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7/242)

어둠속에서 갑작스럽게 그들을 향해 나무 몸통만 한 꼬리를 휘둘러 공격해온 놈이었다.

검은 심해 속에서도 유난히 검고 음침한 기척을 뿜더니 순식간에 튀어나와 성난 사자처럼 달려들었다.

일행들 모두 눈치채고 피하자, 그 자리에 기둥만 한 꼬리가 내리쳐졌다.

- 쿵! 콰르르르

꼬리가 지나간 자리에 강력한 수압이 덮쳐오고, 물살이 마구 휘둘렸다.

이 후폭풍에 휩쓸리는 이 없이 잘 대비한 일행들은 자연스럽게 전열을 맞추었다.

이 점은 룬도 살짝 감탄스러워 했을 정도였다.

‘성장력은 빠르단 말이지.’

흑미와 듀라한, 아멜리아는 슬슬 서로 합을 맞추는 데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젠 말하지 않아도 척척 자리를 바꾸며 보조하고, 공격과 후방지원의 연계도 훌륭했다.

“아멜리아 언니!”

[으, 응!]

흑미의 매혹이 상대의 광기를 일부 무력화시키고, 기다렸다는 듯 아멜리아의 정화의 빛이 터졌다.

- 키야아아아!

그러나, 미처 씻기지 않은 광기를 토해낸 레비아탄이 상아색 송곳니가 돋은 검은 입을 쩍 벌리며 그들을 삼키려 들었다.

거대한 배 한 척을 단번에 물어뜯을 수 있는 입.

매끈하게 자리한 비늘에서 느껴지는 흉측함.

심해의 몬스터와 바다생물을 먹고 사는 몬스터답게, 놈은 살육을 즐기며 포악한 기운을 드러냈다.

-크르르……!

놈에게 배어나온 사악함은 악취를 풍기며 일행들을 압박했다.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레비아탄을 마주한 일행들에게 룬의 침착한 지령이 들려왔다.

“뀨……우!”

[지능은 없지만 본능이 흉포하고 간사한 놈이다. 다들 긴장해.]

룬의 전음에 다들 진지한 눈으로 레비아탄을 바라보았다.

똬리를 튼 바다의 살육자는 광기에 물들어 더욱 기괴한 생물로 진화해 있었다.

입술 바로 위에 붙은 회색빛의 눈이 창백한 빛을 뿜는다.

외형만 보아도 두려움에 숨이 막히는 레비아탄.

아멜리아는 마음을 다스리며 침착하게 더 강력한 ‘정화’의 언령을 준비했다.

‘침착…… 침착하자. 이 녀석을 넘어서지 않으면, 우리 부모님을 되돌릴 수 없을 거야.’

입술을 꽉 깨문 아멜리아가 다시 한번 정화의 빛을 뿜었다.

레비아탄의 몸이 희게 물들더니, 이내 흰자위만 있던 눈에 검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돼, 됐어……!]

그녀는 본능적으로 정화가 성공했음을 느꼈다.

기쁨에 찬 아멜리아가 창을 내리고 하얗게 웃으려는 순간.

쐐액!

물을 가르고, 레비아탄의 쩍 벌어진 입이 순식간에 인어 앞에 당도했다.

‘어……?’

콰앙!

경계하고 있던 듀라한이 양 손으로 레비아탄의 윗 입을 잡고 왼 발은 땅을 디디고 오른발로 아랫니를 밟고 버티었다.

지이이익!

관성으로 몸이 뒤로 밀리고, 그 틈에 정신을 차린 아멜리아가 몸을 틀었다.

그리고는 빠르게 창 끝을 겨누어 물대포를 날렸다.

퍼엉! 쾅!

- 키에에에!

레비아탄의 머리가 젖혀진 틈을 타 아멜리아와 듀라한이 빠르게 몸을 물렸다.

눈앞에서 먹이를 놓친 놈은 묵직한 울림과 함께 굶주린 눈이 번뜩였다.

상대를 시야에 넣을 수 있는 자리를 다시 잡으며, 아멜리아의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이, 이럴……리가. 저, 정화…… 됐었, 는데……?]

[저게 본성이란 소리지. 그냥 원래대로 돌아온 것뿐이야. 그보다.]

룬은 일행들에게 마법을 걸며 말을 이었다.

[귀 꽉 막아.]

[……!?]

룬은 당혹스러워 하는 아멜리아에게 신경 쓰기보다 다른 부분에 주의를 기울였다.

‘듀라한……. 그걸 쓸 셈인가?’

룬의 전음을 들은 듀라한은 즉시 레비아탄의 앞에 홀로 섰다.

남은 일행들이 즉시 귀를 막은 순간, 듀라한의 검은 얼굴에 입이 생기더니 쩌억 벌어졌다.

<그아아아!>

깊은 심연에서 올라오는 외침이 터졌다.

“캬앙!”

[아으, 웃……!?]

“째애액!”

흑미와 아멜리아, 백야가 소스라치게 놀라 경계어린 눈으로 귀를 막았다.

