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6화 (206/242)

같이 먹을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니 따로 만들어 둔 모닝빵 샌드위치였다.

[아무래도 튀김은 시간이 지나면 맛이 좀 떨어지니까 말이지.]

그 외에, 다양한 음식들을 만든 룬은 모코지석으로 저녁식사 시간을 알렸다.

<식사 준비 다 됐어.>

검은 글씨로 된 마력문자가 전송되자, 속속들이 다른 색의 글씨가 줄지어 떠올랐다.

가장 먼저 뜬 건 붉은 글씨의 페르디키온.

<지금 가겠다.>

다음은 분홍색 글씨의 흑미였다.

<흑미, 기다렸어요! 언니랑 갈게요!>

“?”

한 녀석이 조용한데.

응접실로 접시를 다 옮긴 후 황금 팔찌를 껴 인간 형태로 바꿀 즈음에서야 제드의 뒤늦은 답장이 왔다.

<그림 그리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듀라한 군 몸이 좀 좋은 게 아니어서 그만. 얼른 가겠습니다요!>

피사체가 워낙 좋았던 건 맞지만, 제드도 푹 빠졌던 모양이었다.

이어, 룬은 크리스티나에게도 통신석을 통해 따로 연락을 남겼다.

<크리스티나, 식사 준비 다 했어.>

마력석으로 보이는 크리스티나는 흙이 묻어있음에도 건강미가 넘치는 싱그러운 매력을 드러냈다.

<그러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괜찮다면 먼저 먹고 있으렴.>

룬은 그러겠다고 답장을 보내곤 모이기 시작한 이들을 바라보았다.

킁킁거리며 코를 움직인 흑미가 가장 먼저 환호성을 터트렸다.

“튀김 맛있겠다아!”

고개를 끄덕인 룬이 스파게티를 분배했다.

그리고 큰 접시마다 가득 올라간 튀김의 산에 대해 설명했다.

“제일 왼쪽 접시는 게살크림 크로켓. 중간 접시는 계란 크로켓. 마지막 접시는 치즈 감자 크로켓이야.”

기왕 만든 김에, 치즈 없는 감자 크로켓이 담긴 바구니도 보여준 룬이 따뜻한 그릇을 내밀었다.

“스파게티는 간단하게 토마토 스파게티로 만들었어.”

“잘 먹겠숩니다!”

“고…… 고마워, 룬.”

신선하면서도 맛이 잘 응축된 토마토를 쓴 스파게티는 흑미와 아멜리아에게 호평을 받았다.

후루룩!

“후아아. 너무 맛있어요!”

복스럽게 면치기를 해 먹으면서도 흘리지 않는 스킬을 보여준 흑미가 감탄하고.

“정말……이야. 룬, 요리…… 지, 진짜 잘해.”

후후, 하고 아직 뜨거운 면을 얌전하게 오물거린 아멜리아도 고마워했다.

한편, 스파게티보다 튀김의 산에서 금덩이를 캐듯 게살크림 크로켓을 집은 페르디키온.

바삭.

한 입 베어 문 그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맥주…….”

“?”

“아, 아니다.”

룬의 시선에 시치미를 뚝 떼는 화룡족 소년.

하지만 룬은 이미 맥주에 대해 떠올리고 말았다.

“드워프들이 마시던 그거?”

“그래. 나도 모르게 떠올랐다.”

페르디키온은 최대한 말을 아끼고 특제 소스에 크로켓을 찍어먹기 시작했다.

의도는 명백했다.

보나 마나 맥주에 괜한 관심을 가질까 봐 더 이상 말하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

‘하긴, 원래 전에 막걸리인데.’

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풍겼을 때부터 비슷한 생각을 했던 룬.

그는 가늘게 채 썬 감자와 하얀 모차렐라 치즈로 만들 감자전 끄트머리를 뜯어내 입 안에 가져갔다.

합!

적당히 짭조름한 부쳐진 감자의 맛.

거기에 누룽지 치즈의 풍미.

“후.”

‘맛있다.’

그리고 탁주가 그리웠다.

룬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주모…….”

“주…… 뭐?”

잘 듣지 못했다는 듯 페르디키온이 물어오자, 룬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만들 때는 간식 겸 식사로 간단히 먹을 생각을 했건만.

먹어보니 술상이 간절한 맛이었다.

아멜리아와 흑미는 아삭한 샐러드와 더불어 맛있어하며 먹었지만.

바삭바삭.

페르디키온은 맛이 무척 좋았는지 입을 쉼 없이 움직이면서도, 자꾸 맥주 생각이 나는지 한 번씩 아쉬운 눈치로 레모네이트를 쳐다보았다.

그때, 제드가 응접실에 도착했다.

“워후우! 이게 웬 술상이랍니까?”

“!”

그 순간 페르디키온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룬 역시 제드에게 눈치를 주었다.

‘저놈이. 애들 있는데 어디서 술 이야기를 꺼내고 있어.’

처음에는 시선의 의미를 몰라 의문 어린 눈으로 룬과 페르디키온을 보던 제드.

“!”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제드가 흑미 눈치를 보았다.

안타깝게도, 제드의 외침은 너무 컸고 흑미는 청력이 무척 좋은 편이었다.

“술상이요?”

여우귀를 쫑긋거린 흑미가 갸웃, 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사심 없이 물어오는 흑미의 모습은 귀여웠지만.

제드는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 되었다.

으아아악!

제드의 마음에서 비명이 들리는 듯했다.

