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7화 (217/242)

“귀한 분이 오셨으니까 예를 잘 갖춰서 대하도록 해.”

그녀가 눈을 부라리며 비쩍 마른 드워프를 채근하는 모습이 딱 그랬다.

허튼소리 절대 하지도 말아라.

적어도 룬은, 그렇게 여겼다.

‘우리끼리 있는 게 낫겠는데.’

룬이 주머니에서 보석을 꺼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대화 좀 하고 싶은데, 잠시 밖에 나가있어 주면 좋겠어.”

“아니…….”

불만스럽게 얼굴을 꿈찔 거리던 마담 드워프는 좀 전보다 큰 보석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얘가 드워프답지 않은 얘라…… 너무 길게 대화하긴 힘들어요.”

“그래? 알고 있을게.”

책상에 앉아 그림자만 드리워진 드워프.

그리고 룬과 흑미를 번갈아 본 마담 드워프가 선심 쓴다는 듯 말했다.

“그럼, 문 밖에서 기다릴게요.”

룬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마담 드워프가 문밖으로 나갔다.

물론, 기척이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지만.

룬은 가볍게 손 끝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충분하지. 이러면 되니까.’

시동어 조차 없이 아주 조용하게.

주변에 소리 차단과 잠금 마법을 걸었다.

마법을 눈치챈 흑미가 눈을 반짝이며 작게 키득이는 사이, 룬은 간단한 빛의 구슬을 만들어 띄웠다.

비로소, 대화할 상황이 만들어졌다.

룬이 입을 열었다.

“여유 있게 인사할 시간은 없는 듯하니 바로 본론을 말할게. 혹시 제드, 알아?”

기운 없어 보이는 마른 드워프가 고개를 들었다.

“알아요.”

메마른 우물 바닥을 갈퀴로 긁어내는 것처럼, 탁하고 거친 목소리였다.

희미한 숨 섞인 목소리는 여성 드워프의 것이었건만, 남은 것 하나 없는 노인 같은 느낌을 풍겼다.

그녀의 마른 입술이 재차 입을 움직였다.

“또 그 제안하러 오신 거예요? 대륙으로 나가자는.”

버석거리는 한숨.

룬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응. 여기서는 어떨지 몰라도, 대륙에서는 환대받을 테니까.”

흑미의 옷은 한눈에 봐도 엄청난 수작이었다.

몸을 비쩍 골았지만, 주변에 걸린 옷.

리본, 마법석을 이용한 가죽옷감.

과격한 대장장이 드워프들만 있는 마을에서 보기 드문 재능을 지닌 드워프였다.

하지만 마른 드워프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수락할 수 없다고 말씀드려서, 포기하신 줄 알았는데.”

끼리릭.

뭔가 어긋난 장치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책상에 앉아있던 드워프가 돌아 나온 순간.

‘이런.’

룬은 낭패감을 느꼈다.

기회를 잡아

‘다리가…….’

눈 앞에 나타난 드워프는 다리를 쓸 수 없는 이였다.

흑미는 입을 가리고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룬 님…….”

“…….”

거닐 수 없었던 이유를 단번에 알아챈 룬은 속으로 탄식했다.

‘대륙으로 나가기엔, 확실히 힘든 상황이야.’

앉은 채로 이동할 수 있도록 바퀴를 단 의자를 손으로 조종하며 여성 드워프가 앞으로 나왔다.

끼릭.

뼈와 거죽만 남은 손으로 바퀴를 움직이며 나온 드워프가 입을 움직였다.

“이 꼴을 보면 아시겠죠. 제가 대륙에 나가 봐야 소용없다는 걸.”

“…….”

불 하나 켜지 않은 퀴퀴한 냄새가 나는 방.

이런 열악한 장소에서 훌륭한 옷을 만들어내는 실력이 있는 드워프.

그러나, 다리를 잃은.

룬은 가만히, 현 상황을 파악해냈다.

‘그렇군. 제대로 된 의료체계가 없으니 이런 일도 존재하는 거야.’

