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없는 애들 곰 인형인데?”
철그럭!
룬의 중얼거림에 호응하며 듀라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의 원재료로 대량 생산을 하려다 보니 이렇게 되는군.’
아무래도 쉽게 구할 만한 재료를 대신 넣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듀라한 때처럼 몬스터 육신을 구성할 만한 재료를 넣었다면 몬스터 베어다운 흉악하고 거친 몬스터 외형이 나왔을 테지만…….
나가서 매번 사냥할 게 아니니, 몬스터 사체에서 나오는 재료를 쓰는 건 아까운 짓이었다.
인형이 몸을 일으켰다.
캭!
캬갹!
캬갹?
인형은 몬스터 베어의 성질머리를 이어받은 탓인지 눈초리부터 사나웠다.
곰인형이 울부짖었다.
캬하아악!
“…….”
제 딴에는 공포스러운 괴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룬은 하찮은 하악질을 해대는 세 인형을 보며 턱을 손으로 문질렀다.
“무난하게 잘 만들어진 거 같은데.”
고민하던 룬은 감평을 받아보기로 했다.
모코지석을 꺼낸 룬이 문자열을 펼쳤다.
<다들 어디야?>
그러자, 아멜리아의 푸른색 글씨가 올라왔다.
<우리 모두 수련장에 있어.>
수련장은 수업을 위해 크리스티나가 연습을 위해 마련해 준 장소였다.
마침 좋은 기회라 여긴 룬이 재차 글자를 두드렸다.
<혹시 크리스티나도 거기에 있는 거야?>
<잠깐 자리를 비우셨지만 곧 오실 거야.>
대답을 들은 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군.’
마침 더더욱 평가를 해보기 좋은 장소였다.
룬은 성질을 있는 대로 내며 듀라한의 갑옷을 깨물기 시작한 곰인형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듀라한에게 말했다.
“훈련장에 갈 건데, 같이 갈래?”
철컥!
고개를 끄덕인 듀라한이 제 갑옷에 들러붙어 있는 곰 인형을 움켜쥐고 떼었다.
***
이동 마법으로 훈련장에 도착하자, 밝은 회색빛 석재로 깔린 네모난 판 위에서 흑미와 페르디키온이 한판 붙고 있었다.
“캬앙!”
뾰족한 어금니를 드러내며 소리를 낸 흑미가 빠르게 회빛의 대련장 위를 뛰어다녔다.
어찌나 빠른지, 수련 좀 했다는 사람이 봐도 제대로 좇기 힘들 만한 속도였다.
“하! 겨우 그 정도냐?”
의기양양하게 외친 페르디키온이 불의 고리를 펼쳤다.
“호잇!”
화려한 불꽃의 고리를 민첩하게 넘은 흑미가 불고양이 두 마리를 소환해 페르디키온에게 불을 뿜게 했다.
후루루룩!
정령의 불꽃을 페르디키온이 막았다.
그러나, 막아낸 불꽃이 폭죽처럼 터지며 페르디키온의 시야를 가렸다.
룬은 속으로 감탄했다.
‘흑미 녀석도 제법이네. 애초에 불에 상해를 입을 녀석이 아니니 시야를 봉인했군.’
위로 뛰쳐오른 흑미의 발차기가 정통으로 꽂힐지도 모르는 차.
“거기냐!”
손바닥을 모아 편 페르디키온이 흑미의 발뒤꿈치를 걷어냈다.
“치이이!”
메롱, 하고 혀를 내민 흑미가 중심을 완전히 잃지 않는 선에서 착지했다.
‘놀고 있네.’
놀림이나 농담이 아니었다.
흑미가 공격을 성공시키려면 투기를 완벽히 감추면 되었고, 페르디키온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불의 힘을 발산하면 될 일.
하지만 둘 다 투덕대며 수련 겸 노는 수준이다 보니,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고 있었다.
룬은 몽글몽글하게 손에 큰 물 공을 만들고 있던 아멜리아 옆으로 다가갔다.
“앗……와, 왔구나 룬. 듀라한도 아, 안녕…….”
