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0화 (220/242)

입을 떡 벌린 제드에게 흑미가 키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룬 님이 게일드 언니 다리 낫게 해 줬어요! 완전 멋있었는데!”

“삐이.”

날개를 파닥인 백야가 호응하듯 가볍게 울었다.

제드는 주먹을 쥐고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캬하!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신 것 같은 기분이네요!”

호들갑스럽게 칭찬해오는 제드를 진정시킬 겸, 룬은 설명을 덧붙였다.

“……흑미 옷에 마법 아티팩트 기능을 옮긴 것만 봐도, 드물게 마력석을 잘 다루는 자라는 걸 알겠더라.”

흥분한 제드가 주먹을 콱 쥐었다.

“맞습니다! 저 역시, 그녀를 데려가 마법사들의 지원을 받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죠!”

제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룬이 말을 이었다.

“그쪽 준비는 다 끝났으니, 내 이름을 대고 데려가기만 하면 돼.”

“이런 완벽하신 분 같으니!”

크아! 하며 제드가 또 탄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룬의 표정이 굳어버렸지만.

“마음 같아서는 이 제드, 안고 하루종일 뽀뽀해 드리고 싶을 정돕니다!”

“하지 마.”

자칫 드래곤 피어(fear)를 드러낼 뻔한 룬이 경계했고, 이미 당해 본 페르디키온은 미간을 움찔거렸다.

제드가 흥분해서 터져버리기 전에, 룬은 빠르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녀가 어둠의 힘은 다뤄본 적 없겠지만, 개통파 드워프들과 연습하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을 거야. 잘 키워줘.”

“맡겨만 주십쇼!”

제드가 가슴을 탕탕 치며 씩씩하게 외쳤다.

‘좋아, 이걸로 그레이스와 통로 다룰 준비는 끝났고.’

이어서, 룬은 게일드를 통해 어떤 조치를 취해두었는지 추가로 설명해 주었다.

“좋군요! 게일드의 다리가 나아 시선을 한 번에 받고 있는 이 때! 그녀가 직접 대륙의 물건들을 공유하고 흥미를 끈다니!”

상황을 쭉 지켜본 페르디키온이 입을 열었다.

“하면, 난 대륙으로 함께 갈 드워프들을 선정하는 데에 도움을 주면 되겠군.”

“그렇지. 부탁해, 형.”

각자 할 일을 정한 후, 룬은 페르디키온이 식사를 준비해 주겠다는 것을 마다했다.

‘오랜만에 소생 언령도 연습해야하니.’

최근, 크리스티나와 함께 요리를 하는 일이 많아 제대로 언령 연습을 해 보지 못했다.

‘크리스티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소생 언령은 비밀로 해야 하니 이럴 때 하는 게 낫지.’

그렇게, 시종 하나 없이 룬은 성의 요리실로 내려갔다.

***

룬이 예전에 왔을 때만 해도 새것이었던 식당은, 여전히 깨끗했으나 사용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룬의 시선은 초대 요리사였던 베르딘의 사진을 향하고 있었다.

“하긴, 백 년 전이었으니까.”

룬이 요리할 때 보조하며, 나중에는 서툴게나마 대접까지 선보였던 베르딘.

나이가 많았던 그는 왕실 초대 요리사를 겸임하다 세상을 떴다.

인생 후반에는 요리실에 살다시피 하던 그.

주방 곳곳에는 아직도 베르딘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지만, 누군가의 빈자리를 느끼는 일이 그리 편친 않았다.

“칼은 그대로네.”

벽에 걸린 유리상자 안에는 베르딘이 룬을 위해 만들어준 요리도구.

도마와 칼 세트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상자 밑에는 글이 적힌 작은 금속판이 붙어있었다.

-우리를 위해 손수 힘써주신, 룬 님을 기억하며-

물끄러미 그 문구를 본 룬이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베르딘. 한 번쯤 더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따뜻함과 씁쓸함이 섞인 무언가가 룬의 가슴 한 켠을 스쳐지나갔다.

‘지난 시간 중 그리워할 시간이 있는 것도 복이긴 하지.’

아련한 상념에서 천천히 벗어난 룬은 마법으로 유리상자를 가져왔다.

물끄러미 보던 룬은 상자 안의 도구를 모두 꺼냈다.

이어, 거죽과 고기를 털린 절벽 산양의 뼈를 잘 모았다.

‘저번에도 이렇게 소생 언령을 성공시켰으니.’

저주 도구 만들기 세트로 미리 제작한 ‘미끼 인형’도 꺼냈다.

마지막으로 방범 마법까지 시전한 룬이 황금 팔찌를 잡았다.

“시작해볼까.”

팔찌를 빼고, 룬은 해츨링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통통한 꼬리로 바닥을 탕! 하고 내려친 룬이 의기양양하게 재료를 바라보았다.

“뀨우우.”

‘수면기를 통해 어느 정도 강해졌을지.’

미리 제작해 둔 ‘미끼 인형’의 모양은 귀여운 산양 모양을 하고 있었다.

“뀨.”

‘준비는 됐고.’

룬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과연, 백야의 깃털 없이도, 혼을 불러내 새로운 몸에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인가.’

호흡과 느낌, 마력의 흐름에 집중하던 룬이 눈을 떴다.

“뀨뀨우!”

[소생하라!]

번쩍!

활기찬 절벽 산양의 뼈가 부활의 부름을 받고 덜그럭거리기 시작했다.

이어, 뼈가 저절로 이어지며 생전의 산양이었을 때의 뼈 모양으로 이어졌다.

여기까지는 백 년 전과 같았다.

‘다음은, 깃든 혼을 인형에 옮기는 거지.’

