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챈 자는 없겠지?’
그리고 천장을 올려다 본 룬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뀨우?”
[라이 넌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최대한 작은 빛으로 변한 라이가 공중에서 뱅그르르 맴돌았다.
그리고는, 빛으로 그림을 그렸다.
[( ̄(エ) ̄)ノ]
질문에 대해 심드렁하게 손을 흔드는 모습.
만사 태평해 보이기까지 한 느긋한 움직임은 한가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보아하니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 눈치였다.
‘이 정도면 그냥 힘을 써본 정도로만 보였겠어.’
이쯤에서, 룬은 확인 차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뀨우, 뀨우우.”
[힘을 좀 써봤는데, 다른 데엔 말 하지 말아주라.]
침착했던 룬이지만, 의도가 잘 전해졌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빛의 요정이 그림을 띄웠다.
[( •̀.̫•́)✧]
‘이해한거야?’
저 놈의 빛의 정령의 그림은 도데체 정확히 읽기 어려웠다.
[(>_^)b]
이번 그림 문자를 본 룬은 일단 한시름 놓았다.
그저 기분인지는 모르지만, 걱정 말라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쨌든 직접 본 것도 아니고…… 반응 보니 괜찮을 것 같군.’
혹시 몰라 룬과 이빨 요정만 들어가는 어둠의 공간 안에서 일을 치렀다.
적어도 크리스티나가 직접 온 게 아닌 이상 들킬 확률은 거의 없었다.
내심 안도한 순간.
꼬르륵.
“……뀨욱.”
대차게 들린 뱃고동소리가 요란했다.
룬은 허기진 배를 앞 발로 슬슬 문질렀다.
‘힘을 썼더니 배가 고파졌어.’
요정의 힘인 ‘요정의 길’을 얻은 건 좋았지만, 마력 소모가 심했다.
‘뭐, 그래도 좋긴 하다만.’
요정이란 그 특성상, 공간을 뛰어넘는 힘을 가진 이들.
이를 이용하면, 룬은 갈 수 없는 장소를 갈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열쇠를 사용하면서 한계가 느껴지던 차였는데. 잘 됐지.’
드워프 마을에서 제드를 통해 얻은 마력 열쇠.
깊은 밤의 요정과의 만남으로, 요정의 힘으로 만들어진 길의 소유권을 가져오거나, 오갈 수 있음을 알게 된 룬은 틈틈이 열쇠로 다양한 길을 찾아보았다.
한데, 무작위로 생성되는 길은 여러모로 문제가 있었다.
길이 아닌 장소에 길이 연결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길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밝은 하늘색이라 생각해 고개를 밀어 넣었더니, 저 아래에 흰 구름이 가득한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지.’
심지어 버려지고 망가진 길도 있었다.
룬은 그 길을 고칠 수도 없고, 잘 못 디뎠다간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미아가 될 위험까지 있었다.
한마디로 꽝이 많았다.
하지만 요정의 길 조작 능력을 넘겨받았으니, 어느 정도 이런 부분들을 고쳐갈 수 있을 터였다.
‘이제야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길을 얻게 됐군.’
새로운 길을 만들어 본 적은 없으니, 그쪽은 손을 대봐야겠지만.
적어도 이미 생긴 요정의 길은 편히 오갈 수 있을 터.
‘슬슬 만나볼 때가 됐지.’
룬은 갈색 드래곤 란드에게 숲의 인장을 다루는 수업을 받으며 약속한 걸 떠올렸다.
이미 숲의 일족일 수 없게 된 란드가 언급한 또 다른 숲의 일족 아이.
해츨링이지만 성체로 취급받고 있는, 리즈에에 대해.
꼬르르르르륵.
“…….”
그건 그거고, 우선은 금강산도 식후경이었다.
‘밥부터 먹자.’
한숨을 쉰 룬이 라이와 함께 주방으로 이동했다.
***
달그락!
주린 배를 움켜쥐고 주방으로 간 룬을 라이가 졸졸 따라왔다.
아직 크리스티나가 오기 전인지, 조리실은 아침 식사 재료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룬은 저온을 유지하는 마법이 걸린 창고로 들어가 치즈와 고기, 달걀을 꺼내왔다.
‘역시 고기지.’
아공간 주머니에 과자나 푸딩 같은 간식거리가 있긴 했지만, 그것보다 지금은 먹고 싶은 게 따로 있었다.
불을 켜고 후라이팬을 불 위에 올리자 금새 열이 달아올랐다.
탁탁.
치이익!
달그락.
고슴도치 잠옷을 입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룬.
그는 곧, 소시지를 썰어내고 계란을 풀었다.
“뀨우우…….”
그리고 적당히 간이 든 소시지에, 달걀옷을 대충 입혀서 프라이팬 위에 쪼르르 올렸다.
자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익어가는 햄 계란 특유의 맛과 향이 풍겼다.
‘가끔은 이런 간소한 요리가 먹고 싶단 말이지.’
마법으로 계란 옷 입은 소시지를 탁탁 뒤집은 룬은, 익는 동안 접시를 세팅했다.
[\(^o^)/]
라이가 소리 없이 그림을 띠웠다.
룬이 생각하기에, 대충 ‘맛있어 보인다!’라는 느낌이었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정령이 맛과 향을 알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맛있는 색을 띤 계란 소시지를 건진 룬이 접시위에 잘 쌓아올렸다.
그리고는, 프라이팬에 계란만 4개를 깨 넣고, 한 쪽에는 베이컨을 올려 굽기 시작했다.
