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6화 (226/242)

새하얗게 빛나는 별을 빚어낸 장소에는 커다란 용이 걸어다녀도 될 만큼 큰 전당이 우뚝 서 있었다.

보통, 이런 장소에는 안내자나 가디언이라도 있어야 하건만.

오직 타오르는 불과 치솟는 용암이 우렁차게 흐르는 소리만 나는, 우람하면서 고요한 공간이었다.

페르디키온이 말했다.

“캬악.”

[여기서부터다. 증표 없이는 불의 신전에 들어갈 수 없을테니 기다려라.]

그리고는, 품에서 새빨간 심장 모양의 불꽃을 꺼냈다.

불꽃이 피처럼 뚝뚝 흘렀다.

“캭.”

[두 번째 관문에서 받은 거다. 다른 녀석들은 이런 것이 없겠지. 먼저 다녀오마.]

룬도 품에서 열쇠를 꺼내었다.

“뀨우.”

[나도 다녀올게.]

“룬 님도요?”

흑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룬이 열쇠를 들어 보였다.

“뀨우.”

[저 안에서 가져가야 할 게 있을거야.]

“삐?”

백야와 흑미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시선은 다시 룬에게 향했다.

분홍 장밋빛 눈에 걱정이 담긴 흑미가 입술을 떼었다.

“룬 님, 여기는 엄청 친숙하지만 뭔가 무서워요. 꼭 돌아오셔야 해요?”

“삐이약.”

흑미의 당부를 백야가 거들었다.

룬은 남아있어야 할 이들을 보며 말했다.

“뀨뀨우.”

[그래. 제드 녀석 잘 데리고 있어.]

“네!”

씩씩하게 대답한 흑미를 두고, 룬은 페르디키온을 따라 뒤뚱이며 들어갔다.

“캭.”

[네가 함께 오게 될 줄 알았다, 룬.]

“뀨우.”

[그래? 난 예상 못했었는데. 어떻게 알았어?]

열쇠를 받았을 때도 짐작 못했던 일을, 페르디키온이 어떻게 알았을지가 궁금했다.

“캭.”

[느낌이 그랬다. 설명하긴 어렵군.]

룬은 잠시 시선만 두었다가 고개를 들었다.

“뀨우.”

[형제라서 그런 건가 봐.]

“캬.”

[그럴지도 모른다.]

페르디키온이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다.

얼마쯤 걸어가자, 하얀 불이 빛처럼 둘러진 곳 안에 제단이 보였다.

페르디키온이 말했다.

“캭.”

[저 제단에서, 나는 이걸 걸고 내게 걸맞은 과업을 받게 될 거다.]

룬은 물끄러미 그 심장을 바라보았다.

“뀨우.”

[이거, 형의 심장이지.]

“캭.”

[그래.]

불의 신전의 힘 탓인지, 꺼내진 자국조차 없이 들려있는 페르디키온의 심장.

그 사실을 알아챈 건 룬 뿐이었다.

‘심장을 걸고 과업을 받는다, 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레드 드래곤은 과업을 받아오는 데 실패한 자가 없다는 말.

그건, 실패한 순간 드래곤 하트를 잃어 드래곤이 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그 낙오한 자들의 이야기는 제외 된 게 아닐까, 하고.

그는 높은 확률로 사실일 터였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같은 맥락이라면…….’

즉, 페르디키온이 과업을 받아오는 것에 실패한다면 룬 역시 불의 인장을 잃을지도 모른다.

룬은 앞 발에 들린 두 개의 열쇠를 내려다 보았다.

그때였다.

“캭.”

[사실, 할 말이 있다.]

긴장되는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페르디키온이 룬에게 시선을 던졌다.

불의 신전(4)

룬은 후끈한 열기로 인해 안구가 뜨뜻해지는 걸 느꼈다.

내재된 어둠과 물의 기운이 내면을 식히지 않았다면, 진작 뇌까지 녹을 듯한 기분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룬은 페르디키온을 바라보았다.

“뀨우.”

[뭔데?]

룬이 묻자, 화룡족 소년이 잠시 망설이다 주둥이를 움직였다.

“캭.”

[룬. 과업을 받을 자격이 없다면, 나는 내 모든 것이 담긴 이 심장을 잃어버린다.]

이미 짐작했던 바였다.

룬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뀨욱.”

[역시 그랬구나. 예상은 했었어.]

룬의 대답을 듣고, 화룡족 해츨링은 전당 안에 있는 제단을 바라보았다.

