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아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혔으나 이내 몰래 바닷물에 묻혀 흘려보냈다.
대신, 하얀 얼굴에 미미한 열의를 드러냈다.
[정말 그, 그렇게……보여?]
“네! 백야도 그렇게 생각하지?”
“삐약!”
어느 새 백야가 해류를 타고 흑미의 머리위로 날아와 앉으며 대답했다.
아멜리아는 두 어린 존재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그렇구나…….]
신기한 기분이었다.
자신을 인정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었다.
[이, 이런…… 기분, 처음이네…….]
아멜리아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며시 내렸다.
그러면서도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어렸다.
룬은 그 장면을 보며 턱을 앞발로 슬슬 문질렀다.
‘생각보다 더 잘 되어 가는데?’
흑미는 아멜리아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이젠 ‘언니, 언니!’하며 살갑게 어리광을 부리기까지 했다.
거기에 백야까지 끼어들어 삐약거리며 흥을 돋웠다.
[응……! 해, 해볼게!]
결국, 아멜리아가 자신의 창인 ‘멜’을 두 손으로 꾹 쥐어 들었다.
“와아아!”
“삐이!”
흠, 하고 그들을 지켜본 룬은 계획을 점검했다.
‘크리스티나의 외출은 내일부터 최소 삼 일. 그 안에 승부를 보면 되겠어.’
분명 라이를 두고 가겠지만, 거기에 대한 대처법도 있었다.
일전 암시장에서 구입해온 <저주도구 만들기 세트>를 사용할 때였다.
‘레시피 중에 이번 계획에 쓸 만한 게 있었지.’
룬은 틈틈이 사용해 본 저주도구를 써먹을 생각에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삐이?”
그런 그에게로 향하는 넷의 시선을 느끼고 룬은 별 일 없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좋아. 지금부터 전투 방식에 대해 알려줄게.]
‘경험도 쌓아야겠지만, 이 수업으로 꼭 확인해야 할 게 있지.’
이 수업은 룬의 계획에 확신을 더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필드의 어둠을 거두면, 흑미 넌……. 정신 못 차리고 잠투정하는 해양 몬스터들을 대상으로 ‘친구 만드는 힘’을 사용해.]
“어? 전투라고 했는데, 그럼 다들 흑미 친구가 되는 거예요?”
흑미의 투명한 핑크빛 눈이 깜빡였다.
[그러면 좋겠지만, 녀석들이 거부할 거야.]
“히잉. 흑미는 친구 사귀는 거 좋아하는데.”
아직 시도해보지도 않았지만 왠지 서운해 하는 흑미에겐 아랑곳하지 않고, 룬은 설명을 이어갔다.
[원래 모든 생명체가 친구를 원하지는 않는 법이니 너무 서운해 할 건 없어. 무리가 있으면 그 중에 일부는 혼자만의 생활이 더 편한 놈도 있게 마련이지. 그리고 아멜리아.]
[으, 응?]
갑자기 이름을 불린 아멜리아가 놀란 눈을 하고 룬을 보았다.
[‘정화’는 어느 정도로 사용할 수 있어?]
[그, 그게…… 평소에는 내 안의 어, 어둠을 정화하는 데에 쓰고 있어서……. 3할 정도…….]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대답을 들은 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다. 흑미에게 시선이 끌린 녀석들을 정화시켜.]
[으응. 그, 그 정도라……면.]
‘긍정적인 대답이군. 역시 자신감이 좀 붙은 게 좋은 쪽으로 작용했나.’
아멜리아는 창을 다루는 감각도 상당히 능숙했고 훈련하기 전 꾸준히 호흡법을 해 왔다.
덕분에 어둠의 힘을 꺼내는 일도 잘 해내고 있었다.
대련은 또 어떤가.
어둠의 기사인 듀라한을 상대해 온 아멜리아에게 광기에 젖은 몬스터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1:1로 고작 필드의 해양 몬스터에게 질리는 없고, 광기에 물든 녀석을 상대로 흑미와 합을 맞춰 싸우는 방법을 익히게 하는 걸 1차 목표로 삼자.’
[정화가 통하지 않는 녀석들은 사냥하는 수밖에 없어.]
사냥, 이라는 단어를 들은 아멜리아가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생명을 해한 적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런 소녀를 향해 룬이 담담히 물었다.
[망설이지 않을 자신은 있어?]
아멜리아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창을 꼭 쥐었다.
[으, 응! 나도…… 드, 드래곤인걸!]
“뀨우. 뀨우.”
[좋아.]
