들은 페르디키온의 눈을 피해 인사했다.
그리고 바로 의자로 향하려는 순간.
“형님, 이분들은 누구야? 소개해줘.”
검은 머리를 가진 작은 소년이 페르디키온에게 요청했다.
덕분에 의자에 앉기 전, 자연스럽게 페르디키온의 소개가 이어졌다.
“그래. 왕궁의 광산 책임자 험퍼트 피셔, 마력석과 던전 보상 관리자 벅 마르킨, 전투 드워프 육성 및 관리를 맡고 있는 우드 펠런과 고르반 보브다.”
“그렇구나. 만나서 반갑다.”
천진하게 손을 흔들어주는 룬에게 시선을 떼고 드워프들을 본 페르디키온이 말을 이었다.
“이쪽은 블랙 드래곤 해츨링인 룬. 유일한 어둠의 일족이자, 장인대회를 고안하게 했고……. 불을 나눈 내 의형제다.”
“!”
무려 페르디키온의 의형제라는 말에 자리에 모인 드워프들은 룬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정말이군. 이 선명한 불의 기운이라니!”
경악한 드워프들의 눈치를 슬쩍 본 베르딘이 헛기침을 하며 어색함을 감추고 룬이 미리 언질해둔 대로 입을 열었다.
“어험. 아무튼, 두 분께서 의형제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엇, 거. 축하드립니다.”
비록 베르딘의 말은 연기하는 듯 어색했으나, 룬의 몸에 흐르는 강력한 불의 기운을 알아보지 못할 드워프는 이 자리에 없었다.
소문을 듣고 긴가민가했던 드워프들조차 내일이 되면 모두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터.
놀라움 속에 빠져있던 그들은 베르딘의 적당한 바람잡이에 적당한 축하 인사를 입에 담았다.
43화 내 나이가 어때서!
모인 드워프들이 놀라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모습을 본 페르디키온이 입을 열었다.
“자, 다들 그만 앉지.”
‘좋아. 이게 주최자의 모습이지. 페르디키온 녀석, 잘 받아먹는군.’
룬은 속으로 페르디키온을 기특하게 여겼다. 그리고 드워프들이 페르디키온의 말에 따라 자리에 앉는 모습까지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드워프들은 인간과 달리 무도회도, 사교파티도 딱히 없었다.
격식이랄 게 없는 그들 사이에서 필요한 조건은 하나.
상대방을 얼마나 인정하는가.
‘페르디키온에게 존대를 쓰는 상황조차 예전보다 나아진 거겠지.’
원래는 던전에 관계된 드워프들을 모아 필요한 걸 얻어낼 생각이었다.
한데 대장간을 방문하며 상황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수고를 조금 들이면 드워프와 페르디키온의 상황을 훨씬 괜찮게 만들어 줄 수 있어 보였다.
‘페르디키온이 폭정을 한 과거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잘못을 인지하고 바꾸어 나가려 하고 있지.’
룬의 붉은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하지만 드워프들의 시선은 생각 이상으로 냉혹했어. 이대로 가면 이 녀석이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정당한 평가와 지지를 받기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의형제인 페르디키온의 권력이 높을수록, 룬에게 이익이기도 했다.
‘그걸 잡아주기만 하면 돼. 나는 <폐광 던전> 입장권과 함께 정보를 얻고.’
룬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해야 할 목표를 하나씩 되새겼다.
‘페르디키온의 새로운 통치가 드워프족에게 받아들여지도록 물꼬를 튼다.’
이 만찬은 페르디키온과 룬이 의형제가 되었음을 처음으로 알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드워프들 역시 두려운 시선 보다는 호기심 어린 시선을 품었다.
그렇게 만찬이 시작되었다.
***
“크하! 그러니까 이 술과 고기가 다 페르디키온 님과 룬 님이 준비한 것이군!”
“부드러워서 입안에 넣고 씹다보면 살살 넘어가!”
드워프들의 호평을 들으며 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께서 먼저 장인들에게 내 요리를 대접하고 싶다고 부탁했거든.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다.”
룬은 은근슬쩍 페르디키온에게 공을 돌렸다.
“크흠! 페르디키온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분위기 좋고.’
원래 스스로 생색내기 보단 타인의 입을 통해 공적이 알려지는 게 훨씬 효과적인 법.
어쨌든 축하자리였고, 간만의 포식에 기분이 좋아진 그들은 페르디키온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고기는 불의 마력이 깃든 화로에서 냈어. 확실히 장인들의 손길이 닿아서인지, 그 화로를 쓰니까 맛이 더 좋더라고.”
“아니? 그걸 알아보시는군! 거, 마력석을 박아 넣는 작업부터가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거든!”
어색해지려는 분위기에서는 적당히 룬이 끼어들었다.
드워프들이 술잔을 비우는 속도가 빨라지며 얼큰하게 취해서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룬은 슬슬 말을 꺼낼 타이밍을 재며 자연스럽게 맥주잔을 잡았다.
그때였다.
“넌 안 돼.”
탁.
잔을 빼앗긴 룬의 손이 공중에서 뻘쭘하게 멈췄다.
간만에 술로 목을 축일 기회를 뺏긴 룬이 불만스럽게 페르디키온을 보았다.
“왜? 형님도 마시고 있잖아.”
‘해츨링이라 해도 술 마실 수 있는 거 아니었냐.’
심지어 그의 실제 나이는 술을 통으로 들이켜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어림없는 소리였다.
“나야 괜찮지만, 이제 태어난 지 10년밖에 안 된 꼬맹이는 안 돼. 500년만 참아.”
“500년이나……? 말도 안 돼. 인간도 훨씬 어릴 때 술을 마시잖아!”
망연한 기분으로 대꾸하는 룬에게 페르디키온은 손수 차를 한잔 따라 주었다.
“넌 차나 마셔.”
“…….”
룬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