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5/242)

“그러렴.”

크리스티나가 허락하자, 흑미가 포크로 고기를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냠.

그리고, 눈을 번쩍 떴다.

“호오오오……! 꼬기다아!”

탄력 있는 감촉과 양념에 재운 고기 맛에 볼을 쥔 흑미는 감동한 눈초리였다.

그 모습을 본 아멜리아 일가도 스테이크에 칼을 대었다.

조심스럽게 입안에 콩고기 스테이크를 밀어 넣은 그들은 감탄을 흘렸다.

“이거, 신기하군.”

미각을 민감하게 세워보면 고기와는 분명 달랐다.

하지만 스테이크 맛을 내기엔 충분한 맛이었다.

볼가가 만족한 눈치로 감상을 입에 올렸다.

“평소 대륙에 사는 자들의 식문화에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이런 걸 생각해낼 정도로 영리하기까지 하군.”

그 말에는 룬에 대한 감탄이 섞여 있었다.

크리스티나가 입을 열었다.

“콩으로 고기를 만드는 레시피는 저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요. 이 아이가 만들어 준 고기를 처음 먹어보았을 때 무척이나 놀랐답니다.”

주저하던 이들은 다시 식기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조금씩 씹는 속도가 빨라졌다.

스테이크와 콩불고기가 비워진 후, 양념 꼬치구이와 강한 맛을 씻어낼 음료가 나왔다.

“룬이 준비한 또 다른 즐거움이에요.”

찰랑.

투명한 황금빛이 안에 살아있는 별을 모아둔 듯 반짝이며 흔들렸다.

향긋하고 달콤한 향, 청량감이 느껴졌다.

룬이 설명했다.

“이건 세계수 열매로 만든 과일쥬스입니다.”

그 말에 세계수 열매로 강력한 치유 효과를 본 아멜리아 일가가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어린 해츨링이 준비한 귀여운 음료에 미소를 머금은 볼가가 입을 열었다.

“어린 해츨링이 사려가 깊군. 잘 먹겠네.”

“이게 끝이 아니에요.”

룬의 말에 크리스티나가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고풍스러운 라벨이 붙은 와인이 식탁위에 나타났다.

“엘프 왕성에서 얻은 와인입니다.”

룬은 와인과 주스 보며 아련함을 느꼈다.

‘원래는 저걸로 뱅쇼를 만들어보려 했을 뿐인데.’

룬은 좀 전 부엌에서의 상황을 떠올렸다.

***

그가 부엌에서 콩고기로 메인 육류요리의 구색을 갖추겠다고 말 한 후.

슬그머니 타이밍을 가늠하던 룬이 입을 열었다.

“뀨뀨.”

[크리스티나. 보통 스테이크에는 와인을 마시지?]

꼬리까지 까만 해츨링의 말에, 크리스티나가 오묘한 눈으로 룬을 주시했다.

“그건 그렇지만…… 무슨 의도로 묻는 거니?”

술을 마시겠다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건만, 와인을 언급하니 크리스티나의 눈초리가 영 심상치 않았다.

“뀨뀩.”

[실은…….]

룬은 아공간 주머니에 앞발을 넣고 뒤적였다.

그리고, 엘프 왕성에서 가져온 와인을 꺼내들었다.

“뀨우. 뀨뀨.”

[내가 이런 걸 가지고 있거든.]

미간을 찌푸리며 크리스티나가 물었다.

“와인? 대체 누가 이런 걸 네게 준 거니?”

룬은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뀻.”

[내가 요청했고, 엘프들이 선물로 줬어.]

이 말을 들은 크리스티나가 팔짱을 끼며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룬…… 설마 기어이 술에 손을 댄 건…….”

의심스러운 가정이 완전히 구체화 되기 전, 룬은 그녀의 생각을 멈췄다.

“뀨, 뀨우.”

[아니, 그건 아니고.]

와인을 꿍쳐 둔 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 했다.

룬은 단어를 골랐다.

“뀨우우.”

[마족의 기운에 당한 엘프를 치료하기 위해서였어. 꼭 필요해서 한 일이였고.]

“?”

