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242)

[좋아. 잠깐 쉬자.]

제일 먼저 흑미가 해맑게 웃으며 룬이 설치한 마법 결계 안으로 들어왔다.

“헤엑! 으와아……. 굉장해. 흑미 이렇게 많이 친구 만나본 거 처음이에요!”

비록 친구를 많이 만들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생물을 계속 만났기에 나름대로 즐거워했다.

[후우…….]

뒤이어 아멜리아가 바닷물이 없는 결계 안으로 들어왔다.

소녀는 자연스럽게 인어꼬리를 다리로 바꾸고 자리에 앉았다.

아멜리아가 기운 빠지는 얼굴을 한 채 창을 옆에 내려두고 쉬기 시작했다.

듀라한은 결계 근처를 돌며 보초를 자처했다.

룬은 눈짓으로 그를 허락해주었다.

‘보자, 이 즈음에서 기력 보충 한번 해줘야지.’

룬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피크닉 바구니를 꺼냈다.

[자. 간식이야.]

“와! 달콤한 사과냄새가 나요!”

“삐이!”

룬은 반기는 흑미와 백야를 보며 감탄했다.

‘후각 성능 확실하네.’

달칵.

그가 바구니를 열자 갓 구워진 채 들어간 따끈따끈한 애플파이가 접시 째로 들려나왔다.

사과와 영양 꿀을 조려 만든 룬 특제 애플파이였다.

예상대로, 애플파이를 본 흑미의 눈이 햇빛을 받은 양 반짝였다.

“흐왕! 맛있겠다아!”

[많이들 먹어라.]

꿀과 사과 하나하나에 소생 언령을 걸며 가장 싱그럽고 맛있는 상태로 빚어 만든 애플파이였다.

화룡의 불길을 뿜는 화덕에서 구워진 마력음식은 여전히 따뜻한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조금은 서늘한 심해의 온도 속을 뛰어다닌 이들에게 아주 좋은 간식이었다.

“잘 먹겠숩니다아!”

한 입 가득 먹으려고 입을 벌린 흑미가 머뭇거리고 있는 아멜리아를 쳐다보았다.

“언니 안 먹어요?”

[그, 그게. 손으로 머,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정말요?”

눈이 마주치자 아멜리아가 고개를 숙이며 부끄러운 듯 중얼거렸다.

흑미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제일 큰 파이조각을 아멜리아에게 쑥 내밀었다.

“우웅. 흑미가 가르쳐 줄게요. 자요!”

당황하는 소녀에게 흑미가 해사하게 웃어보였다.

“이거, 이렇게 두 손에 들고 먹으면 돼요!”

[으, 응…….]

조심스럽게 애플파이를 받아 든 아멜리아가 머뭇거리자 흑미가 파이에서 능숙하게 조각을 떼고는 ‘잘 봐요, 언니!’ 하고 후후 불어 뜨거움을 식혔다.

“와아앙!”

어린 여우수인이 파이의 반쪽을 크게 베어 물었다.

툭 터져 나오는 달큰한 사과와 꿀의 향기가 주변에 금세 퍼졌다.

“이거 뜨거워요! 후후, 불어서 한 입에 먹어요!”

[……푸훗.]

여우 귀를 쫑긋거리며 한쪽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오물거리며 설명하는 모습이 아멜리아의 웃음을 자아냈다.

아멜리아가 호, 하고 파이를 불고는 얌전히 한 입 베어 물었다.

[……! 아, 정말 맛있다. 달콤해.]

“헷. 룬 님의 요리 실력은 최고예요.”

흑미가 엄치를 척 치켜들었고, 룬은 적당히 호응할 겸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고, 고마워. 룬. 이거…… 너, 너무 맛있어.]

[입에 맞아서 다행이네.]

룬도 자신이 만든 파이를 먹으며 만족스러워했다.

‘역시. 기력보충과 피로회복용 마력요리를 메인으로 삼길 잘했어.’

기본적으로 마력을 회복시켜주지만, 마력보다 중요한 게 멘탈 케어였다.

룬은 우유병을 꺼내어 내밀었다.

[이걸 같이 먹어봐.]

흑미는 냉큼 받아 뚜껑을 열었다.

그를 본 아멜리아도 병을 받더니, 뚜껑을 열어 호록 소리를 내며 우유를 마셨다.

[……! 신기해. 이, 이런 포근한 맛이…… 있다니…….]

부드럽고 고소한 우유와 달콤한 파이는 금세 이들의 입 안으로 사라졌다.