“캬악.”

[그건 곧, 드래곤이지만 드래곤일 수 없는 자가 됨을 뜻하지. 마치…….]

엘프와 드래곤들에게 버려졌던 갈색 드래곤 란드처럼.

숨겨진 뒷말이 침묵을 통해 들려왔다.

페르디키온은 잠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캭.”

[내가 혹시 그렇게 되더라도, 너는 내 형제로 남아 있을 거냐?]

룬은 물끄러미 화룡족 소년을 바라보았다.

늘 당당하고 거침없던 녀석이, 심장을 걸고 선 자리에서 묻고 있었다.

비참해질 수도 있는 순간에도 배신하지 않겠느냐, 고.

새삼, 룬은 다행이라 여겼다.

‘본래는 불의 일족을 내 편으로 삼기 위해 친해진 녀석이었지.’

전생 덕분에 룬은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

또한 이미 알고 있기에, 대답을 망설이지 않을 수 있었다.

“뀨우.”

[당연하지. 난 늘 형 편이야.]

이 성정 탓에 곤란한 지경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바뀌지 않았던 부분이다.

그럴 수 있었기에 승천에 가장 가까웠다.

망설임 없는 룬의 말에, 페르디키온이 고개를 들었다.

“캬악.”

[고맙다, 룬.]

폐부에 깊게 숨을 들이켠 페르디키온이 신전을 딛고 있던 발을 옮겼다.

뒤뚱거리는 모양새임에도, 무척이나 듬직해 보였다.

‘녀석. 힘내라.’

룬은 앞발을 하나 들어 흔들어주었다.

“뀨우.”

[잘 다녀와, 형.]

붉은 꼬리를 치켜세우고 얼굴을 꼿꼿하게 세운 페르디키온이 우뚝 멈추더니, 고개만 끄덕이고는 다시 나아갔다.

곧 제단과 페르디키온이 거대한 불기둥에 삼켜졌다.

시련의 시작이었다.

배웅을 마친 룬은 열기 가득한 주변을 탐색했다.

‘열쇠를 써야 할 만한 곳이 없어.’

혹시나 해서 시도해 봤지만 전당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문은커녕 그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역시 이건가.’

잘그락.

열쇠를 들여다본 룬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몸 안의 마력을 이끌었다.

‘할 수 있을까.’

룬이 지금 시도하려는 것.

<마력 실뜨기>.

이를 이용해 열쇠를 복제하는 일이었다.

‘아니, 반드시 길은 있다.’

보이지 않는 길이라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열쇠와 길이 존재한다면 룬은 찾아낼 수 있었다.

힘을 집중시키자 열쇠 끝이 진동하며 울었다.

우웅!

울고 있는 열쇠에서 불이 흘러나와 회전했다.

‘조금만 더.’

룬은 속으로 되뇌며 열쇠 안에 담긴 불의 마력을 짜냈다.

어둠을 물레 삼아, 섬세한 불길의 실타래를 자아내어진다.

우웅 우웅.

일렁이는 불길에 흔들리는 그림자처럼 서서히, 불과 어둠이 만나 길이 연결되었다.

츠즛!

룬은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찾았다.’

룬은 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홉 떴다.

‘태양, 아니…… 드래곤들?’

온몸이 불꽃으로 둘러진 레드 드래곤이 거대한 공허 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던져진 채 울고 있는 영혼들의 눈이 한꺼번에 룬을 향했다.

하나같이 어린 드래곤.

혹은 해츨링들이었다.

“……!”

우욱.

룬은 그 모습에 욕지기가 나올 뻔한 걸 억눌렀다.

그 정체를 직감하는 순간, 소름이 끼쳐 비늘이 차르르 일어났다.

‘과업을 받는 데 실패한 레드 드래곤들……!’

충격적인 광경에 룬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런 걸 내게 보여주는 이유가 있을 텐데.’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룬은 외면하지 않았다.

그들이 쏟아져 나올 듯, 룬이 만든 통로로 달려들었다.

-콰앙!

소리 없는 충격에 룬의 몸이 데구루루 굴렀다.

하지만, 그들이 나오기에는 문이 너무나 작았다.

-쾅!

보이지 않는 결계를 헤쳐나올 만큼의 힘도 없었으며.

-콰앙! 쾅!

이지를 대부분 상실해 서로 몸을 물어뜯고 싸우기까지 했다.

본능만 남아버린 화룡들.

그를 자세히 살피기도 전에 룬은 더 거대한 시선을 느끼고 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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