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키온이 에둘러 말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룬이 그가 말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여긴 듯했다.
하지만 룬은 제드의 죽음에 대해 정확히 이해했다.
그가 납득가지 않는 얼굴을 한 이유는, 그 원인에 대한 의문 탓이었다.
‘수명이 다하기엔 아직 시간이 남았을 줄 알았는데?’
레드 드래곤의 레어에서 처음 만났을 당시 제드의 나이가 37세.
그 뒤로 100년가량이 흘렀지만, 보통 드워프 수명은 짧으면 150년, 보통 200년 근처였다.
그 점을 생각하면 제드는 고령이 되기엔 아직 젊었다.
하지만 페르디키온은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하는 룬이 충격을 받았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권속의 첫 죽음이니 안타깝겠지. 하지만, 그는 너를 만나 대륙에 꿈을 펼칠 기회를 얻은 녀석이다. 명예로운 삶이라 여겼을 것이다.”
진지한 어투를 보니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잠시 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던 룬이 입을 열었다.
“……제드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말 해줄 수 있어?”
흑미가 자리에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마 페르디키온도 룬만 깨어있다는 말에 즉시 온 것이리라.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잘 모르는 흑미에게 제드의 죽음이라니.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친하게 지냈던 이의 죽음을 알리는 건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무지개 다리였나.’
페르디키온도 제 아우가 권속으로 삼은 자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혹시라도 잔뜩 풀이 죽을까 봐 전전긍긍했을 게 틀림없었다.
유언장
‘아직 어린 내게 대 놓고 죽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 어떻게든 돌려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만…….’
나름대로 배려해 주려던 마음은 이해가 갔다.
하지만 룬은 제드가 왜 이른 나이에 죽게 되었는지 정확한 경위를 알고 싶었다.
잔잔한 표정을 하고, 룬이 입을 열었다.
“형, 나 어둠 일족 예비 장로이자 블랙 드래곤 해츨링이잖아.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게 낯설지는 않아. 무엇보다, 내 권속의 이야기니까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했는지 제대로 알고 싶어.”
무뚝뚝하게 입을 다물고 룬을 보던 페르디키온이 결국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렇게 말 한다면…… 알겠다.”
비록 탐탁지 않다는 얼굴이었으나, 망설임은 없었다.
“제드가 이른 나이에 명을 달리한 것은 그 녀석이 너무 열정이 넘쳤던 탓이다.”
“뭐에 그렇게 열정적이었는데?”
“다른 드워프들 말로는 개혁파 드워프들의 인간계 진출을 위한 노력과 헌신을 꼽더군.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녀석은 네가 수면기에 들고 몇 년 지나지 않아 공방에 틀어박혀 어떤 연구를 했다더군.”
페르디키온은 한쪽 눈을 찌푸렸다. 미심쩍은 눈치였다.
“함께 한 다른 드워프 말로는 주로 ‘에고 웨폰’에 대한 연구였다 한다.”
“혼이 담긴 무구라는 그거?”
“그렇지. 아우님도 알고 있었군.”
말 그대로 자아를 가진 무구. ‘에고 웨폰.’
마검. 혹은 성검. 용사의 검 등 주로 검에 깃든 것들이 유명하나, 마법사의 지팡이나 다른 무구에서도 흔치 않게 있다는 희귀한 무구였다.
거기까지 떠올린 룬은 정색했다.
‘제작 시도라도 할 수 있는 건 마족의 방식인 마검일 텐데. 설마 그 금지된 짓을 한건 아니겠고.’
정확히는 마족의 방식을 인간들이 개량한 방법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방법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죄악 중 하나였다.
큰 힘을 얻으리라는 환상. 큰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홀려 양심을 버리고, 잔인무도하게 생명을 갈아 넣어야만 전설처럼 나오는 무구니까.
‘안 그래도 단명한 게 신경 쓰였는데. 설마 제드 녀석, 잘못된 길로 빠진 건…….’
불길했다.
제드가 권속 계약을 맺은 룬은 블랙 드래곤의 어린 새끼.
하필 네크로멘서 재능을 가진 어둠과 죽음을 다루는 자였다.
그런 룬의 권속이 되었으니 제드가 호기심이 동해 누군가의 수명을 대가로 실험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니. 마검은 역시 아니야.’
잠깐 고민해 본 룬은 고개를 저었다.
크리스티나에게 부탁했었다.
1년에 한번, 제드 재료를 주러 가 달라고.
