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3/242)

거짓을 말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곤혹스러운 질문임에 틀림없기에 대답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역시 유언장을 먼저 볼까.’

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나 가져온 물건 정리 좀 하려고. 쟤들 좀 부탁할게.”

“다녀와라.”

페르디키온은 룬의 의도를 파악하고 청을 승낙했다.

가볍게 감사를 표하고 먼저 일어나는 룬을 흑미와 백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흑미도 정리 도울게요!”

“삐약!”

기특한 말이었지만 룬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내 물건이라 개인적으로 정리하려는 거거든. 그보다, 자는 동안 너도 강해졌을 텐데. 형님에게 얼마나 성장했는지 말해줘.”

“흠, 그래. 나도 듣고 싶군.”

그 말에 흑미가 눈을 반짝였다.

“좋아요! 흑미, 얼마나 강해졌나 알면 깜-짝 놀랄 거예요!”

“어디한번 말 해봐라.”

페르디키온이 팔짱을 끼고 의자에 반쯤 누운 자세로 고개를 까딱였다.

“흑미 있죠, 저번에 물의 영역에서…….”

‘좋아. 페르디키온이 잘 해주는군.’

멀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룬은 검은방으로 이동마법을 시전 했다.

듀라한은 늘 그래왔듯 무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치감치 기척을 감지하고 있었던지, 룬이 오자 일어나 고개를 숙여보이며 반겼다.

철컥!

죽음에서 태어난 데다, 혼과 갑옷의 조화로 인해 세상에 나온 자.

우직하게 제 할 일을 하며 검은 방 전체를 지키는 기사는 언제 봐도 믿음직했다.

“듀라한. 누가 오면 알려줘.”

철컥!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기사는 충성스럽게 룬과 떨어진 곳에 섰다.

룬은 검은 방 가장 안쪽, 푹신한 담요 위에 앉았다.

봉인된 편지지를 뜯자, 힘 있고 유려한 필체로 적힌 글이 드러났다.

<룬 님께.

아이고. 이거 깃펜을 든 지 너무 오랜만이라 기분이 영 이상하네요. 신선하기도 하고 말입죠. 하긴 모코지석으로 후딱후딱 써대는 게 너무 익숙해져서, 편지를 써 본 지도 너무 오래되긴 했죠.

우선 면목이 없습니다요. 이 편지가 손에 들어갔다면 제 몸은 화장되어 이 세상에 없다는 의미인데. 거 참, 아쉽구만요. 제가 몸이 제대로 있을 때 기막힌 아이디어를 해낸 걸 꼭 말씀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하다니요.>

‘이 놈은 유언장이라고 해도 별 다를 게 없군.’

죽음을 상정하고 쓰는 유언장조차 이 모양이니, 놈의 말투는 애초에 변할 수가 없는 거였다.

<조금 아쉽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런 종이와 잉크 위에라도 제 자랑이나 실컷 해보렵니다. 아차차, 그 전에. 흑미 님 듣기에 적절치 않은 단어를 쓴 건 참 송구스러웠습니다. 이게 참, 세상에 엄하고 변태 같은 놈들이 많으니 조심하시라 말씀 드리고 싶었을 뿐인데. 그 당시에는 가장 적당하고 머릿속에 탁! 들어오는 말이 하필 그거였지 뭡니까요? 다시 뵙게 된다면 그 점은 주의할 텐데. 이 편지가 이미 ‘그럴 일은 이제 없어!’라고 말 해주는 셈이니 틀렸네요. 참 여러모로 안타깝습니다.>

‘…….’

‘집착 변태’가 실수라는 건 인지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 해도 룬의 어이없는 시선을 모면할 수는 없었겠지만.

<아무튼, 그간 제가 했던 연구는 말입죠, 저에게 스며든 룬 님의 권능을 조사하는 것이었습니다요. 무례하다 여기실진 모르겠지만, 흑미 님은 룬 님의 권속으로서 매혹이라는 스킬을 지니셨고, 타 속성과의 친화력을 가지셨죠. 듀라한이라는 기사 역시 룬 님의 근본인 어둠과 죽음을 지니지 않았습니까?

이거 잘만 되면 저도 룬 님의 권능을 조금이나마 써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머릴 떠나질 않더랍니다!>

본래 마법에 취약한 드워프 족.

오랜 시간 불을 다룬 대장장이의 특성 탓에 불의 정령과 친하거나, 장비제작에 쓰이는 마력석을 다룰 수야 있다.

하지만 마법을 할 줄 아는 드워프는 없었다.

그런데, 제드가 무려 마법 종족인 드래곤의 권능을 연구를 해 보겠다 선언하고 있었다.

‘이건 좀 흥미롭네.’

