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을 잊지 마.]
그 말에 페르디키온의 얼굴이 룬을 향해 홱 돌려졌다.
“캬.”
[죽었다가 살아난 네 권속이다. 신중하게 생각해라, 룬.]
페르디키온의 염려에, 룬은 고개를 태연히 끄덕였다.
“뀨우.”
[괜찮아.]
오히려 걱정이 되는 건 룬이었다.
‘나야말로 문제로군.’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룬이 문을 다시 바라보았다.
말은 하지 않지만, 룬 역시 이 문구에 대해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이 몸에 진짜 내 것이 아니라고 하면, 진실하지 못한 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이 육체는 본디 그의 것이 아니다.
즉, 이는 룬의 위기이기도 했다.
다만, 룬 역시 생각하는 바는 있었다.
“뀨우.”
[역대 모든 불의 일족이 통과했어. 그들 중, 거짓을 품은 자도 분명 있었을 텐데도.]
룬은 생각했다.
진실을 알고, 품고 있는 것이 조건이라면.
겉모습이 아닌 다른 것을 시험할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 관문을 지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였다.
룬은 무해한 얼굴을 해 보이며 말했다.
“뀨뀨우.”
[괜찮을 거야. 들어가자, 형.]
페르디키온은 잠시 차분하게 권하는 룬을 보더니, 결국 타오르는 문을 짚었다.
“캭.”
[다들 무사히 넘어와라.]
화르륵!
마력으로 빚어진 불이 페르디키온을 감쌌다.
얼마 뒤, 불이 사라지며 페르디키온 역시 사라져 있었다.
놀란 흑미가 입가에 손을 올리며 외쳤다.
“앗, 페르디키온 님이 없어졌어요.”
“삐약?”
문 근처를 살피러 가던 흑미와 백야를 제지하며, 룬이 말했다.
“뀨뀨.”
[잠시 기다려보자. 다시 나올 수도 있으니.]
문을 지켜보며, 룬은 불에 감싸이기 직전을 떠올렸다.
‘분명 뭔가 말하는 듯했는데.’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었다.
누군가에게 대답하기라도 한 듯, 주둥이를 달싹이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페르디키온이 돌아오지 않자, 룬이 말했다.
“뀨우.”
[저 문을 지나 봐야 알겠는걸.]
그 말을 들은 흑미가 한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흑미가 먼저 가겠숩니다!”
“삐약!”
날개를 함께 파닥인 백야가 흑미 머리 위에 앉았다.
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뀨뀨.”
[그래. 혹시 이쪽에 상황 말 해줄 수 있다면 전해줘.]
“네!”
“뺘악!”
씩씩하게 외친 흑미와 백야가 타오르는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신비로운 붉은색과 주홍색이 날름거리며 둘을 삼키고, 사위는 뜨거운 용암과 불길만 남았다.
“저어기…… 이거 아무래도 돌아오는 길은 없는 것 같죠?”
“뀨.”
[그러게.]
룬은 가볍게 대답하곤 문가로 다가갔다.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온 제드가 중얼거렸다.
“끄응,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불은 쪼오금 무섭군요.”
“뀨우.”
[불을 다루는 대장장이가 하기엔 너무 약한 말 아니야?]
나름대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는 농이었건만, 제드는 뒷 머리를 손으로 긁으며 말했다.
“그게…… 솔직히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문의 모양을 하곤 있지만, 살아 움직이는 불.
룬 역시,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운에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다.
“뀨우.”
[내가 한 말만 기억하면 넌 괜찮을 거야.]
제드가 의아하게 돌아보자 룬이 말을 덧붙였다.
[이 문은 결국, 용기 있는 자를 가려내는 문이란 뜻이기도 해. 어떤 부끄러운 진실이라도, 그것을 진실이라 택할 자인지를 시험하는 거지.]
“호오우.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요?”
“뀨.”
[비슷한 이야기를 알거든.]
신수로서 겪은 일.
즉, 해츨링이 되기 전 전생에서 겪은 일이므로 차마 말 해줄 수는 없었다.
‘전생에 이런 종류의 시험은 종종 봐왔다고 말 해줄 수는 없고.’
룬은 자세한 사정 설명을 피하며주둥이를 움직였다.
“뀨뀨우.”
[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너는 네 안의 진실을 따라가면 돼.]
그 말을 들은 제드가 힘을 얻었는지 기지개를 쭉쭉 폈다.
