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9화 (169/242)

“뀨뀨.”

[좋아할 거라 했잖아.]

이 모든 건 룬의 배려였다.

원래도 하고 싶은 일에 꽂혀 파고들던 제드를 위해 고안하고, 협조를 부탁했던 것이다.

팔짱을 낀 룬이 말을 이었다.

[제대로 몸도 생겼으니 방을 마련해 줘야 편하겠지.]

사실, 내어준 공간이나 대장간이 그리 큰 건 아니었다.

다만 제드의 몸 크기를 감안하면 무척 거대했다.

‘마침 듀라한이 이 공간을 수문장처럼 지킬 테고, 문제는 거의 없겠지.’

나름 동지애가 생긴 건지.

감정의 싹을 가지게 된 듀라한은, 즐거워하는 제드를 쭉 주시하고 있었다.

룬은 둘을 눈여겨보았다.

정확히는, 듀라한이 보여주는 변화들에 대해서.

‘마침 둘이 친해지는 모양인데…… 그렇게 되면 수다스러운 저 녀석도 주로 듀라한을 상대로 떠들겠지.’

휴.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룬은 한번 잡히면 빠져나갈 수 없는 수다의 소용돌이를 얌전히 견딜 자신은 없었다.

‘어쨌든 좋아하니 됐다.’

룬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제드가 연구해서 나올 물품으로 룬과 다른 이들이 수혜를 입을 터.

‘쌍방 이익이라는 거지.’

씨익.

룬은 이 소소한 투자가 가져올 이득을 기대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행복에 겨워 있던 제드가 듀라한의 어깨 위에 올라가 앉았다.

“여러분!”

고소공포증도 이기는 감격에 빠진 제드.

나무 인형이 두 팔을 벌리며 선언했다.

“아주 싸랑해!”

“캬하하항! 흑미두요!”

“삐약 삐약!”

장단이 맞는 흑미와 백야.

미간을 꿈틀거리는 페르디키온과, 한숨을 쉬는 룬.

“……뀨후우우.”

[누가 저 놈 좀 말려 봐.]

미치는 데에 한계가 없다는 걸 똑똑히 보여주는 제드 인형을 보며, 룬은 묵묵히 고개를 흔들었다.

“으하하하! 다들 기대하시라고요! 이 제드가 꼭 은혜를 갚을 테니!”

그렇게만 되면 좋겠다.

이상한 소리 말고.

“뀨우 뀨우.”

[그래, 부디 말보단 실력으로 보여주길 바랄게.]

그 언젠가 드워프 마을에서 했던 말을 하며, 룬이 말을 맺었다.

그리고, 그 ‘은혜 갚기’라는 건 생각보다 빨리 실행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제드 선생님입니다!”

……별로 받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드는 ‘은혜 갚기’였지만.

왜 그렇게 작아요?

“제드, 네가 선생님이라고?”

룬의 물음에 탁상 위에 선 난장이 제드인형이 윙크를 날렸다.

“놀라셨죠? 깜짝 놀라게 해 드리기 위해 비밀리에 준비했었거든요!”

어디서 구한건지, 아니.

아마도 자신의 대장간에서 스스로 만들었을 작은 안경까지 추켜세우며 제드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폈다.

“이 제드가 무려 ‘인간 사회문화의 이해’ 라는 과목으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요!”

“…….”

에고 웨폰이자 드워프인 제드가 어린 드래곤 족 아이들을 가르친다니.

황당함을 금치 못한 눈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을 기어코 채용했구나.’

결국 룬이 예상했던 일이 진짜 일어나고 말았다.

룬은 이 일이 발단되었던 어제 저녁 시간을 떠올렸다.

풍성한 저녁 식사를 하던 룬.

흑미와 백야는 물론이거니와, 최근에는 제드도 식사를 함께했다.

특히 제드는, 작은 몸으로 큼직한 고기와 빵을 대하는 시간을 매번 고대하고 있었다.

