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건 뭐야?”
마을이 정확히 반으로 갈려있었다.
두 조각으로 나뉜 쿠키처럼.
원래부터 두 개의 마을이었던 것처럼 잘 닦인 도로와 언덕배기를 사이에 두고, 웬 담이 낮게 지어져 있었다.
‘경계선?’
왼쪽은 룬이 100년 전에 와서 본 건축 양식이라 눈에 익었는데, 오른쪽은 조금 달랐다.
좀 더 변화를 준 신문물이란 느낌이었다.
그때, 백야를 끌어안고 있던 흑미가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보더니 의아하게 룬을 바라보았다.
“신기하다! 흑미 왔을 때는 이렇지 않았어요.”
“그땐 어땠어?”
흑미가 생긋 웃으며 밝게 말했다.
“처음 다함께 왔을 때랑 비슷했어요!”
“삐이.”
그 말을 들은 룬이 생각했다.
‘흑미가 온 건 약 50년쯤 전이랬지.’
적어도 그때까지는 별문제 없었다는 소리다.
룬이 페르디키온을 돌아보았다.
“형은 알고 있었어?”
“회복기가 지난 뒤 보고는 받긴 했다. 행정상 문제로 지역을 나누겠다고 들었지.”
팔짱을 끼며, 화룡족 소년은 딱딱한 얼굴로 양쪽을 한눈에 담았다.
“회복기에 든 동안 원로 드워프들끼리 정해 결정하라 말해 둔 대로였기에, 일단 둔 참이다.”
이제 곧 성체가 될 젊은 드래곤. 페르디키온.
드워프들 간의 사건 하나하나를 직접 해결하려 들 만큼 한가할 리는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내 일을 도와주길래, 별문제 없는 줄 알았더니.’
그런 생각을 한 룬의 시선에서 뭔가 읽어냈는지, 페르디키온이 말을 덧붙였다.
“혹시나, 내가 내 레어를 팽개치고 널 도왔다는 오해는 할 거 없다. 봐라.”
페르디키온의 시선이 세련되고 장식과 멋을 살린 건물에 닿았다.
“오른쪽은 주로 개혁파 녀석들 거처. 그리고 젊은 드워프들이 독립해서 만든 장소이지.”
그는 눈동자만 왼쪽으로 움직였다.
흙과 나무. 석재와 쇠를 사용해 투박하고 튼튼하게 지어진 집들이 모인 쪽이었다.
“왼쪽은 전통파 드워프들의 집이 모여있다. 즉, 저들끼리 드잡이하며 싸우기보다는, 집단으로 독립하길 택한 거지.”
과거 개혁파 드워프들은 대게 젊은 층.
대부분 돈이 부족하고, 주력으로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제드의 활약으로 돈과 힘이 생기자, 억지로 함께 하기 보단 독립을 택했다는 게 그 설명이었다.
룬이 입을 열었다.
“강제로 합치라고 해봐야 문제만 심화될 뿐이라는 거네.”
“그렇지. 물론, 권고 정도는 해봤다만.”
대답하며 페르디키온이 은근한 미소를 드러냈다.
그의 아우, 룬은 어린 나이에 핵심을 잘도 파악해냈다.
“이건 나이가 들며 서로 생각이 섞이지 않아 생긴 진통이다. 차라리 한 번쯤 직접 저들끼리 할 만큼 해 보는 게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룬은 고개를 끄적였다.
‘그 말이 맞을지도.’
그러고 보면, 페르디키온과 드워프들은 의외로 쿵짝이 잘 맞았다.
“형. 잘 어울린다.”
“뭐가 말이냐?”
“이 레어의 주인. 멋지네.”
“뭐…….”
갑작스러웠는지 페르디키온이 잠시 굳었다가 헛기침을 했다.
그러더니 룬의 목에 팔을 훅 감아 당겼다.
“이 자식이. 당연한 소릴 하고 있어.”
“아. 형. 목목.”
아프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꽉 죄었다.
덕분에 페르디키온을 올려다보지 못하게 된 룬 대신, 흑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페르디키온 님 귀 빨개졌대요오.”
“얼레? 그러게요. 설마 부끄러우세요?”
그 말을 들은 페르디키온이 벌컥 화를 냈다.
“아니다! 내 레어는 원래 더운 지역이라 그런 거다.”
그 말을 들은 룬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차라리 화룡이 불에 구워진다는 걸 믿으라 해라.’
흑미와 제드에게 놀림받는 페르디키온을 보던 룬이 슬쩍 말을 얹었다.
“형, 드래곤은 거짓말하면 큰일 나.”
“시끄럽다!”
“으악!”
룬이 켁켁 소리를 내자 몇 초 뒤, 페르디키온이 팔을 풀었다.
룬이 목을 만지작거리자 뭔가 찔리긴 했는지, 페르디키온이 슬쩍 다른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너무 늦은 시간이다. 일단 자고, 내일 나오는 게 좋겠다만.”
“그러네.”
룬이 대답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드문드문 보이는 밤하늘이었다.
밤의 요정, 그레이스의 힘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늦은 시간을 택한 때문이었다.
‘정확한 사정을 알아보는 것도 좋지만, 이 시간엔 무리지.’
야간 작업을 하는 드워프들 빼고는 잘 준비를 하는 시간.
내일을 기약하며, 일행들은 페르디키온의 성에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음 날.
“청을 들어주십시오, 룬 님!”
식사를 마치고 흑미와 백야와 함께 나온 룬은 성 밖에서 엎드린 드워프를 마주쳤다.
‘그 사이에 소문이 퍼졌다고?’
룬의 시선이 제드를 향했다.
제드는 입을 합! 다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제드가 말을 흘린건 아니란 말이지.’
