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3화 (173/242)






‘설마?’






룬은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깨달았다고 해야겠다.


이 돌은 다른 어떤 마법 아티팩트도 하지 못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든 대련할 수 있는 이용권이라는 건 곧, 언제든 크리스티나와 만날 수 있다는 말도 되잖아.’






비록 한정적 목적에 한한 것이지만 이건 결국 골드 드래곤을 소환하는 돌.


소환에 여러 제약이 존재하는 인간들의 세계에서, 이는 엄청난 혜택이었다.






룬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이만하면 졸업 선물이라 할 만 하지.’






한정적인 조건?


그야 말 맞추기 나름이다.






‘못 이길 적이 있다면 이걸 사용해서 눈 앞의 적을 상대하는 법을 알려달라 하면 될 일이다. 협상이나 설득이 필요한 문제라면 그녀와 대련하면서 물어도 되는 거고.’






필요한 건 약간의 응용능력뿐이었다.


그 때, 크리스티나가 말을 이었다.






“참, 발동시키기 위한 일정 마력만 있다면 누구든 발동시킬 수 있단다. 그 점에 유의해서 사용하렴.”






그 말을 들은 룬이 속으로 탄성을 터트렸다.






‘누군가에게 줄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 흑미나 아멜리아가 쓰게 할 수도 있어.’






룬은 입가가 실룩이려는 걸 꾹 참았다.


누구라도 탐낼 보물이 손에 들어왔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뀨우우.”






[그럼 말이야, 크리스티나.]






천진하게 눈을 깜빡인 룬이 말문을 떼었다.






“뀨뀨.”






[만약 다음에도 볼을 뺏으면, 이 돌을 또 받을 수 있어?]






어리고 순진한 외형의 루비빛 눈이 그녀를 향했다.






“물론이지.”






크리스티나의 대답에 룬과 페르디키온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먼저 말한 건 룬이었다.






“뀨우.”






[기왕이면 이걸 몇 개 더 받아두고 싶은데. 형은 어떻게 생각해?]






드래곤 소환석을 얻을 얼마 없는 기회.


이건 놓칠 수 없었다.


룬의 물음에 페르디키온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쿠쿠우.”






[역시 아우님도 같은 생각이로군. 나 역시 이 정도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룬은 페르디키온이 속내를 잘 짚어낸 줄 알고 감탄했다.






‘호오. 이 녀석도 이 돌의 가치를 눈치챈 건가.’






단호하게 말한 붉은 비늘의 해츨링이 콧숨을 훅 내쉬었다.






[고작 볼에 손 댄 걸로 수업을 다 받았다고 여길 줄 아시다니. 솔직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게다가.]






페르디키온은 자신이 받은 돌을 보더니 꽉 쥐었다.






[크리스티나 님이 직접 주신 훈련 증거품은, 쌓을수록 좋겠지.]






그 말을 들은 룬이 속으로 생각했다.






‘……나랑 같은 생각이 아니잖아.’






페르디키온에게 이 돌은 훈장, 혹은 달성할 때 마다 찍어주는 인장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 게 틀림없었다.


화룡족 소년은 이를 명예라 여길지도 모르나, 룬은 다르게 보였다.






‘드래곤 소환석이 수련 확인 도장이냐고.’






속 알맹이만 치면 저 화룡족 꼬마보다 훨씬 나이 많은 룬.


그는 순수하게 의지를 불태우는 화룡족 소년을 잠시 보다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






회상을 마친 룬이 수프 위의 브로콜리를 포크로 푹 찍어 먹었다.






그리고 페르디키온은 눈앞의 적을 보는 눈으로 모닝빵을 포크와 나이프로 찢으며 말했다.






“캭.”






[이번에야 말로, 크리스티나 님이 한 손 정도는 사용하시도록 만들겠다. 필요하다면 난이도를 높일거고.]






단호하게 말을 맺는 화룡족 해츨링.


하지만 룬은 흐린 눈으로 페르디키온을 바라보았다.






‘의욕은 좋다만, 지금 더 강해졌다간 교육이 아니라 학대가 될지도 모르는데.’






가르쳐주겠다는 목적이라 해도 대련은 대련.


오죽하면 룬과 페르디키온이 인간형의 모습으로 버티다 전신 본체화를 했을까.






‘드래곤 비늘이 아니면 견디기 힘든 통증이었던 건 까먹은 건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또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 룬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할 만한 수준이긴 했으니까.






‘작정하고 덤비면 공을 뺏는 정도는 될 테지.’






룬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크리스티나의 대련 수업을 받곤 했다.


경험치라는 건 의외로 무시하기 힘든 법.


다만 처음부터 본 실력을 낼 수는 없으므로, 성장하는 과정을 잘 꾸며내야 했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서너 단계는 문제없이 클리어하겠지.’






그 즈음에는 훈련 강도 역시 제법 높아지리라.






‘어쩌면 이제까지 경험해 본 것 중 가장 어려운 수업을 받게 될 지도.’






입맛을 다신 까만 해츨링은 나이프로 버터를 떠 핫케이크 위에 슥 발랐다.


그는 여러모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은 어린 모습 탓에 대부분의 수업은 쉬웠으니.






물론, 그 밑바탕에 깔린 건 어린 생명체에 대한 그녀의 상냥함인 건 알고 있지만.






