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0화 (190/242)

“뀨우.”

[어제 다들 밤 새고 막 잠들어서. 빨리 일어나도 점심때이지 않을까.]

영양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룬은 샐러드에 포크를 찍었다.

“그럼 너만 일찍 일어났다는 말이구나.”

“……?”

룬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 크리스티나를 보자,

그녀는 복스럽게 잘도 먹는 까만 해츨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느낀 룬이 빵을 더 먹지 않고 시선을 맞추었다.

“뀨우?”

[왜 그렇게 봐?]

그녀의 시선은 어딘지 모르게 깊은 상념에 빠져있었다.

“네가 귀한 생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

의아하게 여긴 룬에게 크리스티나가 의중을 짐작하기 힘든 얼굴로 물었다.

“룬. 요즘 혹시 혼란스럽거나, 문제가 있지는 않니?”

‘컥.’

뜨끔.

룬은 먹던 빵이 목에 메이는 기분을 느꼈다.

‘뭔가 눈치라도 챈 건가?’

볼 가득 빵이 밀어 넣은 룬은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최대한 태연하게 행동했다.

“……뀨?”

[딱히?]

해츨링이 큰 눈을 깜빡이며 살짝 고개를 기울이는 모습.

조금은 얼빠져 보이기도 하고, 뭔지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눈.

이 연기는 제법 노련했으나, 크리스티나의 깊고 고요한 시선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니.”

그 말과 함께 잠시 그를 바라보던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의 입속말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직은…… 겠지.

라고.

룬이 평범한 해츨링이었다면 지레 찔려 당황스러워 했을 만큼 절묘했지만.

‘내키는 게 없는 자라면 긴장한 티를 내고 있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한 룬은 무해한 얼굴을 해보일 뿐이었다.

그런 룬에게 크리스티나가 상냥하게 웃어 보였다.

“하나만 기억하렴. 네가 어떤 존재든, 나는 네 편이란다.”

어깨 쪽을 가볍게 두드린 크리스티나는 룬과 눈을 마주쳤다.

“내일부터 있을 수업도 힘내렴. 늘 응원하고 있으니까. 그럼, 나중에 보자꾸나.”

상체를 든 그녀가 손짓하자, 라이가 인사를 남겼다.

[(・ω・)/]

그리고, 크리스티나와 라이가 함께 이동마법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룬은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그냥 넘어가서 다행이군.’

뭔가 눈치챈 느낌이 들긴 했지만, 속단을 일렀다.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 리 없으니까.

하기야, 그런 걸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속에 다른 세계의 신수인 이무기가 깃들었다는 생각까지 쉬이 연결되기는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대비는 해야겠어. 적어도, 그녀가 납득할 만한 ’비밀’이 필요해.’

그걸 알아야, 대비도 할 수 있을 터.

‘이 세계에서 내가 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을 법한 상황이라.’

곰곰이 생각해 보던 룬이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있다. 내키지는 않지만, 가능한 방법이.’

이거라면 룬이 말하기 꺼려 한 이유까지 설명 가능했다.

굳이 떠벌리고 다닐 만한 말이 아니어서 그렇지.

만약의 경우 써먹을 수 있을 방법이기에, 룬은 머릿속에 그 생각을 담아두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말해야겠지.’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하지만, 그 꼬리는 잘린 도마뱀 꼬리가 되어 줄 수는 있을 터였다.

식사를 마친 룬은 그릇을 정리하고, 크리스티나에게는 혼자 요리 연습 겸 일행들의 점심을 챙기겠다고 전해 해두었다.

그리고 한창 요리를 하는 도중.

-모콕!

모코지석이 울렸다.

<어디냐 룬?>

확인해보니 발신자는 페르디키온으로, 남아있던 일행을 대표하여 보낸 게 틀림없었다.

시간을 보니 정확히 정오였다.

‘예상한 대로네.’

룬은 모코지석을 두드렸다.

<요리 연습 중이야. 점심도 만들 겸. 다들 일어났어?>

-모콕!