이는 제드의 미래를 고려한 선택이기도 했다.
만약의 경우 곤경에 처하거나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잘못된 길을 택했다면 크리스티나가 어떤식으로든 관여 했을 테니까.
‘1년에 한번 재료를 전달해 달라는 건 괘씸죄긴 했어도, 내가 언제 깰지 모르니 해 둔 부탁이었어. 애초에 마족의 방식에서 탄생한 방법을 제드가 시도했다면 크리스티나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도 없겠지. 분명 제지했거나, 나에게 소식을 남기기라도 했을 거야.’
어쩌면, 마검에 대해 꽤 구체적으로 생각이 미쳤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레드 드래곤 레어에서 ‘폐광 던전’을 클리어 할 때, 목숨을 위협받아가면서도 어린 룬을 지키려했던 녀석이었다.
그런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놈이 누군가의 생명을 강탈해 검을 만들다니.
상상이 가지 않았다.
“형. 제드라면 내가 알아. 엄청 탐욕스럽고 입이 방정일 때가 있지만, 계산이 빠른 녀석인걸. 마검을 제작했다면 내가 절대로 가만 두지 않을 걸 알고 있을 거야.”
이미 말실수 하나로 괘씸죄를 적용했는데, 금기를 범했다면 어찌될지 정도는 예상했을 터였다.
“그래. 나 역시 동의하는 바다.”
동의한 페르디키온이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이 죽기 전 네 앞으로 남긴 유언장이 있다더군. 어쩌면 거기에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한테…… 유언장?”
“그래. 네게 줄 유품도 있으니 꼭 자신의 공방에 와서 봐야 한다며 당부했다고 한다.”
제드가 살아있었다면 ‘넌 정말 어이없는 놈이야.’라며 한 소리 했겠지만, 이제 와서는 그저 숙연해질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죽음을 앞두면서까지 룬에게 줄 게 무엇일지 알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제드의 공방이라면 인간계에 있는 거 맞지? 크리스티나가 자리를 비워서 허락을 받으려면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이미 그분께서 공방으로 통하는 워프 마법진을 구축해 두셨다. 권속의 추모와 유언 정도는 들어주어도 좋다는 말도 남겨주셨지. 물론, 라이와 내가 동행할 예정이다.”
[ ง •̀_•́)ง ]
룬은 의욕에 차 있는 라이의 그림문자를 힐끗 보았다.
그녀의 정령인 라이가 저런 반응이라면 이미 이야기가 된 상황이 틀림없었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만, 이건 예외적인 일이다. 너와 권속과의 일이니 허하신 것뿐이야.”
이번 일로 인간계에 자유롭게 오가리라 생각할 지도 모른다 여긴 모양인지, 페르디키온은 제법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룬 역시 수긍했다.
“그러게. 나도 사정 많이 봐주셨다는 건 알겠어.”
‘제드가 드워프인 이상,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는 걸 크리스티나도 알고 있었을 거야. 이미 염두에 두었겠지.’
룬이 순순히 인정하자 페르디키온도 기세를 조금 유하게 바꾸었다.
“그만큼 네게 신뢰가 깊으신거다. 혹시라도 너무 아쉬워 마라.”
그래도 형이라고 동생을 달래주려 노력하는 페르디키온에게 룬은 순한 얼굴로 긍정해 주었다.
“응. 고마워, 형.”
룬은 뒤에 묵묵히 서 있는 듀라한을 돌아보았다.
“듀라한. 여기서 흑미랑 백야 좀 봐주라. 혹시라도 깬다면 내 모코지석으로 연락하라고 전해줘.”
철컥!
검은 투구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티나의 마법진을 통해 가야하는거지? 어디로 가면 돼?”
“이쪽이다.”
페르디키온은 가면서 주의 사항을 일러주었다.
“공방에만 다녀오는 거다.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야. 인간화를 유지해야하니 팔찌는 절대로 빼지 마라.”
“응.”
“나랑 떨어지지 않게 잘 보고 와야 한다. 만약 시야에서 없어지면 바로 모코지석부터 사용해 연락해라.”
“응.”
“고작 100년밖에 안 된 수면기였으니 아직 피곤할 거다. 그러니…….”
룬은 고개를 저었다.
“나 괜찮아. 크리스티나가 좋은 담요 아티팩트를 빌려 줬거든. 게다가 축복의 레어여서 진짜 푹 잤어.”
“흠. 일단 알겠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니 조심해라.”
그 뒤로도 자잘한 충고가 뒤를 따랐다.
