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죠, 있죠. 흑미한테는 언제 다녀가세요?”
-에헴! 너도 희귀 케이스긴 하지. 하지만 사실상 정령에 가까운 넌 이빨이 절로 떨어지지 않지 않느냐! 그냥 나를 직접 본 걸로 만족하거라.
“히잉.”
살짝 아쉬운 기색인 흑미에게, 룬은 진실을 일러주었다.
“축하해. 평생 건치로 산다는 말이니까.”
“앗! 그렇게 되는구나!”
그제야 기분이 좋아진 흑미가 귀를 쫑긋 세웠다.
“저, 저는……요?”
설레는 얼굴로 묻는 아멜리아에게, 이빨 요정은 흠…… 하고 관상쟁이 같은 얼굴을 했다.
-넌 내 담당이 아니었지! 하지만 네 유치도 이빨 요정의 손에 잘 들어갔다. 저번에는 경매로…… 아차차.
합, 하고 입을 다문 그를 룬이 노려보았다.
말을 주워담을 수 없었던 이빨 요정은 눈을 슬쩍 굴리더니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어린 녀석들이 눈초리가 사납구만! 농담이네, 농담이야.
손을 살살 흔들며 말하는 꼴이, 영 거짓말쟁이의 냄새가 풍겼다.
‘이런 녀석에게 이를 거저 줄 순 없지.’
말이야 바른 말이지.
비록 자연스럽게 이갈이하여 떨어지는 어린 유치라지만, 엄연히 드래곤 족의 치아.
이걸로 무구를 만들면, 어지간한 다른 무기보다 훨씬 괜찮은 걸 만들 수 있다.
그뿐인가?
마법이나 정령과 호환도 좋으니 마법사의 지팡이 재료로도 아주 탁월했다.
‘역시 안 되겠어.’
룬이 가늘게 눈을 뜨고 이빨요정을 바라보았다.
잘하잖아
팔짱을 낀 룬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내 이빨을 줄 생각이 없으면?”
-어?
벙찐 이빨요정이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섰다.
곧, 얼굴에 심술과 화가 덕지덕지 묻은 모양이 되었다.
-허!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겐가. 우리 이빨 요정이 회수해 가면 이에 요정의 축복이 붙는다고!
“그거 별 대단한 건 아니잖아. 이 빠질 때 안 아프게 해 주는 것뿐이지.”
룬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 그거야. 그렇지만…….
이빨 요정은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능력이 안 통한다는 말을 듣더니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꽤 진지한 눈으로 변했다.
-이 능력은 꽤 유용할게다. 드래곤 족의 이는 워낙 단단하고 잇몸하고 잘 떨어지지도 않아. 자연스럽게 떨어질 때까지 엄청 귀찮고 아플 게다.
이빨 요정의 눈이 빛났다.
-하지만, 내게 맡기기만 하면 이가 빠질 때 까지 치통이라곤 느끼지 못하게 된다!
“…….”
아주 대단한 것처럼 말 하지만, 결국 이 빠지면 볼일 없단 소리였다.
하지만 아직 어린 흑미와 아멜리아는 눈을 크게 떴다.
먼저 감탄사를 터트린 건 아멜리아였다.
“와……아! 그, 그래서…… 저도 모르는 사, 사이에…… 이가 빠진……거군요!”
“흑미도 안 아프게 해주는 능력 가지고 싶어요. 호- 할 때 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둘이 요정의 능력을 부러워하자 자신감이 높아진 건지, 이빨 요정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지, 그렇지. 내 이런 몸일세.
으스대던 요정이 룬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룬의 표정은 영 감흥 없었다.
이에 당황한 건 이빨요정 이었다.
‘아니, 아직 우유나 먹을 녀석이 어째 아픈 걸 두려워하질 않아?’
그런 생각을 한 이빨요정이 재차 입을 열려는 순간.
“블랙 드래곤 일족 해츨링 이빨이요!?”
페르디키온의 주먹에 맞아 축 늘어져 있던 제드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빠르게 앞으로 뛰어나왔다.
모습만 보면 마치, 수호 기사라도 되는 모양새다.
제드가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룬 님의 이빨을 이런 불한당 같은 놈에게 주신다니요?!”
-이, 이건 뭐야!
요정과 난쟁이 인형.
둘은 서로 눈을 피하지도 않고 팽팽하게 맞서 노려보았다.
