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1화 (181/242)

거기에 흑미도 말을 거들었다.

“흑미도 이만큼 큰 폭포는 못 봤어요!”

룬의 심부름으로 종종 제드가 살던 인간의 마을에 갔던 흑미.

엘프 지역을 함께 다니긴 했지만, 대부분은 제드가 살던 마을 외에는 거의 가 본 적 없으므로 흑미 역시 처음 보는 풍경이 있었다.

둘은 꽤나 즐겁게 과자로 만들어진 집들을 구경했다.

룬이 미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때, 형. 내 말이 맞지?”

“흠.”

그랬다.

비록 괄시하고 무시해 온 시기 탓에 진통이 있었지만, 드워프들 문화와 직접 맞대본 페르디키온.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도 없었던 아멜리아와 비교하면 다른 지성체를 경험한다는 면에서는 훨씬 좋은 환경이었던 셈이다.

페르디키온이 룬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럼, 룬은 그 점을 진작 파악했다는 소리군.’

영특했다.

어릴 때부터 똑똑한 녀석이다 싶더니, 아멜리아와 페르디키온의 차이를 깨닫고 있다니.

페르디키온이 팔짱을 끼고는 숨을 한 차례 내쉬었다.

“생각지도 못했다. 저런 걸 신기해할 줄은.”

페르디키온에겐 당연한 일이, 아멜리아에겐 당연하지 않았다.

화룡족 소년은 그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잘됐네. 이걸로 아멜리아에 대한 이해도 조금은 올라가겠지.’

안 그래도 첫만남부터 의견 차이가 나 크게 말다툼을 했던 둘이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해 가는 과정을 쌓아가면 그렇게 격하게 부딪힐 일도 줄어들 터.

‘그렇게만 되면 내가 가만히 있어도 둘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궁극적으로 애들끼리 잘 성장하도록 두고 룬은 자신의 시간과 편안함을 챙기는, 꿩 먹고 알도 먹는 방법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확실히 선생 노릇 하게 해 줄까.’

룬은 무해한 얼굴로 페르디키온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형. 형이 경험 해 본 인간들은 어땠어? 우리들한테 이야기 좀 해주라.”

미간을 좁힌 페르디키온이 호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먼저 인간 세상에 나가 본 내가 알려주지.”

“고마워 형.”

룬은 이걸로 앞으로 수업 받을 때, 둘이 싸울 걱정은 조금 줄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둘은 워낙 성향이 다른 해츨링들.

배려를 해도 오해가 생겨 어긋나기 쉬웠다.

‘하나는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대신 꼼꼼하고 세심하지. 다른 쪽은 호쾌하고 직설적인데다 진취적이고. 보고 있으면…….’

적당한 걸 생각해낸 룬이 아멜리아와 페르디키온을 번갈아 한 번씩 보았다.

‘꼭 개와 고양이 같달까.’

개는 반가우면 꼬리를 올리지만, 고양이는 꼬리를 올리면 싸우는 걸로 인식한다.

실상은 개체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눈 앞의 해츨링들이라도 크게 다를 건 없어 보였다.

한편, 앞서 가던 페르디키온이 룬을 홱 돌아보았다.

“뭐하냐, 룬! 너도 이쪽으로 와라.”

“어, 알겠어.”

룬은 태연하게 답하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페르디키온은 생각보다 경험치가 많은 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과자로 된 집으로 설명하려니 좀 그렇군. 이 집의 형태를 보아하니 크리스티나 님이 제안한 집인 것 같은데, 맞나?”

“맞아.”

그 말에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페르디키온이 말을 이었다.

“집 구조를 보아하니 세로로 긴 창문을 주로 썼군. 여기엔 꽤 웃긴 이야기가 있지.”

룬은 페르디키온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짐작했다.

‘인간의 세금 제도 이야기를 하려나 본데.’

한쪽 입꼬리만 끌어올려 웃은 페르디키온이 말을 이었다.

“한때 인간의 왕은 웃기게도 창문세를 걷었다.”