심지어 감탄스럽기도 했다. 가끔 속물적이고 천박해 보이는 행동거지가 있긴 해도, 발상과 추진력 하나만큼은 타에 추종을 불허하는 놈이었다.

과연 연구는 어떻게 되었을지, 흥미를 느끼며 글을 읽어내려갔다.

<사실 이 편지가 룬 님 잠드시고 한 50년은 된 시점에 작성 중인데요, 이러다 눈 깜빡 하면 백 년도 더 지날 것 같더라고요. 그럭저럭 벌고, 상점도 안정적이고. 연구에 필요한 것들도 웬만큼 다 해볼 수 있는 환경도 만들었는데. 그것만 하다 가기엔 너무 아깝지 뭡니까? 해서 제게 깃든 룬 님의 권능을 샅샅이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 시도해 볼 만한 주제가 딱! 떠올랐죠! 아 물론 처음부터 이것만 연구하려던 건 아니옵고……>

이 뒤로는 제 자랑과 연구 주제에 도달한 과정, 설명이었다.

결론은 세장의 편지를 넘겨서야 나왔다.

<……해서, ‘에고 웨폰’이라는 걸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제 육신이 없더라도 제 귀여운 자식인 ‘파라리엄’을 한번 살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룬 님.>

‘이 자식 설마?’

룬은 급히 파라리엄을 꺼내 들었다.

무기를 감싼 천을 벗기는 손에 긴장이 스몄다.

파라리엄을 받았을 때 마력을 느끼긴 했었다.

하지만 그건 본래부터 S급 배틀 액스이자, 불을 내는 마력적인 능력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에고 웨폰으로 만든 거라고?’

사락.

천이 완전히 벗겨졌다.

룬은 차분히 무기를 살피면서 손에 쥐어보았다.

“제드?”

대답대신 고요함만 차올랐다.

혹시나 싶어 한 번 더 이름을 불러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무기를 살폈다.

이제 보니 딱 하나.

차이점이 있기는 했다.

‘폼멜에 갈색 진주 마력석이라.’

파라리엄 끄트머리에 달린 폼멜.

무게중심을 맞추는 용도로 쓰이기 위해 쓰이지만 무기 사용자가 개성에 맞춰 튜닝을 할 수는 있었다.

때문에 디자인도 다양했고, 디자인에 따라 보석이 하나쯤 붙었다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과시용으로 쓸 녀석도 아니다만, 그렇다 해도 진주 마력석은 너무 과해. 아마도 속성이나 마법을 부여하기 위해서겠지. 그렇다면…… 시도해 볼 건 하나 있군.’

이 화상을 어쩐다

룬은 진주 위로 손을 뻗었다.

생명력을 품은 진주 마력석은 굉장히 비싸다.

때문에, 예식용도 아닌 무구의 폼멜에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역시. 원래는 마력이 충분히 담겨 있었군.’

인챈트(Enchant).

신성력, 원소마법, 흑마법 등. 다양한 마법을 거는 행위의 총칭.

일전에 룬이 그림으로 그려 선물했던 마법 스크롤 역시 인챈트 파생 아이템이었다.

룬은 폼멜의 진주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그립을 손에 꾹 쥐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번쩍!

멀리 있던 듀라한이 돌아볼 정도로 강력한 섬광이 터져나왔다.

눈부심이 사라지자, 마력을 머금은 진주가 반짝이며 생기를 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 으드드드드! 어이고, 뭐 이리 뻐근하담. 여보세요? 거, 여기가 어디랍니까?

진주에서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얼떨떨해진 룬이 잠시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너 제드냐?”

- 어라, 룬 님이십니까? 맞습니다! 접니다, 제드요!

“…….”

제드는 반가운 목소리로 신이 나서 떠들었다.

- 이야, 제가 성공했군요? 마지막 기억이, 파라리엄에 망치질을 했던 거였는데! 크흐. 내가 해내버렸으어! 캬아, 이 쾌감을 어찌할지!

얼마나 신이 나 보이는지, 파라리엄이 방방 튀어오르기라도 할 것 같았다.

눈앞의 상황에 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전에, 제드는 성취감이 차오른 목소리로 말했다.

- 제 생명을 깎아 가며 실험해야 해서 내심 실패할까 걱정이었는데. 캬! 역시 제 이론은 완벽했다니까요!

생각지도 못하게 들은 단명의 이유였다.

어이가 없어진 룬은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듀라한조차 놀랐는지 이쪽으로 뛰어왔고, 역시나 파라리엄을 보고 녹빛 눈을 깜빡였다.

- 호오! 이 기운은…… 혹시 말로만 듣던 듀라한 씨?! 만나서 아주 반갑구만! 평소 룬 님이 이 몸의 활약에 대한 이야기는 해주셨겠지만, 내 입으로 소개하는 것이 예의겠죠? 이 몸은 제드 머스킷! 개혁파 드워프의 수장이자 위대한 발명가. 선한 영향력을 주는 상단주. 가장 부유한 재력가! 그 외에도 참 많은데 하나하나 말 하려니 입이 다 아파서.