저주받은 영혼이 지르는 포효.

심해가 요동치고 잡스러운 몬스터들의 몸이 마구 튀어 올랐다.

룬은 태연히 양쪽 귀를 앞발로 눌렀다.

‘마법으로 대비를 해도 이 정도라니.’

혀를 찬 그는 듀라한의 정보를 띄웠다.

<이름 : 데스 나이트 듀라한>

- 사자(死者)였던 그의 이름은 잊혀졌다.

- 종족 : 언데드&정령

- 부화조건 : 강력한 죽음의 기사 듀라한의 갑옷과 원한 깊은 초인(超人)의 혼의 연성에 성공 할 시 희박한 확률로 탄생한다.

- 어둠을 따르는 정령기사.

※ 특이사항 :

희박한 확률로 불사조의 깃을 품고 감정의 씨앗을 얻었다.

성장의 경험에 따라 성향이 변화한다.

- 룬 이클립스(Lune Eclipse)에게 귀속

- 서번트(Servant) 화 완료.

- 성향 : 충직한, 음울한

▲ 울부짖음 주의 ▲

룬은 마지막의 ▲ 울부짖음 주의 ▲를 재차 눈여겨보았다.

‘눈치채서 망정이지, 내가 미리 알아채지 못했으면 어쩌려고.’

데스나이트의 울부짖음은 대상의 죽음을 부르기 위한 최종 선고였다.

레비아탄은 꺼억! 하고 거품을 물며 몸을 뒤틀더니 눈을 까뒤집으며 몸부림쳤다.

그 모습이 마치 보이지 않는 죽음에 저항하는 허덕임 같았다.

‘너무 시끄러워지면 주변의 다른 몬스터들이 몰려올지도 모르겠군.’

조치할 필요성을 느낀 룬은 새까만 어둠으로 만든 구를 들고 빠르게 다가가, 레비아탄의 입안에 강제로 어둠을 우겨넣었다.

놈은 어둠의 힘을 삼키지 않으려 저항하려 했지만 결국 모두 레비아탄의 몸 안에 들어가 울룩불룩하게 부풀었다.

이내, 부풀어 올랐던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 원상태로 돌아갔다.

그리고 눈에서 빛이 꺼진 레비아탄이 그대로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듀라한은 두 손을 들어 떨어지는 거대한 몸체를 받쳐 들었고, 흑미는 아멜리아의 옆에서 혹시 모를 위협을 경계했다.

그리고 룬은 듀라한을 향해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보였다.

[뭐해? 얼른 안 넣고.]

듀라한은 묵묵히 주머니 안으로 레비아탄을 밀어 넣었다.

[그, 그냥? 그대……로 넣는, 거야?]

“뀨우.”

‘어둠에 혼을 잡아먹혔다는 말까지는 굳이 안 해도 되겠지.’

혼을 보존하긴 했지만, 산 채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룬의 태연한 대답에 꺼림칙함을 느낀 아멜리아는 흠칫 놀랐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룬은 제 주머니를 갈무리했다.

[오늘은 이쯤 하자.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힘들 테니 푹 쉬어. 다들 고생했다.]

“힛. 흑미는 즐거웠어요!”

중간 중간 위기를 넘기며 스릴을 느낀 흑미가 앞니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고생, 해, 했어…….]

흑미와 아멜리아의 인사에, 듀라한은 가볍게 손을 가슴에 얹고 고개를 숙였다.

‘이걸로 필드 정리는 끝났다.’

이 근방의 정화되지 않은 필드는 거의 없었다.

순수한 물의 영역이 되었으니, 내일부터의 결전을 대비하는 밑 작업이 거의 완료된 셈이었다.

‘블루 드래곤들과 싸울 때는 이런 자잘한 일에 신경 쓸 겨를 없을 테니까. 미리미리 정리 해둬야지.’

아멜리아를 성장시키며 어둠의 힘을 흡수하고, 몬스터들을 정화.

흑미의 매혹 능력 성장.

일행들의 팀플레이 훈련.

필드 보스 몬스터 ‘레비아탄’ 습득.

마지막으로 듀라한의 능력치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까지.

‘만족스러워. 제법 알찬 하루였군.’

그렇다 해도 훈련은 훈련일 뿐.

몸 풀기 정도로 모든 진을 다 뺄 생각은 없었다.

마력 요리를 먹은 일행들 능력의 최대치도 확인한 이상, 할 일은 모두 마친 셈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확인할 사실만 남았군.’

룬은 마력 열쇠로 만든 통로가 있는 쪽으로 향하며 아멜리아를 불렀다.

[아멜리아. 네 부모님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 지금도 변함없어?]

[그건…… 왜 무, 물어보는…… 거야?]

[오늘 본 레비아탄처럼, 정화된 후에 보게 될 부모님들이 네가 바라는 부모님의 모습일지는 장담할 수 없어.]