빠르게 식사를 마친 흑미가 정찰을 마친 듀라한을 반기러 간 사이, 기운을 차린 아멜리아가 한숨 돌리더니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룬. 이, 있잖아. 사실 난…… 내가 더, 잘 해낼 줄 알……았어.]

[지금도 잘 하고 있는데, 왜.]

그 말에 물빛 머리카락이 좌우로 흔들렸다.

[‘정화’를 제대로 쓰지…… 못, 못해서. 시…… 실수. 자꾸 나왔……어.]

‘……? 그 정도면 예상보다는 잘한 편인데.’

하나 이 말을 한다 해도 미심쩍은 부분이 생길 듯싶었다.

우유병을 기울이며 잠시 고민하던 룬은 병을 입에서 떼어냈다.

[아멜리아, 오늘 네가 정화해 살린 해양 몬스터와 생물만 몇 백은 될 거야.]

[어……? 그, 그렇……게 많이?]

[그래. 몬스터 토벌이 처음인데 그 정도야. 그래도 더 잘하고 싶다?]

우유병 입구를 들어 바닥에 놓은 어린 꼬마의 눈에는 뭐든 다 알고 있다는 듯 잔잔한 미소가 맺혔다.

[한 마디로, 지금 너는 욕심이 생겼다는 말이야. 더 잘하고 싶은 마음 말이지.]

화들짝 놀라는 아멜리아를 보며 룬이 씨익 웃었다.

[요, 욕심……? 아, 아니. 나, 난…….]

어쩔 줄 몰라 하던 소녀는 손을 저었다.

[무리도 아니지. 네 힘으로 무사히 정화된 녀석들이 제정신 차리더니 멀쩡하게 헤엄쳐 나갔잖아. 꽤 재밌는 상황이지 않았어?]

힘을 사용했을 때의 좋은 결과를 계속 얻어왔다.

백 번을 성공하고, 한 번 실패하면 당연히 아쉬움이 큰 법.

‘드래곤과 수인마족, 죽음의 기사가 뿜는 살기와 위압도 느끼지 못할 만큼 정신 나간 녀석들을 상대로 그 정도였단 말이지.’

제정신이 아닌 해양 몬스터들은 울부짖으면서 막무가내로 덤벼들었다.

전략 없이 달려드는 몬스터들의 결말은 정해져있었다.

몬스터가 사망하거나, 정화되어 스스로 도망치거나.

덕분에 일행들은 몬스터들이 너무 떼를 지어 덤비지 않게 조심만 해도 쉽게 이길 수 있었다.

아멜리아는 그 어느 때 보다 가장 뚜렷한 성취감을 경험하고 있을 터였다.

‘그래. 꼭 강자만이 힘을 탐내는 건 아니야. 힘이 없고 마음이 여리다 해도 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나보다 클 수도 있지. 이 녀석, 부모를 깨울 정도로 강해지고 싶다 했으니까.’

룬은 속으로 생각하며 태연히 파이조각을 하나 들어 입에 물었다.

그가 만들었지만, 맛이 훌륭했다.

[과시도 아니고, 오만도 아니야. 시도했고, 성공하고. 네 힘으로 뭔가를 해내기 시작하니 더 잘하고 싶어지지. 아주 당연한 거다. 그런 욕심은 좋은 거지.]

아멜리아는 더 이상 부정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듯 눈을 데구루 굴리며 애플파이를 한입 크게 깨물었다.

그녀가 입 안에 가득 담긴 달콤한 파이를 오물거리며 무어라 말해야할지 고민하는 게 눈에 보였다.

[사실 작은 일도 아니다만……. 별것 아니라 생각하는 일을 잘 해내는 거, 보잘 것 없지 않아.]

[……으, 으응.]

룬은 남은 파이를 입안에 밀어 넣고 냠냠, 하고 볼을 부풀렸다.

[넌 잘하고 있어. 앞으로 더 잘하게 될 거고.]

제 마음을 들킨 기분에 아멜리아가 고개를 숙이며 파이를 삼켰다.

툭 던지듯 덤덤히 들려오는 말.

그것은 아멜리아가 지금까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이상해. 룬은 분명 10살 겨우 넘겼다 들었는데,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기분이야.’

마치 어른에게 가르침 받는 기분이었다.

따끈따끈한 파이를 오물거린 아멜리아는 룬을 힐끔거렸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한 소녀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눈앞의 어른스러운 아이는 부모조차 없는 어둠의 일족 유일한 생존자.

어둠의 일족을 대표할 장로가 될 해츨링이었다.

그러니 다른 누구보다 빨리 어른스러워져야 했다는 사실 정도는, 그녀도 생각해낼 수 있었다.

‘나는 룬이 아니야. 당장…… 우리 부모님조차 어떻게 해 드려야 할지 모르는걸.’