절그럭!
거대한 갑옷 기사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근데…… 그, 그건 뭐야?”
물빛 소녀의 의문 어린 시선이 듀라한의 양 팔과 어깨를 깨물고 있는 인형에게 향했다.
대답은 룬을 통해 나왔다.
“새로 만든 인형이야.”
그 말에 아멜리아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갸아아아앙!
당장이라도 물어버리겠다는 의지 충만해 보이는 곰인형.
아멜리아가 의아하게 물었다.
“있잖아, 룬. 이, 인형……은 원래…… 이런 거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그녀가 아는 인형은 좀 더 보송보송하고 말랑한 이미지였다.
아이들의 친구라고 불릴 정도로, 인간의 어린아이들이 만져도 전혀 위험하지 않은 종류였다.
하지만 듀라한의 팔과 허리 여기저기를 깨물며 씩씩거리는 저 흉포한 행동은 그녀의 상식과 전혀 달랐다.
룬이 설명했다.
“모습은 저렇지만, 쓰임은 전투 연습용이라서 그래.”
“아…….”
어느 정도 답이 되었는지 아멜리아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번엔 룬이 물었다.
“저 둘은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어?”
“으음, 얼마 아, 안 됐어. 밥도 먹었고…… 찌, 찌뿌둥하다며 식후 운동을…… 하자더니 여기 온 거라…….”
그렇게 말하는 아멜리아는 저 대련에 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룬의 시선이 다시 흑미와 페르디키온 쪽으로 옮겨졌다.
어제 밤새워 놀고도 오히려 찌뿌둥하다며 대련이라니.
또 한 차례 맞붙더니 불꽃이 펑펑 튄다.
정말 힘이 넘치는 녀석들이었다.
‘쉬는 게 더 힘든 녀석들 같으니라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노는 흑미와, 반대로 계속 생산적인 뭔가를 해야 하는 페르디키온.
즐기는 방향성이 전혀 다른 둘이 이렇게 쿵짝이 잘 맞을 줄이야.
‘급할 건 없으니 좀 기다려볼까.’
룬이 팔짱을 끼고 잠시 지켜보고 있자, 흑미가 룬에게 먼저 시선을 돌렸다.
“앗, 언제 왔어요? 룬 님!”
손을 붕붕 흔드는 흑미에 이어, 페르디키온 역시 전투 자세를 풀고 룬을 바라보았다.
진즉 룬의 기척을 알고 있었지만 놀이라도 전투에 임하는 중이라 인사를 미뤘었던 그였다.
룬과 시선을 마주친 페르디키온이 인사했다.
“왔나.”
그리고, 듀라한 쪽에 시선이 옮겨졌다.
캭!
캬캭!
캬-하악!
화룡족 소년 시선의 종착지에는 귤색, 분홍색, 아이보리색 곰인형들이 있었다.
힘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천 이빨을 세워 듀라한의 몸을 뜯고 있는…… 아니, 거의 열매처럼 매달려있는 모습은 페르디키온과 흑미에게 다른 감상을 느끼게 했다.
“대체 저 괴상한 건 뭐냐?”
“앗, 이게 뭐예요? 엄청 귀여워요!”
함박웃음을 꽃피우며 관심을 보내는 흑미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대놓고 싫어하는 페르디키온.
룬은 둘에게 설명해주었다.
“내가 만든 전투 수련용 인형이야. 기본 습성은 몬스터 베어의 것이고. 좀 전에 내가 만들어 봤어.”
“호오오……수련이면, 이 곰인형이 흑미랑 수업 같이 하는 거예요?”
“저따위 걸?”
의문으로 눈을 반짝이는 흑미와 눈으로 하찮아하는 페르디키온.
룬은 귤색 곰인형을 손으로 떼며 말했다.
“사용해 보고 쓸만하면 좀 더 만들어보려고. 개선점이 나오면 보완도 하고.”
어린 어둠 일족 꼬마의 손에 잡힌 게 불만스러웠는지, 귤색 곰인형이 발버둥을 치며 이를 드러내고 뻐끔거렸다.