아멜리아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막연히 저주를 벗어나게만 해드리고 싶었던 소녀는 오늘 다양한 정화의 결과를 보며 생각이 많아진 상태였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으응. 그, 그래도…… 깨울래. 네 말대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 나, 나에게…… 너무 후, 후회가 될 거 같아. 왜, 냐면……. 못해, 버리면…… 저, 정말……아무것도 아, 아니게……되니까.]

그때, 흑미가 아멜리아의 손을 잡은 채 올려다보았다.

“걱정 마요. 흑미가 같이 응원할 거니까. 분명 괜찮을 거예요!”

순수한 바램과 믿음이 담긴 말은 현실을 떠나, 아멜리아에게 온전한 따스함을 느끼게 했다.

“흑미는요, 아멜리아 언니가 앞으로 많이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인어 모습을 하고 있는 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살며시 웃음 지었다.

[고……마워……. 나, 나는…….]

몇 번이나 입술을 오물거리던 그녀가 겨우 맞는 단어를 찾아냈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늘여놓았다.

[흑미……처럼, 내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이들이 있으……니까. 괘, 괜찮아. 나, 부모님…… 깨울래.]

철컥!

듀라한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상체를 더욱 바로 세우며 씩씩하게 걸었다.

“아멜리아 언니, 멋찌다아-!”

종소리처럼 꺄르르 웃으며 흑미가 엄지를 치켜 올렸다.

부끄러워진 아멜리아가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고 소곤거렸지만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룬은 그들 모르게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

‘이 정도라면 안심해도 되겠어.’

이걸로 모든 준비는 완료 되었다.

결전의 3일.

룬은 그 안에 모든 걸 끝낼 셈이었다.

***

크리스티나의 레어에 도착한 룬은 흑미의 정보를 머릿속에서 끌어올렸다.

<이름 : 흑미>

- 종족 : 베이비 서큐버스 : 일미호

- 부화조건 : 매혹의 검은 장미에 마스터(Master)의 꿈을 부여할 경우 희박한 확률로 탄생한다.

- 성장하기 위해서는 마스터(Master)와 같은 속성이 담긴 양분이 필요하다.

※ 특이사항 :

희박한 확률로 씨앗에 마족(몽마)의 혼이 깃들었다.

- 룬 이클립스(Lune Eclipse)에게 귀속

- 서번트(Servant) 화 완료.

- 성향 : 충직한

- 몽마, 서큐버스의 혼이 일미호의 혼과 동화되어 태어났다.

<특성 개화>

- 불 속성 친화력(중급)

- 매혹(중급)

특성개화 부분의 불 속성 친화력과 매혹이 초급에서 중급으로 올라있었다.

계산대로 흘러가는군

‘불의 정령들하고 열심히 수련하더니, 불 속성 친화력도 올랐었군.’

순조로운 성장이었다.

듀라한은 내일부터 3일 동안 심해에서 지내며 전투를 해야 한다는 말에 신이 나서 갑옷을 정비하며 검은 방에 남았고, 흑미는 백야와 함께 저녁식사 때까지 낮잠을 자러갔다.

‘이틈에 나도 만들어 봐야지.’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룬은 ‘저주 도구 만들기 세트’를 꺼냈다.

‘매개물, 마력석은 충분하고. 마지막으로 세부적인 명령을 넣기 위한 생명의 혼……. 이건 레비아탄이면 되겠군.’

생각해둔 물건을 만들기 위해 아공간 주머니에서 재료를 쏟아낸 룬은 내심 투덜거렸다.

‘제드 녀석에게도 좀 챙겨 보내야겠네. 이 자식이 묘한 기대감을 가지게 해가지고 말이지.’

룬은 필요한 물품 외의 것들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편이 아니었다.

해류에 몬스터 잔해가 쓸려나가는 걸 보면 아까워서 아이고 소리를 냈을 제드를 위해 룬은 적당히 굵직한 마력석이나 가죽을 회수해 둔 상태였다.

‘운 좋게 특이하고 유용한 걸 만들어 낼지도 모르는 놈이니.’

그는 이번 연락용 아티팩트 ‘모코지석’으로 제드의 쓸모를 높게 치고 있었다.

마침 심해라는 장소 특성상, 평소 얻기 힘든 재료들을 잔뜩 얻었으니 제드에게 마음껏 능력을 펼칠 기회를 줄 셈이었다.

룬은 수집해온 재료를 구분하며 결심했다.

‘제드가 이 재료들 제대로 쓸 수 있도록 훈련을 확실히 시켜놔야겠어.’

같은 시각, 제드가 왠지 모를 오한을 느끼고 있었지만 룬은 기껏 가져온 재료가 낭비되는 꼴을 볼 생각이 없었다.

***

“많이들 먹으렴. 새우 꼬리는 잘 떼고.”

저녁 식사에 나온 버터구이 새우.

심해에서 본 광기에 물든 새우를 떠올리며 룬은 괜히 의미심장한 기분을 느꼈다.

‘하필 바다생물 요리냐.’

설마 크리스티나가 그의 바다 외출을 눈치챈 건가 싶었으나,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룬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나란히 접시위에 올려져있는 새우를 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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