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뀨우.”
[형. 불의 힘으로 결계 좀 부탁해.]
“캭.”
[알겠다.]
페르디키온의 힘으로 노을빛의 결계가 생겼다.
룬은 버둥거리는 제드에게 다가가 목을 쥐고 바닥에 눌렀다.
“뀨.”
[가만히 있어.]
끙끙거리던 제드는 갑자기 목을 조여오는 느낌에 켁켁 목에 걸린 소리를 내었다.
“끄억!”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룬은 정령수 얼음을 제드에게 뿌렸다.
촤악!
치이익.
불 기운이 진정되고, 자잘하게 타거나 그을린 자국이 보였다.
룬은 침착하게 여분의 세계수 나무토막을 꺼냈다.
‘혹시나 싶어 미리 대비해 오길 잘했지.’
페르디키온의 결계 속에서, 룬은 어둠을 이용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자, 더워서 귀를 축 늘어뜨렸던 흑미가 다시 쫑긋 귀를 세웠다.
“핫, 시원해요.”
양 손으로 뺨을 짚은 흑미가 꼬리를 살랑였다.
불길이 약해지고, 어두운 그늘만이 존재하는 작은 공간.
다행히, 제드의 몸에 붙은 불도 더 이상 번지지 않았다.
그때, 페르디키온이 입을 열었다.
“캭.”
[허나, 이 공간은 오래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나, 룬?]
그 말에 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뀨우.”
[그렇지. 잠시 형의 불을 이용한 눈속임일 뿐이니까.]
룬은 빠르게 숲의 인장을 사용했다.
제드의 상한 몸에서 상한 조직들이 투둑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새로운 나무토막에서 가지가 뻗어나오며 제드의 몸에 접붙여졌다.
“뀨.”
[됐어.]
탄 부분이 제거된 자리에 완벽하게 이어진 나무는 원래 하나였다는 듯 이음새 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다.
“흐어엉? 아니?”
엄살을 부리며 버둥거리던 제드는 제 몸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호오오! 이런 게 가능하시다니!”
부담스럽게 눈을 반짝인 제드가 룬을 바라보았다.
어둠을 회수한 룬이 말했다.
“뀨우.”
[혹시나 하고 미리 대비했을 뿐이야. 그런데, 안에서 뭘 했길래 이렇게 탔어?]
그러자, 제드가 무척 억울한 눈으로 변했다.
“룬 님!”
“뀨?”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제드가 흐르지도 않는 눈물을 손으로 훔쳤다.
“처음에는 제 모습을 한 다양한 것들이 나오더라고요? 근데, 그것들이 다 마음에 들어서…… 다 고른 것뿐인데.”
제드는 묘하게 말 끝을 흐리며 눈치를 보았다.
세상 서러운 듯 굴더니, 아무래도 뭔가 켕기긴 한 모양이었다.
“뀨우.”
[그래서 어쨌다는건데.]
“어허험! 그게…… 허허헛!”
헛기침을 하며 대답을 피하려드는 게 영 수상했다.
흑미와 백야는 영문 모를 눈이 되었고, 페르디키온과 룬이 노려보는 시선으로 바뀌자.
“그게, 페르디키온 님. 잠시만요.”
“?”
룬도 아니고, 페르디키온에게?
묘하게 불편한 분위기가 흘렀다.
하지만, 나름대로 눈치 좀 잘 보는 축인 제드가 이 분위기를 모른 체 하다니.
‘이상하군. 이유가 있긴 있는 모양인데.’
룬은 페르디키온을 바라보았다.
“뀨뀨우.”
[형이 한 번 들어봐 줘.]
눈썹을 꿈틀, 한 페르디키온이 한숨을 푹 쉬었다.
“캬악.”
[알겠다.]
그렇게 제드와 함께 구석으로 간 페르디키온은 몇 초 뒤.
“캬아아악!”
[이 수치스러운 놈아!]
빡!
참지 못한 페르디키온이 제드의 머리에 주먹을 꽂았다.
딴에는 꿀밤 수준이었겠지만, 성체를 앞둔 해츨링의 꿀밤이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캬악!”
[어디가서 드워프 족이었다고 하지도 말아라!]
“아이고, 아이고! 억울합니다요!”
[시끄럽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릴 기세로 제드가 서러운 눈을 했다.
진노한 붉은 해츨링은 씩씩거리며 룬에게 돌아왔다.
“뀨?”
[뭐래?]
페르디키온은 미간을 팍 구기더니 이를 갈았다.
“칵.”
[온갖 향락을 즐겼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룬은 새삼, 페르디키온은 거짓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보라.
지금도 열심히 말을 돌리려고 애쓰지만, 결국 모든 게 이해되는 이 상황을.
“캭 캬악.”
[세상의 돈을 쓸어모아대려는 모습이라든가, 여성 드워프에게 홀려 다녔다고…….]