‘이 둘이라니. 묘하네.’
룬은 이상한 대결구도가 된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의기양양하게 제드가 외쳤다.
“걱정 마시죠, 룬 님! 이런걸 보고 이빨 거지라고 하는 거지요. 이 제드가 냉큼 쫒아드리겠습니다요!”
-뭐라는 게냐!
“다시 말해줄까? 이 얌체 이빨 거지 녀석!”
모욕을 당했다 여긴 이빨 요정이 주먹을 꽉 쥐었다.
발도 구르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아직 룬의 어둠의 리본에 묶인 채였다.
하지만 상한 자존심이 이빨 요정의 입을 가만 두지 않았다.
-아니, 어딜 감히 그 따위 소리를!
“그야 도둑놈 심보로 말하는 게 눈에 빤히 보이니 그러지. 이 도둑 녀석!”
거지에 이어 도둑 소리까지 듣자, 이빨 요정이 입에 게거품을 물 기세로 눈을 홉떴다.
-이 되다 만 놈이 요정 뒷목 잡는 소릴!
진짜로 뒷목 잡는 시늉을 한 요정이 제 자리에서 팔짝 뛰며 한 소리에, 제드가 역정을 냈다.
“뭐? 되다 만 놈?”
룬이 보기엔 둘 다 그나물에 그 밥이었다.
‘둘 다 도긴개긴인데.’
제드가 룬을 지키겠다는 듯 행동하지만, 탐욕스러운 마음이 그득하다는 것쯤은 쉬이 짐작하고 있는 룬이었다.
보나마나, 어린 해츨링의 유치를 하사받아 제 마음대로 장비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리라.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도 그렇고.’
좀 아픈 거야, 크리스티나의 축복을 받고 좀 버티면 된다.
고작 그 때문에 귀한 보물을 그냥 넘길 수는 없는 노릇.
심지어 유치가 한두 개도 아니고, 앞으로 여럿 빠져나갈 텐데, 그걸 몽땅 잃어버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축복을 내린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 줄 알기나 해! 나만큼 고통 없이 보내주는 이가 없어!
가슴을 탕탕 치며 실력을 과시하는 이빨 요정.
“그런 거 없어도 룬 님은 평생 건치일 거라고! 성체 드래곤의 이빨이 얼마나 튼튼한데!”
요정에게 배짱을 튕기는 제드.
한쪽은 수집욕.
한쪽은 탐욕.
막상막하의 대결을 보던 룬이 적당히 중재에 들어갔다.
“됐어. 어차피 오늘 빠질 이도 아닌데 그만들 해.”
“에엥, 여기서 그만두라고요?”
제드가 되묻자, 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시선을 이빨요정에게 던지자 요정이 기세에 눌러 흠칫했다.
“너무 거슬리게 다니면.”
슈륵!
이빨 요정의 발목을 단단히 쥐고 있던 까만 리본이 꽉, 한 차례 쥐더니 풀려 사라졌다.
그리고, 룬의 붉은 눈에 은은한 살기가 떠올랐다.
“이빨을 얻어가기는 커녕, 내 앞에 나타나지도 못할 줄 알아.”
-끄응…….
드래곤 피어(fear).
입을 우물우물 하며 이빨 요정은 힐끔거렸다.
바늘 하나 통할 것 같지 않은 룬의 표정에, 결국 한 발 물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건지, 요정은 떠나면서도 미련을 드러내었다.
-이래 봬도, 난 다양한 종족의 이빨을 회수해 본 뛰어난 이빨 요정이야. 괜히 대 정령이 아니란 말이지……. 기다릴 테니 언제든 불러주게.
“생각 해 보고.”
룬의 대답에 입맛을 다신 요정이 곧 모습을 감췄다.
주변에 기감을 집중하자, 쥐 죽은 듯 조용한 기척이 느껴졌다.
‘시선은 그대로네.’
가볍게 한숨을 쉰 룬은, 그 정도는 그냥 두기로 했다.
신경이 좀 쓰이지만 이빨 요정을 통해 그가 진짜 얻어야 할 걸 떠올렸기 때문이다.
‘아주 많은 이종족의 이빨을 주웠다라. 그럼 지금의 내가 가지 못하는 곳도 여럿 다녔겠군.’
마침 룬에게 정보가 필요한 참이었다.
