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4화 (144/242)

치명상을 입어 저항할 힘이 없던 녀석은 성질만 더러웠다.

생선은 빠른 해류에 덧없이 휩쓸렸다.

“?”

문득, 룬은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린 아멜리아가 있었다.

“……아, 안녀엉. 룬.”

어색하게 인사를 해 오는 데, 눈을 마주치질 못했다.

‘좀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소심하네.’

룬이 보기엔 그랬지만, 실상을 조금 달랐다.

사실 인어는 룬이 생선 몬스터와 장난치는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해 보고 있었다.

한데, 갑자기 시선이 꽂히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던 것뿐이다.

‘어, 어떻게 알았을까? 너무 뚫어지게 봐서 그런 거라면……. 혹시 룬이 너무 부끄러워하면 어떻게 하지?’

걱정과 달리, 룬에게서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앞발을 흔들며 그녀가 있는 모래바닥으로 내려왔을 뿐.

“뀨우.”

모래알갱이가 뒷발 아래에 밀리는 걸 느끼며, 룬이 아멜리아에게 시선을 던졌다.

[안녕.]

“으……응.”

어색한 공기가 잠깐 흘렀으나, 룬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너희 부모님은 요즘 어떠셔?]

“아…… 많이 좋아지셨어. 크리스티나…… 님이, 많이 도와주시기도 했구…… 이제 조금씩, 근처를 다니시기도…… 해.”

대답을 들은 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안 그래도 줄 게 있었어.]

“으응?”

인어의 푸른 눈이 룬이 뒤적이기 시작한 아공간주머니를 주시했다.

공기방울에 감싸여 나온 것은 갓 따온 싱싱한 열매였다.

[이거 받아.]

휘익

“앗!”

던져진 열매를 받은 아멜리아가 동그란 눈으로 열매를 살폈다.

그녀가 비록 바깥에 나가 본 적이 없다 하나, 이 열매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생김새였다.

룬이 설명했다.

[세계수의 열매야. 세계수의 힘이 응축되어 있어. 분명 너희 부모님 치유에 도움이 될 거야.]

“아……!”

드래곤은 다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다쳤을 때 도움이 될 만한 약을 찾기도 힘들었다.

“고, 고마워…….”

아멜리아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잘 키웠다

“뀨우?”

[우는 거야?]

까만 해츨링의 물음에 아멜리아가 얼른 눈가를 검지로 문질렀다.

“아, 아이. 나도 참.”

당황하다가 수줍게 얼굴을 살짝 돌린 인어.

그를 보며 룬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 와서 매번 울리기만 하는 것도 곤란하니까.’

잠시 기다리자 아멜리아가 젖은 눈가를 들어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미, 미안해…… 조금은 성장 했다고 여겼……었는데 아, 아직은 부족했나 봐.”

‘아직 어리기야 하지.’

심해에서 그녀가 경험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

페르디키온보다 백 년 정도 적은 나이보다도 그 점이 문제였다.

‘이 녀석도 성장을 해야하는데.’

룬은 아멜리아를 물끄러미 보다 물었다.

[넌 성년식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본 적 있어?]

“그, 그러게…… 슬슬 생각……하긴 해야 하는……데.”

소중하게 세계수 열매를 챙긴 인어는 고민스러운 눈치로 답했다.

“알겠……지만, 물의 레어도. 우리 부모님도 아, 아직…… 회복이 필요해서. 내가 자리를…… 비울 상황이 아, 아니니까…….”

말 할수록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마음이야, 그녀도 룬과 페르디키온처럼 밖을 구경해보고 싶을 터.

룬도 그녀의 상황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뀨우…….”

[어렵다는 거구나.]

룬의 말에 아멜리아가 살풋 웃어보였다.

“그래도 있지. 성인식을…… 제, 제대로 치르고 싶어. 우리 부모님……이 그, 그러셨는데.”

풀이 죽었던 아멜리아는 이야기 할수록 목소리에 다시 생기를 되찾아갔다.

“우리 물의 일족은 대대로, 바다 밖 다른 지역. 물의……일족. 엘프 마을이나 인간의……마을. 호, 혹은 대삼림에 가기도…… 했대.”

“뀨우.”

[그래?]

제대로 된 성체가 되고픈 마음과,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인어의 마음.

가만 듣고 있자니, 강해지기 위해 좋은 불씨가 되어 줄 요소였다.

‘이건 쓸 만하겠는데?’

속내가 드러날까 봐, 룬은 어떤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순한 해츨링의 눈을 하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뀨우.”

[그러고 보니, 나 엘프 마을 이번에 가 봤는데.]

마침 그녀가 꺼낸 이야기 중 엘프 이야기가 있기에 꺼낸 주제였다.

“저, 정말? 대단……해!”

감탄한 아멜리아가 눈을 크게 뜨고 더욱 적극적으로 물어왔다.

“거긴, 어때? 정말로 귀, 귀가 이-렇게. 길어? 바다처럼 넓……지만, 초록빛이 가, 가득한……아름다운 곳이라던데. 진짜 그래?”

이렇게나 눈을 빛내는 아멜리아는 처음이었다.

“뀨우.”

[잠깐만, 하나씩 말해 줄게.]

물빛 머리카락을 흔들며 룬 앞에 다가온 아멜리아.

그녀는 룬의 제지에 얼른 몸을 뒤로 물렸다.

