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그 몸을 감더니, 이빨 요정의 입을 막았다.
“뀨후.”
[제드가 감은 참 좋단 말이지.]
-!
천천히, 어둠이 번져나가며 작고 까만 공간이 만들어졌다.
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둠의 감옥.
그 안에서, 룬은 뀨, 하고 소리를 흘렸다.
[아마 무의식적인 느낌인 모양이지만…… 다들 네가 장난스러운 요정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그 녀석만 네가 이상하다는 걸 잘도 느꼈으니.]
룬이 차가운 표정으로 이빨 요정을 바라보았다.
꽉!
어둠으로 된 뭉치가 이빨 요정의 코와 입을 막았다.
벌겋게 핏줄이 불거지기 시작한 눈빛이 점차 경악을 담아 룬을 바라보았다.
-웁웁!
“뀨.”
[말 할 생각이 드나?]
이빨 요정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누르던 어둠이 힘을 풀자, 커헉! 하고 숨을 삼킨 이빨 요정이 급격하게 쿨럭 거렸다.
그리고는 주변을 맴도는 검은 안개를 증오스럽게 노려보았다.
-어떻게 안거냐?
“뀨우.”
[대답 먼저.]
눈을 크게 뜬 요정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둠이 물든 작은 공간 전체가 이빨 요정의 모든 것을 감지했다.
“뀨.”
[이 공간에 계속 버려지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
음양오행을 다룬 이무기였던 그는 분리된 공간, ‘진’을 만드는 일에 능숙했다.
룬의 말에서 진심을 느낀 이빨 요정이 몸을 떨다 황급히 말했다.
-아, 알았다! 나는 거, 거물의 말을 듣고 왔을 뿐이다.
[거물?]
되묻는 룬에게, 요정이 의외의 존재를 언급했다.
-대체 어떻게 그런 거물의 관심을 끈 건진 모르겠지만…… 색욕과 탐닉의 마족, 레파논을 아느냐?
그 말을 들은 룬의 표정이 더욱 싸늘해졌다.
[역시.]
고개를 끄덕인 룬을 보며 이빨 요정이 입을 떡 벌렸다.
-아, 안다고?
반쯤 경악한 목소리였다.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어대는 이빨 요정은 어제와 같은 큰소리를 내지 못했다.
오죽하면, 몸이 쭈그러들어 보이기 까지 했다.
“뀨우.”
[만나본 적 있거든. 설마 요정을 섭외했을 줄은 몰랐지만.]
룬이 말을 이었다.
[대가로 뭘 받기로 하고 왔는데?]
수집욕구 강하며, 어떤 종족이든, 어느 계층의 자들이든 가치 있는 누군가의 이를 모으는 이상한 요정.
입술을 우물 거리던 요정은 어두운 안개가 몸을 꽉 조이자, 꺽! 소릴 내더니 버튼 이라도 누른 듯 말을 토해냈다.
-마, 마족화 된 엘프의 이빨! 그리고 마족의 이빨 일부를 나에게 주기로 약속……허컥!
말을 다 맺기도 전에 이빨 요정이 룬의 살기에 휩쓸려 쿨럭거렸다.
‘너무 흥분했나.’
룬이 마음을 가라앉히자, 그제야 거칠게 숨을 쉰 이빨 요정이 떨리는 눈으로 룬을 바라보았다.
-대체 어떻게, 이런 힘을.
룬은 제 머리를 톡, 하고 건드렸다.
“머리에 든 게 좀 있어서.”
-네, 네 녀석…… 정녕 해츨링이 맞는거냐?
“뀨뀨.”
[보다시피.]
표정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으면서 행동만 긍정해봐야 불신만 줄 뿐이다.
물론, 룬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 없었다.
스륵.
룬의 손에 새까만 침이 쥐어졌다.
기운을 형상화 한 것 뿐이지만, 찔리면 어찌될지 상상한 이빨요정이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온 힘을 다 사용했다.
그러나, 공간을 건너는 요정의 힘이 전혀 나오질 않았다.
마치, 힘이 나올 곳이 모두 막히기라도 한 듯.
공포에 휩싸인 이빨 요정에게 룬이 다가갔다.
“뀨뀨.”
[그러고 보니 일전에 내 스승이 하는 걸 봐둔 게 있거든.]
룬은 그때를 떠올리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흑진주를 꺼내들었다.
불길함을 예감한 이빨요정이 시간을 끌고자 함인지, 소리쳤다.
-잠깐만! 이, 이것만이라도 알려주게. 대체, 내가 그냥 요정이 아니란 걸 어떻게 안거냐?
룬이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비극의 드래곤
“뀨후.”
[수집욕으로 모은 이빨을 경매에 판다는 말을 했을 때부터야.]
룬의 대답을 들은 이빨 요정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고작 그런 걸로?
[고작 그런 거라니. 애초에 자신의 수집품을 경매에 넘기는 것부터가 이상하지.]
이빨을 수집해대는 이빨 요정이 대가를 받고 경매로 수집품을 넘긴다니.
진짜 수집가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수집가에게 수집품이란, 얻은 그 자체로 만족을 부르는 법.
특히, 대정령이라고 스스로 칭할 정도로 이빨을 수집하는 데에 진심인 자가 할 말이 아니었다.
[그건 수집가라기보다는, 장사꾼에 더 가까운 말이었잖아?]
“……!”
그 말에 이빨 요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해츨링들뿐이라 여겨 방심한 탓에, 실수로 흘린 말이었다.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농담조로 잘 넘겼다고 여겼건만.
이 어린 어둠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쯔읏!’
속으로 혀를 찬 이빨 요정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본성을 드러냈다.
추악하고, 음험한 사악함이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잘도 나를 속였구나! 요망한 것. 괘씸한 것!