분명 가능했다.

지금 룬의 능력이라면.

확신을 품은 룬이 외쳤다.

“뀨!”

[소생하라!]

번쩍!

한번 더 언령을 불어넣자 산양 뼈 안에 깃든 희미한 기운이 산양의 머리 위로 뭉치기 시작했다.

‘좋아. 이제 이걸 미끼 인형에 옮기면…….’

되는데.

그래서, 절벽 산양의 혼이 ‘미끼 인형’ 안에서 소생하게 되는 게 룬의 목표였건만.

소생마법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불러왔다.

덜덜덜덜덜!

“?”

붙어있던 뼈 위에, 희미한 마력의 살 껍질이 붙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뀨……우?”

조리실 전체에 드래곤 언령의 마력이 차올랐다.

뭔가 잘못되었다.

슈아아악!

조리실 전체에 퍼졌던 기운이 허공에 모여들더니, 드워프의 모양을 했다.

-흘흘흘. 이게 누구십니까.

룬은 멍하니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뀨?”

[베르딘?]

아무리 봐도 그랬다.

룬은 멍하니 베르딘의 사진이 붙어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사진과 똑 닮았으나 약간 더 나이 든 얼굴의 드워프.

베르딘이 상체만 희미하게 떠올라있었다.

그러니까…… 유령처럼.

제 몸을 보고, 은회색 눈으로 룬을 본 베르딘이 물어왔다.

-제가 어떻게 다시 여기 있는 건지. 분명 눈을 감았던 기억이 선명하건만…….

의아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베르딘의 유령을 보며, 룬은 사태가 왜 이렇게 됐는지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뀨.”

강화된 소생을 썼다.

그 힘이 절벽 산양과 인형이 아닌, 이 조리실 전체에 적용되었다.

그리고 나타난 게, 생전에 이 조리실에서 요리하던 베르딘이다.

일의 순서를 따져본 룬은 머리카락 없는 머리를 쥐어뜯을 듯 잡았다.

‘내가 망자의 혼을 아예 소환해 버렸잖아.’

미치겠다.

그런 룬의 속도 모르고, 베르딘은 공중을 부유했다.

-어허, 생전에 쓰던 물건들이 고대로 있군요. 그리운 물건이죠……. 집으로 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좋았던 주방을 이렇게 다시 보다니…….

누가 보면 나긋한 중년이 추억 여행이라도 온 줄 알 지경이다.

관광 온 기분을 내고 있는 모습을 보던 룬이 먼저 입을 열었다.

“뀨우?”

[너, 베르딘 맞아?]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베르딘이 답했다.

-그렇지요. 그러고 보니, 룬 님은 여전히 작으시군요. 아니면 생각보다 시간이 흐르지 않았던 겝니까?

그럴 리가.

룬이 극적으로 몸이 커진 건 아니지만 시간만큼은 착실히 흘렀으니까.

“뀨, 뀨후우우우.”

룬은 준비해 왔던 ‘미끼 인형’과 활기차게 당근을 짓밟기 시작한 산양을 보며 한쪽 앞발로 얼굴을 턱 감싸쥐었다.

최대한 붙어

‘하필, 소생을 시켜도 유령을 소생시키다니.’

전생에 나름대로 생과 사의 순리를 지켜 왔던 룬에게, 이는 기가 찰 일이었다.

“뀨우우.”

[여기서도 한을 풀어서 성불시켜야 하나.]

-한이요?

베르딘을 본 룬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룬이 알고 있는 원혼을 다루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저승으로 가지 못한 이유를 알고 해소시켜 주는 것.

다른 하나는 영혼을 퇴치해 소멸시키는 방법이었다.

‘영멸은 내키지 않는데.’

과격한 방식을 쓰는 건 어디까지나 악귀에 대응할 때의 일.

저렇게 순둥하고 통통하게 생긴, 나이 들고 착한 드워프에게 쓸 방식은 아니었다.

애초에, 소생 언령으로 살린 베르딘은 귀신이 맞는지도 의문이다.

“뀨뀨.”

[내 말이 들려?]

-네, 잘 들립니다. 룬 님.

영혼 상태이기 때문인지, 베르딘은 드래곤의 전음을 잘도 이해했다.

“뀨.”

[네가 살게 된 건 내 힘 때문이야. 본래 죽은 자를 이런 식으로 불러내면 안 되지만, 그래도 묻고 싶네. 너는 어쩌고 싶어?]

-허어. 늙은이로서는 답을 알기 어려운 일이로군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습니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가 잠시 흐르자, 베르딘이 조리대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것은 양파와 고기가 아닙니까? 재료를 보아하니 양념 고기로 만드시려던 모양이군요.

“뀨.”

[맞아.]

룬은 그렇게 말하며, 감자를 씹으려 드는 뼈 산양의 목을 잡아당겼다.

산양의 표피에 미묘한 살이 붙은 것을 본 베르딘이 제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흡!

손끝에 미묘한 힘을 주자, 베르딘의 손이 상아색으로 빛이 났다.

그리고, 생전 베르딘이 사용했던 요리도구가 호응하듯 같은 빛을 뿜었다.

-흐아아아!

소생의 힘으로 강력한 인력을 가지게 된 건지, 베르딘의 식칼과 도마가 베르딘의 손짓에 따라 공중을 날았다.

룬에게는 익숙한 기현상이었다.

‘귀신들이 난동 부릴 때 딱 저랬는데.’

다행히 베르딘은 난동을 부리기 위해 힘을 쓴 건 아니었다.

그는 도마를 나란히 두고, 그 위에 제 식칼로 고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도마 위에 고기를 두고 식칼로 칼질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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