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흑미 님께 사용법 알려드리는 걸 깜빡했나? 룬 님, 잠시만요! 나중에 다시 하겠습니다! 이건 버리지 마시고 꼭 지니고 계세요! 꼭이요!>
뚝.
허공에 떠 있던 글자는 잠시 뒤, 스르륵 사라졌다.
“……흑미야. 이게 뭔지 넌 알겠냐?”
“우웅. 흑미는 이거 전해주라고만 들었어요.”
‘이놈, 묘한 걸 발명했군.’
저 촐싹대는 말투는 분명 제드였다.
정확히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유용한 아티팩트를 만들어냈다는 사실만큼은 직감할 수 있었다.
……원작자가 묘하게 허술한 놈이라 이상하게 믿음이 가질 않아서 그렇지.
룬은 일단 제드가 준 통신용 아티팩트를 품에 다시 갈무리해 넣었다.
사용법은 아직 알지 못했지만, 페르디키온의 레어에서 본 ‘전서구’와 비슷한 물건임에 틀림없었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전서구’보다 더 실용적이고 간편하게 만들었다고 봐야지.’
엉뚱한 녀석이긴 해도 성실하게 성과를 만드는 제드.
생각해보면 제법 기특했다.
‘이거, 나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겠는데.’
룬은 가볍게 미소를 흘렸다.
페르디키온은 레어의 번영을.
아멜리아는 자신을 위한 수련을,
제드는 인간계에서 개혁파 문물을 전파하기 위한 노력을,
최근엔 흑미도 정령을 훈련시키며 새로운 기술을 습득 중이었다.
거기까지 떠올린 룬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숙제를 시도하기로 결심했다.
‘<망자의 혼>. 그걸 한 번 소생시켜봐야겠어.’
그가 폐광던전의 히든 던전 보스를 처리하고 얻은 <망자의 혼>.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 찬 혼이 뼈에 깃든 채 아공간 주머니에 수집된 상태였다.
‘크리스티나의 레어에 돌아오고 가끔 소생 마법을 걸어보긴 했는데. 계속 실패만 했지.’
룬은 <망자의 혼>에 처음 소생 언령을 사용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 희미한 소생의 빛에 이끌려 <망자의 혼>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 허약한 능력치에 <망자의 혼>이 실망을 금치 못합니다.
- <망자의 혼>이 사라집니다.
.
.
.
뭔가 될 것처럼 녹빛이 번뜩였다가 호로록 꺼지기를 반복하니 약이 올랐다.
‘실망하는 혼 따위나 보려고 이러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다시 생각해 봐도 은은한 빡침이 올라왔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야 뻔했다.
‘내 언령 마법 <소생>이 아직 약하니까.’
<망자의 혼>은 무려 히든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다.
그런 자의 혼을 되살리는 작업은 산양이나 양파, 감자를 싱싱하게 만드는 것과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기는 했지.’
그럼에도 시도한 이유는 중간중간 다른 결과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 희박한 확률로 ‘업적’ 능력치가 보너스로 작용합니다!
- 희박한 확률로 ‘재능’ 네크로맨서의 능력이 발동합니다!
- 성공에 근접하였습니다.
- 실패합니다.
- 살아날 뻔했던 <망자의 혼>이 실망을 금치 못합니다.
성공에 대한 힌트가 나온 건 그때였다.
바로 드물게 적용 되는 업적과 재능 능력치.
<업적>
- 이계 생물의 혼을 연성한 자.
<재능>
- 네크로맨서 : 죽은 자를 소생시키는 자.
‘설마 흑미를 탄생시킬 때 얻은 업적과 절벽 산양을 살린 재능이 도움될 줄이야.’
혼의 연성과 소생 언령, 재능.
셋의 상성을 이용하여 최상의 결과를 낸다면 가능했다.
‘그러니 ‘습득가능’이 붙은 거겠지.’
문제는 랜덤으로 터지는 업적과 재능 능력치.
거기에 <소생> 언령의 대성공까지.
이 셋을 동시에 터트리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니 성공 확률을 높일 방향성도 보인다.’
흑미를 탄생시킬 때, 그는 자신의 비늘을 양분으로 사용했다.
