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8화 (158/242)

나른한 눈으로 달을 보던 란드.

그리고 이제는 왕의 모습으로 그들을 배웅할 벨리아누스.

먼저 인사를 건네온 건 벨리아누스였다.

“언제든 찾아오시오. 나뿐 아니라, 모든 엘프들이 당신들을 환영할 터이니.”

그의 진중한 어조 뒤, 란드가 말을 이었다.

“고생 많았다, 꼬맹이들. 덕분에…… 고마웠고.”

여전히 갈색 드래곤으로서 살아가겠지만, 전과 달리 받아들여 질 자리가 생긴 란드.

그의 녹안이 룬에게 향했다.

말없이 닿는 시선은 숲의 인장을 가진 자로서 한 약속을 상기 시켰다.

룬은 시선의 의미를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잊지 않을 테니 걱정 마.’

생각이 전달되었는지 란드는 눈을 감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크리스티나가 빛을 내는 긴 완드를 들고 배웅 온 이들에게 고했다.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빛의 가호가 늘 함께하길 빌겠어요.”

“빛의 여제여. 여러 도움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살펴가시기를.”

“……또 뵙죠. 크리스티나.”

벨리아누스가 먼저 인사를 마치고 이어 란드 역시 간단히 답했다.

“다들, 안녕히 계세요!”

“삐이약, 삐약.”

흑미가 두 손을 흔들며 웃었고 백야도 분위기를 읽고 가볍게 새소리를 냈다.

“불의 일족 예비 장로로서, 엘프들의 번영을 기원하지.”

예를 갖춘 페르디키온.

이번에는 룬의 차례였다.

“어둠 일족 예비 장로로서, 어둠을 두려워 하지 않고 더 좋게 바뀔 엘프 왕국이 되길 기원할게.”

페르디키온과 룬에게 기특함을 담아 상냥한 시선을 보낸 크리스티나가 이동마법진으로 다가갔다.

“대규모 공간이동이니 마력의 흐름이 무척 거대할 거란다. 너무 놀라지 말렴.”

촤악!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환한 빛의 기둥을 만들었다.

어찌나 밝고 두꺼운지, 엘프 왕국에 사는 모든 엘프들이 발견할 정도였다.

이어, 크리스티나의 입에서 빛의 입자가 언령 대신 번져나왔다.

화아아아악!

직후, 눈부신 기둥이 사라진 자리는 텅 빈 공터로 변했다.

***

룬은 빠른 급류로 된 빛의 강에 휩쓸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부심이 사라지고 눈을 뜨자, 익숙한 기운이 피부에 느껴졌다.

골드 드래곤의 레어.

그 중에서도 약 백여 년 전, 페르디키온을 처음 만났을 때 왔던 장소 이었다.

“여긴, 손님 맞이 용 홀이네.”

룬의 말에 페르디키온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시 화룡족 소년도 워프 마법을 이용해 들어왔으니, 기억이 나는 모양이었다.

[。°・(>O<)・°。]

이미 그들이 도착할 줄 알고 있었는지, 빛의 정령 라이가 표정을 띄우며 다가왔다.

“뭔가 오랜만인데.”

룬의 말에 라이가 빠르게 공중에 빛으로 그림문자를 만들어내었다.

[。・゚・(ノ∀`)・゚・。 。・゚・]

라이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환영했다.

흑미가 손을 뻗어 꽃잎 같은 빛무리를 쥐어보며 말했다.

“예쁘다아. 우리 다녀왔어, 라이.”

“삐약! 삐삐약!”

새가 냉큼 날아가 빛을 뿌리는 라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 ( °ټ°)]

빛의 정령은 백야를 피하더니 그림을 그려 마음을 표현했다.

“삐잇! 삐이이!”

하지만 백야도 이젠 비행에 능숙한 상태.

가슴털을 한 차례 부풀린 하얀 새는 금방이라도 라이를 향해 부리를 꽂을 기세였다.

그대로 두었다간 둘은 서로 쫒고 쫒기는 공중 추격전을 개시할 게 뻔했다.

그때.

짝짝!

크리스티나가 가볍게 손뼉을 쳐 주위를 환기시켰다.

“삐이?”

[(´゚ω゚`*) ? ]

시선이 모이자, 그녀가 상냥하지만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자. 늦은 시간이야. 푹 자고 회포는 내일 풀자꾸나.”

“삐이약.”

[(・ω・)ノ]

백야와 라이가 각자 대답했다.

그리고, 룬을 향해 시선을 돌린 크리스티나가 자연스럽게 물어왔다.

“룬, 내일 요리 훈련은 어떻게 할 생각이니?”

적당한 휴식이 필요하다 여긴 룬이 대답했다.

“내일은 쉴까 하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크리스티나가 말을 덧붙였다.

“좋은 생각이구나. 무엇보다, 내일은 손님이 올 예정이거든.”

“손님?”

“그렇단다.”

은근한 미소를 띤 크리스티나가 입을 열었다.

“너희도 아는 손님이지. 누군지 궁금하지 않니?”

사춘기인가?

룬과 페르디키온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크리스티나의 레어에 손님이 방문하는 건 무척 이례적인 일.

당최 짐작 가는 이가 없었다.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룬이 총대를 메었다.

“손님이 누군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크리스티나가 정답을 알려 주었다.

“바로 아멜리아야.”

아, 하고 크리스티나가 말을 덧붙였다.

“정확히는 아멜리아 일가지.”

“……?”