“아, 아우. 미안……해. 내가 의, 의욕만 커……서.”

룬은 개의치 않다는 의미로 고개와 앞발 하나를 슬슬 저어보였다.

[괜찮아. 그럼 엘프 왕국에서 겪은 이야기부터 들려줄게.]

그 말에 금세 호기심을 드러낸 물빛 소녀가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응!”

아멜리아가 두 손을 모아 가슴에 얹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고, 룬을 보는 눈이 또렷해졌다.

“뀨흠.”

가볍게 헛기침을 한 룬이 전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엘프 왕국, 그러니까 루엘토투라 라고 하지. 예전에는 거대한 대삼림이었다나 봐.]

어느새 인어는 꼬리를 접고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앗…… 나, 들은 기억이 나. 중심에 세, 세계수가 있다고……그러던데.”

고개를 끄덕이며 룬은 아멜리아의 말을 긍정 해주었다.

[맞아. 원래는 미로 같았다는데, 지금은 사막 한가운데에 둥글고 큰 숲으로 되어있어.]

룬은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었다.

마치 동화책을 듣는 아이처럼 상상만 해도 행복해지는지 물빛 눈이 부드럽게 감겼다.

하지만 마족이 세계수를 오염시킨 대목에서 눈을 번쩍 떴다.

“세, 세상에!”

아멜리아는 마족의 피로 엘프마을에 전염병이 번졌다는 말에 저도 모르게 주먹을 꼬옥 쥐며 분해했다.

“어, 어떻게……그럴 수가 있어?”

본래 마족은 드래곤과 지독한 앙숙.

마족과 관련된 일은 그녀로서도 무척 화가 나는 일이었다.

“뀨우, 뀨우.”

[하필 엘프왕이 세계수를 오염시킨 마족의 목소리가 세계수의 목소리인 줄 알았다지 뭐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룬이 말하자, 아멜리아가 미간을 좁혔다.

“모, 못됐어! 속인 마족이 너, 너무 나빠. 엘프 왕…… 바보!”

룬은 적절한 속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응. 결국 세계수도, 사랑에 모든 걸 걸었던 갈색 드래곤 란드와 다른 엘프들도. 전부 다 마족의 손에 놀아나버렸지, 뭐.]

인어 꼬리가 한 차례 파닥였다.

“으으. 그, 그래서 어떻게……됐어?”

평소 소심한 아멜리아가 참지 못하고 다음 이야기를 종용했다.

룬은 피식 웃어보였다.

“뀨후.”

[안심해. 다행히 내가 마족은 잘 쫒아냈으니까.]

“호, 혼자 말이야?”

룬은 고개를 저었다.

“뀨뀨뀨뀨.”

어딘지 모르게 악동 같아 보이는.

실제로는 어른의 음흉한 간계가 담긴 웃음소리를 흘리며 룬이 이어 말했다.

[그 놈이 초대장을 줬는데, 마침 나한테 크리스티나 레어로 가는 귀환석이 있었거든. 거기 초대장을 달아 보냈지.]

룬은 태연하게 맞을 맺었다.

[덕분에, 그 마족. 크리스티나가 제대로 혼내줘 버렸어. 진짜 강하더라.]

크리스티나의 힘을 제대로 본 적 있던 아멜리아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크, 크리스티나 님……이라면. 응, 그렇겠다. 무엇보다 룬……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반응이 꽤 좋았다.

룬은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며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이거 봐봐.]

행운의 달조각이라 이름붙인 간식과, 양념 고기 꼬치.

“그, 그건……뭐야?”

궁금해하는 아멜리아에게 룬은 세계수의 열매를 얻기 전, 백야의 눈물을 이용해 엘프들을 회복시킨 음식이라 설명해주었다.

[백야의 눈물이 들어간 간식이라 효과가 좋았거든. 한번 먹어 봐.]

반달 모양에 노란색 식용꽃물을 들인 간식.

고소하고 자극적인 색감의 고기 꼬치.

아멜리아는 달조각을 먼저 만져보더니 쫀득한 감촉에 가벼운 탄성을 터트렸다.

“시, 신기해.”

물빛 소녀는 룬을 한번 보고, 간식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작게 입을 벌려 간식들을 맛보았다.

“으음! 흐으응!”

달콤한 꿀이 안에서 툭 터져나왔다.

기분 좋은 단맛에 커졌던 아멜리아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마, 맛……있어.”

룬이 꼬리를 슬슬 흔들며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고기꼬치를 오물거리는 아멜리아에게, 룬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슬그머니 흘렸다.

[아멜리아. 세계수 열매를 부모님께 드리면 몸상태는 상당히 좋아 지실거야. 그럼 너도 밖에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몇 번 더 입안을 오물거리던 아멜리아.

그녀는 살짝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 그럴 수……있다면 좋겠어. 아니, 꼭 하고 싶……어.”

아멜리아는 물의 마법으로 공중에 띄워 둔 세계수 열매로 시선을 던졌다.

세상에 나간다면 이런 것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룬과 페르디키온처럼 다양한 사건들을 겪고, 해결하며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시선을 다시 내린 그녀가 룬을 바라보았다.

“룬……이, 있잖아. 내가……성인식을 위해 과, 과업을…… 시작하면…… 함께 해줄 수 있……어?”

“뀨?”

룬이 앞발의 엄지 부분을 들어 자신을 가리키자, 아멜리아가 입을 앙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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