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갹! 캬갸갹! 캬갸갸갸갹!
그 사실을 모르는 핑키는 상대를 기선제압를 했다 여겼다.
갸아아아아!
곰돌이 핑키는 만세 자세로 두 앞발을 벌렸다.
두둥!
그 포즈가 외치는 듯했다.
겁먹어라! 내가 최강이다!
아멜리아는 웃지 않기 위해 시선을 피했다.
‘귀, 귀여워!’
어깨가 절로 바르르 떨렸다.
‘앗, 안 돼 아멜리아. 정신 차려.’
고개를 마구 저어낸 아멜리아가 손을 꼭 쥐었다.
“그럼, 시작해.”
룬이 신호를 주었으나 그녀는 여러 가지 의미로 곤혹스러웠다.
‘으음, 어떻게 때려야 할까?’
빈틈이라면 정말 많았다.
오만하게 젖혀진 곰인형의 상체 하며, 어깨며 등. 다리까지.
아멜리아는 과녁을 두고 고민했다.
‘너무 많이 때리는 것도 미안하고…… 최대한 안 아프게 때리고 싶은데…… 아! 이거면 될까?’
아멜리아가 택한 건 딱밤.
손가락을 비비며 만지작거리던 그녀에게, 곰인형이 츄르릅 입맛을 다시며 다가왔다.
갸아아앙!
한때 밀림을 호령하던 몬스터 베어.
잔혹한 몬스터의 기억을 지닌 인형이 빠르게 그녀를 덮쳤다!
“에, 에잇……!”
오른손을 쭉 뻗은 아멜리아가 검지를 튕겼다.
그리고.
퍼어어어엉!
솜이 터져 나오는 소리가 나며, 곰인형의 몸이 장외로 튕겨져나갔다.
솔직히 말해보렴
헉 하고 숨을 삼킨 아멜리아가 청아한 눈을 크게 떴다.
“아!”
눈물방울을 허공에 흩뿌리며 날아가는 곰.
그리고 솜덩이.
털썩!
데구르르
몸을 떤 분홍색 곰인형은 만만하게 봤던 아멜리아를 돌아보지 못했다.
고작 딱밤이 저런 파괴력을 가진 이유를 룬은 이미 알고 있었다.
‘드래곤인데다, 심해의 압력은 지상의 몇십 배는 넘으니까.’
본체가 드래곤이라 견디기 수월할 뿐, 룬 역시 처음 물의 레어에 갔을 때 압박이 꽤 느껴졌었다.
거기서 태어나 살아온 아멜리아.
괴력을 키워온 거나 다름없었다.
여리여리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심해 속에서 마음껏 창을 휘둘러왔으니까.
“어, 어떻게 해……?”
아멜리아는 안절부절못하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미안해…… 룬.”
“괜찮아. 나한테 미안해 할 거 없어.”
‘지상에서 힘을 쓰는 게 어떤 일인지 깨닫게 하는 것도 필요했고.’
그나마 크리스티나의 레어 안이기에, 지금은 평범하게 힘을 써도 상관없다.
하지만 인간세상에 나가기 위해서, 아멜리아는 평소보다 힘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잘됐다 여긴 룬이 입을 열었다.
“여긴 네가 살던 물의 레어가 아니야. 압박도 훨씬 적고 움직임을 억제하는 바다도 없어. 우리야 워낙 튼튼해서 괜찮았지만, 인간들은 아마…….”
말하던 룬의 시선이 터진 곰인형을 향했다.
“……저 정도려나. 수련 좀 했다는 사람이라도 저 인형보다 좀 더 단단한 정도일 거야.”
“내, 내가……그렇게 힘이 세?”
“응.”
내심 무척 놀란 아멜리아가 되묻자, 룬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으응, 알겠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 아멜리아가 다시 시선을 분홍 곰인형에게 향했다.
흠칫!
눈이 마주친 곰인형은 실밥이 돋을 것 같은 눈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내심 당혹스러웠는지, 아멜리아가 곤란한 듯 중얼거렸다.
“아…… 이렇게까지 하려던 건 아, 아니었는, 데.”
난감해진 아멜리아가 눈 둘 곳을 몰라하는 사이, 룬은 속으로 고민했다.