“창문……세?”

아멜리아가 생각지도 못한 눈치로 되묻자, 페르디키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잘 사는 집일수록, 크고 좋은 집을 가지게 마련. 그리고 그런 집은 창이 크고 많다는 게 그 논리였다.”

듣고 보면 묘하게 말이 되는 듯도 했지만, 역시나 희안했다.

“당시에는 그저 어이가 없었지. 집들 창문 폭이 극단적으로 작거나 없었으니. 뭐 이따위 집이 다 있냐고 물었더니 하는 말이 뭐였는 줄 아나?”

룬도 페르디키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우웅, 뭐라고 했는데요?”

고개를 저으며 답한 흑미에게 페르디키온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창 넓이가 넓으면 세금이 올라가서 그렇다더군.”

“헤엑!”

그 말에 입을 벌린 흑미가 과자의 집을 다시 돌아보았다.

“그럼, 이 집은 창문도 많구 이층이기까지 한데! 돈 많이 내고 살았겠다!”

“그렇다. 뭐, 몇백 년 전 일이니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서 페르디키온은 영 쓸데없는 소리를 한 기분이 드는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멜리아와 흑미의 눈은 아주 반짝거렸다.

“더요! 더 해주세요!”

“나, 나도…… 부탁하고 싶은데…….”

“흠! 원한다면 할 수 없군.”

룬의 생각보다 더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전승 지식이 이런 걸 알려주긴 어렵겠지.’

다만, 룬은 예외였다.

페르디키온이 이야기 해 준 세금에 대한 이야기는 룬 역시 이미 알고 있었다.

크리스티나가 인간에 대해 워낙 잘 알고 있던 덕이었다.

‘이것만큼은 크리스티나가 지식 전승을 해 준 덕이네. 운이 좋았는걸.’

드래곤들 중 인간과 가장 많이 접해 본 게 그녀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전승 마법을 선택적으로 줄 수 있는 만큼 시전자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

그런 생각을 하며 룬은 다시 아멜리아와 흑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맥주 그림의 비스킷 판 문을 열어보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이것도 술……?”

“주점이라고 적혀 있어요. 흐음~! 버터 사탕 냄새가 나요.”

코를 킁킁거린 흑미가 즐겁게 떠들었다.

“저번에요, 제드 아저씨가 주점에 있대서 가본 적 있는데. 거기서는 시큼하구 코가 간질간질한 향이 나서 재채기했었어요. 이런 버터 사탕 냄새였으면 흑미도 좋아했을 텐데!”

그 말을 들으며 아멜리아는 문 안의 광경을 꼼꼼히 살폈다.

둥근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와 고기 안주 모양.

아멜리아는 삼발 나무의자에 살짝 앉아서 맥주 모양의 사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게…… 타인이 존재하는……삶이구나…….”

심해에 살며 부모와, 같은 드래곤들만 봐 왔던 물빛 소녀에게 과자의 집과 마을은 정말 다른 세상을 엿보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룬은 만족스럽게 여겼다.

‘직접 가보지 않아도, 그곳의 문화에 대해 좀 더 알고 가면 보이는 게 더 많을 테지.’

어린 해츨링이 가본 적 없을 풍경들.

다행히 페르디키온이 협조적으로 나와주고 있으니, 반년간의 수업이 끝나고 나면 아멜리아 역시 대륙에 친숙해질 터였다.

룬은 미미한 미소를 띠었다.

‘놀면서 공부하는 건 이런거지.’

이것저것 가르치다 보니 페르디키온 역시 푹 빠져들어 보였다.

이 기세로, 그들은 과자로 만들어진 소품과 건물들을 전부 둘러보았다.

***

“재미있었다아-!”

“뺘악!”

흑미의 말에 백야가 날개를 펴며 호응했다.

그리고 룬은 양손으로 단단히 잡고있는 백야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넌 방해만 됐잖아.’

룬의 눈초리는 그리 곱지 못했다.

백야가 중간에 몇 번인가 과자를 부리로 쪼아보려 했던 탓이다.