구워지는 동안, 계란 옷 입힌 소시지를 든 룬이 주둥이 안으로 한 조각 밀어 넣었다.
생각했던 그 맛이 입안을 채웠다.
합!
념념.
계란의 부드러움과 몽글함.
소시지의 짭짤함과 탄력, 그리고 감칠맛.
둘의 조화가 훌륭했다.
‘어차피 손 댄 요리. 다른 녀석들 것도 좀 만들어볼까.’
조금씩 기력이 차는 기분으로 목을 한 차례 돌린 룬이 또 다른 재료에 눈을 돌렸을 때였다.
“룬, 잠은 좀 잔 거니?”
크리스티나가 주방에 들어왔다.
앞발에 감자와 양파를 각각 들고 있던 룬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뀨뀨.”
[좋은 아침, 크리스티나.]
그녀의 푸른 시선이 주방을 한 차례 훑었다.
기름 냄새와 간단하게 부친 햄계란 소시지 조각들.
시선의 끝에는 간단히 먹은 계란 옷 입혀 구운 소시지가 있었다.
“룬, 설마 배가 고파서 이걸 먹은 거니?”
“뀨욱.”
[오늘 따라 출출해서…… 간단한 게 먹고 싶기도 했고.]
크리스티나는 아쉬운 눈치였다.
“저런…… 알았다면 내가 좀 더 일찍 왔을 것을.”
룬이 영양을 듬뿍 섭취할 수 있도록 늘 호화로운 식사를 준비했던 그녀다웠다.
룬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뀨웃.”
[괜찮아. 이따 아침 또 먹을 건데 뭐.]
그때.
꼬르르르르륵.
“…….”
“…….”
둘 모두 잠시 침묵했다.
먼저 입을 연 건 크리스티나였다.
“……배가 많이 고팠구나, 룬.”
“……뀨우.”
간밤에 야식을 충분히 먹은 그다.
평소라면 이 시간에, 이렇게까지 고플 리 없건만.
꼬리를 축 늘어뜨린 룬을 본 크리스티나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런 기분이 들 줄 몰랐는데
상냥한 미소를 지은 크리스티나가 손을 떼며 말했다.
“기다리렴, 얼른 뭔가 만들어줄게.”
“뀨우우.”
[고마워, 크리스티나.]
거절하기엔 배고픔이 뱃속에서 난리를 피워댔다.
룬은 계란 옷 입힌 소시지를 하나 더 집어 먹었다.
“베이컨과 계란이구나. 샌드위치? 아니면 가벼운 브런치였던 거니?”
“…….”
정확히 말하면 둘 다 아니었다.
식사라기엔 너무 대충 해먹는 감이 있었으니까.
‘이거 말하면, 크리스티나 성격에 한소리할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룬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뀨.”
[그 정도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어. 되는대로 프라이팬째로 먹으려던 거라…….]
빵을 구운 것도 아니고, 샐러드를 추가로 준비한 것도 아니었다.
배만 채우기 위한 용도였으므로 영양이나, 식사의 밸런스는 무시한 초간편식이었다.
역시나, 크리스티나의 얼굴에 안타까운 기색이 어렸다.
“평소에 요리할 때는 다양한 식사를 만들어내더니. 혼자 먹을 때는 너무 대충 챙겨먹는구나.”
그러고는, 미리 만들어 놓았던 반죽을 꺼내 오븐에 넣어 굽기 시작했다.
룬은 계란 옷 입힌 소시지를 또 하나 집어먹으며 말했다.
[이것도 충분히 맛있어서.]
배고프면 뭘 먹어도 맛있는 법.
특히 계란과 소시지는 어떻게 먹어도 제법 괜찮은 조합이었다.
다 먹은 후에는 계란 후라이에 베이컨을 얹어서 대충 때우면 됐다.
베이컨은 조금 짜겠지만, 계란이 중화해 주면 대충 먹을 만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크리스티나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식사는 제대로 챙기는 편이 좋단다. 성장에는 먹는 것도 중요한 법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구멍이 송송 뚫린 주황빛의 치즈를 꺼내 삼각으로 자르고, 신선한 야채를 이용해 샐러드를 만들었다.
빵이 노릇하게 익어가며 향기를 풍겼다.
띵!
오븐 소리가 나고, 크리스티나는 막 구워진 빵을 꺼내 접시에 잡았다.
치아바타와 치즈, 하얀 볼에 담긴 작은 샐러드와 흰 우유.
이것들이 추가되자 그제야 제법 식사다웠다.
“뀨우.”
[잘 먹을게.]
까만 해츨링이 양쪽 앞 발로 빵을 들고 찢었다.
구워진 빵이 하얀 결을 드러내며 향긋한 김을 피워냈다.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 룬이 터진 계란 노른자를 빵으로 푹 찍어 한입 물었다.
‘베이컨의 짭짤한 맛이 스며서 간이 괜찮네.’
오물거린 룬은 빵 위에 노르스름한 치즈를 썰어올리고, 잘 구워진 베이컨까지 올려 크게 한 입에 깨물었다.
하압!
볼이 빵빵해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
대충 만들어도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다 보니, 룬은 만족스럽게 우물거렸다.
잘 먹는 모습을 확인한 크리스티나가 올리브유에 발사믹 소스를 뿌린 작은 그릇을 내어주며 물었다.
“다른 아이들은 언제쯤 깰 것 같니?”
발사믹 드레싱의 새콤한 맛을 즐기던 룬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