‘그 결심이 실전에서 제대로 활용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뒷말을 삼킨 룬은 듀라한을 바라보았다.
“뀻.”
[너는 네 판단 하에 단일 행동. 기본적인 역할은 정찰이야.]
철컥! 텅텅!
듀라한이 장갑으로 가슴을 두들겼다.
그는 공격이나 방어 같은 지정된 역할이 필요 없었다.
일당백인 전사임과 동시에 전장 상황에 맞게 알아서 움직일 수 있는 자였으니까.
‘첫 실전 훈련이니만큼 아멜리아의 대처능력을 체크하며 주변 몬스터와 필드부터 정화해나간다.’
“뀨뀨.”
[가자.]
룬의 지시에 따라 일행은 심해로 파고들었다.
***
파지직!
광포한 거대 전기뱀장어 몬스터가 초강력 전기를 사방에 터트렸다.
룬의 지시로 전기파동을 예측한 일행들은 대비를 완료했다.
그들은 이미 전기가 닿을 범위 밖에서 뱀장어를 주시하고 있었다.
룬이 크리스티나의 전승 지식과 경험, 관찰을 통해 몬스터 대응책을 일러주었다.
[잘했다. 전기가 약해지면 침착하게 다시 붙어!]
[으, 응!]
“네!”
백야는 룬의 머리에서 가볍게 삐약! 하고 소리를 내었다.
전기 파동이 한 차례 지나가고, 꿈틀거리는 뱀장어를 상대하기 위해 듀라한이 다시 선봉으로 나섰다.
쿵!
검은 갑옷기사가 발을 한 번 구르자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진동했다.
두 눈에 스산한 녹빛을 드리우며 듀라한은 양 손으로 뱀장어의 거대한 몸통 가운데를 틀어잡았다.
콰콱!
- 께에에엑!
전기뱀장어가 미친 듯이 몸을 펄떡이며 전기를 뿜었다.
그 순간, 듀라한이 괴력을 터트리며 뱀장어의 몸통을 바닥에 찍어 눌렀다.
- 키힉! 키에!
바닷속임에도 모래가 물에 밀려 회오리치듯 휘몰아쳤다.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을 고스란히 받은 뱀장어가 눈에 날선 증오를 드러내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완벽하게 제압된 거대한 전기뱀장어의 앞에 창을 곧추세운 아멜리아가 나섰다.
[저, 정화할게!]
파앗!
아멜리아가 창을 쥐고 ‘정화’ 언령을 발동했다.
- 끼르륵……! 캭!
몸부림치던 거대 전기뱀장어의 입에서 어둠이 몽글거리며 흘러나왔다.
정화 언령을 온몸에 쬐인 뱀장어는 곧 맑아진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는 듀라한과 눈을 마주치자 두려움에 동공을 떨었다.
퍼덕.
퍼더덕!
뱀장어는 있는 힘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듀라한은 그런 뱀장어를 잡지 않고 놔주었다.
전기뱀장어가 뱉어낸 어둠을 제 것으로 잘 갈무리한 룬은 진행 상황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좋아. 이제 광기에 걸린 몬스터들이 덤벼들어도 다들 꽤 침착하군.’
처음에는 실수도 있었다.
마구잡이로 날뛰는 몬스터에게 시선을 뺏긴 탓에 ‘정화’를 쓸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흑미의 매혹조차 거부하고 눈을 부라리던 거대 게 몬스터가 일행들에게 덤볐다.
조그만 여우수인마족에게 집게발이 내리 꽂히려는 순간, 몬스터는 듀라한의 손에 등딱지를 함몰 당해 죽었다.
‘그 뒤로 패닉이라도 오는 줄 알았더니, 의외로 더 잘 해낸단 말이지.’
아멜리아는 다짐을 굳히고 창을 꽉 쥐며 이를 악 물었었다.
그 얼굴에 놀라움과 죄책감.
자신이 나서지 않았을 때 초래할 뻔한 최악의 결과가 스쳤다.
‘깨달았나보네. 망설이면 함께 싸우는 팀원들이 다치거나, 반대로 해양 몬스터가 죽는다는 사실을.’
그 뒤로 소녀는 몬스터의 광기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었다.
이 역시 룬의 예상대로였다.
‘그래도, 의외로 대견하군. 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성정이 소심하고 여린 소녀였다.
한데, 그 여린 마음 때문에 오히려 소녀는 울기보다는 맞서는 걸 택했다.
겨우 받은 일행의 믿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누구도 다치지 않기를 바란 탓이었다.
