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105/242)

[사실, 흑미가 있을 때도 잘 안 하는 모습이긴 해. 1차 수면기 직후 흑미가 내 본체화 한 모습을 보고 달려들었거든.]

“……캭?”

[달려……들어?]

서번트가 주인에게 덤비다니.

눈초리가 사나워진 붉은 해츨링에게 룬이 진정하라는 듯 앞발을 슬슬 흔들었다.

“뀨우우.”

[말이 그렇단 거지.]

“캬아?”

[그럼?]

“뀨.”

[그냥 동물이 막 태어나서 처음 본 것에 대한 호감과 애정의 표현이었던 것 같아. 누가 가르쳐 준 건 없으니 본능적인 행동이었을걸.]

페르디키온의 미간이 좁혀졌지만, 이야기가 더 이어지진 못했다.

백야를 머리 위에 얹은 흑미가 짧은 탄성을 터트리더니 총총 걸음으로 둘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앗?”

“삣?”

그리고는 여우귀를 쫑긋 세우고, 분홍빛 눈을 반짝이며 ‘호오오…….’ 하고 둘을 바라보았다.

“우와! 룬 님, 페르디키온 님. 두 분 다 너무너무 귀여워요!”

“…….”

“…….”

흑미의 꼬리가 살랑거렸다.

당장이라도 와락 달려들 것 같은 기세에 페르디키온과 룬은 동시에 시선을 교환했다.

‘이거였냐.’

‘응.’

특히 페르디키온은 귀여워하는 흑미의 시선에 대한 면역이 없어서 더욱 당황스러워 했다.

너무나 반짝이는 흑미의 눈.

부담스러워진 페르디키온이 시선 둘 곳을 몰라 고개만 슬쩍 빗겨냈다.

“캭…….”

[미안하다, 아우님.]

“뀨?”

페르디키온은 결국 도망치듯 폴리모프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뀨……?”

‘이 자식이?’

룬이 노려봐도 아는 체 만 체하며 철면피가 된 페르디키온.

덩그러니 혼자 해츨링 모습으로 남은 룬은 흑미와 정통으로 눈이 마주쳤다.

“아앗……. 페르디키온님 너무 귀여웠는데, 이젠 룬 님만 남았다아…….”

무척 아쉬워하는 눈으로 룬을 보는 시선.

마치 ‘룬 님도 변신해요?’라는 듯했다.

슬그머니 황금 팔찌를 앞발에 쥐자 흑미의 표정에 점점 아쉬움이 번졌다.

하지만 룬은 망설이지 않았다.

착.

가차 없이 팔찌를 끼고 인간형의 모습으로 바꾸자, 흑미가 꼬리와 귀를 축 늘어뜨렸다.

“히잉!”

“……그렇게까지 실망할 일은 아니잖아.”

“그치만…….”

시무룩해진 흑미가 백야를 양 손에 잡았다.

“왠지, 룬 님의 본 모습이 더 다가가기 쉬워요. 더 보고 싶구요.”

“…….”

생각해보면 가장 처음 각인된 모습이 본 모습인 해츨링이었으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평소라면 겉모습 따위에 신경 크게 쓰지 않았을 일이었다.

전생의 친우였던 백미 생각이 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혹시라도 나중에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우리 아이 좀 잘 부탁해.>

‘에휴.’

갈등하던 룬은 팔찌를 슬그머니 뺐다.

“뀨우.”

[됐냐.]

“와아!”

“삐잇!”

폭.

흑미가 오랜만에 보는 본모습이 반가운 듯, 대형견 끌어안듯 와락 안고 어리광을 부렸다.

백야도 같이 흥을 탄 듯 주변을 날며 삐약 거렸다.

‘끄윽.’

룬의 시선이 아련하게 변했고, 페르디키온은 이제야 모든 걸 이해한다는 눈이었다.

그렇다고 같이 본체화 해 주진 않았지만.

***

“다들 잘 있었니?”