룬은 다리에 시선을 두었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포기할 기력도 없는 얼굴이 룬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게 이 방 외에 새로운 세계는 없다는 거 잘 알아요. 앞으로도 영원히.”

아마, 흑미와 제드가 그녀를 찾아 왔을 때는 소녀거나, 갓 성인이 된 드워프였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룬 앞에 있는 드워프는 시간에 닳아 지쳐있었다.

50년간의 세월이 그녀에게서 알려준 무기력, 절망.

나이가 들수록, 잔뜩 찌들 대로 찌든 드워프가 고개를 돌렸다.

“다 보셨으면 이제 돌아가주세요.”

고개를 돌린 드워프의 담담한 말은 타고 남은 재처럼 건조하게 흘러나왔다.

룬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조각을 맞춰보며, 룬은 꺼내야 할 말을 떠올렸다.

휠체어가 반쯤 작업테이블 쪽으로 돌았을 때, 룬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제드가 널 더 잡지 못한 이유는 알겠어. 그런데, 말은 바로 해야 하지 않겠어?”

우뚝.

드워프의 손은 멈춰졌지만, 룬의 목소리는 이어졌다.

“대륙에서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적어도 시도라도 해 보자는 말. 제드가 했을텐데.”

룬이 아는 제드라면 분명히 그랬을 터.

예상대로, 눈 앞의 드워프는 고개를 사선 아래로 떨어뜨리며 말했다.

“……하긴 했죠.”

이어 다시 고개를 든 드워프가 증오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허풍만 잔뜩 넣고는, 다시는 오지 않았지만.”

지독한 원한이 느껴졌다.

침착하게 그녀의 말을 들은 룬은 옆에 있던 의자 두 개를 가져왔다.

탁.

하나는 흑미에게 주고, 룬은 의자 하나를 드워프 앞에 두고 앉았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

시선과 시선이 훨씬 가까이에서 부딪혔다.

드워프의 눈에는 어디선가 봤던 혼탁한 감정들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

뭉툭하고, 무감각한 시선.

어둑한 곳에 스스로 봉한 독기. 비통함.

모든 걸 체념했다는 듯 퍼석한 목소리를 내는 주제에, 서슬 퍼런 분노가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었다.

룬은 그녀의 눈을 보며 생각했다.

‘이 드워프의 감정을 대충 뭉치면, 이런 눈이지 않을까.’

룬은 차분히 그를 들여다보았다.

짓이겨진 것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룬이 입을 열었다.

“아니야. 네가 포기했기 때문이지.”

“…….”

깡마른 드워프가 어두운 시선을 들어올렸다.

시선 너머에 있는 검은 머리의 아이가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텅 빈 눈을 하고, 드워프가 입술을 이죽였다.

“말을, 함부로 하시…….”

룬이 고개를 저었다.

“네 눈에서 읽히는 걸 말했을 뿐이야. 제드가 사라진 후, 스스로를 다시 현실에 가둬버린 네가 보여서.”

“그래서 어쩌라고요.”

룬이 마법으로 만들어 낸 하얀 빛의 구슬이 그들의 공간을 밝혔다.

어둑하게 죽어있던 장소에 이제야 빛을 비추어지고 있었다.

반발하듯 말을 뱉은 드워프가 룬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어차피 절름발이 드워프 따위, 별로 중요하지도 않아서 포기했던 게 제드 머스킷이란 자예요. 저는 현실을 받아들였을 뿐이고요.”

말이 아닌, 묵힌 감정을 쏟아내는 드워프.

그녀를 보며 룬이 입술을 움직였다.

“너 제드가 죽었었던 건 알아?”

그 말에 숨이 막힌 듯.

마른 드워프가 조용해졌다.

겨우 입을 연 드워프가 띄엄띄엄 소리를 냈다.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없어요.”

“그럼 누구도 네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모양이네.”

드워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곧, 기침을 토하듯 말을 쏟아냈다.