입 없는 놈이 말은 잘했다.

- 야아, 그런데 이거 좀 불편하긴 하네요. 할 수 있는 게 말하는 것뿐이라니. 아니 뭐. 마나로 주변 감각 느끼는 데에 불편한 건 없는데요. 뭐랄까. 세상에 막 태어난 갓난쟁이가 딱 이 모양이었겠네요. 몸도 마음대로 움직여지는 거 아니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게 익숙했는데 마나로 감지해 듣고 보는 느낌이. 어우. 어릴 때 애기 드워프들이 왜 그렇게 제 몸을 못 가누곤 했는지 알겠네.

뜬금없이 신생아에 대한 이해가 상승한 제드.

녀석의 말을 듣고 있자니 뭐라 말을 걸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 이거. 거 옛날에 물건에 깃드셨다는 분들은 어떻게들 사셨나 몰라. 익숙해지려면 시간 꽤나 걸리겠네요.

“……그러니까, 제드. 너 네 혼을 파라리엄에 넣은 거냐?”

- 아,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사실은 좀 더 복합적인 건데. 이걸 설명하지 않을 수가 없죠! 이 제드가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세웠는지를 정확히 알려 드려야 또 제가 한 능력 하는 놈이라는 걸 아실테니까요?!

“……잠깐만. 생각 좀 정리하자.”

- 하긴, 놀라서 드래곤 하트가 쿵 떨어질 만한 기적이긴 합지요. 암요. 이해합니다! 어서 마음을 진정 시키세요.

급격히 너그러워진 제드는 다른 말없이 잘 기다려주었다.

사실 생각 정리 할 것도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할 뿐.

미간을 좁힌 룬이 다른 손으로 이마를 꾹 눌렀다.

‘이 미친놈. 자기 혼을 에고 웨폰으로 만들었어.’

정말이지 룬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 놈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한동안 미간을 꾹꾹 눌렀다.

몸을 바꾼 사정에 대해 물어보긴 해야 했으므로, 룬은 가장 먼저 할 질문을 정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파라리엄에 혼을 옮기다니.”

- 오! 단번에 알아보셨군요? 맞습니다. 제 혼을 여기 옮기기 위해 ‘에고 웨폰’에 대한 자료를 수 없이 연구했죠! 마침 보내주신 진주 마력석과 암시장에서 구한 물건들이 실험을 가능하게 해 줬거든요.

“진주 마력석으로 제작에 필요한 생명을 대체했다는 거냐? 그래봐야 마력석에 담긴 속성일 뿐이잖아.”

- 캬! 역시 룬 님. 이 영특함은 아무리 봐도 평범한 해츨링이 아니시라니까요! 아무튼, 답을 드리자면 말이죠. 필요한 생명력은 제 것을 사용했습니다.

“들어나 보자. 수명을 단축시켜 가면서까지 이래야 했던 이유가 뭔데.”

방금 무덤까지 다녀왔던 기억과 심란했던 감정이 떠올랐다.

단명의 이유가 고작 혼을 옮기기 위해서라니. 미친 짓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대답하는 제드의 목소리는 태연자약했다.

- 왜라. 이유야 별거 없습니다. 반백년을 살아보니, 룬 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라서요. 한데 룬 님은 드래곤족이신지라, 언제 수면기에서 깨실지 알 수도 없고. 빨리 깨신다 해도 늙은 저와 얼마나 지내보겠습니까?

“…….”

말투는 가벼웠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룬이 언제 깰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심지어 크리스티나 역시 길어도 백년 근처이지 않을까,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제드는 낄낄 거리며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 룬 님께서 주무시는 동안 저는 다른 녀석들과는 충분히 많은 일을 해보았습죠. 상회를 대륙 최고로 만들고, 드워프들 중 대륙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녀석들에게 자리도 마련해 주고. 제 후계자를 정하고 교육 시킨 후, 집안 대대로 내려온 열쇠까지 넘겼지요. 그러고 나니 저의 남은 삶은 이제 뻔하더라고요.

술술 읊는 이야기는 가벼운 어조였지만, 내용에는 한 드워프의 삶이 그려졌다.

- 더 나이 들면 모험은 무리. 여기저기 뼈관절 쑤시고 어이구 소리 내면서 늙어가겠지요. 아마 가끔 책상 앞에서 연구하고 후배 놈들 가르치고, 종종 위험도 관리가 가능한 관광지들 좀 돌고 신기한 구경도 하게 될 겁니다. 그러다가 동료 녀석들과 괜찮은 술 좀 가끔 걸치다가 황혼을 보며 숨 거두겠구나~ 싶더라고요. 캬. 말하다 보니 아주 완벽한데. 뭐랄까, 이것도 딱히 나쁘진 않지만 말이죠.