유치하게 화내는 어린 해츨링을 상상했던 이빨 요정.
그러나, 룬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뀨후?”
[너 말야, 이 상황에서도 네가 속았다는 게 분하다는 거야?]
-이, 이놈이! 아주 건방지구나!
다른 어린 생명체들이 대단하다고 추켜세워 주는 순수한 얼굴들을 보며, 비웃음 섞인 자만에 걸려 넘어져 버린 이빨 요정.
그는 순순히 잘못을 인정할 성정이 아니었다.
-알고도 가만히 있었잖느냐! 속인 게지! 다른 놈들도 한패인 게 틀림없고!
그 말에 룬이 태연히 이빨 요정을 바라보았다.
[눈치챈 건 나뿐이야. 보다시피 게임하면서 웃고 떠드는 게 어울리는 녀석들이니까.]
다른 녀석들은 룬의 시선으로 보면 비늘에 껍질도 다 안 벗겨진 녀석들이다.
굳이 이런 음습한 일에 낄 필요는 없었다.
룬이 말을 이었다.
[굳이 불편한 꼴을 볼 건 없지. 어린 애들이라 순수하거든.]
이빨 요정은 기가 막혀 입속으로 욕을 씹었다.
눈앞에 있는 해츨링이야말로, 누구보다 어린 해츨링이지 않은가.
그는 어린 해츨링 앞에 선 자신이 이런 식으로 옹졸하고 작아지는 느낌을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속 좁은 오기로 인해 담아서는 안 될 말을 입에 올렸다.
-어린 것이 위아래도 없고, 성질이 약아 빠졌구나. 드래곤이라 해봐야, 부모도 없이 난 짐승일 뿐이지.
누가 들어도 모욕적일 말.
룬은 감정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더 해봐.]
룬의 시선에 온기가 없었다.
검은 고슴도치 잠옷을 입은 해츨링이 말을 이었다.
[내가 널 살려야 할지 판단할 수 있게.]
내심 공포를 느꼈으나, 어디서 용케도 배운 드래곤피어(fear)라고 생각한 이빨 요정.
그가 지지 않고 외쳤다.
-흥! 누굴 죽이는 게 그리 쉬운 줄 아는 게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 드래곤 놈이.
룬은 의아스러웠다.
대체 뭘 믿고 저렇게 나대는 걸까.
잠시 생각해 본 룬이 납득할 만한 가설을 떠올렸다.
‘나 말고 다른 녀석들은 반응이 꽤 순한 편이었기 때문인가.’
어제 본 아멜리아와 흑미의 반응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갔다.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이라고, 둘은 함부로 남을 해칠 녀석들이 아니긴 했으니.
이빨 요정의 어리석음을 읽은 룬이 서늘하게 미소를 띠었다.
[헛다리를 짚었네. 그 대가가 뭔지 알려줘야겠지.]
천천히, 이빨 요정의 얼굴이 검은 안개가 몰려들었다.
마치 자글자글한 검은 날파리 떼 같은 것이 눈 앞을 가득 메워가는 듯.
시야가 사라져갔다.
[email protected]#$%@% !
어둠에 먹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공간.
어느새, 이빨 요정은 여기에 홀로 내던져진 채였다.
뻐끔.
이빨 요정이 고개를 내려 제 손을 보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보이는 것도, 손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이게 태어난 지 백여 년밖에 안 된 해츨링의 힘이라고?’
그럴 리가 없었다.
아니, 그래선 안 되었다.
어릴 때부터 이런 힘을 가진 게 드래곤이라면, 진작 세상의 지배자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는 곧 이상함을 느끼지도 못하게 되었다.
-으, 어……어.
감각이 뒤엉켰다.
마치, 생각과 기억이 어둠 속에 잘게 분해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숨을 헐떡인 이빨 요정.
그는 오직 예민해진 기감과 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머리를 굴렸다.
망가진 감각은 이빨 요정의 정신을 더욱 비틀리게 만들었다.
오감의 완전한 차단이 부른 정신 오염이 시작됐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조차도.
죽은 시체가 된 채, 정신만 살아서 어둠 속에 영원히 버려진 게 틀림없었다.
이빨 요정은 정신이 먹히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시간을 억지로 가늠해보았다.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무한한 시간을 감각한 이빨 요정은, 이내 정신이 나가기 직전임을 깨달았다.
정신을 찾기 위해선 뭐라도 자극이 필요했지만, 그런 호사는 결코 주어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꽤 버티네.]
단 네 글자의 말이 빛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충격적인 말이 들렸다.
[벌써 5분째인데.]
-……!
고작 5분.
이빨 요정은 그사이, 아무것도 없는 암흑 속에서 영겁의 시간을 경험했다.
‘이대로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되면?’
환상체인 요정에게 정신의 마모는 곧 존재의 변형까지 문제가 되는 일.
무너진 정신이 어떤 괴물이 될지 알 수 없었다.
두려웠다.
-끄윽.
이빨 요정은 버티지 못하고 애원했다.
-차라리 그만 죽여…….
곧, 이빨 요정은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이빨 요정의 기준에서 억겁의 시간이 흐른 뒤.
흐물거리는 정신으로, 엉망으로 뒤섞인 물감처럼 흐르던 이빨 요정에게.
화악!
갑자기 적당한 빛과 온도가 느껴졌다.
-흐, 흐아악!
모든 감각이 타오르는 느낌에 그는 비명을 질렀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극이 심했다.
마치 솜털 한 올 한 올이 날카롭게 벼려진 후, 그 끝으로 과도한 전류가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강제로 모양을 갖춘 몸과 장기가 적응하지 못하고 뒤틀어댔다.
-우우웩! 웨엑! 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