“허이쨔! 룬 님만 믿습니다요.”
몸을 편 제드가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혼자 남은 룬 역시, 거대한 불의 문 안으로 뒤뚱이며 걸어들어갔다.
화륵!
뜨거운 불과 치명적인 열기가 순간 온몸을 스치고.
“……?”
사위가 조용해졌다.
룬은 눈을 떴다.
그리고 보인 광경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뀨?”
[길이 있어?]
두 갈래의 길.
그리고, 길 너머에는 두 모습이 존재했다.
“뀨우…….”
[저 모습이 왜 여기에…….]
룬은 입술을 움직이다 깨달았다.
사라진 페르디키온이 같은 소리를 했으리라고.
왼쪽 길에는 드래곤 족 해츨링 룬이.
오른쪽 길에는 승천하기 직전의 이무기가 서 있었다.
그 둘이 똑같이 서서 룬에게 물었다.
[[무엇이 네 진실된 모습인가.]]
그 모습을 확인하고, 룬은 속으로 슬며시 웃었다.
‘그래. 진짜 시험은 이거였다는 거군.’
자칫, 잘못된 선택을 하면 이 안에 갇히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다른 녀석들은 잘 하고 있으려나.’
잠시 생각하던 룬은 천천히 앞 발을 움직였다.
“뀨.”
[정답은 나 자신. 너희 둘 모두 내 모습이야.]
그러자, 길 위에 선 두 해츨링과 이무기가 모습을 바꾸었다.
색이 다른, 두 열쇠가 모두 룬의 앞발로 날아왔다.
‘열쇠가 두 개라.’
후욱!
눈을 들자, 등 뒤에 불로 된 문을 둔 채 빠져나와 있었다.
“캬!”
[룬! 역시 해냈나!]
페르디키온이 서성거리다 빠르게 달려왔다.
뒤뚱거리면서도 위엄있고 균형감 있는 걸음걸이로 온 페르디키온 옆에서, 흑미와 백야도 따라왔다.
“룬 니임!”
“뺘아악!”
다가온 이들에게 룬이 물었다.
“뀨뀨.”
[빨리 해결했네. 다들.]
칭찬을 받았다 느낀 흑미가 힛, 하고 웃으며 말했다.
“네! 안에서 까만 여우랑, 장미 흑미랑, 왠지 어른이 된 흑미가 다 나왔는데. 그 중에 누가 흑미인지 맞추랬어요.”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게 틀림없었다.
“뀨우?”
[그래서?]
룬의 허리춤을 끌어안은 흑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흑미는 흑미예요! 라고 외치니까 쇽쇽 다 사라졌어요!”
“뀨뀨.”
[뭐 받은 건 없고?]
“그런 건 없었어요.”
고개를 저어내는 흑미를 보며 룬이 의아한 눈을 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백야를 보자, 백야는 아예 상황을 모르는 눈치로 고개만 갸웃, 하고 기울였다.
‘백야는 아예 시험을 받지 않았다는 건데.’
다른 이들은 열쇠도 없고, 아예 시험조차 받지 않았다라.
아무래도 각자가 받는 시험과, 그 보상이 모두 다른 듯했다.
“뀨우?”
[형은?]
“캬캬.”
[난 열쇠가 아닌 다른 걸 받았다. 그런데, 제드는 언제 들어간 거냐?]
“?”
먼저 들어간 제드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말에 룬은 문을 돌아보았다.
“뀨?”
[설마?]
혹시나 하고 좀 더 기다려보았지만, 제드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설마 하는 가정이 맞아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불길한 기분이 들 때쯤, 갑자기 문에서 퉷! 하고 뱉어지듯 불붙은 뭔가가 튀어나왔다.
“하이고오!”
틀림없는 제드의 목소리였다.
불의 신전(3)
“후욱! 후욱!”
제드가 불 붙은 곳을 열심히 입으로 불었다.
룬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저놈은 또 어쩌다 탔어.’
룬의 앞발이 주머니에 들어갈 때마다 아이템이 쑥쑥 잡혀나왔다.
정령수를 굳혀 만든 얼음과 상한 곳을 수선할 세계수의 나무토막.
불의 신전에 들어가면, 어떤 식으로든 불에 해를 입을 듯해 준비한 물건들이 빛을 볼 시간이었다.
시선을 돌린 룬이 페르디키온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