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오랜만이야, 아델 (1/155)

1화. 오랜만이야, 아델2022.02.04.

16548759500354.jpg“은빛 늑대를 조심하십시오!”

얼마 전부터 야간 경비대들 사이에서 늑대를 봤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남자는 소문 따위 믿지 않았다. 황궁 안에 늑대, 그것도 은빛 털을 가진 늑대라니.

16548759500354.jpg“어디 있으면 나와 보라고!”

황궁의 숲을 지날 땐 호탕하게 소리까지 질렀다. 하지만 검은 숲엔 메아리뿐. 그럴 줄 알았다며 호기롭게 돌아설 때였다. 바스락! 어둠이 내려앉은 수풀 사이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긴장하며 바라보던 남자의 표정이 곧 당혹스럽게 변했다. 수풀 사이에서 나온 것은 늑대가 아닌 수려한 젊은 사내.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달빛 아래 나풀나풀 흩날리는 은빛 머리카락과 청회색 눈동자가 신비로웠다. 연인과 밀애를 즐기던 귀족 나리가 분명하리라.

16548759500354.jpg‘가만, 어디서 본 얼굴인데…….’

그동안 알몸의 사내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말간 얼굴에 잔뜩 피가 튀어 있다는 걸 남자는 그제야 깨달았다. 손등으로 그 피를 닦아내는 표정은 어찌나 무심한지 소름이 돋았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다가 이 사내가 누군지 떠올랐다.

16548759500354.jpg‘맞아, 이분은 분명……!’

그 순간 잔혹한 청회색의 눈동자가 매섭게 달려들었다.

16548759500354.jpg“으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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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48759500354.jpg“생신을 경하드립니다, 폐하!”

나선형의 계단 위로 황제 부부가 모습을 드러내자, 귀족들이 차례로 앞으로 나와 예를 올렸다. 옆에는 온갖 선물 꾸러미를 든 시종들과 함께였다. 고급 도자기, 실크, 값비싼 보석, 희귀한 약재, 고가의 미술품……. 수많은 선물이 황제의 옆에 탑처럼 쌓여갔다. 마침내 아델의 차례가 되었다. 또각, 또각……. 그녀가 연회장 안을 가로지르자 정적이 감돌았다. 사람들의 수다도, 웃음도 사라졌다. 어떤 이들은 마시던 술을 머금은 채로 응시하기도 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고요함 속에서 아델은 천천히 황제를 향해갔다. 그 걸음걸이는 이 연회장의 주인공처럼 오만하고 당당했다. 단정하게 틀어 올린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유난히 가늘고 하얀 목선이 눈부셨다. 깊은 녹색 눈동자는 어딘가 비밀스럽고 고혹적이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넋을 놓은 것은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16548759500354.jpg“세상에! 저건 상복 아닌가요?”

누군가의 속삭임이 들려왔고, 그것이 신호인 것처럼 일제히 수군거리기 시작됐다.

16548759500354.jpg“폐하의 생일에 상복이라니. 역시 제정신이 아니네요.”

아델이 입은 검은 드레스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물론 그녀도 예상한 반응이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송년회를 겸한 황제의 생일 연회가 열렸다. 칼라임 제국에서는 가장 크고 화려한 연회였다. 귀족가의 여인들은 1년 내내 오늘 입을 드레스를 준비한다고 했다. 오늘 입은 드레스는 한 해 동안 사교계 여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될 테니까. 부러움을 사거나, 조롱을 당하거나. 그러니 누구도 과감히 검은 드레스를 입을 엄두 따윈 내지 못했다. 그 어려운 걸 아델이 해낸 것이다!

16548759500354.jpg“그런데 품에 안고 있는 저건 대체 뭐죠?”

16548759500354.jpg“설마 유골함은 아니겠죠?”

16548759500354.jpg“그럴 리 없겠지만…… 저 여자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아델은 제 품에 안겨 있는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황제에게 바칠 선물이었지만…… 이렇게 보니 모양도 크기도 꼭 유골함처럼 생겼다. 상복에 유골함이라니 정말 완벽하게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16548759500354.jpg“폐하께선 왜 해마다 저런 여자를 초대하시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아델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황제는 왜 해마다 이 연회에 자신을 초대하는 걸까? 명목상으론 명문가의 전대 후작 부인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본인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반기지 않는 자리에, 굳이 왜?

16548759500354.jpg“증거가 없다잖아요. 저 여자가 남편을 독살했다는.”

16548759500354.jpg“그래도 그렇지. 세상이 다 아는데 어쩜 저리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죠?”

