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화 (199/242)

어차피 대체품을 만들 예정이었으므로, 룬은 일행들을 자리에 앉게 했다.

“케이크 먹으면서 이것 좀 봐주라.”

룬은 곰인형이었던 것을 넘겨받아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케이크를 썰어먹기 시작한 일행들에게 또 다른 모양의 인형을 하나씩 선보였다.

“핵심적인 부분만 적용해서 대충 만들어본 거야. 우리가 쓸 테니 같이 보고 의견이나 들어보려고.”

음식 재료에는 다양한 특징이 있다.

불에 강하거나, 물에 강한 것.

물리적인 타격에 강한 것 등.

마력을 품은 재료들 중에는 몬스터 고기와 뼈, 가죽도 꽤 많았다.

가장 먼저, 룬이 오징어 인형을 들어보였다.

“이건 크라켄의 다리로 만든 오징어 인형이야. 만져보면 알겠지만, 쫄깃한 탄력이 있으면서 단단한 게 특징이지.”

“흐음!”

입 안에 사과파이를 문 페르디키온이 빠르게 입 안을 비우고 말했다.

“그렇군. 크라켄의 강도라면 어지간한 타격은 잘 견뎌주겠어.”

그 말에 아멜리아가 은근한 화색을 드러냈다.

“내 따, 딱밤에 망가지지…… 아, 않는다는 거지?”

“맞아.”

커스터드 크림과 빨간 체리가 올라간 머핀을 오물거리던 아멜리아의 눈이 반짝였다.

이번에는 소 모양 사탕 공예품을 든 룬이 말했다.

“이건 불 속성 몬스터 고기로 만든 황소 인형이야. 육질도 단단하지만, 불을 머금을수록 깃든 기름이 반응해서 불을 더 크게 키우지.”

불에 관한 면역은 물론, 오히려 불로 인해 더 강해지는 몬스터 인형.

페르디키온이 미간을 한 차례 꿈틀 움직였다.

“이건 가고일 인형. 비행 타입으로 만들어질 예정이야.”

“하늘을 날아요?”

흑미의 물음에 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흑미 너 요즘 공중전 연습한다고 했지?”

“힛.”

룬에게 자랑할 기회라 여긴 건지, 흑미가 손을 크게 벌려가며 말했다.

“네! 흑미랑 정령들이랑 함께하면 공중에서도 싸울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말을 들은 페르디키온이 팔짱을 끼며 한 소리 거들었다.

“그 가능성을 제안한 게 룬, 너라고 들었다. 훌륭하더군.”

“내가?”

룬의 되물음에 흑미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듀라한과의 전투 수업 후에요!”

“아.”

그 말을 듣자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투 후 복기하는 시간에 그런 말을 했지.’

아멜리아 다음으로 그물과 표창에 걸려 탈락한 흑미.

아쉬움이 무척 컸던지 열심히 전투에 대한 분석을 궁금해 하기에 룬이 제안한 게 있었다.

바로 흑미의 심복.

불의 정령에 대한 이야기였다.

혹시…… 술?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하긴 했지.’

그건 듀라한과의 대전 이후, 흑미와 바닥에 생긴 전투의 잔해를 보며 이야기 하던 중 생긴 일이었다.

“히잉! 공중에서 움직일 수 있으면 피했을 텐데, 너무너무 아쉬워요.”

그물에 걸려 패했던 자리에 이르자, 흑미는 분한지 조그마한 주먹을 꼭 쥐었다.

귀와 꼬리를 바르르 떨며 세우는 걸 보니, 어지간히 분하긴 했던 모양이다.

‘하긴, 공격 자체는 단순했지. 방향을 틀기만 하면 쉽게 피했을 테니.’

경공술(輕功術)을 알려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기를 다루거나 내공을 쌓은 적 없는 흑미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허공을 밟는 정도는 가능하겠지. 하지만, 전투에 써먹을 정도가 되려면 날아다니는 수준이어야 할 텐데.’

날아다닌다……?

