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242)

[이제까지 듀라한과 대련하면서 수련해왔지? 이제 실전을 해보는 거야.]

씨익.

룬은 동그랗게 눈을 뜬 아멜리아를 향해 웃었다.

‘이렇게까지 각오를 다진 녀석에게 무조건 안전한 방법만 고수하게 하는 것도 아쉬운 일이지.’

다행히 아멜리아는 실전이라는 말에도 조금 긴장된 얼굴을 할 뿐,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룬이 호오, 하고 기특하게 바라보았다.

‘마침 자신감이 좀 붙었나. 잘 됐군.’

“뀨우. 뀨우우.”

[그럼 우선 통로 안쪽으로 따라와 볼래?]

마침 룬에게는 아멜리아의 사기와 능력을 올려줄 좋은 방도가 있었다.

난제

주저하면서도 룬을 따라 통로 안으로 들어온 아멜리아.

촤악!

물기라곤 하나도 없는 통로 앞에 서자, 아멜리아가 인간형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물고기 지느러미가 사라지고 대신 두 다리가 바닥을 디뎠다.

처음으로 심해를 벗어난 소녀는 입을 뻐끔거리더니 천천히 공기를 들이마셨다.

[공기가…… 이런 맛이었……구나.]

“뀨.”

고개를 끄덕인 룬이 꼬리를 슬슬 흔들었다.

백야가 신기한 듯 아멜리아의 주변을 날아다니다, 룬의 요청에 의해 검은 방 쪽으로 통하는 통로 끝으로 날아갔다.

혹시 크리스티나가 그를 찾을 시 와서 알려줄 보초역이었다.

룬은 아공간 주머니 속에 담아두었던 땅콩버터쿠키, 딸기케이크와 레몬 쉬폰. 바닐라 푸딩이 담긴 통을 하나씩 꺼냈다.

“뀨우.”

생소한 디저트를 본 아멜리아의 눈이 신기함을 담고 빛났다.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기도 했다.

[먹어도…… 돼?]

[그래. 먹는 방법 알려줄 테니까, 잘 봐.]

까만 앞발로 손짓하자 아멜리아가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룬은 그녀에게 포크를 쥐게 하고, 케이크에 포옥 소리 나게 꽂아 크게 떼었다.

“하압.”

까만 해츨링의 입 안에 몽실몽실한 생크림을 올린 케이크가 가득 들어갔다.

‘역시 크리스티나의 케이크다. 언제 먹어도 좋군.’

룬은 앞발 하나를 들어 자기처럼 해 보라는 의미로 케이크를 가리켰다.

[음……. 이…… 이렇게?]

아멜리아가 조심스럽게 케이크를 포크로 찔렀다.

폭.

“뀨.”

‘그렇지.’

제드의 조언을 나름대로 귀담아들어 두었던 그는 최대한 귀엽고 달달하게 생긴 먹거리를 챙겨두고 있었다.

그걸 딱 좋은 타이밍에 선보일 수 있게 된 셈이었다.

드디어 입 안에 하얀 크림과 빵을 살며시 집어넣은 아멜리아.

오물거리던 그녀는 다른 손으로 입을 막고 놀란 얼굴을 했다.

천상의 맛!

처음으로 느낀 행복한 맛이 입 안 가득 맴돌고, 달콤한 자극에 눈이 절로 커졌다.

마력이 깃든 음식은 아멜리아의 몸 안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랫동안 어둠을 품고 있느라 지쳐있던 몸이 잠시나마 편안해졌다.

[마, 맛있어……! 모, 몸도 안 아파! 어떻게 이런…… 음식이 있어?]

‘예상했던 대로군.’

눈 먼 봉사도 눈 번쩍 뜨일 맛이었다.

비록 통증을 누르는 건 일시적인 효과였지만 잠시나마 숨통이 트인 아멜리아는 신기해하며 처음 접하는 케이크에 서슴없이 손을 대었다.

아멜리아는 룬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딸기 케이크를 입 안 가득 머금고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

포크를 쥔 채 파들거린 소녀가 목 안으로 케이크의 달콤함을 삼킨 후에야 물어왔다.

[이……건, 이름……이 뭐야?]

[딸기. 개인적으로는 크림이랑 잼을 모두 빵에 발라 같이 먹으면 조화롭고 맛있던데.]

그쯤에서 룬은 듀라한에게 눈짓했다.

마침 듀라한은 심해에서 통로로 건너오지 않고 대기하던 차였다.

아멜리아가 처음 먹어보는 케이크와 쿠키에 한눈이 팔린 틈을 타, 룬은 듀라한에게 가볍게 수신호를 보냈다.

‘주변 정찰 좀 해보고 와.’

즉시 듀라한의 모습이 심해 안쪽으로 사라졌다.

[룬……은 아, 안 먹어……?]

“꾸우.”

룬은 꺼내놓은 간식 중 소금버터빵을 집어 들었다.