머뭇거리던 아멜리아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요, 욕심…… 그, 그럴지도 모, 몰라. 왜냐면…….]

간절함이 담긴 목소리가 떨림을 감추며 물어왔다.

[우리 엄마, 아빠…… 도, 저, 저주에…… 걸렸을지도 모, 모르는…… 거 맞지?]

“…….”

‘올 게 왔군.’

아니라 할 수는 없었다.

이미 예감하고 있겠지만 듣고 싶지 않은 대답을 듣는 게 두려워, 차마 묻지 못했을 질문이었을 테니.

전부터 예상한 상황이었고, 묻는다면 솔직하게 말해주기로 정했기에 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빛 인어는 창을 꾹 쥐며 고개를 숙였다.

[여, 역시 그렇구나…….]

그래서였어, 라는 중얼거림을 입 속으로 오물거리며 인어의 어깨가 축 내려갔다.

얼핏 눈물이 고여 있는 걸 봤지만, 룬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앗! 아멜리아 언니, 울어요?”

마침 듀라한과 돌아온 흑미는 당황한 얼굴을 하다가도, 자신의 옷소매를 끌어올려 아멜리아의 눈가를 두드렸다.

“속상한 일 있었어요? 흑미가 도와줄게요. 그러니까 울지 마요.”

소녀는 터져버린 눈물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흑미가 어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때, 룬이 담담히 말을 던졌다.

[해결 방법은 내가 알려줄 수 있어.]

멈칫.

가늘게 떨리던 인어의 어깨가 멈췄다.

[이제 눈치챘겠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건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야. 네 ‘정화’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수련이지.]

[…….]

‘침묵을 긍정으로 해석해도 되겠지.’

심해가 어둡기는 하지만, 인위적으로 짙었던 어둠까지 더해 애초에 검은 바다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룬에 의해 어둠이 많이 걷혀있었다.

게다가, ‘정화’ 수련을 하며 저주에 덮인 필드 정리까지 마친 셈이었다.

[지금 잘 하고 있어. ‘정화’ 능력의 숙련도를 올려. 그 힘을 강화해서 네 부모를 저주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돼.]

[그, 그치만……. 부, 부모님……은, 강……한 분들, 이셔…… 그, 그런 분들도 못한 걸.]

어떻게 내가, 라고 말하려던 아멜리아는 의기양양하게 웃는 룬의 얼굴을 보며 말을 멈추었다.

[그래. 너 혼자라면 무리겠지.]

“언니 혼자 아니에요! 흑미도 있구. 룬 님이랑 백야, 듀라한도 있어요!”

“삐이약!”

신나게 동료들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언급하는 흑미를 보며 아멜리아가 난감한 듯 입술을 달싹였다.

[그건…… 고, 고마워……. 하지만 우리의 히, 힘만으로는…… 어려, 운 일이야…….]

[가능해.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테니까.]

아멜리아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러더니 고개를 빠르게 저으며 말했다.

[부, 불가능……해!]

룬은 잠시 고민했다가, 이내 어투를 좀 더 엄하게 굳혔다.

그걸 쓸 셈인가?

[이 팀으로 해 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포기냐.]

[어, 아, 아니…….]

[가능할지, 불가능할지. 네가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고 제안하는 자가 있는데, 방법조차 묻지 않고 불가능하다고 시작할 필요는 없잖아.]

시도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룬은 아멜리아가 처한 환경을 이해했다.

어둠에 몸을 파 먹히며 수도 없이 무력한 자신을 실감했을 터.

어둠을 모두 토해내고 자유롭게 떠날 수 없었던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장 먼저 배운 일이 바로 ‘포기’였다.

‘한 번에 생각을 고치는 건 불가능하지. 그러니 원초적으로 갈망했던 걸 떠올리게 만들어야 해.’

-부모님을 깨우고 싶다.

-어둠에서 벗어나고 싶다.

‘거기에, 갈망이 더 추가 되고 있지.’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다.

-맛있는 걸 먹고 싶다.

-세상을 구경해 보고 싶다.

거기까지 떠올린 룬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욕심이 끝이 없군. 아주 좋아.’

소극적이고 조용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부풀어 오르는 바램들이 끝없이 늘어나는 게 뻔히 보였다.

‘저 습관적인 포기하는 습관만 고쳐주면, 누구보다 탐욕스러워질지도 모르겠군.’

룬은 아멜리아가 자신 이상의 욕심을 가지게 되리라 예견했다.

***

휴식이 끝난 그들은 사냥을 이어나갔다.

지금 이들의 앞에 선 괴물. 거대한 레비아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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