문득 좋은 생각이 머리에 스친 룬이 흑미에게 말했다.

“네가 데리고 있는 불의 정령들은 하늘에 떠 있잖아. 그걸 응용해보면 어때? 예를 들면…….”

마침 적절한 녀석을 떠올린 룬이 미미한 웃음을 지었다.

“아멜리아의 ‘라멜’처럼.”

“앗!?”

흑미가 탄성을 터트렸다.

심해를 마음껏 헤엄치며 돌아다니던 돌고래 정령.

엄밀히 말해 그 돌고래 정령이 하늘을 날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심해의 저항을 거의 느껴지지 않고 마음대로 다니던 그 모습.

그건 ‘자유로운 비행’에 대한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룬이 말을 이었다.

“정령…… 그 불고양이들은 네가 키우기에 따라 다르게 성장하지. 그러니 한번 고민 해 봐.”

“우음.”

고민하듯 잠깐 고개를 숙였던 흑미가 얼굴를 반짝 치켜들었다.

“네, 알겠숩니다!”

화사하게 웃어 보인 여우수인을 마지막으로 회상을 마친 룬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흑미를 바라보았다.

‘의욕적이긴 했다만, 설마 벌써 완성했을 줄은.’

본래 불도마뱀이었던 하급 살라만다를 고양이의 형태로 성장시킨 흑미다.

심지어 불고양이들은 허공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으니, 방법을 찾아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만, 결과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정령을 직접 키워낸 흑미에게 맡기는 편이 옳았군. 출중한 재능이야.’

내심 감탄하고 있는데, 흑미가 눈을 빛내며 물어왔다.

“룬 님 궁금하죠? 흑미가 쪼금만 보여줄까요?”

식사 중이니 지금은 하지 말라고 했다간 귀를 축 늘어뜨리며 아쉬워 할 눈치였다.

룬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잠깐 보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어차피 간식 먹으면서 쉬는 시간인데.’

허락이 떨어지자, 흑미가 자리에서 폴짝 뛰어 바닥에 착지했다.

“시작할게요!”

그리고는 씨익 웃으며 가슴에 달린 붉은 브로치를 손에 쥐었다.

“이리 와, 삼식아!”

화르륵!

공중에 불길이 피어오르더니 불 고양이가 바닥에 착지했다.

솔직히 말해, 고양이의 크기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과연 어떻게 해결했을까.

룬은 흥미로운 시선을 던지며 생각했다.

‘탑승하기는 좀 애매한 덩치인데.’

아멜리아의 바다의 정령 라멜은 거대한 돌고래 모습이었기에 룬 일행 모두를 태우고 다녔다.

하지만 불고양이는 그러기엔 너무 날씬하다.

지켜보고 있자니, 흑미가 자신의 옷자락을 뒤적이더니 오색저고리 색의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쨔안!”

그 안에서 흑미가 꺼낸 건 붉은 마력석 조각이었다.

그리고, 그 조각은 불고양이의 입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호로록!

마력석을 삼킨 불고양이, 삼식이의 몸에서 불길이 일었다.

그리고 살짝 몸이 커지는가 싶더니.

화르륵!

불고양이의 등 뒤에 불꽃으로 된 날개가 펼쳐졌다.

“와아!”

아멜리아가 감탄을 터트리며 살짝 입가에 손을 올렸다.

동시에, 흑미가 가볍게 뛰어 삼식이 위에 올라탔다.

“쨔안! 어때요?”

아직 어린 흑미였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지만, 이만하면 제법 괜찮았다.

‘좋은데. 흑미는 불 속성 친화력까지 높다. 정령이 공격할 때 해를 입을 일도 없지.’

기본적으로 정령은 주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지만, 강한 힘을 사용할 시에는 정령사도 다칠 수 있었다.

하지만 흑미의 불 속성 친화력은 진작에 상급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 없었다.

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했어. 괜찮은 방법이네.”

“와아아!”

룬의 칭찬에 흑미가 만세를 불렀고, 삼식이까지 의기양양하게 우아한 포즈를 잡았다.

