룬은 물끄러미 드워프를 바라보았다.
‘내가 관상가는 아니지만 저 녀석은 쉽게 속을 거 같은데.’
좋게 말하면 순박해보이고, 나쁘게 말하면 뭐든 잘 믿는 자 특유의 얼굴이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드워프의 관상이 아니므로, 룬은 다른 화재로 말을 돌렸다.
“물건과 제작 장비는 이게 다지?”
“예. 맞습니다.”
장비만 봐도 안다.
지원이 열악한 이들이 끈질기게 연구하기 위한 열정이 엿보였다.
룬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쪽으로 들어섰다.
“앞으로는 너희들 몸에 대한 안전도 더 신경 쓰면 좋겠다. 장비를 아낀 건 잘 했지만, 그걸 다룰 장인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니까.”
그 말에, 드워프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재차 숙여보였다.
“그거야 그렇죠…… 하지만 저희 공방은 지원금 말고는 아직 벌이가 시원찮아서…….”
그 말에 룬이 태연하게 말했다.
“걱정 마. 앞으로 돈 걱정 할 새도 없이 다들 정신없이 바쁠 거니까.”
“……예?”
뭘 들은 거지? 라는 눈으로 얼떨떨하게 고개를 들어보이는 드워프에게 룬이 색색의 간식이 든 유리병들을 넘겨주었다.
“좋아. 우선 부상 당한 녀석들에게 이거부터 먹여.”
유리병에 담긴 건 곰젤리와 사탕, 과일청 따위였다.
새콤달콤한 향이 진하게 우러나와 당장이라도 하나씩 꺼내먹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보다 드워프의 눈에 띈 것이 있었으니.
“이, 이 병은 뭡니까?!”
“병? 그거 부탁하니 제드가 적당히 만들어주던데.”
그 말에 드워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건 단순히 간식을 담은 병이 아니었다.
마력을 보존하기 아주 탁월한데다, 망치로 두들겨도 잘 깨지지 않도록 강화된 훌륭한 물건이었다.
“제드 님이라면, 그제 공방을 터트린…… 아, 아니. 함께 계셨던 분이요? 이런 병은 처음 보는데, 대체 소재가 뭡니까?”
황급히 말을 바꿔 묻는 드워프에게 룬이 말했다.
“몰라. 성능만 지시했을 뿐, 제작 과정은 못 봤거든.”
‘소재는 모르겠지만 요청했더니 만들어줬지.’
유리병을 위해 너무나 고생했다며 겨자 먹은 듯 눈물을 뿌리던 제드는 이미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룬이 말했다.
“안에 든 건 다친 데 좋은 거야. 빛 속성 회복이 담긴 거라 어둠 속성과 저주 관련 피해에 특히 효과가 좋지.”
단순히 상처도 그렇지만, 저주와 어둠의 힘에 해를 당한 건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기력이 쇠하고 몸 전체적으로 힘이 없거나 병이 깊은 자는 이 과일청을 타 먹이도록 해.”
말하다 보니, 저잣거리의 약장수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탕은 상처 회복과 피로 회복에 좋고, 곰 젤리는 집중력이 필요할 때 먹이면 돼.”
룬의 설명을 들은 드워프가 휘둥그렇게 눈이 떠져서는, 젤리와 세계수 과일청, 사탕 유리병을 손으로 쥐었다.
“책임지고 잘 나눠주겠습니다.”
“좋아. 당장 그거 먹이고, 회복한 녀석들은 전부 이곳으로 모아.”
“예?”
어리바리하게 되물어오는 드워프에게 룬이 말했다.
“괜히 좋은 약을 주는 거 아니야. 오늘 당장 일해야 할 게 산더미라고. 게다가, 오기로 한 녀석도 오늘 올 거야.”
“억!”
기겁을 한 드워프가 당황하여 허둥지둥 짐가방에 병을 밀어넣었다.
“전부 데려오겠습니다!”
“좋아. 약이 부족하진 않겠지?”
“그럴 리가요! 이 정도면 일 년은 문제 없을 정도입니다.”
룬이 건네준 유리병은 무척이나 컸다.
