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이상하지만, 간만에 요리를 만들자니…… 무척 감사하군요. 아, 여기에 물만 좀 받아 주시겠습니까?
왠지 모르게 즐거워 보이는 베르딘.
룬은 그를 잠시 도와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튜가 끓었고, 베르딘은 룬을 바라보았다.
-한 번 드셔 보시지요.
룬은 스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유령이 만든 요리라니.’
생전에 쓰던 도구에만 영향을 끼칠 수 있었기에 룬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베르딘이 만든 스튜는 제법 훌륭해 보였다.
후룩.
한 국자 떠서 맛을 본 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뀨뀨.”
[맛 좋은데. 예전 생각도 좀 나고.]
-그거 다행입니다.
만족감 어린 베르딘의 얼굴.
룬은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뀨우.”
[네 마음이 정해질 때까지는, 요리가 좋다면 마음껏 해 보는 게 어때.]
룬의 제안이 무척 마음에 드는지, 베르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좋습죠. 죽은 뒤에도 이 주방이 다 그리웠거든요.
회한이 가득 찬 눈으로 주방을 둘러보는 베르딘.
룬은 그에게 식재료를 건네주었다.
-기쁩니다. 이 주방에서 만든 요리를 모두에게 대접했던 일을 생각하면요.
“그래?”
마음 같아서는 다시 성불시켜야 할 듯한데, 그래도 아는 얼굴이라서인가.
험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룬은 요리를 시작한 베르딘을 보며 생각했다.
‘혼이 품을 수 있는 힘의 크기에 따라 지속시간이 달라질 텐데.’
요리를 하다 자연스럽게 힘이 다해 스러지던가.
혹, 그만 쉬고 싶어 한다면 룬이 언령의 힘을 완전히 회수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룬의 머릿속에 뭔가가 번뜩였다.
‘그럼, 이 녀석을 데려갈 수만 있다면 대륙에서도 드워프들에게 익숙한 음식을 해 줄 수 있겠는데?’
묘한 의욕이 솟았다.
룬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뀨우우.”
[관건은, 내 소생 언령의 성장이겠어.]
베르딘이 요리를 하다 룬을 돌아보았다.
까만 해츨링이 꼬리를 살살 흔들며 그를 바라보았다.
“뀨우.”
[베르딘, 힘내. 난 그동안 수련 좀 할게.]
감자를 쥔 해츨링의 표정이 묘하게 즐거워 보였다.
이유를 모른 채, 베르딘은 힘차게 답했다.
-편히 하시면 됩니다. 요리는 이 베르딘이 솜씨를 보여 드립지요!
씩씩하게 말한 유령 요리사 베르딘.
그가 요리를 만드는 동안, 룬은 소생 연습을 했다.
죽지 않을 유령 요리사를 영원히 부려 먹을 마음으로.
***
“이건 대체…… 룬, 이 맛을 어떻게 낸 거냐?”
스튜를 먹어 본 페르디키온의 표정이 굳었다.
룬은 태연하게 물었다.
“왜? 맛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게 아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선 그 말이 될지도 모르겠군.”
페르디키온은 멍하니 빈 수저와 스튜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베르딘이 생전에 해 준 그 맛과, 너무나 똑같다.”
‘그야 베르딘이 해 준 게 맞으니까.’
룬은 태연히 고개만 끄덕였다.
흑미와 제드도 각자 비슷한 반응이었다.
“평소 룬 님의 요리랑 뭔가 달라요! 드워프 아저씨들이 준 간식 생각이 나요.”
“그러게 말입니다. 뭐죠. 이 드워프 사나이 가슴을 울리는 찡한 맛…… 진수성찬으로도 얻을 수 없던 감동이 밀려듭니다요. 크흐흑!”
주책맞게 눈물이 흐른다며, 스튜를 먹던 제드가 식탁보로 눈을 찍어 냈다.
“삐이약?”
백야는 다소 의문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 하며 음식을 먹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룬이 물었다.
“그럼 말이야, 이걸 다른 드워프들도 좋아할까?”
페르디키온이 답했다.
“물론이다. 다들 이 맛을 무척이나 그리워했으니.”
좋았어.
룬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유령 요리사 베르딘을 대륙으로 데려가면, 그것도 도움이 되겠어.’
성불이라니.
이런 인재는 대륙에 데려가 써먹어야지.
주방에서 식재료를 준비하던 베르딘은 유령 주제에, 왠지 모를 오한을 느꼈다.
한편, 룬은 속으로 흐뭇한 생각을 하며 즐겁게 음식을 먹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찼을 즈음, 룬이 제드에게 물었다.
“상황은 어땠어, 제드?”
입가에 묻은 스튜국물을 슥슥 닦아 낸 제드가 답했다.
“룬 님께서 밑밥을…… 아니, 밑 작업을 해 주신 덕분에 일이 잘 풀렸습죠!”
흑미와 함께 룬이 방문한 장소를 부지런히 들렀다 온 제드.
그는 룬이 다시 가 보라고 찔러준 장소에서, 대륙 이주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모두 얻어 냈다.
“게일드뿐만 아니라, 다른 드워프들의 고충도 많이 살펴 주시다니. 덕분에 다들 호응을 잘해 주었습니다요!”
이는 제드가 50년 전, 흑미와 방문 했을 때와는 다르게 접근한 덕분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봤을 뿐이지만 말이야.”
룬은 그렇게 말하며, 흑미와 함께 본 이들을 떠올렸다.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 드워프에겐, 치료와 대륙에 신비로운 약재가 많다는 점을.
명예로운 대장장이의 아내가 되고 싶다는 여성에겐, 현재 명예로운 대장장이가 몇이나 되는지.