거기에 매개물인 씨앗.
‘마계 장미에 서큐버스의 혼이 깃들었듯, 망자의 혼이 깃들 만한 매개체를 찾아야 해.’
망자의 혼은 죽음과 어둠 속성인 무언가를 통해 얻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다행히 어둠과 가까운 물건은 이 검은 방에 잔뜩 있어.’
룬은 다시 주머니에서 뼈를 꺼내 자세히 살폈다.
<망자의 뼈>
- 아득한 세월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잊어버린 망자.
- 한때 강력한 힘을 가진 초인(超人)이었으나 죽음 속에 오랫동안 잠겨, 원한을 가진 망자가 되었다.
- <망자의 혼>이 잠들어있다.
드디어 해냈다
‘네 놈과 잘 호환되는 거라면…….’
뼈다귀를 든 채 블랙 드래곤들의 유물을 거침없이 뒤지던 룬.
온갖 물건을 헤집어낸 그는 마침내 어둠과 죽음의 기운을 가진 깨진 갑옷을 발견했다.
‘이거다!’
<깨진 듀라한의 갑옷> (봉인 중)
- 전쟁에서 용맹하게 싸운 기사의 잔해.
- 드래곤과 마족의 전쟁에서 악명 높은 살상력을 유감없이 보였다.
- 그로 인해 ‘전장의 사신’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 위험성을 경계한 골드 드래곤 장로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도록 봉인해두었다.
‘골드 드래곤 장로라면…… 크리스티나인가?’
흑미의 경우를 한 번 겪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 갑옷이라면 최상의 결과를 보여주리라는 걸.
룬은 <망자의 뼈>를 꺼내 찾아낸 <듀라한의 깨진 갑옷> 옆에 두었다.
그때였다.
부르르.
<망자의 뼈>와 <듀라한의 깨진 갑옷>이 서로 공명하며 진동했다.
‘그래. 네 놈도 마음에 드나 보군.’
룬은 속으로 음험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시선이 백야에게로 향했다.
정확히는 백야의 깃털이었다.
‘분명 망자의 혼이 저 녀석을 탐냈었지.’
비록 새끼일지언정, 백야는 불사조였다.
깃털이 머금은 꺼지지 않는 불의 마력과 생명력.
이는 소생 언령으로 살아날 놈의 좋은 에너지원이 되어 줄 수 있을 터였다.
“백야.”
“삐이?”
영문은 모르겠으나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낀 새는 저도 모르게 머리 위의 깃을 꼿꼿이 세웠다.
“너……. 요즘 털갈이 시기였지?”
음흉한 미소를 띤 룬이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백야에게 다가갔다.
“흑미야. 백야 잡아라.”
“네!”
룬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삐야아악!”
그리고, 무수히 많은 깃털이 흩날렸다.
잠시 후.
“……무슨 새가 이렇게 겁이 많아?”
“으음, 그치만 좀 전의 룬 님 얼굴은 무섭게 생기긴 했어요!”
흑미는 오들오들 떨면서 품에 안긴 백야를 쓰다듬어 주었다.
전보다 깔끔해진 대신 깃털이 눈에 띄게 쑤욱 빠진 백야는 퀭한 눈으로 ‘삐루루루루…….’하고 힘없이 울고 있었다.
“……그냥 깃털을 다듬어 주려던 것뿐이었어.”
내심 뜨끔한 룬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털갈이 중이라 가만히 둬도 빠지고 있던 깃털들이었다.
긁히는 대로 쑥쑥 나오는 깃털을 잘 수확했을 뿐인데, 순진한 어린 새는 그의 표정을 보고 그만 겁에 질려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더 모으고 싶었는데.’
더 이상 깃털을 수확하는 건 백야에 대한 도리가 아니었다.
이미 백야의 목은 살짝만 들추면 살이 보일 정도였으니까.
대신 룬의 옆에는 생명력이 충만한 불사조의 깃털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여기서 작업할 게 있어. 그러니까 둘은 밖에서 놀고 있어라.”
“네에!”
“삐루…… 삐루루루…….”