굳이 그들이 방문한 사실을 알린 적도 없고, 성에서도 분명 함구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대체 언제 말이 흘러나갔는지, 룬이 나가는 길에 벌써 드워프 열댓 명이 와서 넙죽 엎드려있다.
룬은 드워프들을 보고 물었다.
“고개 들어봐. 일단 뭐 좀 묻고 싶은데.”
“예, 말씀하십시오.”
다행히 대답은 잘 해 줄 듯싶었다.
“아침부터, 우리가 여기 나올 건 어떻게 안 거야?”
드워프 하나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게…… 검은 용광로가 엄청난 힘을 뿜었기 때문입니다. 흑미 님이 오실 때와 비슷한 현상이었습니다만…….”
흑미와 검은 용광로?
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흑미를 향했다.
그러자 흑미가 눈을 깜빡이더니, 아차 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맞다아. 흑미 오게 되면 알려주는 물건 있댔어요!”
언제?
‘아마 50년 전이겠지.’
스스로 질문과 답을 동시에 떠올린 룬이 물었다.
“그래서, 나한텐 무슨 볼 일인데?”
콧수염 난 드워프가 아차 하는 얼굴로 땀을 흘리며 설명했다.
“호, 혹시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둠의 일족께서 비늘을 여기 남기고 가셨지 않으셨습니까.”
“아.”
100년 전, 장인대회.
우승상품으로 작은 비늘을 걸었던 룬.
그 당시 공동우승으로 끝나 비늘이 정확히 어찌 되었는지는 듣지 못했다.
“ ‘검은 용광로’가 내 비늘로 만든 용광로야?”
“넵! 그야말로 어둠의 마력을 품은, 기이하며 엄청난 용광로지요!”
그제야 이해가 갔다.
어둠의 힘에 반응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룬의 비늘이니까.
게다가, 흑미는 룬이 직접 소생시킨 권속.
‘검은 용광로’가 어떤 식으로든, 흑미가 마을에 오자 반응했던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여기 모인 열댓의 드워프들은 ‘검은 용광로’를 소유한 대장간의 일원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의문이 풀린 룬은 부복한 드워프들을 일으켜 세웠다.
“일단 일어나서 말해 봐.”
새벽부터 한달음에 달려올 정도라면, 꽤 절박할 터.
룬의 말에 무릎의 흙도 닦아내지 못하고 선 드워프가 두 손을 최대한 공손하게 모으고 입을 열었다.
“잘 사용해왔던 용광로에 문제가 생겨 공방이 망할 지경입니다.”
그간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건지, 대표로 말하던 드워프의 눈가에 맑은 눈물이 그렁거렸다.
“그간 잘 사용했던 드워프 장인들이 감당하지 못할만큼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습니다.”
드워프들이라면, 대장간의 제작 물품과 한 몸 같은 자들.
문제가 생겨 도와달라는 말은 무척이나 특이한 부탁이었다.
“과열되어 터지려 하니, 잘못될까봐 건드릴 수 조차 없고요.”
우직하고 성실해 보이는 녀석이 울분을 꾹꾹 참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방이 망하면, 저희 어둠 계열 무기 제작 드워프들은 모두 실업자가 됩니다. 아무리 솜씨가 좋다 해도…….”
뒤에 죽 늘어선 드워프들의 어깨가 함께 축 늘어졌다.
“타 공방에 들어가면 최하급인 재료 수집부터 하게 되겠죠. 제발, 저희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야기를 쭉 들은 룬은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어둠을 조금이나마 다룬 녀석들이다, 이거군.’
모인 드워프들의 처지는 안타까웠다.
하지만, 룬에게 있어 그들은 그야말로 룬을 위해 내려진 최적의 인재였다.
꿩 먹고 알 먹는
“좋아. 안내해.”
룬의 허락이 떨어지자 모인 드워프들의 눈이 커졌다.
“도와주시는 겁니까?”
“도울 수 있는 문제인지 확인이 먼저야. 일단 보고 정할게.”
충분한 대답이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본 드워프들이 화색을 띠었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고, 이국적인 갈색 콧수염이 난 드워프가 먼저 말했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열댓의 드워프들이 일사불란하게 몸을 일으켰다.
문득, 궁금해진 룬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너희는 파가 어디야?”
그 말에 두툼한 갈색 콧수염 드워프가 앞으로 나섰다.
“어흠, 굳이 따지면 저는 전통파. 그리고 여기 젊은 녀석은 개혁파 출신이었습니다만.”
룬은 말미에 느껴지는 묘한 느낌을 되짚었다.
‘이었다, 고?’
이어진 콧수염 드워프의 말에 룬의 의아함은 금새 풀렸다.
“지금의 저희는 ‘개통파’라고 합니다.”
흑미가 손을 번쩍 들었다.
“흑미 정답 알아요!”
잠시 선생님 모드가 된 제드가 그런 흑미에게 손을 척 뻗었다.
“예이! 손 든 흑미 님. 말씀해보세요!”
제드의 장단에 힛, 하고 웃은 흑미가 생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 ‘개’혁과 전‘통’! 그래서 개통파! 맞죠?”
갈색 콧수염 드워프, 스콧이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리따우신 어린 숙녀분께서 무척 영민하시군요.”
그러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해 보이는 모습.
‘크리스티나의 예절 수업에서 받은 느낌이 나는데.’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룬은 스콧이 대륙에서 주로 쓰이는 예법에 영향을 받았음을 직감했다.
‘전통파지만, 개혁파의 방식을 흡수했군. 개통파라.’
스콧은 룬을 돌아보며 씩 웃어보였다.
“룬 님. 사실, ‘검은 공방 드워프’는 룬 님 께서 장인대회 마지막에 하신 말씀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은 자들이 모여 만든 공방입니다. 여러모로 좀 특별한 편이지요.”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