그걸 말리기 위해 룬은 무척 신경 써야 했다.

아멜리아와 흑미, 그리고 페르디키온이 잘 친해질 수 있는 이 시간을 방해하지 않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팔자에도 없던 새 돌봄을 맡아버렸으니.’

어휴.

요즘 맛있는 걸 잘 먹이고 있는데도 식탐이 늘어나다니.

아무튼 새의 마음을 그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뭐, 뭔가…… 많이 깨달은 시간……이었어. 고, 고마워요.”

“내 아우가 부탁해서 했을 뿐이다.”

그 말에 아멜리아가 룬을 바라보았다.

“고마워…… 룬.”

“별말씀을.”

룬의 대꾸에 흑미가 웃으며 앞으로 빙그르 나왔다.

“이제 검은 방에 가요!”

“그러자. 참, 간식은 여기서 챙겨가면 돼.”

괜히 간식 창고로 온 게 아니다.

이곳에 있는 과자는 모양도, 맛도 훌륭한데다 축복 마법이 깃든 음식.

어떤 걸 먹어도 최상등품 과자였다.

“으음…… 가, 가져가서 먹기……너무 아쉬울 것 같아…….”

물빛소녀의 말에 룬이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또 만들어질 거야. 뭣하면 기념이라 생각해서 가져가도 되고.”

“기, 기념……?”

의문을 담은 물음에 룬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 주었다.

“응. 엘프 축제에 갔더니, 기념품이나 음식을 이것저것 팔더라고.”

“맞아요! 그때도 재미있었는데!”

벌써 고기와 맥주 모양 사탕과 육포 과자, 곰돌이 모양 장식 케이크를 손에 쥔 흑미가 룬에게 보였다.

“흑미는 이거요!”

“좋아. 흑미 넌 네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가.”

“네!”

대답한 흑미가 아공간 주머니 속에 간식들을 쏙 밀어넣었다.

이어 백야가 부리에 과자를 물고 날아왔다.

“삐이약!”

“넌 또 감자칩이야?”

“삐이! 삐이약!”

화이트 초코로 만든 오리 모양 몸통에서 감자칩으로 만든 부리만 쏙 빼온 백야.

다소 어이가 없었지만, 룬은 그것도 받아주었다.

페르디키온은 레몬사탕 조약돌들과 레몬 가루로 만든 해변의 모래를 퍼올렸다.

다들 하나씩 챙기는 분위기이자, 아멜리아도 고민하더니 하나를 골랐다.

“그, 그럼…… 저것도…… 될까?”

“저걸?”

룬의 되물음에 아멜리아가 머뭇거렸다.

“역시 아, 안될……까? 그치만, 신기……해서.”

아멜리아가 고른 건 바로 밤하늘.

설탕을 진주 모양 사탕으로 만들어 하늘에 박아 둔, 밤하늘 색 젤리와 사탕가루를 뿌린 은하수였다.

“괜찮아. 이만큼 떼 주면 돼?”

“으……응!”

룬은 마법으로 천장을 슥슥 커팅해서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뭐, 저건 보수하면 되는 거니까.’

내친김에 아침 모양의 하늘도 잘라냈다.

솜사탕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진 흰 구름.

연파랑색 맑은 하늘색 젤리까지 챙기자 밤을 즐길 준비가 끝났다.

선물입니다!

룬은 이동마법을 준비하며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그럼 가자. 검은 방에.”

“좋아요!”

흑미의 대답은 무척 씩씩했다.

다들 간식까지 두둑하게 챙긴 덕에 마음부터 이미 풍요로워 보였다.

즐거워 보이는 모습을 보며 룬은 마력을 가동시켰다.

우웅!

완성된 이동마법을 통해, 모두는 룬의 방으로 이동됐다.

꿀과 버터, 초콜릿과 설탕의 향기가 가득했던 공간이 아닌 검은 장미가 곳곳에 핀 방.

도착하자마자, 아멜리아가 놀란 듯 탄성을 터트렸다.

“앗!”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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