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3화 (223/242)

“뀨.”

[버둥거리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오히려 위험해. 좀 참아.]

제드는 히익 소리를 내며 하소연을 터트렸다.

“아니, 이 녀석이 혀로 제 등을 까실까실하게 핥는다니까요?! 이빨도 세운 것이 와그작 씹고 싶어 하는 맹수 같다구요!”

“…….”

정령이라지만, 수인 마족인 흑미에게 영향을 받은 모양인 듯했다.

그렇다곤 해도 엄살이 워낙 심했다.

룬은 나름대로 위로를 겸해 조언했다.

“뀨뀨우.”

[호랑이…… 아니, 맨티코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잘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어.]

안타깝게도 제드에게는 그닥 소용이 없는 모양이었다.

“끄으읏! 흐즈믄 느끰히 느므 히승흔디의…….”

“룬 님! 제드 아저씨가 ‘하지만 느낌이 너무 이상한데요.’ 라고 했어요!”

흑미가 친절한 해석을 곁들였지만,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뀨.”

[그냥 가자. 삼식이한테는 버둥 거리는 것 같으면 차라리 꽉 물고 있으라고 해.]

“네!”

그 말에 제드가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굳혔다.

발 끝을 바들바들 떨고 있긴 했지만.

“뀨.”

[그럼 가자.]

-냐앙!

삼식이를 제외한 다른 불고양이들이 합창하듯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용암 위를 사뿐사뿐 날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흑미는 놀이기구를 탄 아이처럼 외쳤다.

“신난다아!”

불속성이 강화된 데다, 불의 정령의 가호를 받으니 지옥 같은 용암탕이 따끈한 온돌방 정도로 느껴졌다.

심지어 공중을 날아가니 무척이나 편안하기까지 했다.

“끼요호홋! 꺄우우!”

제드는 간지러움의 지옥에 빠진 사람처럼 괴상한 비명을 지르긴 했지만.

그리고 룬은 페르디키온의 위를 통과하며 말했다.

“뀨우.”

[형, 빨리 와.]

“캬아?”

[룬?]

어이없는 얼굴로 공중을 보던 페르디키온은, 한눈을 팔다 용암의 파도에 휩쓸려갈 뻔한 걸 간신히 버텨냈다.

“캬악!”

그리고는, 빠르게 불길이 솟는 용암을 지나 두 번째 관문 앞에 도달했다.

“캭, 카학.”

[룬, 이런 걸 생각 해 냈으면 말을 해야 할 게 아니냐.]

용암과 불의 파도를 잔뜩 끼얹으며 건너편에 도달한 페르디키온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 말에 룬은 멋쩍게 대꾸했다.

“뀨뀨우.”

[미안해, 형. 나도 백야를 보다 생각난 거라서.]

“삐?”

제 이야기인 줄 안 건지, 하얀새가 룬의 머리위에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흑미가 말을 덧붙였다.

“맞아요. 페르디키온 님이 벌써 저만큼 점이 되어가고 있었을 때 알려주셨어요.”

몸이 간지러워 땅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제드도 말을 거들었다.

“그렇습니다요. 이 제드가 손이 데일 뻔 한걸 보시고 고민해서 말씀해 주신거니 너무 속상해하진 마십시오, 페르디키온 님.”

끙, 하고 미간을 구기긴했지만 페르디키온도 수긍했다.

“캬아, 캬.”

[잘한 거다. 딱히 뭐라 하려던 건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

“뀨우.”

[응, 알겠어.]

‘하긴 혼자 생고생을 다 했으니.’

그저 투덜거렸을 뿐이라는 걸 잘 아는 룬이기에 무해하게 웃어보이며 대답해주었다.

이제 두 번째 관문을 열 차례였다.

“뀨우.”

[우리 준비 됐어, 형.]

페르디키온이 룬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문을 바라보았다.

쿠구구구.

붉은 해츨링의 앞 발이 문을 짚었다.

그리고 보인 광경에, 다들 입을 벌렸다.

콰아아아아!

사방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용암으로 눈이 부셨다.

끔찍한 지옥처럼도 보이고, 성스러운 불의 거처로 보이기도 했다.

거짓 되지 않은 진실을 가진 자만이 문을 열지니.

“…….”

“…….”

“…….”

진정한 위기.

모두의 시선이 제드를 향했다.

“엥? 왜 다들 절 보십니까요?”

네 쌍의 시선이 꽂히자, 제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불의 신전(2)

왜 봤느냐고?

룬은 과거 제드의 행적을 떠올렸다.

룬과 만난 초기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더니, 암시장이라는 비밀이 있었고.

사막에서는 집안의 비밀이 알려질까 룬을 협박하더니, 돈에 홀려 충성을 맹세하질 않나.

흑미에게 종종 이상한 단어를 가르치는 부적절한 짓을 해 룬에게 혼나기까지.

그뿐인가?

최근 다른 여성 드워프들에게 대륙 이주에 관한 영업을 했다가 실패한 이유도 그랬다.