풍성한 깃털을 홀라당 뜯긴 백야에 대한 위로는 흑미에게 맡기고, 룬은 갑옷조각과 망자의 뼈를 한 곳에 잘 모았다.
‘여기에 내 비늘을 양분으로 넣고…….’
본체로 돌아간 룬은 자신의 비늘을 가볍게 뽑아냈다.
이로써 모든 준비는 끝났다.
‘지금부터는, 딱 한 번의 대성공을 위해 달릴 뿐이다.’
번쩍!
룬은 소생 언령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실패였다.
이전에도 계속 실패했고, 이후로도 수없이 실패가 예정된 작업이었다.
‘딱 한 번, 한 번이면 돼!’
번쩍!
번쩍!
번쩍!
강화된 소생의 빛이 터질 때마다 불사조의 깃털이 하나씩 줄어들었다.
단단히 마음먹고 시작했지만, 남은 깃털이 한줌도 되지 않자 룬 역시 목이 타는 기분이었다.
‘제발! <소생하라>!’
“뀨우우우!”
번쩍!
갑자기 검은 방은 물론, 크리스티나의 레어가 크게 요동쳤다.
쿠웅!
“……!”
죽음이 탄생했다.
블랙 드래곤 일족이 아니라면 주변의 생명체가 멸절했을 충격파가 룬의 전신을 덮쳤다.
와르르.
스륵!
룬은 겨우 눈을 뜨고 눈앞에 일어나는 변화를 똑똑히 목격했다.
공중에 뜬 망자의 뼈 사이로 불사조의 깃털이 자리를 잡았다.
그 다음, 블랙 드래곤 해츨링의 비늘이 깃털에 겹쳐졌다.
완벽하게 자리 잡은 재료들 위로 소생 언령이 문자화되어 새겨졌다.
룬의 머릿속에는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이 알림으로 뜨고 있었다.
- 희박한 확률로 ‘업적’ 능력치가 보너스로 작용합니다!
- 희박한 확률로 ‘재능’ 네크로맨서의 능력이 발동합니다!
- 대단히 희박한 확률로 당신의 ‘언령’이 극대화됩니다!
이내, 깨진 갑옷이 뼈를 감싸기 시작하며 갑옷 안을 어두운 죽음으로 가득 채워 넣었다.
룬은 감동이 벅차올랐다.
“뀨아아!”
‘드디어 해냈다!’
절로 앞발에 힘이 들어갔다.
지난 한 달간 크리스티나 몰래 맨 땅에서부터 시도한 성과가 드디어 그의 눈앞에 구현되고 있었다.
룬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금, 아득한 죽음이 어둠 속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영혼을 베는 사신.
압도적인 공포를 퍼트리는 그림자!
머리 없는 죽음의 기사는 오로지 산 자를 배척하기 위해 태어난 금기의 괴물이었다.
주변의 검은 마력석이 품고 있던 저주와 힘까지 전부 제 것으로 흡수한 덕에, 근처에 남아있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룬의 눈앞에 창이 뜨고 정보가 떠올랐다.
<이름 : 데스 나이트 듀라한>
- 사자(死者)였던 그의 이름은 잊혀졌다.
- 종족 : 언데드&정령
- 부화조건 : 강력한 죽음의 기사 듀라한의 갑옷과 원한 깊은 초인(超人)의 혼의 연성에 성공 할 시 희박한 확률로 탄생한다.
- 어둠을 따르는 정령기사.
※ 특이사항 :
희박한 확률로 불사조의 깃을 품고 감정의 씨앗을 얻었다.
성장의 경험에 따라 성향이 변화한다.
- 룬 이클립스(Lune Eclipse)에게 귀속
- 서번트(Servant) 화 완료.
- 성향 : 충직한, 음울한
▲ 울부짖음 주의 ▲
‘이놈은 또 상태가 왜 이래?’
룬이 듀라한에 대한 설명을 다시 꼼꼼하게 읽으려던 차.
화악!
강력한 압박감과 환한 태양빛이 이 장소를 덮쳤다.
[더러운 마족 놈이!]
고개를 돌리지 못할 정도로 빛이 쏟아지는 통에 위를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머리 위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는 너무나 분명했다.
“뀨우욱!”
[크리스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