룬은 나름대로의 추측을 더했다.
‘무력하게 혼자였던 시간을 너무 오래 경험한 탓인가.’
광기에 잠식된 몬스터.
순수함을 간직한 소녀가 보기에는 가장 기괴한 기운을 드러내는 생물이었다.
하나같이 광증을 지닌 놈들이다 보니 그녀가 정화하지 못하면, 눈을 뒤집고 덤벼들었다.
실수라도 하면 일행 중 누군가는 다치거나 심각한 상해를 입을 터.
허투루 넘길 수 없게 된 아멜리아는 전력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혼자가 되는 것도, 자신의 실수로 누군가 상하는 걸 보는 일도 모두 두렵기 때문에.’
룬은 눈앞에 스쳐나가는 광기에 빠진 바다새우를 손으로 콱 쥐고 어둠을 쭉 흡수했다.
‘모순적이지만 두려운 결과를 맞이하기 싫으니 어떻게든 버텨내기로 한 것일 테지. 눈에 성과가 보이는 건 덤이고.’
가시적인 성과가 눈앞에 들이밀어지는데 싫어할 자는 없었다.
사냥을 시작하고 고작 두세 시간.
아멜리아의 ‘정화’ 실력은 눈에 띄게 늘었다.
‘게다가 흑미가 생각보다 힘을 잘 다뤄.’
최근까지 흑미의 ‘매혹’은 룬이 주의를 준 탓에 거의 쓰이지 못했다.
당연히 성장하지 못했고, 여전히 초급 수준에 머물렀다.
‘정신계 능력이라 함부로 쓸 수도 없는데, 이 기회에 최대한 성장시켜야 해.’
어차피 룬과 일행들이 마력통로를 통해 심해를 떠나버리면 매혹에 걸린 놈들도 흑미를 쫒아올 수 없을 터였다.
‘부작용이라면…… 저 미친 놈들의 상사병인가?’
광기와 상사병의 조합이라니.
위험한 느낌을 받은 룬은 미간을 구겼다.
‘이거 괜찮은 거겠지.’
왠지 모를 찜찜함을 느끼며 룬은 해양 몬스터를 상대하는 흑미를 바라보았다.
마침 매혹에 걸렸지만 여전히 광기에 빠져있는 넙치였다.
헐떡이던 넙치가 흑미에게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자, 흑미의 눈꼬리가 날카로워졌다.
“뗏! 때찌!”
빠악!
“너 왜 눈을 그렇게 떠? 흑미한테 혼나!”
“…….”
‘……수도(手刀) 내려치는 소리가 뭐 저러냐.’
손을 세로로 곧게 세운 채 한 방에 기절!
그야말로 일격필살.
깔끔한 솜씨였다.
흑미는 도도하게 흥! 하고는 다음 타겟으로 달려갔다.
그 광경을 본 룬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 녀석은…… 괜한 걱정이었군.’
비슷한 상태인 ‘광기에 빠진 가오리’ 역시 비슷한 몰골로 옆에 배를 까고 기절한 채 드러누워 있었다.
[아, 앗……! 흑미야! 조, 조금만 천천히……!]
아멜리아가 흑미를 부르며 거대 가오리와 넙치를 열심히 ‘정화’시켜주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녀석들은 정신을 차렸다.
하필 ‘광기’라는 정신 디버프가 걸린 상태라, 정화에 힘이 많이 들었다.
‘저건 나쁘지 않은데.’
일반적인 몬스터라면 매혹이든 정화든 성공한들 아주 미미한 성장뿐일 터였다.
하지만, 마침 광기에 걸려 대상의 격이 꽤 높아졌다.
욕심은 좋은 거지
‘어려운 녀석을 상대로 성공할수록, 눈에 띄게 성장하게 되는 법이지.’
심지어 흑미가 아멜리아와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슬쩍 뒤를 돌아보면서 다니고 있었다.
아멜리아를 위해 스스로 강함의 세기를 조절한다는 소리였다.
‘페르디키온조차 흑미는 팀워크를 익히기보단 혼자 싸우게 두라 했었는데.’
팀원과 함께 싸우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흑미를 보며 룬은 만족스러워 했다.
‘문제없군. 순조로워.’
아멜리아는 걱정했었지만 사실 쓸 수 있는 힘이 3할이라는 건 별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은 강력한 힘을 원하는 게 아니다.
한 줌의 힘으로 최대한 다양한 외부의 생명체에게 정화를 시전 해 보는 게 중요했다.
‘작은 일을 반복해서 잘 해내면 큰일도 해내는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