사람들은 아예 그녀더러 들으라는 듯 떠들었다. 그럴수록 아델은 오히려 더 고개를 치켜들고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 뭣도 모르고 연회에 참석했을 땐 이 끔찍한 소문을 듣고 호된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8년쯤 지나니 욕을 먹는 데 이골이 난 것이다. 그렇다고 아델이 일부러 검은 드레스를 입은 건 아니었다. 아무리 욕을 먹으면 오래 산다지만 좋아서 욕을 먹을 만큼 변태는 아니었으니까. 사실 그녀에겐 최고급 실크 드레스가 딱 한 벌 뿐이었다. 원래는 크림색이었던 것을 다음 해 핑크색으로, 그다음 해엔 붉은색으로 염색하고 수선해서 입었다. 붉은 드레스는 다시 보라색이 되었고, 그렇게 드레스의 색깔이 점점 어두워졌으니 이제는 검은색 밖에 선택지가 남지 않았다. 그래서 아델은 선택했다. 다 낡은 드레스 한 벌을 몇 년 동안 입는 구질구질한 가난뱅이보단, 연회장의 이단아가 되기로.

16548759531538.jpg‘뭐 더이상 나빠질 평판도 없으니.’

그녀는 이제 깊게 심호흡을 한 후 황제에게 공손히 예를 올렸다.

16548759531538.jpg“생신을 경하드립니다, 폐하.”

데리고 온 시종이 없었기에 선물은 제 손으로 직접 전달했다. 유골함처럼 보이던 바로 그 상자. 상자를 전달받은 황제의 시종 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16548759531538.jpg“오늘 드레스가 아주 인상적이오, 부인.”

황제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그가 여인의 드레스를 언급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비꼬는듯한 말투였기에 모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 쳤다. 아델의 상복 같은 드레스가 황제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분명했으므로. 아델은 엷게 웃으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16548759531538.jpg“검은색은 화합을 상징한답니다, 폐하. 제국의 깃발 아래 수많은 나라가 화합되기를 희망하는 뜻에서 입어봤습니다.”

이게 바로 꿈보다 해몽의 정석이라는 것이다. 맹랑한 대답에 황제가 소리 없이 웃었다.

16548759531538.jpg“그래, 이 괴상한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었지?”

16548759531538.jpg“제가 직접 만든 디저트랍니다.”

디저트. 순간, 여기저기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황실에는 황제의 전담 요리사만 수십 명이었다. 게다가 이 연회장에는 형형색색의 디저트가 넘쳐나고 있었다.

16548759500354.jpg“평민 아이들이나 받고 좋아할 선물을 폐하에게 내밀다니요.”

16548759500354.jpg“그러게요. 역시 제정신이 아닌 여자네요.”

수군대는 소리에도 아델은 기죽지 않았다.

16548759531538.jpg“저만의 특별한 레시피로 만들어서 지금까지 드신 것과는 분명 다른 맛일 겁니다.”

그 자신만만한 태도에 황제는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16548759531538.jpg“어떤 맛일지 궁금하군.”

16548759500354.jpg“아마 먹다가 죽어도 모를 맛이겠지요. 안 그런가요, 오스월드 전대 후작 부인?”

줄곧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황후가 끼어들었다. 웃고 있었지만, 아델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가웠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도 의미심장하게 눈을 맞추었다. 황후가 시작했으니 자신들도 거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 것처럼.

16548759500354.jpg“돌아가신 후작님도 부인이 만든 디저트를 무척 좋아하셨나 봅니다.”

16548759500354.jpg“폐하, 특별한 레시피라면 검증된 게 아니니 위험하십니다.”

다들 아델이 남편인 후작을 음식으로 독살했다고 믿는 것이다. 증거가 없는데도 많은 사람이 믿으면 진실이 되는 법이다. 신분 상승을 위해 아버지뻘의 늙은 후작과 결혼한 후, 잔인하게 독살한 여인. 욕정에 눈이 멀어 의붓아들까지 유혹한 색녀. 칼라임 제국 희대의 악녀, 아델! 언제부터인가 그들에게는 그것이 진실이었다.

16548759531538.jpg‘전부 개똥 같은 소리.’

후작을 독살한 악녀였기에 연회장에서 아델은 언제나 왕따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았다.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여도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릴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16548759531538.jpg‘괜찮아. 하루 이틀 겪은 일도 아닌데 뭐.’

마음을 단단하게 먹은 아델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16548759531538.jpg“아쉽게도 후작을 먼저 보낸 슬픔을 달래기 위해 디저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이 생전에 드셨으면 참 좋아하셨을 텐데. 그래서 폐하께라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보니 제 욕심이 너무 과했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은은하게 미소를 머금으며 아델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16548759531538.jpg“꺼림칙하다면 그냥 버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폐하.”