이번 사태로 해를 입은 드워프들 뿐 아니라, 후에 상비약으로 두고 사용해도 될 만큼.
룬은 고개를 끄덕이며 재촉했다.
“그럼 빨리 데려와. 시간이 없어.”
“네!”
키는 작지만 발은 눈에 보이지도 않게 빨라진 드워프가 룬의 말에 문 밖으로 튀어나갔다.
‘설마 세계수 과일청까지 먹이는 데 회복 못하는 놈이 있을 리는 없고.’
잘 익은 과육과 과즙이 팡팡 터지는 세계수.
그냥 먹어도 효력이나 맛이 훌륭하지만, 마법 시료를 설탕화 하여 만든 세계수열매 과일청은 죽어가는 드래곤도 벌떡 일으킬 만큼의 효과가 있었다.
‘앞으로 사고가 많을 놈들이니, 저 정도는 주는 게 맞겠지.’
룬이 귀한 영약을 드워프들에게 제공한 것은, 제드 때문에 다친 것에 대한 약간의 보상.
그리고 그레이스를 감당해야 할 드워프들의 고충비였다.
‘그레이스가 능력에 있어서는 이 계획에 딱 좋은데, 잘 맞춰가기는 어려운 타입이니.’
제드가 일으킨 사고는 그저 전초전일 뿐이라는 걸, 룬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레이스가 와서 함께 일하게 되면 있는 사고 없는 사고는 물론, 스트레스로 머리털이 쑥쑥 빠질 개통파 드워프들이 눈에 선했다.
‘어쨌든, 이걸로 준비는 끝났고.’
남은 건 그레이스를 마중 나가는 것뿐이었다.
그때, 룬의 모코지석이 반짝였다.
“아까부터 빛나더니.”
룬은 자신의 까만 모코지석을 집어들었다.
작동시키기도 전에, 이번에는 흑미의 분홍색 글자가 마력석 위에 떠오르고 있었다.
<룬 님- 딸기쨈 페스츄리 파이 맛있어요. 근데, 쨈이 코에 자꾸 묻어나요!>
잠시 상상해 본 룬은 끈적하고 달았을 맛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요즘 애들 입맛은 나랑 다른 건가.’
쨈 맛이 더 진해도 되겠다고 했더니, 당장 진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 듬뿍 얹어버린 모양이었다.
그 때, 흑미가 묘한 글자를 보내왔다.
<백야가 ∼ㅇ◇ㅇ∼ 이런 얼굴로 쨈 묻히고 날아다녀요!>
곧바로 제드의 노란 글자가 떠올랐다.
<아니? 흑미 님, 그 이상한 글자는 어떻게 만드셨어요!?>
<라이가 종종 이렇게 표현해요!>
<오오! 오오오! 이 제드의 머리에서 뭔가 떠오를 것 같습니다요!>
그를 본 룬은 의아한 기분을 느꼈다.
‘같이 식사하는 듯한데, 굳이 모코지석으로 대화를 하는 건 또 뭐야.’
하지만 제드에게 뭔가 영감을 준 듯하니 나름대로 좋은 일인 듯했다.
‘제드야, 당첨 아니면, 꽝인 녀석이긴 하지만.’
당첨일 때는 꽤 흥미로운 물건을 만들기도 하니, 나름 기대가 되었다.
비록 연결할 수 있는 사용자 수가 한정적이라지만, 모코지석도 훌륭한 발명품이었으니.
‘하나 더 늘여주면 크리스티나와도 따로 만들어 볼 텐데.’
현재로서는 사용자 포함 5명까지가 한계로 흑미, 제드, 페르디키온, 아멜리아까지만 등록되어 있었다.
어차피 크리스티나와는 전용 통신석을 받았으니, 상관없기는 했지만.
그때, 아멜리아의 푸른색 글자가 모코지석 위로 떠올랐다.
<룬, 우리 준비됐어.>
‘좋아.’
<통로를 열어줄게.>
페르디키온과 약속한 대로, 등장은 처음 통로가 열린 광장으로 정한 참이었다.
걸음을 좀 더 서두른 룬의 시선에 넓은 광장이 들어왔다.
