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무구도 중요하기만, 진정 멋을 아는 자라면 이건 못 참지!”
어디선가 ‘장인 대회가 애들 장난인 줄 아나!’라는 노호성이 들렸으나 그 역시 차가운 비꼼으로 반박 당했다.
“전쟁 무기만 장인의 척도라고? 이야. 언제까지 수렵 탐구생활이나 하고 살려고!”
“있지도 않은 전쟁, 전쟁! 좀 적당해야지, 피에 미친놈들 같다고!”
“아무리 룬 님이 드래곤이라지만, 아직 10살 밖에 안 된 어린아이에게 무기를 권하는 게 장인이 할 짓이냐?”
또다시 각자의 입장이 충돌하느라 주먹질이 나가고, 고르반과 우드는 사태를 진정시키느라 분주해졌다.
드워프들이 저들끼리 떠들기도 했으나, 두 대장간 모두를 들락거렸던 룬은 작품만 보고도 어느 파의 작품인지 뻔히 짐작되었다.
‘보나마나 첫 번째가 전통파, 두 번째 작품이 개혁파겠군.’
다만, 첫 번째 작품은 직관적으로 ‘창과 방패’였다면 두 번째 작품은 정체가 뭔지 아직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때, 베르딘이 각 대표 대장장이 드워프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전통파의 쿠안 루베스! 개혁파의 콰탄 퀘이터스!”
“예!”
“네!”
“자, 룬 님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룬은 그들의 설명을 중간중간 참고하며 작품을 눈으로 보고 직접 만져보기도 했다.
이는 흥을 돋우기 위한 약간의 쇼맨십을 요청 받았기 때문이었다. 설명을 들으면서 대충이나마 고개를 끄덕이거나, 물건을 들어 보이기도 하며 결승 우승 작품을 골라달라는 부탁이 미리 이야기되어 있었다.
‘전통파에서 낸 창과 방패라. 하긴, 전쟁은 없어도 던전이나 몬스터 사냥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게다가 천 년 전 같은 대규모 전쟁이 없을 뿐, 소규모 영지전은 치러지고 있으니 쓸모가 많겠어.’
영웅의 무구라도 해도 좋을 만큼 어마어마한 성능을 지닌 전통파의 무기.
이는 힘이 있어야 군림할 수 있다는 페르디키온의 사상과도 잘 맞는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개혁파의 물건은 대체 뭐지……?’
그때, 개혁파 마스터 대장장이 콰탄 퀘이터스가 말했다.
“저희가 만든 물건은 정령의 불등. 즉 ‘정등’이란 겁니다.”
웅성웅성!
콰탄은 룬과 모인 드워프들과 시선을 마주쳐 가며 설명했다.
“살라만더의 불로 페르디키온 님의 비늘을 제련해 반영구적인 불빛이 나도록 만들었죠!”
‘! 제드 녀석이 구해 온 살라만더를 여기에 쓴 건가?’
홍옥 10개 중 5개는 흑미에게.
이번 작품에 필요한 살라만더 외에는 방생했다.
룬은 언젠가 페르디키온을 통해 1회차 장인 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비록 전통파의 무기를 고르기는 했지만, 개혁파의 ‘전서구’ 역시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성 내부에서 이 ‘전서구’는 아주 유용하게 쓰이지. 생활의 일부를 바꿨을 정도니.’
페르디키온은 그 당시에도 고민이 많았다며, 이번 장인 대회 품목 역시 기대를 배신하지 않으리라 이야기했다.
‘룬. 무엇을 고르든 진심으로 마음에 든다면 말해라. 무엇이든 내어주마. 네게 도움이 된다면 나도, 드워프들에게도 아주 좋은 일이니.’
그렇게 말을 맺었던 페르디키온을 회상하는 동안, 개혁파 마스터 대장장이인 콰탄은 설명을 이어갔다.
“거기에 더해 어둠 속성의 룬 님의 비늘을 사용하여 햇빛이 드는 낮이 되면, 불빛이 사라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다치는 일 없이 빛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
콰탄은 의기양양하게 룬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양 팀의 설명 모두 들어보았습니다. 자, 룬 님. 이제 최종 우승 작품을 선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좌중이 침묵에 잠긴 채, 룬의 선택을 기다렸다.
룬은 잠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너희들, 내가 결승 과제로 어떤 걸 주문했는지 기억해?”
차분한 분위기의 작은 소년 앞.
마스터 대장장이 둘은 누구랄 것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가장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와라.”
“가장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오라는 주문이었죠.”
같은 대답을 한 전통파의 쿠안과 개혁파의 콰탄이 서로를 한번 보고 다시 룬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먼저 발언하겠소.”
둘 중 먼저 입을 연 건 전통파 마스터 대장장이인 쿠안 루베스였다.
“종족을 불문하고 전쟁을 겪지 않는 자들은 없소. 그래서 강대한 드래곤조차 무기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지.”
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999년을 살아온 강대한 이무기조차, 무기를 든 초인에게 죽을 수 있었다.