룬은 그녀에게 진실을 전해 주었을 엘프를 언급했다.

[벨리아누스에게 들은 적 있지 않아? 마기에 당한 엘프들을 구하기 위해 백야의 눈물을 사용한 음식을 약으로 사용했다고.]

룬은 엘프들의 땅이 오염되기 전, 세계수의 축복이 존재하던 때 만들어지고 숙성되었던 포도주와 치즈.

거기에 백야의 눈물을 섞어 약식을 만들었던 상황을 다시 이야기 해 주었다.

쭉 들은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래. 그러고 보니 벨리아누스에게 비슷한 소릴 들었지. 기억나는구나.”

심지어 엘프들은 룬의 나이를 제대로 아는 자가 거의 없었을 터.

술을 주면 안 된다는 걸 몰랐을 만 했다.

룬이 살짝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뀨뀨.”

[이걸로 뱅쇼라는 걸 만들면 어떨까 하고. 나 같은 해츨링도 그 정도는 마실 수 있잖아?]

비록 제대로 된 술은 아니지만, 백년 넘게 금주령을 당하고 있는 그.

알코올이 다 날아간 뱅쇼는 술이라 할 수 없지만, 그런 거라도 적당히 기분은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룬이 기대감 어린 눈으로 크리스티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래. 뱅쇼라면 오래 끓여서 알코올은 다 날아갈 수 있겠지.”

“!”

긍정적인 대답에 내심 쾌재를 부르려던 룬.

하지만 낙관하기에는 일렀다.

“한데 이 와인, 품질이 무척 좋아 보이는구나.”

“?”

왠지 모를 불길함이 스쳤다.

그리고 그 느낌은 현실이 되었다.

“룬, 이 와인은 뱅쇼로 만들기엔 너무 아까워. 이대로 직접 아멜리아 부모에게 맛을 보여주는 게 좋겠어.”

“뀨우……?”

말을 마친 크리스티나가 검지를 가볍게 돌리더니 위로 치켜 올렸다.

쏙!

“!”

해츨링의 두 앞발에 끼워져 있던 와인병이 속절없이 멀어져갔다.

‘이걸?’

낭패한 기분을 느낀 룬은 크리스티나의 손 안에 들린 와인병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한편, 크리스티나는 와인을 살피더니 고급스러운 재질의 종이택을 발견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보이니? 여기에 세계수와 가장 가까운 물을 사용하여 맛과 향이 뛰어나다는 택이 달려있구나. 친절하기도 하지.”

와인 봉인지까지 꼼꼼하게 살핀 크리스티나는 즐거운 듯 말을 이었다.

“여기. 이 봉인에 가장 우수한 등급을 표시한 엘프 양조장 주인의 서명이 되어있단다.”

“…….”

안 그래도 룬에게 무척 호감을 가지고 있던 엘프들.

하필이면 최고의 귀빈이라 여겨 귀하디 귀한 와인을 넘겨준 건 고마운 일이나, 그 친절이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하필이면 왜 이렇게 좋은 걸 준거야.’

이런 룬의 마음을 짐작 하지 못한 크리스티나가 생긋 웃어보였다.

“친절한 엘프들 덕분에 정말 좋은 마리아주를 대접할 수 있겠구나, 룬.”

“뀨우우…….”

[그러네…….]

추욱.

저도 모르게 꼬리가 늘어졌다.

준비 됐지?

룬이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어른들끼리는 이미 작은 와인파티가 한창이었다.

가니쉬로 올린 구운 야채와 어느새 추가된 카나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성룡들.

자연스럽게, 술자리에 끼기 어려운 어린이들이 끼리끼리 모여들었다.

나이로 치면 페르디키온과 아멜리아, 모두 술을 입에 댈 수는 있었다.

하지만 둘 다 눈치껏 성체들끼리의 자리에 끼지 않았다.

아멜리아가 조심스럽게 흑미 옆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흐, 흑미야. 잘……지냈어?”

“힛. 아멜리아 언니도 잘 지냈어요?”

장난스럽게 웃으며 살갑게 대하는 흑미가 편했던지, 아멜리아가 조금 편해진 얼굴로 답했다.