골드 드래곤 장로가 진심으로 해츨링과 싸우는 건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사실 나한테 진짜 곤란한 건, 수업 외적인 요소야.’






예를 들면, 어제 까진 비늘을 본 크리스티나가 그의 까만 앞발을 잡고 치료해 줄 때.






허브를 올리고 붕대를 돌돌 감아주는데, 속이 근질근질해서 앞발 쏙 빼고 싶었더랬다.






‘그런 상냥함이나 다정함을 배울 기회는 별로 없었으니.’






그냥 치료 마법으로 치료해 주면 될걸.






룬이 그렇게 투덜거렸더니, 크리스티나가 다정하게 한 마디 덧붙여주었다.






“그랬다간 밤에 훈련할 거잖니.”






속으로 뜨끔한 룬은 얌전이 앞발을 내주고 있어야 했다.






약초의 효과는 좋아서, 낮에 일어나니 말끔히 낫긴 했다.


다시 생각해도 참 머쓱한 경험이었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룬은 고개를 저으며 핫케이크를 주둥이 안에 마구 밀어넣었다.


그리고 볼따구를 볼록하게 부풀리며 생각했다.






‘그런 일을 매번 겪을 순 없으니, 빨리 실력을 쌓아서 다치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나.’






실력 향상의 동기부여가 묘한 포인트에 잡혔지만, 할 수 없었다.


룬은 디저트 푸딩을 입에 넣었다.






‘달달하네.’






캐러멜 푸딩에 태운 설탕풍미가 입 안을 달게 만들었다.






마치, 그의 일상처럼.






그 때, 이동 마법의 빛이 번쩍이고 제드가 등장했다.






“다들 맛있게 드시고 계시는군요!”






에헴, 하고 기침하며 식탁위에 올라와 선 제드 인형.


어떻게 보면 집요정 브라우니 같아 보이기도 했다.






“자자, 오늘은 말이죠. 특별한 수업이랍니다. 많이 드시고, 한 시간 후에 요 이동마법이 담긴 마력석을 쓰시면 됩니다요!”






크리스티나 레어라면 대부분 스스로 이동 가능한 룬이 의이하게 물었다.






“뀨뀨?”






[어디로 가게 되는데?]






꿍꿍이를 숨긴 얼굴로 제드가 히죽 웃었다.






“고건, 비밀입니다!”






뭐랄까, 묘하게 얄미웠다.






“히잉! 흑미 궁금해요!”






“으하하하! 하지만 미리 알려주면 재미 없다구요, 흑미 님?”






싹싹하게 말을 받는 제드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마, 많이…… 어려워?”






“아휴, 쉬운 수업이 어디 있겠습니까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못 해낼 수업은 없는 법이죠!”






룬은 어제 크리스티나와의 수업을 떠올렸다.






못 해낼 수업…… 이 안되긴 했지만, 못 해낼 수도 있었다.


충분히.






‘어떻게든 해내긴 했지만.’






룬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실, 룬은 그 ‘비밀 수업’ 담당자를 이미 알고 있었다.






‘듀라한이었지. 수업 내용까지는 못 들었지만.’




듀라한은 룬의 권속.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크리스티나가 룬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야 했다.


다만 수업 내용까진 듣지 못했다.


수업에 관련 된 일이라는 말에 허락은 했을 뿐.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나자, 페르디키온이 재촉했다.






“큐악.”






[시간 됐다. 빨리 수업 들어가자.]






의욕과 더불어, 뭔지 빨리 확인하고 싶어하는 조급함이 엿보였다.


룬은 그에 호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뀨.”






[좋아.]






“앗, 흑미도 같이 가요!”






마지막 토스트를 입에 문 흑미가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삐삐약!”






“같이 가, 흑미……야.”






우아하게 케이크 조각을 조금 더 오물거리던 아멜리아와 함께, 백야도 날개를 파닥였다.






다 모인 걸 확인한 룬은 제드에게 받은 이동 마법석을 발동시켰다.






번쩍!






환한 빛이 터지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쏴아아.






평소에 보지 못한 계곡물 흐르는 숲 속이었다.






그리고, 바위 위에서 계곡물을 맞으며 가부좌를 틀고 있는 듀라한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쿠웅!






일어나 양 주먹을 쿵 하고 부딪힌 듀라한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딱 봐도 폐관 수련하던 도인 같은 모양새다.


한데 왜일까.


정결해보이는 자세와 풍경에 맞지 않는 묘한 불길함이 감돌았다.






“흑미야…… 듀라한 씨는 어, 어떤 수업을 하는 걸까? 내가 받았던 것처럼…… 대련 같은 걸까?”






아멜리아의 목소리에도 궁금증이 담겨 있었다.






“우웅, 룬 님은 알아요?”






흑미의 질문에 룬은 고개를 저었다.






“뀨우.”






[글쎄. 합동 수업인 걸 보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긴 하지만.]






염려와 기대, 궁금함 섞인 이야기가 오가고.






도착한 그들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듀라한이 보였다.






스륵






눈을 뜬 듀라한이 룬에게 팔찌를 끼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인간형이라.’






룬이 황금팔찌를 착용해서 인간형으로 변했다.


이어, 페르디키온도 인간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철컥.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듀라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구구구!






분위기가 무거웠다.


어둠이 스미는 감각.


무력감.


숨 막히는 우울감을 이끌어내는 힘이 그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역시 써야겠어






‘진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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