“이야아! 이거지!”

거대한 통구이가 나오자마자 제드가 어질어질하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떠들었다.

“이게 진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거죠! 살맛나네요 아주!”

야들야들하게 수비드 처리 후 구워져나온 통돼지 고기를 뜯으며, 제드는 연신 감탄을 해대었다.

몸에 대해 불평하던 게 딴 녀석 같아 보일 정도다.

룬은 묵묵히 자신의 몫을 챙긴 후, 제드에게 유난히 큰 홀케이크를 밀어주었다.

“그거 좋아하는 거 같아서. 너 먹어.”

“크아! 룬 님, 제가 평생 충성충성 합니다. 아시죠?!”

착실히 아부를 남긴 제드가 손을 마주대고 샥샥 소리 나게 비볐다.

“히이얍! 홀 케이크 한 가운데에 구멍 뚫고 파먹기!”

눈을 빛내며 이상한 기술명을 외친 제드가 폴짝 뛰었다.

그러더니, 케이크 가운데에 진짜로 구멍을 냈다.

푸욱!

장식 인형처럼 쏙! 파고들어간 그는 양 손 가득 케이크를 들고, 와아앙! 하고 아주 맛있게 먹었다.

룬이 넌지시 조언을 던졌다.

“살살 먹어. 저번 식사 때처럼 소화제 찾지 말고.”

“우걱걱!(여부가 있겠습니까요!)”

……다소 어이없는 짓거리를 하곤 했지만, 생각보다 즐겁게 지내는 듯 했다.

그때였다.

“룬 님!”

“?”

캐비지롤을 포크로 찍어 먹던 룬이 볼을 부풀린 채 흑미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흑미가 풍미 짙은 버터롤에 딸기쨈을 올리며 말했다.

“크리스티나 님이, 오늘 저희가 어떤 수업을 받을지 알려주신댔잖아요.”

“그랬지.”

입 안에 적당히 담긴 롤을 우물거리고 있자, 흑미가 기대 어린 표정으로 힛, 하고 웃어보였다.

“흑미는요, 룬 님이랑 수업이 다 같았으면 좋겠어요. 아멜리아 언니랑 페르디키온 님도요!”

“된다면 그것도 괜찮겠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룬은 흑미와 모두 같은 수업을 들을 확률은 적으리라 예상했다.

모든 수업이 그렇진 않겠지만, 크리스티나는 룬이 ‘전승 지식’을 지니도록 한 존재.

이를 아는 그녀라면, 분명 둘이 배울 수업에 차등을 둘 터였다.

‘뭐, 굳이 지금 말 해줄 필요는 없겠지.’

그런 룬의 생각을 모르는 흑미가 즐겁게 입을 열었다.

“같이 수업 들으면, 책도 같이 보구. 숙제도 같이 할 수 있는 거죠?”

여우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룬은 그 모습이 함께 산책가고 싶어 하는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열심히 크림을 묻히고 먹던 제드가 케이크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야! 골드 드래곤 장로이신 크리스티나 님의 수업이라! 고건 이 제드도 궁금한데 말이죠.”

그러자 흑미가 눈을 반짝였다.

“헷. 제드 아저씨랑 같이 수업 듣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러자, 페르디키온이 코웃음을 쳤다.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잠시 불의 레어에 귀가했으나, 수업 전날인 오늘은 룬과 함께 식사 중이던 페르디키온.

그는 확신을 담아 말을 이었다.

“같은 권속이지만 제드 저 놈은 이미 인간계에서 백 년 가까이 지낸 놈. 너와 같이 수업을 듣기엔 수준이 맞지 않는다.”

“힝!”

맞는 말이지.

룬은 속으로 수긍하며 조용히 포크를 들었다.

거기에, 화룡족 소년은 한 술 더 떠서 말했다.

“룬이라면 모를까, 네가 멋모르고 영악한 인간이라도 마주쳤다간 할 말 못할 말 흘러나갈 수도 있다. 지식보단 다른 걸 먼저 배우도록.”