룬이 포크를 꽉 쥐고 지그시 제드를 노려보았다.

만약, 여기서 수습 못하면 죽는다.

그런 의미를 담아서.

“그…… 그게 말입니다.”

식은땀 뻘뻘 흘리기 시작한 제드가 황급하게 변명을 시작했다.

“술……사! 말입니다. 술사!”

“으응? 아닌데요. 분명 술상이라고 한 거 같은데!”

제드는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아이고! 아닙니다 흑미 님! 혀가 꼬여서 넘어져부린 그시지요! 아이고 혀 꼬혀라!”

그러면서 혀를 호롤롤롤 거리며 굴리는 모습은 꽤나 처절했다.

룬은 생각했다.

저걸, 누가 속냐고.

하지만 흑미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순진했다.

“혀 꼬힌거에요? 요케요?”

제드의 입모양과 최대한 비슷하게 해 보며 흑미가 으항!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제드 아저씨, 이거 이상해요. 근데 재밌다!”

까륵 거리며 웃은 흑미의 관심은 다행히도 혀 꼬인 소리로 옮겨갔다.

제드는 한 술 더 떠서 온 몸을 불살라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에이, 그건 너무 귀여우시다구요! 후룹떼렐떼렐레레! 야후우~꾸루꾸후우! 이 정도는 해야 진짜 꼬인거죠!”

어떻게든 흑미의 관심을 붙들기 위한 그 몸부림.

저건 저거대로 흑미가 배울만한 게 아니었다.

결국, 더 보기 힘들어진 룬이 한 소리 얹었다.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말고 밥 먹어.”

“옙.”

팍! 하고 빠르게 고개를 숙여보인 제드.

그는 뒷걸음질을 쳐 총총걸음으로 의자에 앉았다.

‘저 밉상을 어쩌면 좋지.’

후우.

속으로 한숨을 삼킨 룬은, 오늘따라 술이 무척이나 고팠다.

다만 이 사태 덕분에 딱 하나 좋은 점이 있긴 했는데, 그건 바로 제드의 수다가 평소의 반의반도 안 되는 양으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그 말은, 저녁 먹고 이야기하자 했던 드워프들의 사정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는 말도 되었다.

룬은 생각했다.

‘여성 드워프들까지 정착시키는 일은 기회야. 그냥 사장시키기엔 아깝지.’

그들이 페르디키온의 레어주민 출신인 이상, 베풀어두면 분명 과업을 수행할 때 도움이 될 터.

불씨를 잘 살려볼 생각이었다.

<애들 식사 끝나고 우리끼리 이야기 좀 해.>

페르디키온과 제드의 모코지석에만 따로 보낸 룬.

그들끼리, 어른들의 이야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날 믿어봐

식사를 마치고, 일행들은 아멜리아를 배웅하기 위해 이동했다.

풍덩!

살며시 미소 지은 채 물기를 머금은 머리를 뒤로 넘긴 아멜리아가 꼬리를 찰박이며 입을 열었다.

“즈, 즐거웠어 정말…… 다들 내, 내일……봐.”

“내일도 즐겁게 놀아요, 아멜리아 언니!”

살풋 웃으며 인사를 대신한 아멜리아.

페르디키온, 룬과도 적절한 인사를 나눈 인어는 물 속으로 빠르게 헤엄쳐 들어갔다.

그런 그녀를 크라켄이 배웅하듯 졸졸 따라갔다.

슥.

눈치를 교환한 룬과 페르디키온, 그리고 제드.

먼저 입을 연 건 룬이었다.

“흑미. 뭐 부탁 좀 하자.”

“뭔데요?”

룬은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던 피크닉 바구니를 꺼냈다.

“이거, 크리스티나에게 전해줘.”

“오옹. 맛있어 보이는 모닝빵 샌드위치다.”

식사 자리에 오지 못한 크리스티나를 위해 룬이 만들어 둔 모닝빵 바구니였다.

‘굳이 식사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안 왔던 거겠지만.’

룬은 그 사실은 모른 척 바구니를 내밀었다.

“넉넉하니까 같이 먹어도 돼. 라이랑 백야랑 가서 놀고 와.”

“네에!”

“삐약!”

통통한 흰 새와 함께, 피크닉 바구니를 든 흑미가 빠르게 뛰어나갔다.

“우린 검은 방으로 가자.”

룬은 듀라한만 존재하는 검은 방으로 이동했다.

듀라한에게 경비를 부탁한 룬은 페르디키온과 제드와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먼저 운을 뗀 건 룬이었다.

“제드. 여성 드워프들 대륙 진출은 어떻게 진행되었어?”

식사 시간 동안 쭈그러져 있던 제드의 얼굴에 빛이 다시 감돌았다.

“제가 죽은 뒤, 후임인 마론이 맡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요.”

“마론이라면…… 나한테 네 유언장을 준 녀석?”

제드의 공방에서 품위 있는 인사를 했던 제드의 후임.

이미지가 꽤 괜찮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제드가 말했다.

“녭. 덕분에 그 녀석은 결혼까지 했다죠. 자식도 봤을 건데. 따흐흑! 부러운 자식!”

“…….”

그럴 만했다.

제드는 이제 자식을 보긴커녕, 결혼하기도 힘들어졌으니.

룬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제드를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저 난쟁이 인형의 몸으로 연애를 할 수도 없고.’

다시 생각해도 참 안됐지만, 지금은 그걸 동정해 줄 때가 아니었다.

“그럼 너 말고 다른 드워프들은 성공했다는 거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