‘전투 수련용이라, 질긴 심해 몬스터 거죽도 섞은 건데…… 아멜리아의 손에 저렇게 쉽게 터질 줄은.’
곰인형이 부드러운 감촉을 가진 건 맞지만, 이건 너무 약했다.
고민하던 룬은 결심했다.
‘더 강한 인형을 만들어야겠어.’
페르디키온은 아직 시험해 보지 못했지만, 이미 결과는 나온 거나 다름이 없었다.
첫 번째 인형은 흑미의 불의 정령을 피해 도망치느라 바빴고, 두 번째 인형은 아멜리아의 딱밤에 솜이 튀어나왔다.
곰인형들은 능력을 키우기 위해 써야 할 도구인데, 너무 약했다.
‘더 강한 인형을 만들려면 더 강력한 재료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이빨 요정의 수집품 중 강력한 놈의 이빨을 써야 해.’
‘몬스터 베어 유치’ 정도는 구하기 어려운 편이 아니다.
하지만 더 강력한 걸 만들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몬스터의 치아가 필요했다.
생각과 동시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함께 떠올랐다.
‘크리스티나에게 이빨 요정에 대해 제대로 말해야겠어.’
인형 제작이야 이빨 요정이 수집해 둔 재료를 털면 당장이라도 만들 수 있다.
단, 핵심 부품인 몬스터의 이빨과 사체가 문제였다.
만든 인형은 숨길 수도 없고, 크리스티나가 본다면 재료의 출처에 대해 분명 궁금해할 터.
미리 그에 대한 설명을 해 두어야 했다.
결심을 마친 룬이 말했다.
“나 크리스티나에게 다녀올게. 얘들 좀 봐주라, 형.”
“무슨 일이길래 그러냐.”
페르디키온의 물음에 룬이 적당히 대답했다.
“인형을 좀 더 튼튼하게 만들고 싶어서. 뭘 좀 물어보려고.”
룬의 말만 들으면, 단순히 인형의 성능에 대한 조언을 구하겠다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페르디키온은 룬을 지그시 노려보며 팔짱을 꼈다.
“또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니냐? 크리스티나 님께서 허용해 줄 일이라면 말 안 해도 알아서 만들어 보는 게 아우님이잖나.”
“…….”
‘이 자식 눈치 빠르네.’
자세한 사정까지 파악한 건 아니지만, 화룡족 소년의 말은 제법 정확했다.
더 위험한 재료를 쓰기 위한 허가를 받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룬은 태연히 대꾸했다.
“크리스티나가 주문할 인형을 만들어 주기로 했으니까. 겸사겸사 어떤 인형이 좋을지 상의도 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래.”
이야기를 들은 페르디키온의 시선이 영 수상한 녀석 보듯 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다시 정면으로 돌렸다.
“알겠다. 맡기고 다녀와라.”
“응. 이따 봐.”
대답을 마친 룬은 흑미와 아멜리아에게도 짧게 용건을 말해 두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크리스티나의 통신용 마법석을 꺼내 연락했다.
<룬? 무슨 일이니.>
영상과 음성을 주고받는, 마법사들의 수정구보다 훨씬 선명하고 또렷한 모습과 목소리였다.
“어디야?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이번에 새로 만든 약초 재배소란다. 이곳으로 오겠니?>
‘약초 재배소라고?’
룬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약초 재배소>는 지금까지 들어 본 적 없는 장소였다.
만드라고라처럼 특이한 마법약초가 자라기야 하지만, 그것도 레어 밖에서 자라게 두고 있었다.
잠깐 생각해 본 룬은 곧 이유를 깨달았다.
‘이번에 엘프 왕국에서 괜찮은 약초 씨나 구근을 받은 모양이군.’
저번 일로 엘프 왕궁과 교류가 생긴 게 분명했다.
“응. 가보고 싶어.”
<그럴 것 같았단다. 너를 소환할 테니, 통신석을 끄고 기다리렴.>
통신석을 종료하며 룬은 새삼 그녀의 능력에 감탄했다.
‘아무리 크리스티나의 레어 안이라지만, 그런 마법을 아무렇지 않게 즉석에서 시전한다니.’
자신이나 일행을 데리고 이동하는 것도 상위마법이지만, 살아있는 생물을 소환하는 건 더욱 윗 단계의 마법이었다.