[요즘 단 과자 종류는 많이 먹어서. 이거면 돼.]

[그렇구나…….]

물끄러미 룬을 내려다본 아멜리아도 똑같이 소금버터빵을 집어 살며시 베어 물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감촉과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

진한 버터 풍미가 입 안을 가득 채우며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아멜리아가 신기한 기분에 젖어 어색하지만 기쁜 얼굴로 웃었다.

[고, 고마워…….]

[천만에.]

[바깥세상은…… 시, 신기한 게, 정말 많……은가 봐…….]

[그런 편이지. 아까 준 모코지석도 그렇고. 계속 개발되고, 생겨.]

오물거리며 먹던 아멜리아가 맑은 미소를 또 다른 대답으로 돌려주었다.

인어는 기대감 섞인 목소리로 물어왔다.

[나, 나도, 언젠가…… 나갈 수 있을까……?]

[당연하지. 참, 내가 만든 건데 이것도 먹어 봐.]

[……?]

룬이 자신의 야심작인 꿀과 버터를 발라 바삭하게 구운 감자칩을 건넸다.

새로운 간식거리를 먹으며 아멜리아가 행복을 즐기는 사이, 룬은 그녀의 등 너머 심해를 지켜보았다.

스윽.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듀라한이 녹빛의 혼을 빛냈다.

그의 손에는 매끈한 광택이 나는 찢긴 가죽이 들려있었다.

‘역시.’

룬은 아멜리아 모르게 차분한 시선으로 확인했다는 뜻을 알렸다.

이내, 듀라한의 손에서 가죽이 빠져나가 해류 속으로 섞여 멀어졌다.

‘아무래도 실전은 미뤄야겠군.’

듀라한이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해양 몬스터의 가죽이었다.

정찰을 하라고 시켰지만, 몬스터를 사냥하라고 한 적은 없었다.

즉, 듀라한은 정찰 중 몬스터를 만났다.

그리고 반드시 상대를 죽이고 저 가죽을 가져와야만 했던 상황에 처했었음을 뜻했다.

짐작하고 있던 이유가 이미 있었기에, 룬은 속으로 탐탁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

‘아니길 바랐지만 역시 저주에 걸려있나.’

블루 드래곤의 레어.

이 장소에 아멜리아 외 다른 생물이나 몬스터의 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건 어둠의 힘에 삼켜져 잠들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얼마 전부터 훈련 중 다른 몬스터의 기척을 느낀 듀라한이 룬에게 경고해왔다.

‘내가 조금씩 흡수해 간 덕에 아멜리아의 어둠이 옅어지기 시작했지.’

그때 깨달았다.

이대로 그가 어둠을 모두 흡수하면 아멜리아의 부모용만 깨어나는 게 아니라, 함께 심해 속에 묻혀있던 정령, 생물, 해양몬스터들도 깨어난다는 걸.

‘그걸 확인하러 정찰 보냈더니 제압도 아니고, 죽이고 와야 했다는 건…….’

필시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 어둠에 오염된 블루 드래곤들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멜리아에게 실전을 경험시키려던 이유는 수련 강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강해져서 부모를 깨우기를 바랐기 때문에.

하지만, 몬스터가 정상이 아니었듯 블루 드래곤들도 그렇다면?

‘아니리란 보장은 없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둬야 해.’

실전을 해본답시고 저주에 걸린 몬스터를 마주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부모용의 상태까지 생각이 미칠 수 있었다.

그러다 대비 없이 패닉이 오기라도 하면 아직 어린 블루 드래곤 해츨링이 무모한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룬은 힐끗 시선을 돌렸다.

푸딩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기된 뺨을 손으로 감싼 아멜리아가 보였다.

‘대비책이라.’

고작 해츨링인 인어의 힘이 필요했다.

룬의 생각을 모르는 소녀는 말캉한 바닐라 푸딩을 떠 입안에 넣고 굴렸다.

[와…… 이렇게 마,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거, 처, 처음……이야.]

[입에 맞아서 다행이네. 많이 먹어.]

[응……! 이 쿠키……도 저, 정말 맛있어. 고마……워. 룬.]

직감이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멜리아가 성장해야 한다는 것은.

룬의 속을 모르는 아멜리아가 바삭한 쿠키를 오물거리며 웃었다.

***

아멜리아를 심해로 돌려보낸 후, 룬은 듀라한과 함께 검은 방으로 돌아왔다.

철그럭, 철그럭.

“뀨후우우…….”

‘해양 몬스터 정도라면 어떻게든 하겠다만, 성체 블루드래곤까지 고려해야 하다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듀라한 역시 그런 룬의 심정을 이해하고 어둡게 녹빛을 빛냈다.

“뺙!”

통로 앞에서 망을 보고 있던 백야가 냉큼 날아올라 룬의 머리 위에 앉아 지저귀었다.

