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뀨뀨.”
[뭐긴, 네 몸이지.]
“이 난쟁이 인형이요!?”
몸을 준다하여 무척이나 설레고 기대했던 제드.
지금 그의 신체 사이즈는 백야나 다름이 없는 크기였다.
아니, 털 찐 백야가 제드보다 더 클지도 몰랐다.
“크흠, 크흡.”
결국 페르디키온이 헛기침을 하고 말았다.
“우와아! 제드 아저씨! 아담해요!”
여우 꼬리를 흔들며 흑미가 다가와 쭈그려 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미가 훨씬 컸다.
“삐이약?”
백야가 다가와 제드 주변을 쫑쫑 걷더니 묘하게 반가운 눈치로 볼주머니를 비벼왔다.
“크흐허엉! 내가 고작 이런 인형이라니!”
제자리에서 통곡하던 제드.
룬은 의아하게 보다가 말문을 열었다.
“뀨우우우.”
[전에 말 했잖아. 내가 시도는 하겠지만, 연습이 필요하다고. 지금으로서는 그 정도가 한계야.]
“아니이! 그래도 그렇죠오! 저는 아주 쩌는 걸 상상했었는데! 미남 드워프라든가, 마초 드워프라든가, 타에 추종을 불허할 매력 드워프라든가!”
참으로 가당치도 않는 소리였다.
좀 전만 해도 오감만 느낄 수 있어도 행복하겠다며 룰루랄라 했던 놈이, 이젠 저러고 있으니.
‘들어올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더니.’
속으로 고개를 저은 룬이 앞발로 팔짱을 꼈다.
“뀨우.”
[그 몸만으로도 엄청 귀한 거야. 제대로 살펴봐.]
“?”
룬의 말을 들은 제드가 쭈뼛거리며 몸을 만지작거렸다.
제드의 몸은 갈색 드래곤 란드의 작품이었다.
비록 드래곤의 능력은 많이 사라졌지만, 잘라낸 세계수의 나무를 자라게 할 수 있는 숲의 인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만들 수 있는 자.
즉, 제드의 몸은 드래곤만이.
그것도 숲의 인장과 다른 인장들에 대한 이해력이 뒷받침 되어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몸체란 소리였다.
“알 바입니까아!”
기함을 토한 제드.
사실, 그 몸의 가치를 인정하고 온전히 감탄하기엔 좀 전의 고통이 너무 심했다.
‘저게 기껏 만들어줬더니.’
괘씸한 기분이 든 룬은 지그시 피어(fear)를 써서 노려보려다 말았다.
조금 전에 제드가 견뎌냈던 고난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평소 같았으면 국물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그건 한 번뿐이다.
“다 밉습니다. 다 밉다구요오! 크헝허허엉!”
룬은 노려봄과 흐린눈 사이에서 난장이 제드 인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난감해하는 흑미에게 고개를 돌렸다.
“흑미야.”
“녭!”
“저놈 기절시켜.”
“오옹! 알겠숩니다!”
슈웅!
제드의 시야에서 보면, 흑미의 손은 거대한 바위 같았다.
그 손이 훅 올라갔다, 순식간에 내려쳐졌다.
빡!
한층 단련된 흑미의 ‘수도(手刀)치기’.
이는 단번에 제드의 뒷머리를 가격했다.
“꾸엑!”
털썩!
눈의 동공이 사라진 채 하얗게 흰자위만 보이며 제드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뀨후우우.”
에휴.
절로 속에서 한숨이 나왔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
절레 고개를 젓는 룬에게 흑미가 물어왔다.
“힝. 제드 아저씨 불쌍해요. 무척 서러워 보였는데. 괜찮을까요?”
여우귀가 쫑긋거리다가 살짝 뒤로 쳐졌다.
룬이 말했다.
“뀨뀨.”
[뭐…… 어느 정도 예상했던 사태긴 했어서 어쩔 수 없었어. 나중에 진정되면 그때 설명 해 줄 수 밖에.]
사실 대략 알려주긴 했었다.
제드가 제대로 듣지 않았을 뿐.
‘너무 기대하진 말라고 경고까지 해줬더니만, 네네 하면서 영 안 듣더라니.’
첫 시도에 세계수 나무 전부를 소진할 수는 없는 일.
하지만 제드는 몸이 생긴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다.
철컥!
그간 같이 있어온 정이 있었기 때문일까.
두 손을 모은 듀라한이 조심스럽게 제드를 들었다.
“흐흑흐흐흑.”
기절했으면서도 나무로 된 제드의 입이 딱딱 거리며 울었다.
그를 보던 녹빛 안광이 룬을 향했다.
말없는 염려를 느낀 룬이 재차 안심시켜주었다.
“뀨.”
