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지켜보던 크리스티나가 설명을 이어갔다.
“물론, 이 성적이 너희의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야. 이건 현 상태를 말해주는, 말하자면 ‘자질 평가’라 할 수 있지.”
‘역시.’
생각한 대로, 지금 낸 성적은 앞으로 수업을 위해 진행한 모의테스트의 결과였다.
여우꼬리를 흔든 흑미가 이채를 담은 눈으로 감탄했다.
“호오오오! 신기해요!”
룬은 느긋하게 질문을 던졌다.
진짜 중요한 건 이거였다.
“그럼, 우리 성적은 어떻게 나왔는데?”
그녀의 앞에 떠 있는 가죽 양피지에는 금빛으로 여러 문장이 쓰여 있었는데, 룬이 있는 각도에서는 흔들리는 끝자락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크리스티나가 양피지에 눈길을 주며 입을 열었다.
“기초 평가이기 때문에, 기본 항목은 총 3가지로만 나누었단다. 전투, 마법, 생활적응력이지.”
다들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태연한 척하면서도 신경이 쓰였던 페르디키온 역시, 레몬 샤베트를 뜨는 손이 살짝 느려졌다.
가장 먼저 평가를 받은 건 흑미였다.
“먼저 흑미. 생활적응력은 물론, 불의 정령을 능숙하게 다루고 타고난 신체능력을 잘 활용했지. 마법과 전투능력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았어.”
“와!”
좋은 평을 받은 흑미가 눈을 반짝이며 작게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덤비는 면이 강하더구나. 기회처럼 보인다고 덤볐다가 함정에 빠지기도 하지. 카운터에 약하더구나.”
이어진 말에 흑미는 아쉬운 눈치가 되어 여우귀를 접었다.
“히잉.”
룬은 흑미가 듀라한의 그물에 걸려 탈락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순발력이 좋지만, 경험치가 부족한 탓에 드러난 아쉬운 면이었지.’
다만, 평가는 꽤 좋았다.
흑미의 종합평가는 A.
이후 성장 잠재력은 S급에 이르렀다.
룬이 보기에 이는 충분히 훌륭했다.
“우웅. 그럼 흑미는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있는 거죠?”
점수를 들은 흑미가 물었다.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물론이지.”
힛, 하고 웃은 흑미가 귀를 쫑긋거리며 마주 웃었다.
“좋아요! 흑미는 앞으로, 더 잘 하게 될 거예요! 있지, 백야도 그렇게 생각하지?”
“삐이약!”
감자칩 부스러기를 묻힌 부리가 벌어지며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그 말에 긴장해 있던 아멜리아가 쿡쿡, 하고 살며시 웃으려던 순간.
“다음은 아멜리아.”
“핫?!”
탱그랑!
이름이 불리자 화들짝 놀란 아멜리아가 손에 살짝 쥐고 있던 포크를 접시에 떨어뜨렸다.
페르디키온은 쯧, 하고 혀를 찼고 룬은 속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저런.’
순식간에 시선이 집중된 아멜리아는 당황한 눈치로 접시를 보았다가 크리스티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편히 들으렴.”
“네에…….”
후아, 하 하고 호흡을 고른 아멜리아.
크리스티나는 아멜리아가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잠시 내어주곤 양피지의 기록을 읽었다.
“물 위에 처음 나왔는데도 생활적응력이 여기 있는 이들 중 가장 높았어. 노력 많이 했더구나.”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내심 혹평을 듣게 되진 않을까, 염려하던 그녀.
하지만 이어진 말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호평이었다.
“너를 가르친 우리들 모두 가장 노력을 많이 했다고 입을 모았어.”
“! 고, 고맙습니다…….”
수줍게 볼을 붉힌 아멜리아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살풋 웃었다.
골드 드래곤 장로의 인정을 받은 아멜리아의 얼굴에는 웃음마저 새 나오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 면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전투는 아직 미숙했지. 망설임 탓에 공격할 기회와 피하고 반격할 기회를 전혀 잡지 못했으니.”
민망해졌는지, 하얀 얼굴이 달아오른 아멜리아가 입을 열었다.
“아…… 제, 제가 잘 못한 부분이…… 있었네요…….”