‘속 편한 녀석.’

상황을 모르는 새는 내버려두고, 룬은 방 아무데나 앉아 생각에 잠겼다.

‘상황을 하나씩 정리해 봐야겠어. 돌파구가 필요해.’

물의 일족이 가진 특성은 ‘정화’.

멸족한 블랙 드래곤의 어둠 속성 힘을 블루 드래곤에게 맡긴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니 저주에 걸려 있다 해도, 블루 드래곤이 태생부터 타고난 ‘정화’를 발동할 정도의 정신만 차리게 하면 되긴 했다.

‘어떤 저주에 걸렸는지부터 제대로 알아야 해.’

단순한 수면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듀라한이 몬스터를 죽여 버린 뒤 가죽까지 들고 와 보여주었을 리 없으니까.

‘자다 깨서 놀란 몬스터를 죽였을 린 없지. 그럼……?’

곰곰이 생각한 룬은 탄식을 터트렸다.

‘광증(狂證)인가.’

신체에 두드러지는 특징은 없으나, 공격성이 나타나는 상태.

아멜리아의 어둠을 룬이 전부 회수한다 해도, 이미 저주에 걸린 자들의 상태이상까지 풀어줄 수는 없었다.

‘녀석은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을 알게 되면 꽤 충격 받겠네.’

아멜리아가 어둠을 지니고 있던 상황은, 비유하자면 차갑고 맑은 물에 흑진주를 담아 둔 상태였다.

어둠과 충돌하지 않게끔 순수한 물의 힘을 가진 어린아이.

거기에 사적으로 힘을 쓰지 않을 존재.

아멜리아는 이 두 가지 조건에 부합했다.

하지만, 일족의 정수나 다름없는 어둠.

그건 어린 블루 드래곤의 해츨링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 탓에 아멜리아는 어둠을 모두 품지 못했다.

저주 역시 제대로 정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오염되어갔다.

‘감당 못할 힘은 파국을 부르는 법.’

결국 소녀가 품지 못한 힘이 심해에 퍼져, 레어의 모든 생물들을 거대한 저주 속에 밀어 넣었다.

‘물속에서 먹물을 담은 흑진주가 깨져버린 탓이지.’

드래곤 레어 근처의 누구도 그 어둠을 피하지 못했다.

아멜리아의 부모 드래곤.

레어 근처에 살던 해양생물과 몬스터들.

그 외에, 물의 일족의 가호를 받고 살던 이들까지도.

‘어쩌면…… 던전도 무사하지 못하겠군.’

블루 드래곤 레어에는 물의 던전이 있었다.

어지간하면 외부환경에 영향 받지 않는다지만, 레어 전체가 어둠과 저주로 잠식당했다면 상황이 달랐다.

‘저주 받은 던전이 되어버린 셈인가.’

오랜 어둠과 저주 탓에 변형되었을 수중 던전.

어둠이 걷히는 순간 활성화될 던전의 상태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이쯤 되니 아멜리아의 잠재력이 새삼 다시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속성을 반 가까이 유지하고 있었던 거군. 성체인 블루 드래곤들조차 불가능했는데 말이지.’

이 사태의 중심에서 홀로 오래도록 버텨온 건 대단했다.

하지만 그저 버텨온 것만으로는 소용없었다.

어둠이 걷히고, 오랜 저주로 인해 광증에 물든 자들이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보게 될 때.

저 물빛 소녀는, 좀 더 어둠을 머금고 버텨야했다며 스스로를 탓할 성정이었다.

‘부모가 눈앞에서 광기에 휩싸인다면, 충격이 크겠지.’

생각지도 못한 난제였다.

‘차라리 크리스티나에게 말해?’

별다른 방도가 없다면, 차라리 크리스티나에게 상황을 말하고 도움을 구하는 것도 답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룬은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간 내가 완전한 성체가 되기 전까진 어둠을 가져갈 수 없게 되겠지. 크리스티나는 내 안전을 가장 우선시할 테니까.’

그녀는 생각보다 냉정한 결단을 내릴 수도 있었다.

저주에 걸린 블루 드래곤들의 선택이었음을 이해하고, 그들이 점차 저주에 물들어가는 것은 그대로 둔 채 아멜리아와 룬의 보호를 최우선에 둘 수도 있었다.

시작이 괜찮네

‘크리스티나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어둠 일족 전체의 힘을 홀로 상대할 수는 없어. 그 힘을 감당 할 수 있는 내가 나서지 못하면…… 아멜리아는 부모를 잃게 될 거야.’

크리스티나는 아직 룬의 진정한 능력을 모른다.

그렇다고 룬이 혼자 어둠을 모두 흡수 할 수 있다고 말하면, 그의 존재에 대해 의심할지도 몰랐다.

‘사실대로 알리자니 미래의 내가 곤란하고, 알리지 않자니 내가 해결 할 기회가 없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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