<그래. 하면, 이 녀석들을 챙겨 요리실에 가면 되겠나?>

페르디키온의 모콕에 룬이 답장을 보냈다.

<아니야. 점심 준비는 내가 거의 다 했어. 천천히 준비하고 응접실에서 기다려 줘.>

<알겠다.>

페르디키온과의 연락이 끝나고, 룬은 삐쩍 마른 허브와 꽃을 골랐다.

그에게 있어, 이번 작업은 무척 중요했다.

아무리 해도 불가능했던 그 일.

바로 새싹과 꽃, 허브 같은 식물류의 소생이 걸렸으니까.

‘세계수도 해낸 나다. 이번엔 틀림없이 할 수 있어.’

숲의 인장과 소생 언령.

이 둘의 조합을 통해, 룬은 과거에 실패했던 ‘식물 살리기’를 성공시킬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 룬은 숲의 인장의 힘과 소생 언령을 발동시켰다.

[소생하라.]

마른 꽃과 허브였던 것들이 서서히 살아있는 색을 되찾아갔다.

‘조금만 더.’

바르르 떨던 식물들이 천천히 꽃봉오리를 피웠다.

이내, 식물들은 생생하게 살아나 땅에 심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 되었다.

‘드디어……!’

룬은 앞발에 담긴 데이지와 보랏빛 팬지꽃을 내려다보았다.

보고 있자니 스스로가 기특했다.

‘처음 소생 언령을 시도했을 때는 꽃은커녕, 작은 새싹조차 피우지 못했는데.’

한때 초록색이 탱탱한 풋토마토나 만들던 그.

하지만 이제, 그의 앞 발에는 하얗고 노란.

싱싱한 보랏빛을 띠는 식용꽃이 팝콘처럼 피어올랐다.

‘크으.’

뭘 키우는 걸로 이렇게나 뿌듯하다니.

하지만 이 기분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다.

“뀨후후후.”

‘좋아. 이대로만 가면 순조롭게 죽은 식물을 살릴 수준은 되겠어.’

씨앗은커녕, 새싹 하나 살리기도 힘들었던 시절은 이제 안녕이었다.

이제 그에게는 숲의 인장이 있었으므로, 잎이나 열매 따위를 되살릴 때 훨씬 강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감격에 비늘이 떨리는 기분을 느끼며, 식용꽃에 물의 인장으로 만든 깨끗한 정화의 물을 둘러주었다.

‘기념적인 성과인데, 이걸 이용해 뭔가 해볼까.’

가볍게 엄지발톱을 들자 꽃을 감싼 물은 둥근 얼음꽃이 되어 유리볼 안에 후두두둑 모였다.

‘이거면 휴일에 제법 어울리는 식사가 되겠지.’

그리고 룬의 생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

“와아아아! 너무 예뻐요!”

환호성을 터트린 흑미가 두 손을 꼬옥 모으고 꼬리를 살랑였다.

식사는 언제나처럼 맛있게 구워진 고기파이와 애플파이.

따끈하게 갓 구워낸 모닝빵에 신선한 버터.

후식으로 나온 시원한 물, 혹은 레몬이나 자몽에이드에 꽃얼음을 넣어 먹었다.

“그, 근데 이건…… 뭐야?”

거기에, 타래 모양으로 만든 밀가루 반죽에 신선한 꿀과 시럽을 입힌 튀긴 간식이 하나 더.

룬은 조금 고민하다 대충 말해주었다.

“돌돌이 과자.”

유밀과라고 해봐야 ‘그게 뭔데?’라는 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그래서 대충 이름을 붙인 게 ‘돌돌이’였다.

‘있는 걸로 대충 만들었는데, 그럭저럭 먹을 만하네.’

과자 종류를 많이 알지는 못해도, 달달한 맛에 저도 모르게 손이 가는 주전부리였다.

이무기 시절에는 직접 만들어 본 적 없건만, 최근 요리 수련이라고 쿠키 반죽을 만들었더니 절로 밀 반죽 계열 수련까지 되어 버린 그.

입이 심심할 때 딱 좋겠다 싶어 만든 과자는, 노끈 모양이 신기했던지 이목을 제법 끌었다.

