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7화 (237/242)

그러자 즉시 분홍색 글씨의 흑미와 노란 글씨의 제드가 동시에 글을 올렸다.

-저요! 룬 님이랑, 아멜리아 언니랑 산책하고 싶어요!

-아니? 이 제드를 빼고 다니실 생각이세요? 룬 님, 그렇게 안 뵈었는데. 좀 섭섭하려 그럽니다!

섭섭하긴 또 뭘 섭섭한지.

피곤해 쓰러지겠다며 늘어져있던 제드가 할 말은 아니었다.

‘제드 녀석, 벌써 회복한 건가?’

갈색 드래곤 란드에게 부탁할 때 최대한 신체 성능에 신경 써 달라고 말하긴 했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그럼……둘 다 오게?

그 말에, 페르디키온의 붉은 글씨가 떠올랐다.

-나도 가겠다.

‘이렇게 우르르 온다고?’

이렇게 많은 인원을 바란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멋대로 누구 하나 뺄 수도 없는 노릇.

어쩔 수 없이, 룬은 그가 있는 위치를 모코지석으로 알려주었다.

조금 후, 멀리서 분홍빛 눈을 반짝이며 흑미가 달려왔다.

“룬 님! 아멜리아 언니!”

“삐잇!”

폴짝폴짝 뛰어오는 여우수인 흑미와 백야.

“아이고! 걸음들도 빠르셔라! 엄청 멀리도 오셨었군요?”

호들갑을 떨며 작지만 빠르게 발을 놀리며 오는 제드.

“…….”

왠지 화가 난 얼굴로 다가오는 페르디키온까지.

룬은 이들을 보며 난감한 심정이 되었다.

‘이래서야 다들 너무 눈에 띄잖아.’

기다리는 룬과 아멜리아만으로도 드워프들이 힐끔거리며 지나가던 차다.

그런데, 페르디키온과 흑미. 그리고 백야와 난쟁이 인형 제드까지 더해지자 드워프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주시했다.

“너무 많이 온 거 같은데. 형은 할 일도 있었잖아.”

룬의 말에 페르디키온이 답했다.

“네가 아직 미숙한 녀석과 둘이 돌아다니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지.”

미숙한 녀석이라는 말에 아멜리아가 불편한 듯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페르디키온은 단호하게 선언했다.

“여긴 내 영역이다. 내 책임하에 있는 것들은 내가 직접 확인하는 게 맞지. 특히, 룬 너는 더더욱.”

“…….”

강경한 어조였다.

하지만 레어의 주인의 방침이 그렇다니 더 따질 일은 아니었다.

‘틀린 말이 아니기는 아니.’

결국 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아멜리아의 안색을 살펴주었다.

분명, 미숙한 녀석이라 칭해져 기분이 좋진 않았을 테니까.

한데 아멜리아는 생각에 빠진 눈치였다.

“……자신의 레, 레어를 위해…… 직접 살피는 것…… 그것이 당연, 한 일……이란 거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얕게 한숨을 흘리는 아멜리아.

그를 본 룬은 흐린 시선이 되었다.

‘아니 그냥, 통제해야 할 외부자들인 우리가 여기 한꺼번에 모여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특히 룬은, 평범한 해츨링이라면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뗄 나이.

이 중 가장 나이가 많고, 제 영역 관리를 하는 페르디키온이 직접 움직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뭐라 할 수는 없겠군.’

의형제라고 나름대로 챙겨주려는 마음도 있을 터.

평소 페르디키온은 드워프들을 잘 보다가도, 룬이 깨어나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해 오라 했으니.

‘편애……라고 볼 수도 있겠군. 이건 말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룬은 잠시 입을 다물기로 했다.

괜히 말했다가 아멜리아가 소외되는 기분 드는 것도 곤란한 일이니까.

그 때, 흑미가 룬의 손을 꼬옥 잡아왔다.

“왜?”

그렇게 물으며 내려다보자, 흑미가 히- 하고 웃어보였다.

“룬 님도 같이 산책하는 게 좋아서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여기 와서 쉴 시간이 없긴 했다.

‘흑미는 워낙 뛰고 노는 걸 좋아하니.’

활동성 강한 흑미에게 다 같이 산책을 하는 건 무척 기분 좋은 일이긴 할 터.

납득된 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삐룻.”

백야가 룬의 머리위에 퐁, 하고 앉아서 가볍게 울어왔다.

‘잠깐은…… 이 가벼운 분위기를 잠깐 즐겨보는 것도 괜찮겠지.’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있다.

생각해보면, 룬은 당연히 할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곤 했지만.