룬은 적당히 수긍하며 생각했다.
‘페르디키온 녀석, 어깨가 굳어있네.’
크리스티나가 부탁한 일이기도 했지만, 페르디키온에게 룬은 한참이나 어린 동생이니 신경 쓰이는 게 당연했다.
‘완벽하게 일 처리 하고 싶은 것도 있을테고…… 형으로서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겠지.’
룬은 신경을 써 주는 어린 형을 위해 룬은 순한 아이처럼 대답해 주곤 했다.
사실 룬은 충분히 강했고, 인간 세상에 대한 이해도 충분히 있었지만 본래라면 페르디키온이 해주는 말들은 처음 듣는 거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추모와 공방에만 다녀오는 거라…… 별 일이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말이지.’
원래라면 인간계 여기저기 살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겠지만, 이번만큼은 안 될 말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러 가는 자리다.
다른 일을 하려 들기엔 사안이 중하고 무거웠다.
‘그러고 보니, 모코지석에 제드가 뭔가 말해두었을지도 모르겠군.’
룬은 망설이다가 모코지석을 작동시켰다.
부재중 도착한 여러 문자들에는 미주알고주알, 알 수 없는 잡담이 가득했으나, 제드가 보낸 마지막 문자는 조금 묘했다.
<룬 님! 저도 나이가 들긴 드는지, 요즘 들어 룬 님과 함께 지냈던 시간들이 그립지 뭡니까요.
이 제드, 그동안 남부럽지 않게 살며 참 많은 것을 했지만, 돌아보면 룬 님과 함께 했던 시간만큼 즐거웠던 때가 없더랍니다. 아! 이래서 꼬장꼬장한 드워프 할배들이 그리 지루하고 고리타분해지셨나? 싶을 정도였죠.>
역시나 문장이 길었다.
평소라면 ‘시끄러운 녀석.’이라며 흘려 넘겼을 테지만, 마지막 문자였을 거라 생각하니 절로 꼼꼼히 읽게 되었다.
<요즘 들어 참,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더랍니다. 룬 님의 권속으로서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요. 생각해보면 어떤 드워프가 드래곤 장로(예비)의 권속이 되어보겠습니까? 심지어 세상에 하나뿐인 어둠을 다루는 일족! 블랙 드래곤(해츨링이지만 말입죠.)의!
그래서 말인데 이 제드가, 아주 기특하고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생각을 떠올려버렸지 뭡니까.>
묘하게 사족을 넣은 괄호 속 문장이 걸렸지만, 줄어들어가는 문장이 아까워 오히려 좀 더 적혀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래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해 보기 시작했는데 말입죠? 이게 참, 저도 이 나이 먹고 두근거릴 정도로 즐겁습니다! 만약 실패하면…… 뭐, 후회가 좀 될진 몰라도, 후회하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진짜 안 되면 후회할 것 같긴 하네요.>
후회를 안 한다면서 후회한다는 화법은 알아듣기 복잡하지 않냐. 라고 한 번쯤 되물어 봤을 말들이었지만 이제 와 태클을 걸 수 도 없었다.
모코지석에 남아있는 그의 주절거림도 이제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쓰기보단 제가 직접 성공해서 결과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또 하나 파고들면 끝장은 봐야 하는 놈 아니겠습니까?>
거의 다 읽은 것 같았다.
룬은 평소와 달리 아쉬움을 느꼈다.
보다보니 그동안 말 많고 귀찮은 녀석이라 생각했던 문장들이, 이젠 꽤 정 많고 흥 넘치는 유쾌한 모습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줄을 읽는 동안 룬은 숙연한 기분을 느꼈다.
<부디 제가 성공하길 기원해 주세요! 얼른 뵙고 싶습니다요, 룬 님.>
마지막 문장이었다.
룬은 착잡한 심정으로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하다가, 페르디키온의 부름에 이동 마법진 위로 올라갔다.
”이제 이동할거다. 도착하거든 바로 움직이지말고 조금 기다려라.”
“알겠어.”
곧 이어, 페르디키온이 발동시킨 마법진의 빛이 화려하게 둘을 감쌌다.
***
감지 마법을 마력석에 담아 누군가 들어오면 켜지도록 만들었는지 불빛이 은은하게 켜졌다.
페르디키온의 말대로 움직이지 않은 채, 룬은 바뀐 풍경을 둘러보았다.
제드의 공방은 온갖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있었다.
‘정신없는 공간이네.’