갸갸캬갸갸갸갹!
“…….”
모습만 보면 당장이라도 입에 거품을 물며 달려들 것 같이 생긴 귤 곰인형.
한 대 패고 싶어진 페르디키온이 인형을 노려보았다.
“확실히. 처맞아도 괜찮아 보이는군.”
뚜뚝!
화룡족 소년의 손에서 뼈 꺾는 소리를 뒤로하고 흑미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우웅! 흑미는 아쉬워요. 데려가서 키워보고 싶은걸요!”
룬이 단번에 거절했다.
“안 돼. 나중에 다른 걸로 만들어 주든가 할게.”
“히잉.”
검지를 턱에 댄 흑미가 아쉽다는 듯 귀를 쫑긋거렸다.
‘차라리 좀 사납게 만들었어야 했나?’
고민해 봤지만, 역시 원가 절감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
‘일단 써보면 알겠지.’
나중에는 더 귀하고, 더 강력한 인형도 만들게 될 터.
그때를 생각하면, 대량으로 만들어 공급할 수 있는 지금 퀄리티로 쭉 밀고 가고 싶었다.
잠시 떠들며 기다리고 있자니, 워프 마법이 활성화되었다.
아름다운 황금빛 머리카락을 지닌 크리스티나가 나타났다.
“어머, 룬. 듀라한까지. 웬일이니?”
비록 ‘위대한 혼’을 지닌 전사로서 대우해 주기 시작한 그녀지만, 듀라한은 의무를 중시해 스스로 검은 방을 잘 나서지 않았다.
그러니 기별 없이 듀라한이 이 장소에 있는 건, 크리스티나에게 다소 의외였다.
심지어, 두 마리의 곰인형에게 물어 뜯기는 중이라면 더욱.
그녀의 푸른 시선이 룬을 향했다.
“보아하니 우리 개구쟁이가 또 뭔가 한 모양이구나.”
룬이 답했다.
“응, 내가 만들어 본 거야. 용도는 우리 수업과 관련된 훈련으로. 써도 될지 봐줄래?”
“흐음.”
사뿐하게 걸음을 옮긴 크리스티나가 룬이 들고 있는 곰인형을 내려다 보았다.
“그래, 어디 보자꾸나.”
청안의 눈에 드래곤의 동공이 드러났다.
그리고, 지배종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친 곰인형이 흠칫 몸을 굳혔다.
어떻게 때려야 할까?
눈치를 보던 곰인형들의 반응이 바뀌기 시작했다.
캬갸갸갸갸……갸갹?
갸우?
곰인형들의 고개가 갸우뚱하더니 세상 누구보다 온순한 얼굴이 되었다.
보고 있던 룬이 다 어이없어질 지경이었다.
‘이 곰돌이 자식들이……?’
어찌 보면 당연하긴 했다.
드래곤은 최상위 지배종.
마주하는 것 만으로도 본능이 위험을 경고하는 생명체였다.
그래도 그렇지.
약육강식이 몬스터들 본능이라지만, 저렇게까지 태도가 싹 바뀌다니.
사자 앞에 놓인 쥐마냥 세 곰돌이 인형은 옹기종기 모여 오들오들 떨었다.
인형들을 살핀 크리스티나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 보이는구나. 어떻게 만들어진 거니?”
웃음을 띤 크리스티나의 말에 룬이 대답했다.
“<저주 도구 만들기 세트>로 얻은 몬스터 사체랑 재료를 조합해서 만든 거야.”
“흐으음.”
크리스티나는 전부터 <저주 도구 만들기 세트>를 그리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최대한 주의해서 쓰라고 당부를 남길 정도였으니.
하지만 달달 떨고 있는 곰인형들을 쭉 살핀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있어도 괜찮을 듯하구나.”
분명 허락이었지만, 룬은 재차 확인했다.
“그럼, 이 인형들 더 만들어 써도 돼?”
“그래. 오히려 이 정도라면, 가끔 수업 교재로 쓰고 싶어질 정도구나.”
“!”
룬이 얼른 말을 받았다.
“필요할 때 말해주면 만들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