아직 어린 이들에겐 쉬는 것도, 건강하게 즐기는 일들도 중요할 터였다.

‘생각해보니, 내가 모은 녀석들은 죄다 즐기거나 휴식과 관련된 녀석들을 모았는데. 정작 나는 그런 걸 신경쓰지 못하고 있군.’

아이러니했다.

당장 룬이 모은 드워프들만 보아도 그렇다.

음악, 요리, 옷.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간들이 즐기는 것들로, 하나같이 일상에 잘 녹아들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누리고 싶어 하는 것에 관여할 수 있는 자들을 모으자고 생각했으면서, 그 가치를 생각하지 못한 점이 조금은 우스웠다.

쉬는 방법을 모르는 어른이 되는 것 보다는, 분명 나을 테지.

그렇게 생각한 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적이 있던가?

***

산책이 끝나고 성으로 귀환하자마자 아멜리아가 고개를 떨구었다.

“아으……너, 너무 힘들었어.”

그렇게 말한 아멜리아는 반쯤 녹초가 되어 흐느적거렸다.

산책하며 다양한 드워프들을 만날 때 마다 즐거워하던 흑미와 달리, 아멜리아는 피곤해하긴 했다.

룬은 응원을 겸해 칭찬했다.

“그래도 잘하더라. 물기운도 잘 조절하고.”

“저, 정말……?”

“응. 가끔 드래곤의 기운이 나오는 것만 더 조절하면 좋을 것 같았어.”

그 말에 아멜리아는 또다시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주먹을 꼬옥 쥐고 더운 공기를 들이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자, 잘 해볼게……!”

홀로 살아남기 위해 버텨왔던 덕인지.

아멜리아는 속상하고 어려울 때 오히려 힘을 내곤 했다.

기특한 모습이었다.

‘하긴, 원래 욕심이 더 많아질 거라 생각하기도 했고.’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는데, 아멜리아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덧붙였다.

“나, 난…… 룬보다 훨씬 누, 누나니까!”

“…….”

누나라니.

생전 들어보지 못한 단어에 룬은 뒷골이 얼얼한 기분이었다.

한데, 생각해보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종종 룬이 깜빡했을 뿐, 아멜리아는 연배로 치면 까마득히 위였으니까.

그런데, 페르디키온이 심기 불편한 눈으로 아멜리아를 노려보았다.

“웃기지마라. 네가 누나라고? 룬은 내 의동생이다. 넌 네 레어나 챙겨.”

“여, 열심……히 챙기고 있거든……!”

룬은 흐린눈으로 생각했다.

아멜리아 녀석, 몇 번 싸우더니 이젠 반말도 잘하는군.

‘그래도 과열되어 좋을 건 없으니 슬슬 말려야겠지.’

한데, 아멜리아가 의외로 강단있게 말했다.

“나, 나도! 룬이 의지할 만한…… 누, 누나가 되고 싶어.”

룬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저런 말을 한 적이 있던가?’

페르디키온의 과업에 함께 할 자격을 증명할 때 룬을 보호해 주겠다 한 적은 있다.

하지만 누나가 되고 싶다라.

필요에 의한 자격 증명이 아닌,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걸 말한 건 또 처음이었다.

심약했던 때를 생각하면 많이 성장한 모습이었다.

‘다 좋은데, 하필 바라는 게 왜 내 누나야.’

그리고 흑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룬 님이 키웠어요! 그러니까 크면 저도 보답으로 룬 님을 키워드릴게요!”

“삐이약!”

그 말을 들은 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생각이 왜 그쪽으로 갔단 말인가.

아마도, 키워준 은혜를 갚겠다는 의미일 듯한데, 단어 선택이 잘 못 되었다.

흑미의 말을 정정해주기 위해 룬이 입을 열려던 차, 제드가 먼저 말해왔다.

“아이고 흑미님, 룬 님을 키우신다뇨? 그런 말씀 하시면 안됩니다요.”

룬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제드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웬일로 맞는 말을.’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제드는 자랑스럽게 헛소리를 이었다.

“차라리 키우시려면 이 제드를…….”

빠악!

결국 참지못한 룬이 제드의 뒷통수를 갈겼다.

“하이고오! 혹 났다, 혹 났어! 룬 님 주먹이 매우십니다요! 그냥 보좌해 드린다는 농담이었는데!”

“시끄러워.”

보좌는 무슨. 헛소리 하면 맞아야지.

튼튼하게 만들어진 제드지만 무척 아팠는지, 뒷통수를 잡고 뒹굴었다.

‘사심이 좀 많이 들어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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