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룬, 대체 언제 그런 능력을 익혔니?”
큰일이다.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하면, 수상하게 여길 게 뻔했다.
아니, 어찌 잘 넘어간다 한들 수상쩍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울 터였다.
‘난감한데.’
룬은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룬을 봐 온 크리스티나다.
그녀를 상대로, 저런 능력을 하루 만에 터득하는 말은 근거가 부족한 소리였다.
‘가르쳐 준 적도 없는 걸 익혔다 하면 이상하겠지.’
속으로 식은땀 나는 기분을 느끼던 룬.
그는 고민하다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사실은…… 따로 배운 건 아니야. 하지만 짐작 가는 건 있어.”
“짐작 가는 거라니, 그게 뭐니?”
“어쩌면, 그건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익혔을지도 몰라. 크리스티나가 그랬지? 아주 오랫동안, 나는 죽은 것처럼 있었다고.”
“!!”
크리스티나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룬은 고개를 떨궜다.
겉으로 보기에는 침울하거나 우울해 보였지만, 사실은 양심이 찔린 탓이다.
‘뭔가 미안해지네.’
진짜 생을 잃은 아이를 떠올린 룬은 속으로 묵념 했다.
물론, 속마음은 속마음대로 두고 말을 이었다.
“크리스티나와 여기 있는 모두들 덕분에 그 사실이 내게 딱히 상처가 된 적은 없어. 하지만, 태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만큼 죽음에 가까웠다고 하니까…… 살기 위해 자연스럽게 몸에 체득된 게 아닐까?”
“…….”
조용했다.
크리스티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도.
‘너무 조용한데. 다른 녀석들은 뭐 하기에.’
슬쩍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일행들을 본 룬은 기가 막혔다.
다들 룬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가엽고 안쓰러운 생명체를 보는 눈이라니.
흑미가 가여운 눈으로 입을 열었다.
“룬 님…… 그렇게나 슬픈 일이 있으셨다니, 몰랐어요.”
양 손을 꼭 쥐고 기도라도 해 주려는 듯한 눈의 여우수인.
이어 물빛 소녀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 랬었……구나. 나, 난…… 그것도 모르고……. 자꾸 이곳, 저곳……같이 가 달라고만…….”
말 하다 보니 목소리에서 물기가 느껴졌다.
자칫 울기라도 할 기세다.
“삐이이이…… 삐이, 삐이…….”
식탁 한쪽에서 빵을 쪼아 먹던 백야.
포르르.
파닥거리며 날갯짓해 온 백야가 위로하고 싶은 듯 룬 주변을 뱅뱅 맴돌았다.
포닥포닥.
심지어 그의 어깨를 작은 날개로 두드려주기까지.
‘넌 왜.’
필시 언어를 다 알아듣는 게 분명했다.
“안됐어요. 태어나기도 전에 죽을 뻔 했다는 거, 흑미는 상상도 잘 안 돼요.”
으으음! 하고 고개를 마구 고래질 친 흑미.
룬은 흐린룬을 하고 생각했다.
‘그야 그 사실만으로 치면 슬프긴 하다만, 너도…….’
생각이 다 이어지기 전에 아멜리아가 입을 열었다.
“너, 너무…… 슬퍼. 룬…….”
무슨 상상을 한 건지 아멜리아가 하얀 두 손을 자신의 입 앞에 모으고 후우, 하고 숨을 불며 고개를 조금 숙였다.
페르디키온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아주 심각한 얼굴로 미간에 세로 주름을 잡았다.
“역시, 마계 원정을 가서 마족 놈들을 전부 죽여버리야…….”
타오르는 살의가 눈에 스파크처럼 튀었다.
자칫 성년식 과업으로 선택해버릴 기세다.
‘아서라.’
룬은 페르디키온만큼은 조금 더 오래 주시했다.
혹여, 화룡족 소년이 핀트 잘못 잡고 이상한 짓이라고 할까 두려울 지경이었으니까.
다행히 자리를 의식하고 살의는 감추기는 했다.
어휴.
속으로 한숨이 다 나왔다.
말 그대로 어질어질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핑계 말고는 타계책이 없어.’
다 봤다는데 아, 그건 착각일거야.
하고 말하면 누가 믿겠는가?
없는 능력을 있다고 하는 것도 못 믿을 말이지만, 분명 능력이 있는데 없다고 말 하는 것도 이상한 소리였다.
고민하는 눈치인 크리스티나를 보며 룬은 속으로 기원했다.
‘제발, 통해라.’
쿵!
쿵!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속은 심장 뛰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잠시 뒤, 크리스티나가 입술을 떼었다.
“그렇구나……. 그래, 그럴 수도 있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크리스티나.
그녀의 룬을 향한 시선이 다소 오묘했다.
룬은 다른 의미로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된 건가?’
땅의 기억을 보는 마법이 있다지만, 어차피 실력이나 보려고 시작한 수업.
이렇게 정밀한 검사까지 진행 할 줄은 몰랐는지라, 이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면 다른 핑계 댈 거리가 없었다.
최악의 경우, 룬이 전생의 기억이 있다는 점까지 실토해야 할 지도 모르는 순간.
다행히, 크리스티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오늘 수업은 모두가 힘들었지? 내일은 하루 쉬고, 모레 수업을 진행하자꾸나.”
휴.
룬은 손에 땀이 나지는 않았는지, 저도 모르게 손바닥을 살폈다.
‘이상 없고.’
그제야 조금 마음을 놓은 룬은, 이상한 시선들을 눈치채고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저걸 어쩌냐.’