“으, 응. 흑미는 여전하네. 꼬리  가…… 하나 늘었구나.”

“맞아요! 그리구, 제 정령들도 소개시켜줄게요.”

어느새 자리를 살짝 옮겨와 흑미 곁에 앉아 떠들기 시작한 아멜리아.

흑미는 진화한 불의 정령들을 꺼내 보여주었다.

안타깝게도 물의 기운이 가득한 아멜리아에게, 불의 정령들은 서먹한 눈치였지만.

“흑미 대, 대단해……! 정령을 다섯 마리나 중급으로 진화……라니.”

아멜리아가 놀란 눈으로 칭찬해 주자, 흑미가 배시시 웃어보였다.

룬은 모인 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잘된 건가. 대접한 메뉴도 잘 먹고 있고, 가져온 와인 덕분에 분위기도 부드러워졌으니.’

결과적으로 그가 목표로 했던 성체들의 신뢰는 얻어냈다.

성과를 확인하니, 눈앞에서 와인을 뺏겼을 때의 아련한 기분은 훨씬 작아져 있었다.

그때, 귀가 좋은 흑미가 귀를 쫑긋거렸다.

“룬 님이 나이에 비해 타 종족 문화에 밝아보인다고 칭찬하고 있어요.

흑미는 성체들의 이야기를 듣고 룬과 아멜리아, 페르디키온에게 속삭였다.

“그리구 아멜리아 언니 수업 이야길 해요.”

룬이 슬쩍 재촉했다.

“더 말해봐.”

관심도는 달라도 다들 궁금했던 주제였다.

셋은 흑미에게 귀와 얼굴을 들이대었다.

“으으음~ 아멜리아 언니는 주 5회 여기 와서 교육받으려나 봐요!”

“나, 난…… 좋아.”

잠시 하얀 백야의 날개깃에 시선을 뺏긴 아멜리아가 대답했다.

“잘됐군. 크리스티나 님 만큼 인간세상에 관한 교육에 능한 드래곤도 흔치 않을 것이다.”

페르디키온의 말에, 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심지어 룬이 보기에도, 크리스티나는 인간을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공정하면서도 인간에게 호의적인 드래곤은 생각보다 적으니까.’

거기에 인정할 만한 실력까지.

오죽하면 포악한 페르디키온의 아비인 파시야스조차 검술 수업을 크리스티나에게 맡겼을까.

“걱정도 되……지만 기, 기대도 돼. 룬 말고 누군가에게 배우는 건…… 처음이니까.”

그렇게 말한 아멜리아를 보며, 룬은 문득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봤을 때부터 인어모습이었잖아. 혹시 인어족에 대해서 알고 있었어?”

설마 태어났을 때부터 인어 모습은 아니었을 터다.

그건 인어족을 안 계기가 있었음을 뜻했다.

게다가 아멜리아는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거의 받지 못했는데도 소통이 가능했다.

아멜리아가 시선을 접시 위에 내리며 말했다.

“음…… 나, 나는…… 알에 있을 때 부모님이 전승 지식을 물려주셨대…… 나도 얼마 전, 에 안 거야.”

‘호오. 알에 있을 때도 전승마법이 가능하다는 거군.’

하지만 꽤나 위험했을 것이다.

직접 그 마법을 받아 본 룬은 ‘전승 마법’이 얼마나 큰 충격과 고통을 주는지 알고 있었다.

‘남의 집안일에 내가 뭐라 하긴 그렇지만, 위험한 도박을 했군.’

룬은 크리스티나와 대화 중인 아멜리아의 부모룡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룬을 의식한 건지 아멜리아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괘, 괜찮아! 너무 어릴 때라 기, 기억 잘 안 나고…… 덕분에 나, 나는 말과 글. 마법을 조금이라도 알아 둘…… 수 있었으니까.”

“…….”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원망과 슬픔을 들어줄 이들이 언제 깰지 모를 잠에 빠졌다는 점.

고통에 떼 한번 써본 적 없이 자란 아이가 어떻게든 혼자 살아남으려 했을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배워야 할 것들이 많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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