‘대륙에 오기만 하면 무조건 좋을 거라니. 그게 말이 되냐고.’

그때 흑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으음, 흑미도요. 제드 아저씨가 뻥을 치려 한 걸 봤어요.”

“예? 제가 뻥을 쳤다고요?”

짐짓 화들짝 놀라하는 제드에게 흑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양 손을 얼굴에 대고 표정을 최대한 제드처럼 만들어 보이고는 말했다.

“이-렇-게 욕심 붙은 눈으로 ‘킬킬. 주선비를 얼마로 받을까나. 러럴~러럴러~’라고 말하면서.”

양 손을 떼고 원래의 얼굴로 돌아온 흑미가 세 손가락을 척 들어보이며 제드를 바라보았다.

“세 번은 무료로 풀어서 무료로 만나게 해준다고 뻥을 좀 쳐야지. 낚여라, 미끼에! 껄껄! 이라고 했어요!”

“히익!”

모두의 시선이 흐려졌다.

제드는 어깨에서 힘을 추욱 뺐다.

“이런…… 하지만 저 역시 돈에 눈이 먼 한 명의 드워프였을 뿐인데…….”

“…….”

아무래도 어디 연극에서 본 포즈와 대사를 취하는 게 틀림없었다.

룬은 고개를 느리게 저으며 생각했다.

‘결국 대륙에 진출한 드워프를 위한다는 마음만으로 행동한 건 아니었잖아.’

페르디키온은 그 말에 배신감을 느낀다는 듯 제드를 노려보았다.

“캬악!”

[이 자식…… 설마, 속인 거냐? 드워프들을 위한다더니, 개인의 부를 축적하려는 수단이었을 뿐이었냐!]

“아, 아이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납죽 몸을 낮춘 제드에게 페르디키온이 기염을 토했다.

“캭!”

[또 거짓말일지 어떻게 아나!]

제드는 룬에게 살려달라 눈짓했지만, 룬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입에서 불을 뿜을 듯 노한 화룡족 해츨링과 제드의 변명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간 적당히 눈감아줬을 뿐, 거짓말이라면 크고 작은 걸 많이도 했을 놈이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저런 놈인 걸 이미 알기에 두었을 뿐이다.

어쨌거나, 저런 녀석이니 다들 제드가 제일 위험할거라 느낀 것일 터다.

사방에서 공격을 받은 제드는 룬에게 와서 외쳤다.

“전 진짜 억울합니다요!”

“뀨.”

[……진짜 몰라서 그러냐고.]

룬의 말에 제드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뭐, 진실이라는 게 좀 주관적일 수도 있는 거니까요?”

“뀨우.”

[주관적이라면?]

룬의 말에 제드가 흠, 하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평소 제가 욕심을 좀 부린 건 사실이죠. 하지만 진실은 뭐다? 저는 돈과 힘, 그리고 남들보다 잘난 것이 좋습니다. 아주 그냥, 환장을 합죠!”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 뻔뻔해 보였다.

제드가 말을 이었다.

“저는 이런 저 자신에게 충실합니다! 남을 속여본 적은 있지만, 저는 스스로에게 아주 떳떳하지요! 그러니, 전 진실한 드워프라 할 수 있죠.”

진정 부끄러움도 모르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룬은 잠시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뀨우.”

[진실하긴 하네.]

눈이 둥그렇게 떠진 화룡족 해츨링이 되물었다.

“캬아.”

[진심이냐, 룬?]

페르디키온의 표정에서 읽힌 말은 뻔했다.

‘저 파렴치한 소리를 진실이랍시고, 불의 신전의 관문을 통과할 거라 말하는 거냐? ……라는 거겠지.’

룬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뀨우.”

[진실을 가지고 있으랬지, 선악을 구분하겠다는 건 아니었으니까.]

페르디키온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제드와 룬을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룬은 확신했다.

진실이란, 거짓이 없는 사실.

참되고 변치 않음.

순수하고 바른 것.

평소 하는 행실을 떠올려볼 때, 이와 가장 관련 없는 자가 제드이긴 했으나.

녀석이 밉상이고 사리사욕에 충실한 것과, 진실한 것은 조금 다르니까.

이런 룬의 생각을 모르는 화룡족 해츨링은 마음에 영 걸렸는지 재차 경고를 남겼다.

“캬악.”

[잘 생각해라, 룬. 그 말이 적중하지 않는다면 자칫 저 문에 타버릴 수도 있다.]

난쟁이 인형 제드의 몸은 세계수.

이토록 강력한 마력이 흐르는 불길에 대항하긴 무리였다.

제드가 턱을 긁으며 입을 열었다.

“그야, 뭐 좀 무섭긴 한데요. 그렇다고 제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잖습니까.”

엄살을 좀 떨긴 했지만, 두려워서 피하려는 눈치는 아니었다.

다만 룬 역시 확인차 질문을 던졌다.

“뀨뀨.”

[제드. 너 어떤 상황에서도 그 진실을 말 할 수 있어?]

제드는 냉큼 대답부터 했다.

“그럼요!”

제드를 들여다본 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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