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물 밖에 꺼내진 물고기처럼 헐떡이는 이빨 요정.
눈을 떠 보니, 어둠 속에 있지만 온기와 어렴풋이 색감의 농도가 느껴졌다.
“뀨뀨우.”
[또 입을 놀려 보든가.]
팔짱을 끼고 그를 바라봐 오는 고슴도치 잠옷을 입은 까만 해츨링.
-내, 내가 뭐라고 했……?
기억이 강제로 비틀렸다가, 겨우 조각을 맞춰 장면을 떠올렸다.
-아, 아.
눈을 굴린 이빨 요정은 진심으로 공포를 느꼈다.
그는 다른 누구보다 이 어린 해츨링 앞에 선 일이 가장 두려웠다.
하지만 룬은 당황한 이빨 요정을 두고 의문을 표했다.
“뀨.”
[꽤 오래 산 데다 공간을 오가는 녀석이니, 정신 공격에 면역이 강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두려워하는데?]
저 망할 어둠 일족 놈!
그렇게 일갈하고 싶은 마음이 질린 마음과 함께 쥐꼬리만 하게 들었다가 모습을 감추었다.
죽는 게 차라리 나았다고 느낄만큼 끔찍한 일을, 더는 당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빨 요정은 조심스레 의향을 살폈다.
-나, 나를…… 아니, 저를 어찌 할 셈이신지?
손을 벌벌 떤 이빨 요정이 묻자, 룬이 음. 하고 말했다.
“뀨우.”
[몇 가지 질문을 할 생각이야. 성실하게 대답하면 내가 호의를 베풀지도 모르지.]
이빨 요정이 원하는 호의는 그냥 이 자리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일이었다.
그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듯, 룬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제처럼 거짓이 섞여 있으면, 좀 전과 같은 상태를 기약 없이 느껴야겠지.]
휙- 탁.
위로 던져졌던 흑진주가 룬의 손안에 쥐여졌다.
이빨 요정이 침을 삼켰다.
꿀꺽.
존재가 무로 사라지는 경험은, 실로 끔찍했으므로.
수척해지고 머리털이 선 요정은 얌전히 고개를 조아렸다.
-그으, 무엇을 알고 싶기에 그러시오……?
발음이 어눌한 건 떨려서도 있지만,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못한 탓이었다.
어쩌면 평생 갈지도 모를 정신체의 타격에 이가 떨릴 지경이었다.
그 앞에 선 룬은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뀨뀨.”
[그럼 마족이 원한 게 뭔지부터 말 해봐.]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마족, 레파논은 질문에는 무엇이든 대답해주라고까지 말했으니.
단, 쉽게 말하면 재미없을 거란 소리를 하긴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걸 예감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순간 울화가 올라왔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 속에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안부를 확인하고, 서로 약속을 잊지 않도록 상기시키려는 게 목적이라고…….
“뀨?”
[고작 그거?]
룬이 의심하는 눈치임을 느낀 이빨 요정.
혹시라도 또 좀 전과 같은 상황에 처할까 싶어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정말이야! 아니, 정말이고 말구요! 더, 더불어 나 같은 놈에게 속아 넘어간다면 당장이라도 그 혼을 가지러 가야겠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
말을 들은 룬 입장에서야 기가 찼다.
‘그놈의 혼 타령.’
속으로 미친 놈 소리를 두세 번 하며, 룬은 속으로 고개를 흔들며 생각했다.
‘원래 미친개는 건드리는 게 아닌 법인데.’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지만, 역시나 위험한 놈이다.
최대한 안전하게 이별하는 방법을 강구해야겠다 생각하며, 룬이 입을 열었다.
“……뀩.”
[그래. 그럼 다음 질문.]
룬의 붉은 눈이 깊어졌다.
[‘리즈에’라는 숲의 일족. 그린 드래곤이 사는 장소에 대해 아는 게 있나?]
-그, 그 드래곤이라면 나도 접근하기 어려워서…….
지긋하게 보던 룬은 슬쩍 앞발 하나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어두운 안개가 스르륵 뱀처럼 이빨 요정을 휘감기 시작했다.