‘왜?’

답을 받았건만 룬에게는 의문이 더 추가되었다.

“앗! 아멜리아 언니 와요?”

기대 섞인 물음을 던진 흑미에게 푸른 시선이 옮겨졌다.

크리스티나가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단다. 아멜리아가 페르디키온의 과업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일로 부모용들이 내게 연락을 주었거든.”

어쩐지 크리스티나가 무척 바쁘다 했더니, 엘프 지배도 층뿐 아니라 블루 드래곤 일족과도 연락 중 이었다는 소리였다.

크리스티나가 말을 이었다.

“아멜리아의 부모들은 이를 무척 좋은 기회라 여겼지만, 한편으로는 아멜리아가 심해에서만 지낸 것을 염려스러워 했단다.”

이야기를 들은 룬은 어렴풋이 아멜리아가 오는 이유를 짐작해 냈다.

“혹시 아멜리아도 나랑 같이 수업받는 거야?”

확인차 던진 룬의 질문에 크리스티나가 기특하다는 듯 시선을 던졌다.

“후훗. 똑똑하기도 하지.”

이들 중 대륙에 발을 딛어 본 건 페르디키온뿐.

심지어 아멜리아는 인간은커녕, 룬처럼 엘프들과 대화도 거의 해 보지 못한 해츨링이었다.

룬은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당연한 일인가. 아멜리아는 같은 드래곤 족과 소통을 해 본 경험조차 거의 없으니.’

땅을 밟은 적 없는 물의 일족 아이.

대륙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해 본 크리스티나에게 교육을 맡기는 건 제법 훌륭한 선택이었다.

내심 감탄한 룬이 속으로 생각했다.

‘현명하네.’

물의 일족 장로가 될 아멜리아에게 부족한 부분.

대인관계, 각 일족 장로 후계와의 연결고리.

대륙에 영향력을 끼칠 장로로서의 능력, 경험.

이를 전부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잘 포착한 셈이다.

미미한 미소를 띤 얼굴로 룬이 입을 열었다.

“기대된다. 아멜리아랑 수업받는 거.”

겉보기엔 같이 수업 들을 친구가 늘어난 걸 기뻐하는 순진한 얼굴이나, 속은 조금 달랐다.

‘오랜 세월 병상에 있었다지만, 한 일족 장로의 자질은 아무나 가지는 게 아니라는 거군.’

그렇게 생각한 룬은 속으로 빙긋 웃었다.

그들의 결단은 룬에게도 득이었다.

‘같은 수업을 받는다는 건 우리 셋이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기회이기도 하지.’

지식만의 문제라면 아멜리아의 부모가 가르쳐도 될 일이다.

그들도 성체의 드래곤이니.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지식만 가지고 대륙에 나갔다간 물의 던전 때 처음 만난 날처럼, 페르디키온과 입장 차로 서로 다툴 확률이 높았다.

그 사이에서 룬이 고생할 건 덤이다.

‘게다가 다른 문제도 있어.’

아멜리아는 대체로 상대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지금도 페르디키온과 룬을 보며 자연스럽게 대하지 못하는데, 대륙에서 처음 볼 상대에게는 오죽할까.

그간 봐 온 아멜리아의 모습을 떠올린 룬이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마음가짐보단…… 경험 부족이지.’

아멜리아가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기질을 타고나긴 했다.

그러나, 본래부터 시선을 피하거나 말을 더듬는 아이는 아니었다.

생각을 자연스럽게 말해 본 경험이 극단적으로 적었기에 생긴 모습일 뿐.

룬은 페르디키온 때를 비추어 예측했다.

‘이건 조만간 크리스티나가 부탁해 오겠군.’

룬은 머리 한구석에 그 예상을 넣어 두었다.

크리스티나의 말이 이어졌다.

“특히 룬. 아멜리아의 부모는 네가 세계수의 열매를 가져다준 덕분에 훨씬 좋아졌다며 직접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 했단다.”

룬은 순한 눈으로 웃으며 답했다.

“정말? 몸이 좋아지셨다니 다행이다.”

‘세계수 열매에 대한 감사 인사……와, 다른 생각도 있을 듯한데.’

여러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아무튼 실제 만나 봐야 알 일.

쭉 상황을 보고 있던 페르디키온이 입을 열었다.

“하면 물의 일족분들께 저도 인사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란다. 함께 해 주겠니?”

크리스티나의 말에 불의 레어를 며칠 비운 상황임에도, 페르디키온은 흔쾌히 대답했다.

“예, 그러겠습니다.”

크리스티나가 싱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럼 여독을 풀 자리를 마련해 줄게. 혼자 자려는 거지?”

“배려 감사합니다.”

크리스티나의 레어는 회복에 특화된 곳.

피로를 해소하는 데에 이만한 장소도 없었다.

그때, 흑미가 웃으며 말했다.

“페르디키온님. 저희요, 오늘은 다 같이 자요!”

“삐이!”

백야도 좋다는 듯 삐약 소리를 냈다.

“다…… 같이?”

그렇게 중얼거린 페르디키온이 미간에 세로 두 줄을 꽉 잡았다.

명백히 불편해 하는 얼굴이었다.

‘보아하니 저 녀석은 거절하겠구만.’

룬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페르디키온은 북적이는 대인원들과 자 본 적은 없었다.

그러니 영 익숙하지 않은 일일 테고.

이를 무척 어색하게 여길 확률이 컸다.

그러나, 페르디키온은 룬의 예상과는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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