“무구는 외부의 탐욕으로부터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고, 일족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필요했지. 더 나아가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지켜왔소.”
쿠안의 말소리가 크지 않음에도 묵직한 울림은 모든 드워프에게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전쟁은 살아있는 자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 그 숙명에 맞설 때 늘 함께 하는 것은 무구. 즉, 무구야말로 신성하고 위대한 작품이오.”
“일리가 있네.”
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무기는 위대하지. 게다가 명인의 무기라면 더더욱.’
그의 반응이 심상치 않자, 개혁파 마스터 대장장이인 콰탄 퀘이터스가 서둘러 나섰다.
“뭐! 그걸 틀렸다 할 생각은 없습니다. 피를 흘려 지킨 선조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살아 숨 쉬는 거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전쟁을 하고 있지 않잖아요?”
콰탄은 씨익 웃으며 룬을 바라보았다.
“룬 님에 대해 우린 많은 걸 알아봤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페르디키온 님께서 룬 님을 통해 치세를 바꾸게 된 이야기들까지도 말이죠.”
그 말에 룬이 페르디키온을 잠시 봤다.
페르디키온은 직접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해줬을 뿐이었기에, 룬과 시선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그 이야기는 아주 감동적이었어요!”
“…….”
“전쟁으로 고단해진 자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드래곤 족이라니. 이거야말로 룬 님을 위한 위대한 발명품을 만들 단서라 생각했죠!”
‘어쩐지 취향이나 선호하는 바에 대해 갈 때마다 묻더라니.’
끈질기다 여겼던 질문공세는 개혁파 드워프들 나름대로 룬에게 가장 잘 맞는 작품을 만들기 위한 조율 과정이었다.
콰탄이 말을 이었다.
“타고난 어둠을 지닌 자가 빛의 레어에서 자라 불을 다루는 권속을 부리게 되다니!”
콰탄은 제 머리를 손으로 탁, 쳤다.
위대한 장인
“그걸 듣는 순간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는 유백색의 투명한 조각들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초승달, 반달, 보름달.
그리고 별 모양의 정등이었다.
“바로 어둠 속을 다니는 자들을 비추는 밤하늘의 달과 별이었죠.”
때마침 노을을 뿌리던 저녁 해가 산을 완전히 넘어갔다.
어둠이 깔리고, 누군가 ‘횃불을 왜 켜지 않지?’라며 묻는 순간.
횃불 대신 ‘정등’을 든 개혁파 드워프들이 곳곳에서 빛을 밝혔다.
웅성거림 속에서 희미하던 빛이 점점 더 은은하고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정등은 횃불처럼 일렁거리지 않아 바람이 불어도 일정한 밝기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밤을 두려움과 공포로 느끼지 않게 되는 겁니다!”
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의 모두가 예감했다.
이제 결정의 시간이었다.
“정했어.”
룬의 앞에는 두 파의 작품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창과 방패, 사용자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는 무구.
반영구적인 빛을 품은 달과 별 모양의 정등.
역사와 발전.
과거와 미래.
전쟁과 문명.
무엇 하나 쉽게 고를 수 있는 게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룬에게 고정된 순간.
룬은 두 손을 모두 들어올렸다.
“둘 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대단했어. 그러니 두 가지 다 위대한 작품으로 선정할게.”
“예?”
“네?”
하나도 빠짐없이 얼이 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드워프들에게, 룬은 태연한 얼굴로 두 작품 모두를 가리켰다.
“여기서 내가 한 명의 승자만 고른다면 너희들의 위대함에 큰 실례가 되겠더라고.”
“그 , 그렇지만 이건…… 승부가 아닙니까!”
전통파의 엄숙한 대장장이 쿠안은 드물게 당황한 얼굴로 외쳤다.
개혁파의 콰탄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어버버 거렸다.
그들의 항의를 들은 룬은 무해한 얼굴로 눈을 꿈뻑거렸다.
“무슨 승부?”
“예?”
룬의 의뭉스러운 시선이 드워프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애초에 한 명만 뽑는다고 한 적 있어?”
“그, 그것은……!”
“둘 중 하나를 도태시킨다면 남은 쪽의 자존심을 채워 줄 수야 있겠지. 그런데 말이야.”
룬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었다.
“미래와 역사 중 하나를 밟고 우위에 서는 걸로 장인의 자존심 운운하는 게 드워프족의 장인 정신은 아니지 않겠어?”
두 명의 마스터 대장장이들은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얼굴이었다.
룬은 입을 벌리고 뻐끔거리는 콰탄과 쿠안에게 한 번씩 시선을 두었다.
“나는 진심으로 두 장인들의 발상과 솜씨에 감탄했어. 그러니 둘 다 위대한 장인으로 뽑겠다. 축하해. 쿠안 루베스, 콰탄 퀘이터스.”
누구도 손을 쓰지 못하는 사이, 룬은 승자 둘을 뽑아둔 채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우승작들을 챙겨 태연히 무대 위에서 내려갔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도 대회장은 한동안 침묵에 잠겨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푸하, 으하하. 아하하하!”