그를 원한 여성 드워프들의 이야기로 가벼운 수다를 떨며 생각할 거리만 던져 주었다.
‘그에 대해 고민하고, 대륙의 드워프들도 보겠다는 자가 나오면 성공이겠지.’
대륙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드워프에게는, 무리하게 대륙으로 가자는 이야기를 권하지 않았다.
대신, 게일드가 찾아오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눠 주길 부탁했을 뿐이다.
“으음! 그 정도라면 저도 노력은 해봤을 텐데 말입니다요.”
룬의 방식을 들은 제드의 말에, 룬이 대답했다.
“너는 목적이 달랐잖아. 개혁파 드워프들과 결혼까지 가는 게 목표였으니. 분명, 그거 읽혔기 때문에 실패했을걸.”
“에엥? 이 제드가요?”
제드를 보며, 룬은 말을 덧붙였다.
“그래. 혹시나 하고 대륙을 넘어가서 본 드워프들은 음. 미안하지만 직접 보고서도 기대에 차지 않았고.”
“으윽. 그런…….”
제드가 시무룩하게 끙끙거리며 말했다.
“대륙으로 진출만 하면 얼마나 멋진 세상인데. 새로운 대륙. 멋진 개혁파 녀석들. 직접 보기만 하면 다들 반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말입죠.”
“마음은 알겠지만, 원래 남녀란 게 붙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니까.”
룬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당시의 저는 의욕이 가득해서 다른 건 잘 안 보였던 것 같습니다요.”
어린 나이에 용케 그 점을 파악하셨다며, 고개를 든 제드의 눈빛은 그야말로 충성과 신뢰가 가득했다.
둘의 대화가 정리되었다 여긴 페르디키온이 말했다.
“룬 네 부탁대로 크리스티나 님에게 연락해 두었다. 그레이스는 일주일 뒤에 올 수 있다더군.”
“일주일 뒤구나.”
룬이 요리하는 시간은 두세 시간 정도.
그사이 룬에게 부탁받은 일을 확인해 준 페르디키온은, 추가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해서, 이후의 일도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이후의 일이라면 뻔했다.
페르디키온이 성년식 과업을 치를 힘을, 드워프들을 통해 준비한 후.
불의 과업에 들어가야 하니까.
“과업에 시간의 제한은 없으니, 조만간 과업을 받아 올 생각이다.”
“불의 신전에 가야 한다는 말이네.”
“그렇지.”
일주일이라.
빠듯하지만, 불가능한 시간도 아니었다.
페르디키온이 입을 열었다.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 불의 가호를 받았지. 함께해다오.”
응당 그러리라 여긴 부탁.
룬이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띠었다.
“물론이지.”
소시지를 포크에 꽂은 흑미가 한 손을 들고 외쳤다.
“흑미도요!”
“삐야악!”
날개를 파닥인 백야까지 호응하자, 제드가 팔짱을 척 끼곤 야심 차게 웃어 보였다.
“캬하! 페르디키온 님의 성년식을 돕기 위한 불의 신전 방문이라니! 너무 엄청나 이 제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요!”
룬은 잠시 아련한 눈으로 제드를 보았다.
‘내가 알기로, 거긴 순수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
불의 신전은 악업을 갚는 불길이 도사리는 장소.
다행이라 해야 할지, 룬은 전생이 있긴 하나 덕을 쌓아 왔던 존재.
백야나 흑미야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제드는…….
‘저놈을 두고 가야 하나?’
제드는 여러모로 순수와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녀석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룬과 달리, 페르디키온은 힘 있는 어조로 말했다.
“믿겠다, 다들. 내일 당장 출발하지.”
“기대돼요! 백야도 그렇지?”
“뺙!”
흑미는 신이 나서 백야와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는 게 좋긴 하지만.
제드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는 룬은 이게 과연 잘하는 걸까, 고민했다.
‘하긴, 진짜 안될 것 같다면 페르디키온이 먼저 말렸겠지.’
다음 날.
룬과 다른 이들은 불의 신전으로 통하는 포탈로 가기 위해 페르디키온의 안내를 따라 움직였다.
“오직, 불의 드래곤 족만이 운용할 수 있는 포탈이다. 그런데.”
포탈 위에 선 페르디키온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작을 줄은 생각 못했군. 어릴 때 봤을 때는 꽤 큰 줄 알았다.”
페르디키온이 안내한 포탈은 기껏해야 사람 2명이 설 정도의 작은 포탈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해츨링 하나 정도의 크기랄까.
하지만 따라갈 인원은 모두 넷.
룬은 덤덤하게 말했다.
“최대한 붙어야지, 어떻게 하겠어.”
심지어 거짓된 모습으로는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룬은 황금팔찌를 빼고 해츨링의 모습으로 변했다.
백야는 룬의 머리 위에 앉았고, 흑미는 제드를 챙겼다.
그러고는, 페르디키온에게 다들 찰싹 붙었다.
붉은색과 주홍빛이 섞인 몸체의 해츨링, 페르디키온은 루비색의 붉은 눈을 날카롭게 세웠다.
“캬악.”
[가겠다.]
페르디키온의 말에, 각자 대답했다.
“뀨.”
[준비됐어.]
“히힛. 가요!”
“삐이약!”
“어휴, 이 제드. 심장이 터질 듯 두근두근합니다요!”
졸지에 흑미와 까만 해츨링 룬, 백야와 제드에게 감싸인 꼴이 된 페르디키온은 어딘가 불편한 듯했다.
저마다의 기대를 품은 채, 붉은 불길이 포탈에서부터 화르륵 타올랐다.
불의 신전 (1)
쿠르르륵!
두쿵! 두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