곧, 크리스티나의 포근한 빛의 마력이 룬의 몸을 감쌌다.
‘이렇게 안정적으로 이동시키는 마법사가 과연 얼마나 될까.’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마법에서 안정감을 느끼다니, 기분이 묘했다.
곧, 눈을 뜨기도 전에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따사로운 햇빛.
코 끝으로 쌉싸름한 향과 흙냄새.
피부에 닿는 공기에서 풀의 싱그러움이 느껴졌다.
“룬, 여기란다.”
고개를 돌리자, 금발을 땋아낸 크리스티나가 가죽 멜빵을 입고 장갑 낀 한 손을 흔들어보였다.
얼핏 보면 꽃집 아가씨처럼 보이기도 했다.
설긴 감촉의 흙을 밟으며, 룬이 크리스티나에게 다가갔다.
룬의 시선에 밭, 화분, 모종을 심은 물 빠지는 상자 따위가 눈에 들어왔다.
“어떠니, 룬. 작지만 제법 구색은 갖추지 않았니?”
작다라.
아마 드래곤 본체의 시점에서 보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누가 이걸 작다고 생각하겠어.’
커다란 땅덩어리가 공중 여기저기에 떠다니며 물을 받고, 가장 적절하게 빛이 비치는 장소를 알아서 찾아다녔다.
누군가 여기 와서 이 약초 재배소를 본다면, 드래곤의 마력으로 못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룬은 그녀가 만든 약초 재배소에 대해 짧게 감상을 표했다.
“마치 공중정원 같아.”
“그렇네. 비슷하겠구나. 저 위쪽을 한번 보겠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 크리스티나가 손가락으로 가장 위에 떠 있는 땅을 가리켰다.
“저기 심어진 건 높은 지대에서 키워야 하는 약초란다. 그리고 중간지대와 낮은 지대에서 키울 약초들을 구분했지.”
손을 움직여가며 하는 설명에, 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하다. 나중에 나도 배워두고 싶어.”
룬의 말에 크리스티나가 살풋 웃어보였다.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가르쳐 줄 수 있단다. 내가 준 지식을 조금만 활용하면 이 정도 설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 나중에 꼭 알려줘.”
룬은 무해한 얼굴로 답했다.
마침 온 김에 들어도 좋겠지만, 지금은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었다.
한 호흡 쉰 후, 룬이 말문을 열었다.
“사실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어.”
“말해보렴.”
“이빨 요정이란 걸 봤는데, 알아?”
“물론이지. 룬, 벌써 유치 빠질 시기가 되었니?”
크리스티나의 물음에 룬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미리 점 찍어두고 싶었다던데.”
잠깐 생각에 잠겼던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건 좀 이상하구나. 나 역시 어릴 때 이빨 요정이 다녀갔지만, 그런 일은 없었거든.”
그녀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읊조리듯 이어말했다.
“이가 흔들릴 때까지도 모습을 보이지 않다, 빠졌을 때 자연스럽게 가지고 사라졌지. 원래 이빨 요정은 함부로 모습을 보이지 않거든.”
그 말을 들은 룬은 예상이 적중했음을 느꼈다.
‘저게 평범한 경우였군.’
마족과 거래한 이빨요정이라니.
애초에 특이하긴 했다.
룬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역시 이상하지? 안 그래도 확인해보니 저번에 본 마족, 레파논의 사주를 받고 왔다더라고.”
그 말에 크리스티나의 얼굴이 무섭게 구겨졌다.
“그 쓰레기 같은 놈이 너에게 무슨 짓이라도?”
평화로웠던 공기가 일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룬은 속으로 생각했다.
‘참고 있군. 혹여 내가 두려워하기라도 할까 봐.’
지금, 그녀는 본능적인 살의를 참는 중이다.
천 년 동안의 적.
그리고, 그녀가 보호하는 해츨링을 건드렸다는 사실.
이 두 가지 중 하나만 사실이어도 진노를 부를진데, 하필 둘 다 룬과 얽혀있으니.
분통이 터져 피를 토할 지경이어도 납득이 갈 상황이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당장 마계로 넘어갈 기세인 그녀에게 룬은 침착하게 말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