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뀨.”
[그래.]
크흥!
코를 훔친 제드가 제 몸을 살폈다.
딱딱하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감촉이 영 어색했다.
“눈물이 나네요.”
“뀨우.”
[응, 이제 눈물 흘릴 수 있지.]
제드가 나무손가락을 움직여 제 얼굴에 흐르던 눈물을 찍어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물의 인장과 연결된 맑디맑은 생수.
아름다운 여인의 눈물처럼 투명하고 아름다워 보이기 까지 했다.
“그러네. 웃는 것도 되네요.”
히죽.
제드가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의외의 수업선생
철컥!
듀라한이 몸을 스윽 들이밀어왔다.
평소 과묵하게 뒤에 서 있거나, 한쪽에서 조용히 주시하는 편이었던 어둠의 기사.
“…….”
말을 할 수 없는 거대한 갑옷기사는 자그마한 제드를 조심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뀨뀨.”
[제드. 듀라한이 걱정 많이 했었어. 인사라도 좀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듀라한이 동요하고, 초조함을 느끼는 것을 가장 먼저 눈치챈 건 룬이었다.
‘제드와 붙어 지내더니, 감정 표현하는 일이 확실히 늘었어.’
이는 굉장한 변화였다.
듀라한이 백야의 힘으로 감정의 씨앗을 얻었다 하나, 그걸 키우는 건 분명 다른 문제다.
개인적인 경험과 만나는 인물들에 의해.
또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동안 아주 미미하게 건드려지고, 변화하는 것이 감정일 터다.
노리고 보내도 잘 될까 싶은 일이 지금 일어났다.
‘분명 향기 상자의 효과로 다양한 감각을 익혔겠지만…… 제드 녀석이 강한 촉매제가 되어 준 셈인가.’
마왕의 기사로서 죽음을 불러들이는 듀라한이 마음을 키우고 있다.
룬은 이 성과를 유의미하게 느꼈다.
‘이건 이용할 수 있겠어.’
깊은 어둠을 품었다 해서, 다른 존재를 곁에 두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앞으로 제드 녀석이 꽤나 쓸모있어지겠군.’
단순한 무기 모습일 때와 달리, 인형의 모습은 시각적으로 와 닿는 것이 다를 터.
룬은 속으로 듀라한과 제드의 조합이 가져올 이익을 셈해 보았다.
‘약간의 투자로 얻을 이익이 실한데.’
안 그래도 준비한 게 있었던 룬.
그는 속으로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그 사이, 제드는 듀라한과 떠들더니 점차 제정신을 차려갔다.
“미스터 듀! 내가 뭐랬어? 이 몸이 한번 마음먹으면 딱! 해내는 제드라, 이 말이야!”
철컹철컹.
좀 전까지 펑펑 울면서 룬에게 안겨들려 했던 주제에 말은 잘했다.
룬은 어처구니없는 심정이 되었다.
‘그래도 저게 제드긴 하지.’
어쨌든, 회복이 된 건 확실했다.
룬도 한시름 놓고 말문을 열었다.
“뀨뀩.”
[제드. 아까 설명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으니 다시 말할게.]
하지만 제드는 몸으로 느끼는 감촉이 반가웠던지, 백야를 안고 부비적거렸다.
“으헤헤헤! 아이구, 백야 씨의 이 하얀 털 감촉이 꽤 중독적이군요! 전부터 탐이 났다니까요?!”
“삐이약!”
“…….”
이상한 포인트에 반한 제드를 보며 백야가 볼을 부풀렸다.
그리고 룬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저게 중요한 이야기 하는데.’
룬은 은근힌 피어(fear)를 섞어 제드를 노려보았다.
“……뀨우우.”
[제드, 즐거운가 봐?]
“녭, 아뇹.”
긴장한 제드가 묘한 대답을 했다.
룬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럼 들어.]
“녭.”
즉시 룬 앞에 고개를 팍 숙인 제드.
지그시 노려보던 룬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설명을 이었다.
“뀨우 꾸.”
[내 수준으로 아직 혼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일이나, 혼을 옮기는 일은 무리야. 그건 내가 더 커야 하지.]
따각따각!
제드가 나무 부딪히는 소릴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룬 님은 아직 해츨링이셨죠. 흠흠, 하긴 제가 좀 서두르긴 했었네요.”
좀 전에 난리 쳤던 자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치 수긍이 빨랐다.
룬이 이어 말했다.
“뀨뀨.”
[응. 그래서 실력을 쌓을 시간도, 연습도 필요해. 다만 이 정도만 되어도 망각되어 가던 ‘감각’은 되찾을 수 있으니 한동안은 오감을 되살리는 데에 집중하면 될 거야.]
드워프로서의 혼과 정신을 가졌던 제드.
허나 일개 드워프로 버티기에는, 에고 웨폰이 된 나날들이 쉽지 않았다.
그 결과 ‘망각’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그를 막기 위해 최소한의 조치를 취한 게 지금 이 상태였다.
제드는 제 몸을 다시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난쟁이 나무인형이 내 몸이라.’
깨닫자마자 눈물 줄줄 흘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는 이 상황조차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실실 웃었다.
‘어이구, 간만에 몸을 쓰게 됐더니 눈물이 주체가 안 되는구만.’
눈물이라!
새삼 에고 웨폰이 된 후, 무뎌져가던 것들이 실감되었다.
‘흐흐, 제드 이 녀석! 그 사이 마음이라도 약해진 게야? 실망했다고 쳐져 있는 건 이 제드답지 않다고! 잘 알잖아?’
실망하여 눈물이 날 정도로 서러워지는 이 감각!
정말 간만에 느끼는 현실감이었다.