‘여기서 물어볼 순 없고. 나중에 나 혼자 남았을 때를 노려야겠어.’
룬은 속으로 웃으면서도, 능숙하게 속내를 감추며 주위를 환기시켰다.
“자, 우리도 그만 놀자. 다들 기대했잖아?”
그 말에 흑미가 귀와 꼬리를 바짝 세웠다.
“맞아요! 흑미도 계속 기다렸어요!”
“삐약!”
아멜리아의 머리 위에 있던 하얀 새가 날개를 들며 소리를 내자, 물빛 소녀도 용기를 냈다.
“아…… 나, 나도 그래……!”
야압, 하고 소심한 주먹 쥐기를 하며 파이팅에 동참한 아멜리아.
그 모습에 흑미가 환하게 웃어보였다.
“다 같이 놀아요! 재미있겠다아!”
신이 난 흑미가 눈을 반짝이며, 얼른 저번에 함께 놀았던 카드 세트를 꺼내왔다.
***
다양한 직업군과 마법사, 마족들이 있는 카드게임.
아멜리아를 제외하고, 손패 돌리는 움직임이 다들 제법이었다.
이미 한번 손에 익은 게임이다보니, 다들 카드 돌리는 폼이 도박사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이들은 초심자인 아멜리아를 집중공격하며 한 번 봐주는 법 없이 몰아쳤다.
“으, 읏.”
금세 수세에 몰린 아멜리아가 두 장뿐인 손패를 들고 어깨를 움츠렸다.
“쓰, 쓸 만한 게 없……는걸…….”
물빛 소녀는 정말 열심히 했지만, 게임 요령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하곤 했다.
강력한 지배력을 가진 ‘요정왕’카드를 허무하게 잃고, 심지어 지금처럼 ‘엘프 기사단장’ 카드 같은 귀하고 공격력 좋은 카드를 제물로 바쳐 ‘방어막 거북이’ 따위를 소환하곤 했다.
“아, 일반 공격으로는 절대 데미지를 입지 않게 된다……해, 해서. 한번은 무적 방어라고도 하, 하고…….”
하필 그 카드를 꺼낸 이유를 묻자, 아멜리아가 머뭇거리다 한 대답이다.
룬은 페르디키온이 거친 훈수를 두기 전, 슬그머니 먼저 일러주었다.
“그건 특수 공격이나 함정, 마법은 통한다는 말이거든. 그래서, 이렇게.”
타악.
룬이 낸 마법카드가 단숨에 덩치 큰 거북이를 룬의 필드에 소환시켰다.
“아, 거북아……!”
안타깝게 발을 동동 구르는 아멜리아에게 룬이 설명을 이었다.
“이런 현혹카드를 쓰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바치는 꼴이 돼.”
“마, 맞아…… 기억이 나.”
반 공격과, 마법, 함정 같은 기초적인 설명은 숙지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게임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아멜리아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진행하기란 무리였다.
어려워하면서도, 게임을 함께 하는 게 즐거운지 살짝 미소를 띤 그녀에게 룬이 응원을 보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해 봐.”
제드가 초를 쳤다.
“나 참, 거북이를 홀랑 강탈해 가신 분이 그렇게 말 하시깁니까?”
“물론이지. 승부랑 조언은 다른 거니까.”
태연히 말하는 룬에게 자칭 승부사 제드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캬! 맞는 말씀이십니다. 한데, 과연 그럴 여유가 남아있을까요오~?”
능글능글하게 히죽이는 얼굴을 보니, 절로 살심이 솟아올랐다.
‘한 대만 때리고 싶어지네.’
그 순간, 제드가 카드 다섯 개를 한꺼번에 내려놓았다.
타탓!
힘차게 내려쳐진 카드들.
불운을 감지한 일행들이 제드의 카드를 살폈다.
예언서, 흑마법서, 백마법서, 4대 원소서, 빛과 어둠의 창세서.
하나만 가져도 엄청난 공격력과 지속 버프효과를 자랑하는 카드들이었다.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텐데, 용케도 살뜰하게 모은 게 감탄스러웠다.
제드가 비워진 손을 탁탁 털며 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자, 다들 이해하시겠죠? 이 마법사들의 왕 제드는 지금 초대 마도서 5종을 몽땅 가졌다, 이 말입니다!”
“지독한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