와작와작!

“괜찮군. 소박해 보였는데, 정성이 들어간 맛이다.”

두세 개씩 집어먹는 페르디키온이 또 두 개를 집어 제 입안에 휙휙 던져 넣었다.

본래 예의나 체신을 따지는 놈이 저렇게 먹는 걸 보고 있자니, 나름대로 성공이다 싶었다.

“삐이약!”

백야가 냉큼 날아오더니 타래 하나를 부리로 콕 찝어 가져갔다.

그리고는 가는 발 하나로 타래를 꽉 쥐곤 강력한 부리 짓으로 작게 쪼아먹기 시작했다.

그 곁에서 흑미도 갈빛으로 반들거리는 타래과를 집어 입안에 쏙 넣었다.

“우움! 맛있다아!”

“쿠, 쿠키랑은 또…… 다른 맛이야……. 시, 신기해.”

잘 먹고 있는 이들을 보며, 룬은 속으로 쓰게 웃었다.

‘고향 음식은 주지 말걸 그랬나.’

마음이란 게 참 간사했다.

막상 만들 때는, 옛날 과자 생각이 나서 좀 해봤을 뿐이었는데.

만들다 보니 혼자 먹으면 이상하고, 다른 녀석들도 맛보게 할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건.

‘내 고향 음식을 이 녀석들과 같이 먹는 게 이런 기분이 들 줄 몰랐는데.’

한데 과거 그가 살던 세계의 추억만 품고 있던 이 과자에, 이제는 여기 있는 녀석들의 기억이 묻어버렸다.

장래 희망

오롯이 그의 과거만을 떠올리게 만드는 간식을 나누는 건 묘한 감상에 빠져들게 했다.

‘어쩔 수 없나. 이제 와서 무를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

왁자지껄 떠들며 먹는 이들을 보던 룬은 미미하게 미소를 띠며 주의를 남겼다.

“천천히 먹어도 돼. 많이 만들었으니까.”

룬도 타래 과자를 깨물었다.

바삭!

잘 튀겨진 반죽 껍질이 부서지며 경쾌한 소리가 났다.

그 뒤에 느껴지는 꿀맛.

자꾸 손 가게 만드는 단맛이 입안 가득 머금어졌다.

‘생각보다 잘 만들어졌네. 꿀은 기운을 회복하는 데에 무척 좋기도 하고.’

거대 말벌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이나 필드를 가야 얻을 수 있는 귀한 벌꿀이 입 안 가득했다.

게다가, 로열젤리까지 섞어 넣은 덕분에 심신 회복에도 최상급 효과를 드러냈다.

흑미도 꿀맛에 감탄을 터트렸다.

“우우웅! 너무 맛있어요오. 꼭 입 안에서 꿀이 노란 별처럼 터지는 거 같구요!”

초콜릿과는 다른 달콤함에, 흑미가 양 손을 볼에 대고 웃었다.

페르디키온은 다른 장점을 꼽았다.

“왠지 힘이 차오르는 기분까지 드는 게, 뭐든 할 수 있겠어.”

달콤한 맛을 위해 사용된 꿀.

하지만 그 효능은 마력 음식재료 중에서도 상당했다.

룬은 페르디키온의 말에 호응해주었다.

“응. 피곤하면 이걸로 꿀물을 만들어 먹어도 돼.”

‘특히 술 취했을 때 따뜻한 물에 타 먹으면 그만일 텐데.’

하지만 괜히 술 관련 이야기를 해서 룬에게 좋을 건 없었다.

보나마나 술에 관심 가질 나이가 아니라며, 엄청나게 까일 테니.

그렇게 현명하게 입을 단속하는 사이, 페르디키온은 꿀맛을 즐겼다.

“크. 아주 좋군.”

데운 우유에 꿀을 넣어주자 탁주처럼 쭉 마신 화룡족 소년.

모습만 보면 주막이 배경에 보일 지경이다.

룬은 자연스럽게 달달한 꿀을 먹으며 부족했던 마력과 기운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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