크흥, 하고 콧물을 쿨쩍인 제드가 목울대를 한 차례 울럭이곤 입을 열었다.
“뭐! 소인이 돼 보는 경험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세계수로 된 몸이라. 이거야말로 다른 드워프들이 알았다간 눈이 뒤집혀서 살피고 싶어할 테고요!”
말을 들은 룬은 물끄러미 제드를 보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뭐, 저런 면모를 가졌다는 건 참 다행이지만.’
정말이지 제드의 저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줘야했다.
룬은 뒤를 돌아보았다.
흑미와 페르디키온, 백야와 듀라한까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거나 기대감 섞인 눈으로 룬을 바라봐왔다.
무언의 신호였다.
다시 제드에게 시선을 던진 룬.
인형는 코를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시선을 느끼고 룬을 올려다보았다.
룬이 입을 열었다.
“뀨뀨.”
[네게 보여줄 게 있어.]
까만 해츨링의 두 앞발이 난쟁이 인형 제드를 들어올렸다.
화들짝 놀란 제드가 호달달 떨며 통통한 앞발을 잡았다.
“아이고 룬 님. 제가 공중은 영 무서운데요.”
“…….”
룬은 기가 막힌 눈으로 제드를 잠시 보았다.
‘대체 어떤 에고 웨폰이 고소공포증을 달고 있어?’
할 수 없이 룬은 제드의 하반신을 앞발로 받쳐 들었다.
그러자 앞발에 있는 젤리에 몸을 기대게 된 제드가 와우! 하고 환호성을 외쳤다.
“이야아! 이 보들쫀쫀한 감촉은 젤리라는 것이지요? 캬! 승차감이 그냥~ 최고급 방석 따위랑 비교 할 수도 없을 만큼 아주 좋습니다요!”
“뀨우우.”
[시끄러워.]
이상한 감촉에 눈을 뜨는 제드에게 한 차례 경고한 룬이 검은 방 안쪽 공간으로 들어갔다.
“뀨우우.”
[자, 이제 여기서 지내면 돼. 네 방이야.]
룬이 제드 인형을 바닥에 내려주었다.
따닥!
나무인형의 발이 바닥을 디뎠다.
어리둥절해 하는 제드에게 룬이 말했다.
“뀨뀨.”
[저 방 안에 있는 것도 다 네 거야. 우리가 조금씩 준비한 거고.]
그 말에 눈앞에 보인 물건들을 살핀 제드가 눈이 휘둥그렇게 떴다.
“이, 이건?”
따각!
나무로 된 입이 떡 벌어졌다.
죽어서 천국에 오기라도 한 걸까?
화로와 모루, 망치 등 대장간 용품과 함께 마련된 화덕이 있는 방.
그리고 다른 한 곳엔 재료가 가득했다.
“오오! 질 좋은 마력석과 미스릴이 이렇게나 가득하다니!”
몸이 작은 탓에, 작은 이 장소가 제드에겐 대장장이의 궁전처럼 느껴졌다.
그는 나무 몸을 움직여 반짝이는 마력석에 손을 뻗었다.
품에 다 안기지도 않는 마력석은 하나하나가 전부 진품.
심지어, 그가 먼발치에서 구경만 했던 마력석도 있었다.
“이, 이건 검은 마력석!”
두둥!
블랙 드래곤 일족이 살아있을 적에나 간혹 발견되었다던, 그 어둠의 마력석이!
이렇게 거대하고 많다니!
제드의 눈이 행복에 물들었다.
“이얏호! 횡재다!”
어둠의 마력석뿐 아니라, 다른 마력석들도 산을 이루고 있었다.
몸을 데굴거리며 미스릴과 마력석의 산을 타고 놀던 제드.
그는 한쪽에 마련된 개인 대장간까지 샅샅이 확인하고는 아래턱이 바닥에 닿을 듯 벌어졌다.
“끼야아악!”
너무 좋아서 내는 소리긴 하지만, 룬은 속으로 어이없는 감탄을 했다.
‘저런 비명을 지르는 놈이 진짜 있다니.’
그러거나 말거나, 난쟁이 인형 제드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선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이 제드를 이렇게 까지 아껴 주시다니!”
자기애 충만해진 제드의 눈은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들거렸다.
룬은 제드가 튀어오를 낌새를 눈치채고 자연스럽게 몸을 물렸다.
“다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피융!
눈물이 흘러넘친 제드가 용수철처럼 날아들었다.
다행히 이번 타켓은 듀라한.
갑옷 기사는 너른 품에 제드를 받아주었다.
“크흐흐흑! 난 행운아야!”
듬직한 듀라한의 갑옷에 얼굴을 비비며 우는 꼴을 보며, 내심 자신이 아닌 점에 안도한 룬.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저놈이 또 나한테 뛰어들었으면 반사적으로 쳐냈을지도 몰라.’
흑미는 제드가 감격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히히. 제드 아저씨가 엄청 즐거워 보여요! 일식이랑 이식이도 신기하대요!”
대장간 화로에서 고개를 내민 중급 불의 정령.
불고양이, 일식이와 이식이.
이는 흑미의 협찬이었다.
흑미의 말 뒤로 페르디키온의 평가가 이어졌다.
“그래, 룬이 말한 대로 제드 놈이 기절해 있는 동안 준비해 둔 보람이 있군.”
대장간을 지을 때 페르디키온이 불의 인장의 능력으로 꺼지지 않는 불을 내주었고, 듀라한은 레드 드래곤까지 다녀와 화로를 지고 왔다.
설치와 장소, 다양한 금속과 마력석 협찬은 크리스티나.
페르디키온 역시 드워프들의 무구와 인챈트 용 장비를 몇 내주었다.
룬 역시, 그가 가지고 있던 마력석과 광물을 제드에게 내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