우웅!
통로가 열리자마자 아멜리아와 그레이스가 건너오는 게 보였다.
특히 인간 모습의 아멜리아는 꽤나 긴장되어 보였다.
통로 밖으로 빠져나온 둘은 각자 다른 반응을 했다.
“아…… 정말 하아, 덥구나…….”
-덥긴!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구! 그런데 이상한 냄새 나!
거친 쇠와 가죽 냄새.
연기와 더위에 금방 상한 무언가의 향이 조금씩은 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수업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룬이 묻자, 대표로 아멜리아가 답했다.
“으, 음. 드워프들…… 과 마, 만나는 것도 공부라고…… 방학 기간이라 새, 생각하면 된다셨어.”
조심조심 말한 아멜리아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투명한 보호막을 몸에 둘렀다.
제 몸에 반투명하게 자리잡은 보호막은 이내 감쪽같이 피부에 스며들어 시원함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휴우…… 살 것 같아.”
-칫. 혼자만 하면 다야?
“으, 응? 하지만…… 그레이스, 하나도 덥지 아, 않다는 듯 말…… 했으면서.”
-그렇다고 혼자만 그렇게 편한 걸 해둬도 되는 거야? 나도 받고 싶다구!
“아……그렇구나.”
아멜리아가 부드러운 물빛 방어막을 똑같이 그레이스에게 해 주었다.
-흐, 흥! 뭐야. 이거 꽤 괜찮잖아? 진짜 시원하네.
그제야 그레이스가 툴툴거리면서도 아멜리아 옆에서 편하게 날았다.
룬은 그 광경을 보다 속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레이스 저 녀석은 대체 뭔지 모르겠다.’
느낌적으로, 전보다 좋아진 것 같기는 했다.
다만 무어라 콕 집어서 뭐가 좋아졌다고 말하기가 애매했다.
그리고 이 느낌은, 전생에도 느낀 적이 종종 있었다.
‘문제는…… 저건 여전히 모르겠다는 거지만.’
다만 의외로 아멜리아가 꽤 편해보였다.
룬은 아멜리아와 그레이스가 투덕거리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나보다 아멜리아가 그레이스를 더 잘 상대할지도 모르겠는데.’
룬은 몸을 돌리며 먼저 앞으로 나섰다.
“이쪽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개통파 드워프들을 먼저 만나야 해.”
그 말에 아멜리아가 물어왔다.
“우, 우린…… 무슨 일을……해?”
-맞아! 말부터 해봐. 속이 시커먼 해츨링처럼 있지만 말구.
그 말에 룬은 돌아보며 말했다.
“우린 대륙으로 통할 통로를 만들 거야.”
안 할 건데?
“……통……로?”
-뭐어어? 뭘 만든다고?
순하게 물빛 시선을 들어 보인 아멜리아와 눈이 새초롬하게 가늘어진 그레이스가 물었다.
룬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능력을 발휘할 기회지.”
그렇게 말한 룬이 개통파 드워프들의 공방 쪽으로 몸을 돌린 순간.
-그런 거 안 할 건데?
그레이스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팩 돌려버렸다.
고개를 돌린 룬은 물끄러미 요정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계약서.”
그레이스는 크리스티나의 중재로 룬과 종신계약을 했다.
그때를 떠올린 요정은 당시의 분이 떠올라 발을 굴렀다.
-아악! 나쁜 자식!
분해하는 그레이스를 보며 룬은 문득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어쩐지 말을 꽤 잘하게 됐네.’
룬은 눈이 돌아가 날것의 감정만 드러내던 그레이스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아마 그 때처럼 말한다면, 이런식으로 말 하지 않았을까.
-만들어, 뭘?
-나쁜! 그런 거, 안 해!
확실히,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룬은 순수한 감탄을 담아 말했다.
“그런데 너, 말 꽤 잘하게 됐다?”
-뭐야, 갑자기 그런 말을…….
그레이스가 눈을 굴리더니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흐, 흥! 이쯤은 기본이지. 그리고. 어? 그런 말 한다고 내가, 뭐. 기분 풀릴 줄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