“그럴 리가! 내, 내가 대륙에서 치료받고, 자유로워지기를 얼마나 기대했는지, 알고 있던 마담이…… 왜?”

룬은 대략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눈치챘다.

‘마담이 제드의 죽음에 대해 제대로 말해 주지 않았군. 분명, 발목의 상흔과 관계되었겠지.’

필요 이상의 불편한 시선이 될까 눈을 두지 않았을 뿐.

룬은 드워프의 발목에서부터 괴사해버린 다리를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룬이 입을 열었다.

“제드가 죽었다고 알리는 것 보다, 그가 너를 버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편이 더 좋았을 테니까.”

그 이야기를 들으며, 드워프의 마른 입술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듬성듬성한 드워프의 눈썹이 오한으로 떨려왔다.

바싹 말라 거칠게 일어난 입술이 몇 번 달싹이더니.

“주, 죽었었다니. 마담은…… 내가 고아가 된 뒤에 나를 거둬준 좋은 분인데…….”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불안한 눈동자.

룬은 흔쾌히 답을 내어주었다.

“거둔 이유가 애정을 기반한 일이었다면, 이런 방구석에만 두고 살게 했을 리가 없어.”

엄밀히 말해, 이것 또한 폭력이다.

룬 역시 보호를 받느라 레어에서 자주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런식으로 방치되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룬에게, 드워프가 거칠게 항의했다.

“그건 당연히, 내 다리가……!”

민폐여서.

그 말이 목까지 차올랐을 때, 룬의 말이 들려왔다.

“그래서 발목에 족쇄를 채워서 길렀다는 거야? 옷만 만들게 하면서. 꼭, 죄인이나 노예처럼.”

울컥해서 터졌던 드워프가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다.

공허한 침묵이 흐른 뒤, 드워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용하기 위해서, 라고.”

알고 있었다, 사실.

만든 옷을 모두 챙겨가고는, 밥값과 생활비라며 한 푼도 돌려주지 않았을 때.

달콤한 사탕은커녕, 옷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제대로 된 식사조차 없을 때.

입술 색이 희게 변해갈 정도로 충격을 받은 드워프가 입술을 달싹였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드워프의 한 손이 머리를 긁어대었다.

그대로 두었다간 손톱 사이에 피가 맺힐 것 같았다.

룬이 끼어들어 팔목을 잡아냈다.

“그만 해. 머리 다 상해.”

드워프가 멍하니 룬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있던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진 눈.

그건 아마 심장일지도 몰랐다.

심장이 빈 양철 인형처럼 굳은 드워프가 초점이 없어 빛깔 없는 단추 같은 눈이 흔들렸다.

이내, 사실을 견디지 못한 드워프가 비명을 질렀다.

“아악!”

룬은 속으로 생각했다.

‘생각보다, 내면의 상처가 깊었군.’

룬 앞의 드워프가 배신당한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려던 차.

“얍!”

푹!

흑미가 막대 사탕 하나를 그녀의 드워프의 입에 집어넣었다.

“흑미 건데, 줄게요. 이것밖에 도움 못 드려서 미안해요!”

엉뚱하지만, 흑미는 나름대로 힘이 되길 바라는 진심은 담겨있었다.

“흑미 기억나요. 예전에 이 창밖에서, 사탕을 먹고있던 흑미랑 눈 마주쳤었어요. 맞죠?”

드워프가 입 안에 단 맛이 들어온 탓일까.

흑미의 말이 진실이기 때문일까.

드워프가 사탕을 입 안에 물고 움찔거렸다.

룬이 흑미에게 눈짓했다.

‘잘했다.’

시선을 다시 드워프에게 던진 룬이 차분하게 말했다.

“우선 정정할게 있는데, 제드는 내가 살렸어.”

“!”

그 말에 동작을 멈춘 여성 드워프에게, 룬은 재차 말해주었다.

“그러니 네가 대륙에 나갈 기회도 여전히 남아있어.”

죽었던 자를 살렸다니.

그래서, 기회가 여전히 존재한다니.

“거짓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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