-으아악! 잘못했소, 잘못했소!
뱀처럼 휘감겨오는 감각에 발작하듯 외친 이빨 요정이 입에 게거품을 물며 몸부림쳤다.
룬이 움켜쥔 앞발을 풀었다.
어둠이 스르륵 허공으로 몸을 숨겼다.
“뀨.”
[속일 생각 말고, 제대로 말해.]
그 말에 흠칫한 이빨 요정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아, 알겠소. 와,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지만 그…… 아주 약간은 거짓말 해서 미, 미안하오…….
그 말에 룬이 생각했다.
‘역시 거짓말이었냐.’
사실 이번 건 슬쩍 찔러본 거였는데, 잘 얻어걸렸다.
헉헉 소리를 내며 헐떡이던 이빨 요정은 심장 마비 올 것 같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리, 리즈에라면…… 내가 찾아가던 때에도 드래곤이었던 그……자 말 하는 거, 맞소?
룬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그걸 감추기 위해 룬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뀨뀨.”
[맞을걸.]
눈치를 살피던 이빨 요정이 기억을 더듬었다.
-특이해서 기억이 납디다. 해츨링의 나이임에도 성체 드래곤이었던……. 그, 그래. 그 비극의 드래곤.
리즈에.
짧은 기본 네임만 알려진 숲의 일족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성체였다.
리즈에는 페르디키온보다도 어렸는데도 말이다.
이 이상한 상황은 현 로드와 관련 있으리라는 게, 크리스티나가 낸 결론이었다.
이빨 요정이 말을 이었다.
-우린 이빨을 수거하고 나면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으니, 리, 리즈에라는 드래곤의 흔적이라도 있지 않는 한 찾을 수가 없소만…….
혹시 룬이 믿지 못할까 봐 손까지 떨며 말하는 이빨 요정.
확실히 연기 같지는 않았다.
약속할게
어느 정도 예상한 대답이기도 했으므로, 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힘의 흔적만 있다면 찾을 수 있다는 말이네. 그건 어렵지 않아.]
룬은 천천히 앞발을 모아들었다.
예전에 받았던 리즈에의 힘.
어둠속에 감춰져 있던 민트색 바람이 둥글게 휘몰아치며 머문다.
[이 힘의 원 주인을 찾으면 돼.]
-오오! 이토록 순수한 힘이…….
요정의 눈이 앞발에 모인 바람에 고정되었다.
숨 막히고도, 깊은 어둠 속에 부는 한 줄기 숲의 바람.
그린 드래곤 일족의 힘이었다.
이빨 요정은 의문스러운 시선을 잠시 던졌다.
‘어떻게 어둠 일족 해츨링이 이 힘을 보일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빨 요정이 손을 뻗자, 손가락 끝에 바람이 닿았다.
화악!
신선한 공기가 콧속을 간지럽힌다.
잠시 뒤.
늙은 요정의 힘이 리즈에의 끝자락에 닿았다.
-차, 찾았다!
요정이 탄성을 터트리며 눈을 홉떴다.
룬이 말했다.
[그럼, 그쪽으로 요정의 길을 만들어 둬.]
대번에 반쯤 미친놈 보는 듯한 표정이 된 이빨 요정이 룬을 보았다.
-요정의 길에 대해 안다고……?
[전에 다른 요정을 본 적이 있었어.]
룬의 태연한 대꾸에 이빨 요정의 입이 떡 벌어졌다.
무서움과 동시에,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어린 해츨링이 마족과 직접 만나보질 않나, 요정에 대한 지식이 있질 않나.
‘이 해츨링, 대체 정체가 뭐지?’
하지만 그걸 물을 만큼 용기를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한데, 요정의 길을 요정 없이 이용하는 건 드래곤이라도 불가능한 일.
입술을 우물거린 이빨 요정이 은근히 말을 흘렸다.
-힘의 소유주가 있는 곳까지 요정의 길을 내면…… 이제 어찌할 겐지?
그 말에 룬이 의미심장하게 되물었다.
[길을 사용해야겠지?]
-…….