“히, 히이잉…… 그런거 안해요…….”

페르디키온의 말에 흑미가 서운한 눈치로 꼬리를 늘어뜨렸다.

그리고는 부정하길 바라는 눈으로 룬을 올려다 바라보았다.

그렁거리는 분홍빛 눈을 마주한 룬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페르디키온 녀석, 같은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해야겠냐.’

사정상 아멜리아가 이 자리에 없어 망정이지.

만약 있었다면 아멜리아가 바들바들 떨면서도 한소리했을지도 몰랐다.

룬은 차분히 속 뜻을 해석해주었다.

“형 말은, 지식보다 믿어야 할 자와 아닌 자들을 잘 구별하는 능력이 먼저 필요하다는 소리야.”

“으음, 믿지 말아야 할 자요?”

“응. 꼭 ‘마족’같은 확실히 나쁜 놈인 게 보이는 녀석만 있는 건 아니야.”

룬은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아올리며 말을 이었다.

“세상엔 한 없이 착해보이지만, 사실은 상상하기 힘든 악인들이나 저도 모르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이들도 분명 존재하거든.”

으음, 하고 고민하던 흑미가 귀를 쫑긋 세웠다.

“‘집착 변태’ 같은 거처럼요?”

그 말에 룬은 새우를 씹다 혀를 깨물 뻔했다.

‘제드 녀석. 저런 단어는 대체 왜 써가지고.’

남몰래 표정을 수습한 룬이 말했다.

“그렇지. 그 외에도 내면이 상하고 다친 녀석들 중, 남이나 자신의 마음을 공격해대는 놈들도 꽤 많아.”

“우움. 자신을 공격해요? 왜요?”

흑미에겐 아직 어려운 이야기였다.

룬은 입을 살짝 열었으나, 말이 나온 건 조금 시간이 지난 후였다.

“다양한 경우가 있지만…… 때론 자신에게 상처를 내면서 금전이나 심적 이익을 얻는 부류들이 있기 때문이지.”

“으으, 흑미에겐 너무 어려워요.”

여우귀를 접은 흑미가 끙끙 거렸다.

너무 자세한 이야기로 파고들었다간, 어린 해츨링 답지 않은 말을 하게 될 것 같아 룬은 적당히 넘겼다.

“언젠가 그런 자들을 보게 되면 알게 될걸. 너는 좀 슬퍼할지도.”

“그렇구나아.”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흑미.

룬은 은근슬쩍 하고 싶었던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집착 변태’는 안 쓰는게 좋고.”

“히히! 알겠숩니다!”

씩씩하게 대답한 흑미가 히- 하고 웃었다.

“룬 님은 똑똑하구 아는 게 많아요! 같이 수업을 들으면, 흑미도 많이 알게 되겠죠?”

그 때, 입가를 냅킨으로 닦은 페르디키온이 말했다.

“뭐, 가르쳐준다 해서 네가 다 습득할지는 모를 일이지.”

페르디키온의 대꾸에 흑미는 입을 오리주둥이처럼 쭉 내밀었다.

“힝! 아니거든요. 흑미도 열심히 공부해서 룬 님에게 도움이 될 거에요!”

둘은 부정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틱택 거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었다.

이젠 그런 것도 서로 친해지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걸 이해한 룬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나라도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야.”

“진짜요?”

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래서 혹시 네가 다른 수업을 듣는다면, 좋을지도. 나는 나대로, 흑미 넌 너대로. 각자에게 잘 맞는 수업을 듣고 성장하게 될테니까.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되는데요?”

“나와 다른 걸 배운 네가, 그걸 배우지 못한 나를 도울 수 있게 되지. 서로 다르다는 건 그런거니까.”

룬의 말에 눈을 깜빡인 흑미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어쩌면, 룬 님에게 필요한 걸 흑미가 배울지도 몰라요!”

“그렇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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