다음 날 오후, 크리스티나가 레어에 돌아왔다.

비를 맞은 머리를 뒤로 묶은 모습이 유난히 촉촉하게 반짝였다.

“뀨우우.”

[어서와, 크리스티나. 밖에 비 오나 보네.]

“헤헷. 어서 오세요!”

[ ( ღ'ᴗ'ღ ) ]

룬과 흑미가 먼저 인사했고, 라이도 어느 샌가 날아와 크리스티나의 주변을 맴돌았다.

혼자 인간의 모습으로 온 페르디키온이 크리스티나의 몸에 있는 물기를 알아차렸다.

“일부러 비를 맞고 오신 겁니까?”

“응. 레어 앞에서만 조금 맞았어. 무척 시원하더구나.”

크리스티나가 물기 머금은 금발을 가볍게 털어냈다.

“라이에게 룬이 깼다고 듣자마자 출발했는데, 거리가 워낙 멀어 생각보다 이제야 도착했단다. 아이들을 봐 줘서 고맙구나, 펠.”

“아우가 제게 먼저 연락해줬으니, 형님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후훗. 그래, 보기 참 좋구나. 룬, 컨디션은 좀 어떠니.”

“뀨.”

[괜찮아. 참, 페르디키온 형과 제드의 공방과 무덤에 다녀왔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던 크리스티나가 다정하면서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룬을 바라보았다.

“그래……. 첫 권속의 죽음이니 마음이 편치 않겠지. 기분은 괜찮은 거니?”

싱그럽게 미소 짓던 크리스티나의 얼굴에 염려가 담겨있었다.

눈을 깜빡인 룬이 대답하기 전까지만.

[그게 말인데, 제드가 죽은 건 맞지만, 사라진 건 아니었어.]

“?”

의아해진 크리스티나에게 룬이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제드가 스스로 에고 웨폰이 되었다는 말에 크리스티나는 ‘어머나…….’라며 탄성을 터트렸다.

“그럼, 네 권속인 에고 웨폰은 어디에 있니?”

“뀨우.”

[듀라한에게 맡겼어. 내가 손에 쥐면, 크리스티나가 걱정할까 봐.]

그 말에 크리스티나가 룬의 반질거리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기특해라. 잘했어, 룬.”

“뀨.”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무기를 가지고 있다 사고라도 친다면, 제드를 아예 못 볼 수도 있으니 말이야.’

룬은 크리스티나가 일전의 요정이 들어간 진주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떠올랐다.

제드 성격에 ‘그 유명한 빛의 여제님, 골드 드래곤 장로의 봉인이라니! 그…… 그건 오히려 좋을지도! 물론 진짜 당하면 조금 곤란하겠지만요!’ 라며 흥미로워 할지도 모를 일이기는 했다.

크리스티나가 싱긋, 미소 짓고는 정확히 듀라한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한번 보자꾸나.”

“뀨.”

고개를 끄덕인 룬을 따라 흑미와 다른 이들이 줄줄이 걸었다.

듀라한은 크리스티나와의 인사자리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에고 웨폰 파라리엄을 들고 서 있었다.

- 오랜만에 뵙습니다요, 크리스티나 님! 여전히 아름다우시군요!

“고마워, 제드. 결국 해내고 말았구나.”

- 맞습니다. 마검에 대한 염려와 조언을 주신 덕분입죠! 고민이 아주 많았지만, 이 제드가 누굽니까? 개혁파의 선봉장 드워프지요!

쿡쿡, 웃던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살짝 모로 기울였다.

“생각치도 못했어. 내가 조언을 한 건 마검에 대한 이해를 하면, 포기할 거라 생각해서였단다. 그런데 정말이지, 가끔은 타 종족들이 가능성을 뛰어넘어 버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오곤 해.”

- 알아주시니 저도 아주 기쁠 뿐입니다요. 그런데 말입니다, 크리스티나 님. 이렇게 된 마당에,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만…….

은근한 목소리에 크리스티나의 목소리도 함께 차분해졌다.