해츨링의 오만한 말에 이빨 요정은 침묵했다.
요정들만 다니는 길을 제까짓게 다니겠다니. 오만방자함에도 정도가 있었다.
속에서야 열불이 났지만, 맘속에서 떠오르는 말을 터트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룬은 침묵을 지키는 이빨 요정을 보며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
[길만 만들어 두면,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게.]
어이없는 소리에 요정은 제 힘으로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며.
‘건방진 놈, 그렇군. 나를 겁박하든, 이용하든 해서 공짜로 내 길을 이용하려 들려고?’
존재가 사라졌다가 돌아왔음에도, 늙은 요정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분노하며 본성을 터트릴 기회를 엿보았다.
‘그래! 지 까짓 놈이 길을 쓸 셈이라면 내 허락이 필요할 터다. 좀 전처럼 내 정신을 흔들 수도 없을 게야.’
길을 쓰려고 한다면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며, 이빨 요정의 검은 눈이 음습하게 빛났다.
‘하다못해 통행세로 저 오만한 어둠 일족의 이빨을 받아내기만 한다면!’
이빨 요정에게 있어 힘 있고, 귀한 종족의 치아란 그 자체로 귀품.
그리고 최고의 자랑거리이자 능력을 증명했다.
‘길은 이 몸의 뜻에 따라 열고 닫는 것. 함부로 해를 입혀선 안 될 것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기회가 보였다.
하지만, 룬은 요정의 생각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늙은 요정을 한심하게 여긴 룬이 속으로 생각했다.
‘반성이 없는 녀석인 건 둘째치고, 헛된 꿈을 꾸는 게 안타까울 정도네. 뭐…… 덕분에 일은 쉽겠다만.’
룬은 이빨 요정이 어둠에 먹혔던 ‘5분’ 사이 바꿔 친 제 몸을 살폈다.
‘마침 실험해 보고 싶어서 꺼낸 몸이었는데, 잘됐어.’
어찌 보면 불쌍할 정도로 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게 요정의 불운이라 할 수 있다.
잠시 기다리자, 이빨 요정이 룬을 돌아보았다.
-길은 완성되었네. 고정도 잘 됐어.
[좋아. 수고했어.]
겉으로는 순진한 얼굴을 해 보이며 룬이 추가로 운을 떼었다.
[그런데…… 이 길이 정말로 리즈에와 연결 된 길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는데. 보증할 만한 뭔가 있으면 좋겠어.]
모른 척 던진 룬의 말에 이빨 요정의 눈에 흑심이 스쳤다.
그리고, 요정이 먼저 운을 떼었다.
-그렇다면 내 좋은 방도가 있네.
[방도?]
의아하게 바라보는 룬에게, 이빨 요정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나와 ‘약속’을 하면 어떻겠나?
잠시 생각하던 룬이 뭔가 짐작해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설마 성체들이 하는 ‘용언 마법’ 말하는 거야?]
룬의 목소리는 천진한 아이의 느낌이 묻어났다.
-잘 알고 있구만! 그렇지. 드래곤에게 ‘약속’은 다소 강제적인 구석이 있지. 그러니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안 될 말로 약속을 나누면 된다는 게지.
그러자, 룬이 짐짓 모른 척 곤란한 듯 말을 이었다.
[나는 아직 어려서 이름을 다 완성하지 못했어. 그래서 어른들처럼 제대로 언령 마법을 걸 수는 없을 텐데.]
그 말에 이빨 요정이 제안했다.
-흠! 다 방법이 있다네.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시 어떻게 할지에 대한 ‘제약’을 좀 강하게 걸면 되는 것이지.
[제약?]
-예를 들면…… 나는 이 길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자네는 내게 이빨을 주는 거지. 이를 어길 시, 신체를 잃는다, 정도 되는 제약을 거는게지.
[…….]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해츨링을 본 이빨 요정이 얼른 그를 달래었다.
-보게. 어차피 서로 믿음직한 사이는 아니니, 대신 절대로 어기지 않을 만한 조건을 거는 것뿐이야. 약속만 서로 잘 지키면 몸에 이상이 생길 리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