드워프의 기대 수명은 약 200년, 조금 길어봐야 300년을 넘지 못한다.

심지어 그보다 짧을 수도 있다.

어쩌면, 앞으로 룬과 다른 일행들을 보지 못하고 죽게 될 수도 있음을 깨닫는 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제드는 그에 대한 고뇌를 남들이 상상도 못할 발상과 시도로 해결해 버렸다.

- 삶이랄 게, 뭐 별거 없어요. 함께하면 즐겁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최대한 오래 있고 싶다는 게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고요.

히죽 거리며 쾌활하게 말 하는 게 어쩐지 장난기 많은 악동 같았다.

그 어투와 원숙한 내용이 대비되어, 기분이 묘했다.

- 저는 룬 님과 함께 좀 더 많은 것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몸은 이리 되긴 했지만, 룬 님의 권속으로 오래오래 살아가고 싶어요. 물론 허락해 주시겠지요?

룬은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결국 헛웃음과 함께 한 마디 했다.

“……제드, 넌 진짜 미친놈이야.”

- 껄껄. 칭찬 감사합니다요!

결국 룬은 ‘에고 웨폰’이 된 제드를 받아들였다.

이 순간, 제드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을 맞이한 드워프로 보였다.

***

혼이 활발하게 살아난 ‘에고 웨폰 파라리엄’.

무려 룬의 권속 무기인 파라리엄은 지금 듀라한의 손에 들려있었다.

- 호오. 흑미 님께 듣긴 했다만, 이거 흉흉하면서도 재미난 기운이로구만. 아무튼, 난 권속으로서 자네 선배니 앞으로 잘 모셔달라고!

듀라한은 감정을 알 수 없는 음울한 눈으로 파라리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제드가 의기양양하게 선언했다.

- 에헤이. 이거 생각보다 더 과묵한 친구로구만? 그런 눈으로 보면 영 부끄럽다네. 이 몸이 볼수록 매력 있게 생기긴 했겠지만, 탐내기라도 하면 안 되거든!

“…….”

에고 웨폰이 된 제드는 분명 입은 없으나, 누구보다 시끄러웠다.

그에 반해 듀라한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룬은 묵묵히 저 수다를 견디는 듀라한을 아련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냥 듀라한에게 평생 들려있어도 괜찮아 보이는데.’

파라리엄이 제드의 말처럼 볼수록 매력 있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으나, 듀라한의 손에 들린 모습은…… 굳이 따지자면 파괴왕 타이틀이라도 달게 해줄 것 같은 모양새였다.

‘눈에 띄면 다 도륙낼 것처럼 되어버리긴 했지만.’

하필이면 불길한 기운을 두룬 검은 갑옷의 듀라한과 배틀 엑스라니.

너무 잘 어울렸다.

그때, 제드가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제안해왔다.

- 그러고 보니, 이래봬도 제가 룬님의 에고 웨폰인데. 손에 맞으실지 사용감을 좀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요?

제드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드워프였던 녀석은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난색을 드러낸 룬이 그 점을 언급했다.

“드는 거야 문제가 아닌데……. 크리스티나가 보면 나보고는 들지 말라고 할 것 같이 생겼어.”

- 아니, 왜죠?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에고 웨폰이 되고나니 능력도 더 좋아져서, 성능이며 품격이며 부족한 녀석은 아닌데요?

이상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제드에게 룬은 고개를 흔들어보였다.

“너, 드래곤이 해츨링을 어떻게 대하는지 몰라?”

- ?

‘진짜 생각 못했나 보네. 이 화상을 어쩐다.’

룬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제드의 말대로, ‘에고 웨폰 파라리엄’이 좋은 무기임은 틀림없었다.

너무 좋아서 해츨링의 비늘에 상처가 날 수 있을 만큼.

“이건 해츨링과 드래곤이 아니어도 상식인 것 같은데……. 너 같으면 애한테 집안에서 위험한 날붙이를 상시로 쥐여 주고 싶겠냐?”

- 엇.

이때까지 크리스티나는 룬에게 날붙이 다루는 법을 가르친 적이 없었다.

주로 가르친 건 드래곤 족이 태어나면서부터 사용하는 마나. 즉 마법능력과 체술.

무구 연습은 봉술이나 목검을 연습해 보는 걸 용인해 주는 정도였다.

크리스티나의 성정 상, 어린 해츨링의 몸에 크게 상처 날 만한 수업을 진행하지 않으리란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평범한 A급, 하다못해 S급 무기 정도라면 허용해 줬을지도 몰랐지만…… 에고 웨폰은 성능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제드도 그제야 뭔가 깨달았다는 듯 황망하게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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