오래된 서책들이 먼저 보이고, 어지러운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약품 실험도 했는지 벽에 얼룩과 탄 자국이 나 있었다.
나름대로 청소를 했던 모양이지만 퀴퀴한 냄새가 배어있었고, 서책들이나 수정구도 잡다하게 한 곳에 적당히 겹쳐진 채 쌓여 있었다.
다소 기괴한 물품도 있었다.
유리관 속에 있는 심해 던전 몬스터 사체라든가, 저절로 움직이는 젤리 같은 것이 든 시험관.
룬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부정 할 수 없는 특징을 깨달았다.
가져가주십시오.
그건 한 드워프의 손때가 묻은 흔적이 여기저기에 가득했다는 것. 그리고.
이 방의 보안장치가 신성력과 마력을 모두 이용해 적용되었다는 점이었다.
‘제드 녀석, 상점 운용 능력은 정말 좋았던 모양인데.’
신전과 마법사의 탑의 관계는 상극이라 해도 좋을 관계였다.
심지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드는 보안장치는 그런 두 집단의 힘을 모두 얻었다는 방증이었다.
‘크리스티나가 방문을 허가한 이유가 있었군.’
페르디키온이 인간계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해츨링이란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나 외부인 통제가 철저한 곳이라는 점이 외출을 허락해 준 결정적인 이유였을 터였다.
물리적인 보안은 물론, 다양한 마력과 신성력으로 설치된 잠금들만 보아도 황제나 요구 할 만한 보안설비를 갖췄다.
실제로 이 방은 기밀중의 기밀로, 제드의 비밀스럽고 은밀한 공간이었을 터였다.
페르디키온은 주위를 둘러보는 룬에게 말했다.
“잠시 기다려라. 유언장을 가져올 드워프를 호출하도록 하지.”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한쪽 벽으로 가더니 무늬에 절묘하게 가려진 볼록한 버튼을 눌렀다.
띠링!
페르디키온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스위치를 누르자, 가벼운 종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위에서부터 발소리가 났다.
이어 뭔가 해체하고, 뚝딱 거리며 조립하고 건드리는 소리가 빠르게 지나갔다.
문이 열리고, 눈을 끔뻑인 중년의 드워프가 입을 열었다.
“오오! 룬 님, 페르디키온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구면이었다.
이젠 중년이 된 개혁파 드워프 선발대원 중 한 명인 그는 감회가 새롭다는 눈으로 룬과 페르디키온을 그윽하게 쳐다보았다.
“기억나. 크리스티나의 레어에 왔던 개혁파 선발대였지?”
“맞습니다! 룬님께서 절 기억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룬은 겨우 몇 달 전 봤을 뿐인 세 드워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크리스티나가 마련해 준 식사 자리에서 드래곤의 신의를 받았다며 의기양양하게 파이팅을 외치던 젊은 모습이 현재의 나이든 얼굴 위에 겹쳐졌다.
100년 동안의 세월은 과거의 열정과 의욕 넘치던 젊은 개혁파 드워프를 원숙한 중견 드워프로 바꾸어 놓았다.
비슷한 생각을 한 건지, 중년의 드워프가 입을 열었다.
“제드 님께 종종 말씀은 들었지만, 모습이 변하지 않으신 걸 뵈니 오래 전 처음 이 땅에 발 디뎠을 적이 떠오르는군요. 철이 없기도 했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절이었지요.”
드워프는 당시엔 끼지 않았던 안경을 코 위로 안경을 추켜올리며 잠시 룬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어딘가 사연이 담긴 녹색 눈이 룬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다.
룬 역시 그의 감상에 응수했다.
“나도 기억나. 훨씬 성숙해졌네.”
“그렇습니까? 이거 어릴 적을 기억하는 분을 앞에 두고 있자니 영 부끄럽군요.”
룬의 대답에 주름진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은 드워프가 이내 구석 서랍으로 향했다.
“제드님의 유언장을 찾으러 오신거겠지요. 아마 여기 어디 있을텐데…… 아. 찾았습니다.”
서랍을 뒤적이던 드워프는 금고를 열더니 고급스러운 상자를 가져왔다.
룬이 상자째로 받자, 후련한 얼굴을 한 드워프가 입을 열었다.
“이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제드 사장님께서 맡긴 물건이 있습니다만.”
이어 드워프가 책상 위에 천으로 싸둔 묵직한 것을 건네어 주었다.
“이겁니다. 가져가주십시오.”
‘마력이 느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