“!?”
별안간 따로 마련된 상석에 있던 페르디키온이 시원한 폭소를 터트렸다.
드워프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향했다.
“페르디키온 님……?”
“저분이, 배를 잡고 웃고 계셔……?”
아예 혼이 나간 표정을 지은 드워프들을 본 페르디키온은 더욱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친김에, 그는 룬의 결정에 쐐기를 박아 넣었다.
“다들 들었나! 내 아우가 우승자를 정했으니 공표하마!”
어깨까지 들썩이며 큭큭 웃던 페르디키온이 외쳤다.
“이번 2회차 장인 대회 우승자는, 전통파의 쿠안 루베스와 개혁파의 콰탄 퀘이터스다!”
“……!”
순식간에 비명과 외마디 외침이 섞여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혼란에 빠진 드워프들을 뒤에 두고,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온 룬은 속으로 혀를 찼다.
‘진작들 서로 존중했으면 될 일을.’
그리고 품에 가득 안고 있던 우승작들을 싹 다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그들이 아우성을 지르며 경악을 하든 말든 알 바인가.
이번 <장인대회 우승 작품>, 즉 ‘위대한’ 작품들이 모두 제 것이 되었다는 게 중요했다.
‘애초에 둘 중 하나의 정답만 골라야 한다는 생각을 굳이 왜 해? 당연히 둘 다 좋으면 다 가져야지.’
룬은 속으로 그들을 한심하게 여겼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개혁파와 전통파의 승부 외에도 사정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지금까지 드워프들 문화의 주축은 ‘전통파’였다.
그렇기에 페르디키온 역시 1회차 장인대회에서는 개최 목적과 여론까지 고려해 전통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신, 성에 개혁파의 발명품인 ‘전서구’를 성에 도입하는 방식으로, 매입하여 자금을 지원하고 생활 속에 그들의 방식을 스며들게 만들었다.
전서구의 편리함과 유용함에 익숙해져 모든 드워프가 전서구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일 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드워프들의 어리석음과 페르디키온의 영리함을 모두 이해한 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페르디키온 녀석. 아마 내가 없었다면 한두 번 정도 더 전통파의 편을 들어줬겠지. 한편으로는 실질적으로 개혁파의 지원을 해 줬을 테고. 그러다 개혁파에서 굵직한 작품이 나왔을 때부터 그들이 전면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했겠지.’
그렇게 흐름과 타이밍을 봐 가며, 오랜 세월에 걸쳐 균형을 맞춰갔을 터였다.
그걸 룬이 한 번에 정리해 주었으니, 참 속이 시원할 만도 했다.
룬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처음 봤네. 페르디키온 녀석이 그런 식으로 웃을 수 있는 놈이었다니.’
심지어 베르딘조차 눈이 휘둥그레진 걸 보아 굉장히 놀란 게 틀림없었다.
‘잘된 거겠지.’
룬은 페르디키온과 드워프들의 관계가 이제까지와 다르게 바뀌어 가리라 예감했다.
소란스러운 밤은 이내 빠르게 지나갔다.
장비를 집어던지며 욕지기를 하거나, 공동 우승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서로 작품평을 하며 고집을 굽히지 않는 자들.
그리고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곤 하는 일부 드워프들.
기어이 자신들의 작품이 더 좋았다며 물밑에서 싸우겠지만, 소란이 가라앉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나면 누군가는 새로운 행보를 선택할 것이다.
“마지막 순서, 흑미 님의 ‘정령들과 춤을!’을 선보이며 대회를 마치겠습니다!”
“와아아아!”
어느 새 횃불 대신 개혁파 드워프들의 달과 별 모양의 봉이 무리지어 흔들렸다.
흑미는 살라만더 떼와 함께 무척 경쾌하고, 화려한 춤사위를 펼쳤다.
거기에, 미리 준비해 둔 성대한 연회상까지.
술과 음식으로 고된 일에 대한 회포를 풀어가며 <장인 대회>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
어김없이 술을 금지당한 룬은 괜한 유혹에 빠지기 전에 백야를 머리 위에 얹고 인어를 만나러 갔다.
마력통로를 지나 물로 이루어진 경계선 앞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인어가 바위 뒤에서 고개를 쏙 내밀었다.
“삐약!”
백야가 먼저 반갑게 날개를 파닥거리자, 아멜리아가 수줍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 안……녕. ……백야, 룬.]
“안녕.”
목소리가 조금 떨려 보였지만, 용기를 내고 싶은 건지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고개를 피하지 않았다.
‘노력하는 아이에게는 상을 줘야하는 법이지.’
룬은 가죽 주머니를 열고 ‘정등’을 몇 개 꺼내 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오늘 신기한 걸 얻어서 가져왔는데.”
따로 마력을 주입하지 않아도, 반영구적으로 빛을 내며 반짝이는 물건은 아멜리아에게도 신기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