“어떤 부탁이지?”

- 저는 본디 룬 님의 권속 아닙니까? 하지만 해츨링이셔서 성능이 너무 좋아져버린 저로서는 위험하게 여기신다 들었거든요. 그렇지만, 제가 또 룬 님에게 꽤 충실한 녀석이 아닙니까? 날을 세우지도 않고, 능력도 함부로 드러내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서술이 길었다. 그리고 그만큼, 마지막 말은 모두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 부디 저에게 룬 님을 허락해 주십쇼!

“어머나.”

뒤에서 듣고 있던 룬은 기가 찬 얼굴을 했다.

‘뭔 상견례 신랑 같은 소릴 하고 있어.’

어이가 없는 눈을 한 건 페르디키온도 마찬가지였다.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미친놈.’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보였지만.

하지만 흑미는 제드의 비장함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소곤거리며 백야랑 떠들었다.

“흑미에게 룬 님을 허락해 주십쇼!”

“삐약!”

“앗! 흑미에게 백야도 허락해 주십쇼!”

“뺘악!”

‘하지 마라, 이 녀석들아.’

룬은 아련한 눈으로 짜게 식어갔다.

“룬, 네 생각은 어떠니?”

흑미에게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크리스티나의 물음이 들어왔다.

‘의외인데? 당연히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더니.’

이 생각을 한 건 룬뿐만이 아니었다.

“룬에게 에고 웨폰을 맡기신다는 겁니까? 아직, 제 아우는 너무 어립니다만.”

“물론 어린 해츨링이지. 사실, 마음 같아서는 나 역시 걱정이 앞선단다. 하지만 동시에 유일한 어둠 일족 후계와 그 권속의 일이니. 룬에게 의견은 물어봐야지.”

‘호오.’

어린 해츨링으로만 대하던 그녀가 룬을 어둠 일족의 후계로서 대우하겠다는 말이었다.

잠깐 생각해 본 룬은 거절의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 아이고! 매정하시기도 하시지!

제드가 앓는 소리를 내도 어쩔 수 없었다.

크리스티나는 반색을 했고, 페르디키온은 룬에게 물었다.

“정말 거절하는 거냐? 무구를 써보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 여겼다만.”

“뀨.”

[레어의 주인인 크리스티나가 싫어하니까 굳이 걱정 끼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서. 대신 내가 쓸 수 있을 때 자유롭게 쓰긴 할 거야.]

그리고 말하지 않은 사적인 이유도 있었다.

‘모코지석으로 볼 때조차 가끔만 봤는데, 바로 옆에서 쉬지 않고 떠드는 걸 어떻게 감당해.’

성능 좋은 에고 웨폰을 마음껏 다뤄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당장 성능 좋은 무기를 써야만 하는 상황도 아니었고, 룬보다는 제드의 수다에 영향 받지 않을 듀라한에게 맡기는 편이 나아 보였다.

과묵한 듀라한에게도 혼자 신나서 떠드는 녀석이었다.

룬에게는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을 터.

‘어쨌든, 크리스티나에게 괜한 염려 끼치지 않고 싶은 것도 사실이니까.’

룬은 꼬리를 슬슬 흔들며 번복할 생각 없다는 듯 팔짱을 끼었다.

페르디키온은 룬에게 들은 말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었다.

레어의 주인에 대한 존중이 그 이유라 하자, 제드도 징징대는 걸 멈추었다.

- 아쉽네요.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할 수 없죠. 듀라한과 손 발 맞춰보는 것도 흥미로워 보이긴 했으니, 잘 부탁하네! 듀라한 씨.

철컥! 절그럭.

듀라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네.’

크리스티나는 청결 마법으로 몸의 물기를 말리고, 아이들의 식사 여부를 확인했다.

평화로운 마무리였다.

정말 대단한 놈인데.

제드의 거취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으니 이제 듀라한과 잘 지내기만 하면 되리라 여긴 룬.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모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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