[괜찮아. 일단 좀 쉬게 해주자.]
철그럭!
투구를 주억거린 듀라한이 배틀액스와 제드를 회수하고 접어놓은 수면용 담요로 데려갔다.
***
제드가 가장 먼저 인지한 건 향긋함이었다.
‘오오잉. 요것은 간만에 맡아보는 향기인데.’
그렇게 생각한 제드가 코를 벌름거렸다.
“웃흐응.”
듬직하고 아리따운 드워프 여성이 두꺼운 눈썹을 깜빡이며 윙크를 날려왔다.
제드는 절로 눈에 하트가 떴다.
“우오오오! 이런 아름다운 아가씨가 어디서 오셨어!”
그 뿐이랴.
삶고 구운 고기, 거대한 토마호크 스테이크에 꿀맥주와 흑맥주.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이 여기 있었다.
한데 뭔가 이상했다.
재력, 미인, 잘생긴 외모.
그 모든 걸 가졌는데 뭔가 허전했다.
그는 금세 이유를 깨달았다.
“어라? 그런데 왜 나 혼자 있지? 여보세요?”
그가 혼만을 남겨서라도 함께 하고 싶었던 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룬 님? 흑미 님? 페르디키온 님?”
제드는 다급히 주변을 휙 둘러보았다.
“백야 씨? 듀라한 군? 아무도 없습니까아?”
멍해진 제드가 눈물을 다시 흘리기 시작했다.
“다들 어디 계세요. 저만 두고오……?”
목소리가 떨렸다.
아무리 찾아도, 호화로운 보석과 황금이 가득한 공간을 내달려보아도.
그는 혼자였다.
힘을 잃은 제드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이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
“뀨뀨.”
[이놈 너무 우는데?]
룬이 제드의 볼을 쿡쿡 건드렸다.
크리스티나가 준 회복 담요에 있는 이상, 몸은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한데 편안해지기는커녕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슬픈 얼굴로 히끅 거리고 있었다.
상황을 보던 페르디키온이 팔짱을 끼었다.
“기분 나쁜 꿈이라도 꾸나보지.”
화룡족 소년의 말을 들은 흑미가 안쓰러워하며 나무인형의 몸을 토닥였다.
“히잉. 제드 아저씨이.”
“삐이약.”
백야까지 덩달아 근처에서 기웃거렸다.
룬은 슬그머니 양심이 찔렸다.
“뀨.”
[이 자식 설마…… 몸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실망 때문에 악몽까지 꾸는 건 아니겠지?]
애초에 권속으로 삼을 때 부터욕망에 충실한 성향이었던 제드.
설마 그럴 리는 없겠다 싶으면서도, 아예 무시하기 어려운 가능성이었다.
페르디키온은 룬의 말에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런 배은망덕한 놈이라면 내가 직접 손을 써주겠다.”
“……뀨.”
[누구 하나 죽일 기세로 말할 건 없고.]
듀라한조차 근처에 쭈그리고 앉아서 난쟁이 인형 제드를 염려스럽게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제드의 울음이 꺽꺽 소리를 내며 더 심해졌다.
룬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뀨.”
[안 되겠다. 깨우자.]
옹기종기 모여있던 일행들 중, 흑미가 가장 먼저 손을 뻗었다.
“제드 아저씨, 아저씨이. 일어나요.”
흔들흔들
속절없이 흔들리던 나무인형이 번쩍 눈을 떴다.
“에, 룬 님?”
“뀨?”
[정신이 들어?]
눈을 끔뻑이던 나무인형.
제드는 자신을 둘러싸고 빙 둘러 앉은 일행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그리고.
“크허어어엉!”
나무인형이 펄쩍 뛰어올라 룬을 향해 날았다.
“??”
가뿐하게 몸을 돌려 피한 룬.
털푸덕!
결국 나무인형은 바닥을 굴렀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데굴거리는 몰골이 꽤나 불쌍해서, 룬은 저도 모르게 머쓱하게 입을 열었다.
“뀨…… 뀨욱.”
[아니…… 갑자기 뛰어올라오기에 그만.]
“…….”
제드는 묘하게 조용했다.
룬은 이번에는 나름대로 각오를 하고 슬그머니 다가갔다.
타박타박.
“뀨우, 뀨.”
[괜찮아?]
그래도 제 권속인데, 좀 심했나 싶어진 룬이 인형에 앞발 하나를 뻗었다.
그리고 인형을 쥐자, 이상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흐흐흐. 흐흐흐흐.”
“…….”
히죽거리는 제드.
룬은 미심쩍은 눈으로 제드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무인형 제드는 만면에 부처의 해탈과 기쁨이 가득한 미소를 머금었다.
“반갑습니다요, 룬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