룬의 시선이 세상 억울한 눈을 한 제드에게 향했다.
“크흑! 드워프들의 꿈 그 자체를 이루고 싶어한 이 제드의 모습 그대로였을 뿐이잖습니까요. 솔직히, 드워프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꿈 꿀 거라구요!”
제드의 항변에 페르디키온의 일갈이 터져나왔다.
“캬악!”
[넌 이 신성한 불의 신전을 대체 뭐라 생각하는 거냐!]
룬은 둘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대단한 놈. 진짜 거짓 없이 다 보여줬나 보군.’
지성을 가진 이들에게는, 때론 억만금을 줘도 숨기고 싶은 치부란 게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제드는 그런 부분까지 홀랑 다 인정하고만, 궤변의 드워프였다.
“……뀨.”
[그게 정답이긴 했을 거야. 누구라도 부끄러워할 날 것의 욕망까지도 제 모습이라 긍정해 버리는 게.]
다만 그 모습이 부정한 것이라 불벼락을 맞았겠지.
눈에 훤히 보이는 기분이었다.
제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랑스럽게 팔짱을 끼고 어깨를 폈다.
“맞습니다요. 제게도 이게 다 네 모습이라면, 너는 불의 신전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 불경한 자이다, 라고 엄포를 두더라고요?”
“뀨우.”
[그런데?]
제드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불경하지만 이 신전의 모든 것을 구경하고 싶다고 외쳤죠. 그게 제 진실한 마음이라고요. 그랬더니 불이 겁화처럼 덥쳐오대요.”
그 이후 불에 탄 채로 이렇게 밖에 나온 거라며, 제드가 투덜거렸다.
“전 진실을 말했습니다요. 그런데 이런 축객령이라니. 너무하네요.”
“…….”
룬의 생각에, 그 정도로 끝난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룬이 콧숨을 쉬자, 제드가 히죽 웃었다.
“뭐, 그래도. 순수한 육신과 순수한 불의 일족이 영혼의 상태에서 온 거니 봐준다는 식으로 말하던데요. 아! 그리고 뭘 줬는데.”
흑미조차 받은 게 없건만, 제드가 뭔가 받았다니.
호기심이 생긴 룬이 물었다.
“뀨.”
[그래서, 제드 넌 뭘 받았는데?]
“이런 걸 받았습니다요. 영롱하죠?”
제드가 품에서 주섬주섬 꺼내 보인건 등급을 측정할 수조차 없는 마력석이었다.
물건을 살핀 룬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뀨우.”
[제드 너는 당장 돌아가라는 거 같은데.]
“예? 그냥 마력석 아니었습니까요?”
드워프답게, 보상으로 훌륭한 마력석을 받았다 여긴 제드가 의아하게 되물었다.
하지만 룬은 고개를 저었다.
“뀨뀨우.”
[이거 귀환석이야.]
룬은 반짝이는 붉은 귀환석을 보며 생각했다.
‘문을 통과할 정도로 순수……하고, 진실하긴 했지만, 불의 신전에 들이지는 않겠다는 뜻 같은데.’
제드가 좋을 대로 해석해서 그렇지, 어쩌면 ‘당장 꺼져!’라는 의사 표현이어도 이상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생각지도 못했는지, 제드가 볼멘 소리로 항의했다.
“에엥? 그런 게 어딨습니까!”
“뀨우.”
[원래 나라가 바뀌면 그 나라 법을 따라야하는 거니까.]
룬의 대꾸에 제드가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아니 룬 님. 그래도, 여기서 혼자만 돌아갈 수는 없잖습니까요?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이걸 쓸 테니, 조금만 같이 있게 해 주십쇼.”
헤헤 웃으며 비굴하게까지 말해오는 모습은 룬에게 별 감흥을 주진 못했다.
“뀨.”
[같이 가긴 뭘 가.]
“진짜 얌전히 입 다물고 따라만 가겠습니다요.”
룬이 재차 말하려는 순간, 페르디키온이 말했다.
“캭.”
[상관 없을 거다.]
“뀨?”
[그래?]
고개를 끄덕인 페르디키온이 주둥이를 움직였다.
“캬악.”
[어차피 세 번째가 마지막 관문이다. 성체가 될 과업을 받아오는 자만 들어갈 수 있지. 따라와봐야 더 이상은 들어갈 수 없을 거다.]
즉, 어차피 페르디키온만 가야 할 길이니 제드가 조금 미적거리다 가는 건 상관없으리란 말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룬이 제지할 필요는 없었다.
“뀨욱.”
[형이 그렇다면, 알겠어.]
‘그럼, 내가 받은 열쇠들은 뭐지?’
의문도 잠시, 페르디키온의 출발하자는 말에 모두는 앞으로 더 나아갔다.
세 번째 관문은 관문이되, 관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