“생각이 많은 건 알겠지만, 결단을 적절한 때에 내릴 줄도 알아야 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시선이 흔들리는 아멜리아.
그런 그녀를 크리스티나가 상냥하게 다독였다.
“아직 처음이니 당연한 거란다. 그리고 결단이 부족하다고는 했지만, 생각보다 대담하게 적의에 대응할 줄 알더구나.”
“!”
아멜리아의 눈이 잠깐 룬을 향했다.
룬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재능도 있고, 노력 해 왔으니까.’
룬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아멜리아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본래 전투라는 건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행동.
소심하고, 누군가를 해치는 것이 두려운 아멜리아에게 이는 기피하고 싶은 일이었을 터다.
하지만 그녀는 예전 물의 레어를 구할 때 두려움에 맞섰고, 룬의 도움으로 듀라한과 대련을 해 왔다.
지키기 위해 싸우는 법을 배웠다.
그녀가 이만큼 해낸 건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
‘룬 덕분이야…….’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차마 말 하지 못한 아멜리아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크리스티나가 말을 이었다.
“네 종합 등급은 A지만, 잠재능력은 S+에 달했어. 부디 이대로만 해 주렴, 아멜리아.”
“네……!”
옆에서 흑미가 엄지를 척 세워주며 씩 웃자 아멜리아 역시 살짝 웃었다.
‘그래, 나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냉정히 돌이켜보면, 이는 적절한 꿀과 약이 되는 말.
아멜리아는 한층 안정된 모습으로 대답했다.
“네! 열심히……할게요……!”
웃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여준 크리스티나의 시선이 붉은 화룡족 소년을 향했다.
“다음은 페르디키온.”
“네.”
대답에서 이미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리고, 그 확신과 자신감이 있을 만치 좋은 평가가 뒤따랐다.
“빠른 속공과 견제, 적절한 때 전면전까지. 전투로만 보면 가장 훌륭한 평가를 받았어.”
“감사합니다.”
듀라한에 맞서 단신으로 버티고, 룬에게 시선을 두지 못하도록 집요하게 달라붙어 공격했던 페르디키온.
사나워 보이는 성정답게, 호쾌하기까지 한 전투방식은 누구라도 박수를 보낼 만 했다.
하지만 그런 페르디키온조차도 아쉬운 점은 존재했다.
“한데, 전투에 빠져 주변을 점점 보지 못할 뻔 했지? 룬이 제지했기에 크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말이야.”
페르디키온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
크리스티나의 설명이 이어졌다.
“호전적인 면모는 좋지만, 목적을 망각해선 안 돼. 넌 성인식 과업을 수행할 자. 여기 있는 이들을 이끌 위치에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렴.”
“……명심하겠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긴 했지만, 평가는 S+.
마법능력, 전투감각, 기본적인 생활적응력까지.
모두 만족한, 가장 좋은 성적을 받은 셈이었다.
“마지막으로, 룬.”
“응.”
룬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다른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예상한 대로였다.
하지만 과연,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궁금증을 품고 기다리자 크리스티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A+란다. 어둠을 다루는 능력, 봉인되었다지만, 마기가 어린 무기를 다룰 수 있다는 점과 즉각적인 판단, 전투 센스는 특히 훌륭했어.”
납득할 만한 결과였다.
좀 더 정확하게는, 룬이 의도한대로의 평가를 받은 셈이었다.
‘딱 좋네. 너무 튀진 않지만, 괜찮은 평가를 받았어.’
만족스러웠다.
한데, 이어진 크리스티나의 말이 묘했다.
“종합 평가는 A+ ……가 돼야 하지만.”
크리스티나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룬,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S+. 혹은 그 이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단다.”
내심 불길함을 느낀 룬.
하지만 그는 능숙하게 감정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다.
‘과하지 않은 능력에, 무구의 능력을 끌어낸 정도. 그럼 A+ 가 딱 맞을 텐데.’
능력을 사용하는 센스는 좋지만, 결국 유효타를 먹인 건 상극 속성인 빛의 속성으로 봉인 된 마검.
즉 무기가 좋았던 덕이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말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의뭉스럽게 되묻자, 크리스티나의 시선이 룬에게 꽂혔다.
