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1화 (231/242)

다 좋아해요!

흑미가 손을 내밀어 베르딘의 몸을 건드려보았다.

아니, 확인했다고 해야겠다.

안개를 뭉친 듯한 몸에 손을 넣어본 흑미가 룬을 보며 물었다.

“룬 님. 몸이 엄청 투명하고, 이렇게 통과도 될 수 있는 거예요?”

룬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이 흔하지는 않아.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은 더더욱 아니고.]

룬의 말을 들은 흑미가 호오오, 하고 몇 번 더 베르딘의 안개 같은 몸에 손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그렇구나! 신기해요. 백야야. 너도 그렇지?”

“삐이?”

고개를 들어 올려본 백야가 눈을 끔뻑거렸다.

베르딘을 물끄러미 본 백야는 홰를 치듯 날개를 퍼덕였다.

그리고는, 베르딘 주변을 한 바퀴 돌더니 룬에게 날아들었다.

“피이!”

노래하듯 곱게도 울며 룬의 반질반질한 머리 위에 앉은 백야.

시선은 룬, 그리고 트레이에 준비된 음식을 향하고 있었다.

“뀨우.”

[이 녀석 배고픈 모양이다. 그만 가야겠는데.]

그 말을 들은 흑미가 앗, 하고 한 손을 들어올렸다.

“맞아요! 저희 다 식탁에 모이기로 했다고 말씀드리러 온 건데!”

다들 배고플거예요, 라며 미안한 듯 말을 맺은 흑미를 보며 룬에 트레이 손잡이를 잡았다.

[준비 다 됐으니까 옮기기만 하면 돼. 이동 마법을 쓰면 금방이야.]

룬은 베르딘을 돌아보았다.

“뀨.”

[나중에 보자.]

유령 베르딘은 이 장소에 스며있던 자.

부엌을 벗어나면 소멸할 수도 있었다.

그런 자신을 잘 알고 있던 베르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점심을 마련하고 있지요.

그 말에 룬이 문득 떠오른 이야기를 전했다.

“페르디키온은 레몬맛 좋아하던데. 참고해.”

-그랬습니까? 제가 여쭐 때는 다 괜찮다며 늘 잘 드시기만 하시더니…….

생전 몰랐던 일에 내심 아쉬운 눈치를 하는 유령 베르딘.

그에게 말을 한 건 의외로 흑미였다.

“정말로 괜찮았을 거예요.”

히- 하고 웃은 흑미가 말을 이었다.

“흑미도요, 사실은 딸기가 제일 좋아요. 하지만, 룬 님이 흑미를 위해 만들어 준 건 어떤 음식이든 너무너무 따뜻하고 맛있어요! 흑미를 위해 만들어 줬다는 건, 너무너무 상냥해요. 그래서 다 좋아해요!”

룬은 속으로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뀨.”

[그렇다고 하네. 물론 나도 같은 생각이야.]

유령 베르딘은 생각지도 못한 얼굴로 잠시 멍해져 있더니, 이어 허허 하며 웃음을 흘렸다.

-죽는 날까지 그런 것도 모르고 살다니. 좀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은 눈으로 유령 베르딘이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두 분. 점심으로 레몬과 딸기를 사용한 식사를 만들어볼 테니 기대해 주십시오.

“뀨우.”

[기대할게.]

“흑미도요!”

인사를 마친 룬은 트레이를 끌고 흑미, 백야와 함께 식사를 할 장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백야가 흑미와 룬을 번갈아 보며 의문스럽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백야에게 흑미가 말했다.

“백야가 좋아하는 건 버터랑 꿀을 바른 감자칩이지? 그치만 새니까…… 역시 벌레도 먹는 거야?”

그 말에 고개를 흔든 백야가 소리를 냈다.

“삐약!”

누가 봐도 부정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룬은 상상해보았다.

백야가 발로 팍팍 땅을 파서, 부리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쭉 뽑아 먹는 모습을.

‘의외로 이상하지는 않은데?’

이상하긴커녕 룬의 상상 속 백야는 지렁이를 말린 오징어 다리 씹듯 쫄깃쫄깃하게 씹어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잘 어울렸다.

하긴, 몸집이 크지 않아서 그렇지.

부리가 워낙 강력해서 어지간한 검에 비빌 정도의 강도다.

일반적인 벌레는 물론, 몬스터도 단숨에 쪼아먹을지도 몰랐다.

룬은 이전 세상에서 들은 속담을 떠올렸다.

‘하긴,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잡는다, 했지.’

하지만 백야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삐약! 삐약! 삐이이야악!”

있는 대로 성 난 녀석이 가느다란 발을 구르며 통통하고 짧은 머리를 흔들어대었다.

아마 백야 입장에서 저 농담은 ‘일찍 일어나는 새는 먹기 싫은 밥을 먹게 된다.’는 뜻으로 들린 게 아닐까.

룬은 은근한 장난기를 이기지 못하고 백야에게 말했다.

“뀨우.”

[어쨌든 너 새 아니야. 태생적으로는 역시, 가능하지 않아?]

“뺘아아악!”

하얀 솜털까지 바짝 세우는 걸 보니 장난은 이쯤 해야 할 듯했다.

“뀨, 뀨우.”

[농담이야. 벌레 같은 걸 먹일 생각은 없으니 안심해.]

“삐이. 삐루루루.”

그제야 세웠던 흰 털이 가라앉으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니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뀨우.”

[그럼 이동한다.]

“네에! 베르딘 할아부지, 안녀엉!”

베르딘이 고개숙여 인사하는 장면 직후, 장소가 바뀌었다.

음식 트레이를 쥔 룬은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보자. 이쪽이던가?’

느껴진 기척대로, 제드와 페르디키온이 함께 자리해있었다.

대륙 지도가 있는 걸 보니, 둘이서 먼저 과업에 대한 이야기라도 나누고 있던 모양이었다.

먼저 반긴 건 페르디키온이었다.

“룬, 왔나.”

“오호우! 룬 님, 이제 오셨습니까요?”

룬은 변신용 황금팔찌를 꺼내 끼고, 둘에게 인사를 했다.

“잘들 잤어?”

자연스럽게 룬이 앉고, 음식이 식탁 위에 차려졌다.

페르디키온이 말했다.

“식사 들면서 이야기하지.”

그러자 제드와 흑미, 백야가 답했다.

“우효오! 감사히 먹겠습니다요!”

“잘 먹겠습니다!”

“삐약!”

달그락.

자연스럽게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투박한 빵과 감자튀김. 소시지.

페르디키온은 소스를 뿌린 감자튀김을 먼저 먹으며 말했다.

“익숙하면서도, 숙련된 맛이라니. 두 번째 먹어보지만 여전히 묘하군.”

“사실 도움을 좀 받았거든.”

그 말에 페르디키온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누구의 도움이 있었단 말이냐?”

“베르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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