뭐랄까.
당장이라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하는, 기특해 하는 시선들.
혹은 응원, 감탄, 안쓰러움 등이 담긴 눈빛이 고스란히 모여들 있었다.
그리고, 고민하던 아멜리아가 용기를 내더니 한 손을 들었다.
“저, 저기……! 룬이랑, 우리 다 같이 놀……지 않을래?”
“?”
‘갑자기?’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흑미도 아닌, 아멜리아가 제안을 하다니.
흑미가 냉큼 손을 들었다.
“흑미는 좋아요! 저번에 같이 주사위 게임 한 것도 재미있었어요!”
“아……! 그, 그런 것도 해 봤……어?”
“네! 언니도 같이 해볼래요?”
아멜리아가 반색을 하며 살짝 웃었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기색을 비추며, 크리스티나를 돌아보며 물어왔다.
“저, 저어. 크리스티나 님……. 레어에 제가 있어도 되, 될까……요?”
“물론이지. 물의 일족 장로들에게 허락만 받는다면 말이야.”
“!”
물빛 소녀의 눈빛이 햇살이 반사되는 호수처럼 반짝였다.
‘그렇게 좋은가?’
룬이야, 언제고 한 번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기에 태연했다.
타이밍이 하필 지금인 게 머쓱한 기분이었을 뿐.
다만 페르디키온은 눈썹을 갈 지 자로 홱 구부렸다.
“웃기지 마라. 놀 생각을 하다니, 부족한 공부는 언제 할 셈이냐?”
뭔가 단단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흑미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우웅? 그럼 페르디키온 님은 혼자 공부 하러 갈 거예요?”
“누가 그런다고 했냐!”
“으왕! 페르디키온 님이 또 멘티코어처럼 됐어!”
“삐이약-!”
금세 왁자지껄해진 응접실.
룬은 그 모습들이 내심 반가웠다.
‘분위기들 괜찮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떠들던 셋의 눈이 룬을 향했다.
그리고 너나할 것 없이 룬을 뚫어져라 보았다.
“같이 놀 거죠, 룬 님도?”
대표로 흑미가 물어왔다.
다들 뭔가, 배려를 하고 싶어하는 눈치들이긴 했다.
그래서일까.
룬도 적당히 어울려줄 마음이 들었다.
“응. 같이 놀면서, 공부도 하면 되지 뭐. 하루 쉬는 건데 그 정도쯤은 괜찮을 거 같아.”
허락이 떨어지자, 흑미가 두 손으로 백야를 들어 공중에 던지며 만세했다.
“힛. 신난다아!”
“삐삐야악!”
신나게 새소리를 내는 백야와 달리, 팔짱을 낀 페르디키온은 투덜거리듯 말했다.
“공부도 하겠다는 말 기억해두마.”
화룡족 소년의 마음이야, 훤히 보였다.
아쉬운 점을 집어주었으니, 그에 대해 확인하고 보완하며 수련에 매진하고 싶었으리라.
‘뭐, 때론 휴식도 중요하니.’
도끼로 무조건 나무를 벤다고 많은 나무를 얻는 게 아니다.
중간 중간 날을 갈아가면서 베는 게, 때론 훨씬 더 많은 나무를 도끼의 손상 없이 베어낼 때도 있게 마련.
그리고.
비록 안타까운 핑계를 대긴 했으나, 룬은 동정이나 안타까움을 받는 게 영 익숙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좀 민망할 정도다.
그런 시선이 룬의 뒤에 꼬리처럼 따라 붙기 전에, 다른 분위기로 환기 시키고 싶었다.
‘합숙하면서 놀다보면 적당히 지워지겠지.’
룬 뿐만이 아니다.
여기 모인 이들 누구 하나, 자신들의 삶에서 고난 없었던 이들이 없었으니.
어렵고 고민스러웠던 순간 사이사이에, 웃고 떠드는 순간도 챙길 필요가 있었다.
과자의 집
아멜리아는 크리스티나를 통해 물의 일족에게 머물고 갈 것을 허락받았다.
“나, 나 자고 가도 된……대!”
“와아아! 언니도 같이 자고 간다아!”
“삐약!”
가장 신난 건 흑미.
그리고 백야도 그에 못지않았다.
페르디키온만큼은 흔들리지 않고 그들에게 일침을 놓았다.
“훈련을 게을리하면서 놀 생각은 아니겠지.”
그러면서 동의를 구하듯 룬을 바라봐오는 바람에, 룬은 짧게 고민했다.
‘어느 한쪽 편을 들 필요는 없지. 이럴 땐…….’
고민하던 룬이 제안했다.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면 돼. 내 방에 다들 오면 되겠네.”
“앗, 룬……의 방이 따로 이, 있어?”
“응.”
대답한 룬은, 좋은 생각을 떠올리고 말을 덧붙였다.
“그 전에 가 볼 곳이 있어. 만들어가는 중이지만…… 이건 공부에도 도움이 될 거야.”
“그런 곳이 있었단 말이냐?”
살짝 고개를 끄덕인 룬.
이번에는 페르디키온도 제법 적극적이었다.
“안내 해 봐라.”
그리고, 룬의 안내로 일행들은 우르르 이동했다.
“신기,해…… 룬의 방에도…… 가, 가볼 수도 있다는……거. 무, 물론 지금 갈 곳도…….”
그녀는 감탄하는 한편, 무척이나 신기해하는 중이었다.
‘하긴 다른 해츨링이 머무는 곳에 가 본 적 없으니 더 그런가.’
상황을 이해한 룬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