시선을 마주치고 있는 크리스티나의 눈빛은 그의 마음을 비춰보는 것 같았다.
‘설마, 들켰나?’
겉으로는 평정을 유지하며, 룬은 침착하게 크리스티나의 말을 기다렸다.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말 해두자면, 이건 단순히 수치나 성적으로 잴 수 없는 무언가란다. 룬, 너는…….”
말을 고르며, 크리스티나가 한 호흡 숨을 들이켰다.
분위기들 괜찮네
묘하게 긴장되는 기분에 룬 역시 시선을 그녀에게 고정했다.
‘그리 쉽게 들켰을 리가 없는데.’
전생에 이무기로서 살며 종종 섬에 들어온 자를 가르쳐 본 그다.
이 평가가 틀릴 리 없건만, 어째서 크리스티나는 그를 두고 S+ 이상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 걸까.
이내,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듀라한이 그러더구나. 제 목에 칼을 들이미는 그 순간조차 네가 있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고.”
반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크리스티나.
룬은 의아한 눈을 하고 크리스티나를 바라보았다.
“단점이 드러나지 않았다, 는 정도가 아니야. 숙련된 자가 눈치를 전혀 못 챈다는 건 이상한 일이지. 그건, 해츨링의 전투 능력이라기엔 너무 완벽했다는 말이니.”
여기까진 괜찮았다.
그녀나 듀라한이 뛰어나다 한들, 보이지 않는 걸 보는 능력이 있는 건 아니니.
‘기척을 너무 죽인 건 맞지만.’
100년이 조금 넘는 해츨링 수준으로 움직여야 하니, 페르디키온처럼 화려하고 과격한 전투 스킬을 쓸 수는 없는 룬.
대신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지우고, 듀라한이 룬을 의식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 결과 검을 대는 순간까지, 그는 들키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나? 실수나 흠이 없었다는 거.’
그런 생각을 떠올렸으나, 결정적인 근거는 아니었으리라 여겼다.
그럼 무엇일까.
크리스티나가 말을 이었다.
“우연이라기엔, 흥미로운 짓까지 했더구나 룬.”
“내가?”
갸웃.
무해한 얼굴로 봐오는 해츨링의 얼굴은 귀여웠지만, 한편으로는 놀라움을 더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너는 아멜리아와 흑미에게 전투 흔적을 보고 해석해주었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주 세세하게.”
그 말에 흑미와 아멜리아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룬은 눈썹을 살짝 움찔거렸다.
크리스티나가 말을 이었다.
“그건 전투를 한 자가 전체적인 판을 읽을 줄 알아야 가능한 일. 왜 이 방향으로 검을 휘두르는지. 또 페르디키온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앞서 판단하고 움직였다는 걸 의미하지.”
“그냥, 같이 전투 했으니까 기억나는대로 말 해줬을 뿐인걸. 형도 잘해주었고.”
룬의 말에 크리스티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뿐이라면, 나는 지금 네 점수를 A+로 두고, 네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을 거야. 하지만, 들은 이야기로 수치화하기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기에.”
“?”
의아한 눈을 하고 보는 룬에게 크리스티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바라보았다.
“정확한 평가를 위해 직접 그 자리에 듀라한과 가 보았단다. 다행히 듀라한은 전투 상황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어. 그리고, 나는 흔적을 통해 땅의 기억을 구현하는 마법을 사용했지.”
이어, 크리스티나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렇게 확인한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더구나. 룬. 너는 네 마기와 어둠을 듀라한의 기척에 섞어 숨겼어. 결정적인 순간을 노리는 기척까지도 페르디키온과 듀라한의 투기에 섞었다는…… 그런 놀라운 결론을 냈지.”
텄네.
당장 스쳐지나간 게 아닌, 복기하는 마법까지 사용하다니.
룬은 염통이 다 쫄깃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로 생각한다고 되는 능력이 아니긴…… 하지.’
설마 수업 다 끝난 마당에 가서 확인까지 할 줄이야.
기껏 뒷정리까지 해 놨건만, 그걸 알아내는 능력에 감탄스러울 지경이다.
크리스티나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