페르디키온이 이 상황을 보며 평했다.

“흠, 꽤 하지 않나. 정령들과 교감하며 능력을 끌어낸 모양이니.”

룬도 긍정하며 말을 덧붙였다.

“그러게. 설마 이렇게 빨리 능력을 개화시킬 줄은 몰랐는데.”

룬이 동의하자, 흑미가 기분 좋은지 꼬리를 세웠다.

“삼식아! 살살, 조금만 날면서 걸어봐.”

후르륵!

대답 대신 불길을 한 차례 피워 올린 불 고양이가 발을 굴렀다.

고양이와 흑미의 몸이 더욱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공중을 사뿐사뿐 걷기 시작했다.

일행들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을 만큼 높이 올라간 흑미가 고개를 쏙 빼며 생글생글 웃었다.

“흑미가 이름도 붙였어요. ‘고양이 하늘 산책!’”

룬은 속으로 피식 웃음을 삼켰다.

‘이름은 평화로워 보인다만, 실상은 뛰어난 기동 능력이라.’

지상 육탄전 위주로 싸웠던 흑미.

하지만 이젠 싸움방식도 달라지게 생겼다.

불의 정령의 도움으로 서포트를 받을 수도 있고, 공중에서의 전투까지 가능하다니.

아주 유용한 능력을 개발해 낸 셈이었다.

룬의 시선이 삼식이에게 향했다.

“삼식이만이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모두 ‘고양이 하늘 산책’이 가능한 거고?”

“네!”

씩씩한 흑미의 대답에 룬은 생각했다.

아무대로 다음 수업에서 흑미의 활약이 클 것이라고.

‘보아하니, 저 불 고양이 녀석은 속도도 꽤 빨라 보였는데.’

심지어 그런 정령이 한 마리도 아니고, 최대 다섯 마리.

절로 칭찬의 말이 나왔다.

“잘했어, 흑미.”

“고마워요, 룬 님!”

즐거워하는 흑미의 기분을 함께 느끼는지, 삼식이도 고릉고릉 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룬은 불의 날개를 흔드는 불고양이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거, 조만간 불 계열에 강한 인형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군.’

“삐이약!”

그때, 백야가 나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날개를 파닥이며 삼식이 근처로 날아올랐다.

“힛, 백야야! 얼른 이리 와 봐!”

“삐약?”

흑미의 부름에 바로 근처까지 도달한 백야.

“이거 봐 봐, 백야야.”

“삐……?”

흑미가 삼식이를 타고 전후좌우로 움직였다.

“백야도 해봐, 요렇게!”

백야가 어설프게 그들을 따랐다.

“삐, 삐약!”

“오옹, 잘한다!”

룬은 그 광경을 보며 속으로 흐뭇해했다.

‘둘이 아주 잘 노는군.’

비록 새, 여우, 고양이라 그런지 백야가 쫓기는 감은 있었지만.

그런 건 살짝 눈감아 줄 수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애들끼리 잘 놀면 됐다.’

시제품으로 보인 인형들 반응도 좋았겠다, 성장한 흑미도 확인하고 백야가 잘 쫓기는…… 아니, 노는 광경도 보았겠다.

룬은 느긋하게 버터 파운드 케이크를 썰었다.

‘맛있네.’

달콤한 꿀과 바닐라, 고소한 버터 밀크향이 가득한 빵이 입안에서 사르르 부서졌다.

포슬한 단맛을 느끼며, 룬은 여유롭게 입을 움직였다.

내일부터는 제대로 된 수업이 시작될 터.

그새 성장한 흑미와 강도 높은 수업을 통해 어떤 배움을 얻어가게 될지.

흑미가 삼식이와 공중제비를 도는 모습을 구경하며, 룬은 조용히 기대 어린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룬은 예상치 못한 수업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미묘한 낌새를 느낀 건 수업에 참여하기 전, 반드시 인간 모습을 유지하라는 지령이 전해졌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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