억지로 웃는 입가에 경련이 날 것만 같았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16548759531538.jpg‘돌아가면 이 숨 막히는 드레스부터 벗어버려야지.’

그리고 혀가 녹을 것처럼 달콤한 쿠키와 부드러운 빵을 구워야겠다. 그때였다.

16548759596362.jpg“제가 먹어봐도 되겠습니까, 폐하?”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연회장을 울렸다. ***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한 걸음씩 물러나며 길을 만들었다. 그 한가운데 황금색 견장이 달린 검은 제복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늘씬하고 큰 키에 이십 대 후반의 젊은 귀족.

16548759500354.jpg“저 사람이 바이스 백작인가봐요!”

누군가 소리치자 연회장이 술렁거렸다. 바이스 백작. 그는 요즘 제국에서 가장 핫한 남자였다. 10여 년 동안 계속된 이웃 나라와의 전쟁을 종결시키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영웅. 불과 5~6년 사이에 갑자기 두각을 나타낸 그를 두고 패망한 국가의 왕족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젊은 나이에 아직 미혼이라는 점. 그런 그가 오늘 사교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가 온다는 소문만으로 여인들은 아까부터 한껏 들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의 기대 이상이었다. 아니,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용맹스러운 영웅이라기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것이다. 걸을 때마다 짧게 나풀거리는 은백색 머리카락과 엷고 푸른 청회색 눈동자가 신비롭게 빛났다. 날렵한 이목구비와 굳게 다문 입매는 빙하처럼 차갑고 서늘했다.

16548759531538.jpg“늦었습니다, 폐하.”

그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황제의 앞에 예를 올렸다. 한 번도 웃어본 적 없는 것 같은 차가운 인상.

16548759531538.jpg“늦게 와선 짐의 선물을 탐내는 건가?”

16548759531538.jpg“그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까?”

16548759531538.jpg“당연히, 허락하지. 백작이 원한다는데.”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종 장은 상자를 열어 바이스 백작에게 내밀었다. 상자 안에는 정성껏 만든 쿠키와 컵 모양의 케이크, 작은 타르트들이 하나하나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유골함이라는 오해가 미안해질 정도였다. 백작은 그중에 쿠키를 하나 집어서 입안에 넣었다. 그게 뭐라고 다들 긴장하며 지켜보았다. 물론 대부분 여인은 사심 가득한 눈으로 그의 입술을 바라보았지만. 붉고 윤기 나는 입술은 그가 남자라는 것도 잊을 만큼 요염했다. 잠시 후 백작이 황제에게 말했다.

16548759531538.jpg“먹어본 쿠키 중에 제일 맛있습니다.”

16548759531538.jpg“의외군. 백작이 쿠키 맛을 아는 줄은 몰랐는데.”

그가 살며시 미간을 모았다.

16548759531538.jpg“저는 뭐 생고기 같은 걸 먹는 줄 아셨습니까?”

황제가 크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16548759531538.jpg“지금이야 이리 멀끔하지만, 전쟁터에서는 정말 난폭한 짐승이 따로 없거든. 내가 백작의 그 야성적인 모습에 반했지만 말이야.”

16548759531538.jpg“그런 말씀을 하실 거면 다음부턴 초대에 응하지 않겠습니다.”

16548759531538.jpg“자네, 너무 비싸게 구는 거 아닌가? 그래도 짐이 황제인데.”

16548759531538.jpg“그러니 봐 드리는 겁니다.”

16548759531538.jpg“그래, 아주 고오맙네.”

황제와 백작의 대화를 듣던 사람들은 놀랐다. 눈앞의 황제는 냉혈한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웬만한 귀족들도 그의 앞에서 진땀을 빼고는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농담처럼 말을 주고받았다. 게다가 황제가 져주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백작을 대단히 아낀다는 건 소문만이 아닌 모양이다.

16548759531538.jpg“그럼 어디 하나 먹어볼까?”

쿠키를 맛본 황제는 흡족한 표정으로 황후와 다른 이들에게도 권했다.

16548759531538.jpg“정말 혼자 먹긴 아깝군. 다들 하나씩 먹어보시오.”

이쯤 되자 너도나도 앞다퉈 하나씩 입안에 넣었다. 황제와 바이스 백작의 눈치를 보며 맛있다는 찬사를 늘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악녀 아델은 순식간에 디저트의 달인이 되어버렸다. *** 하지만 아델은 아까보다 더 표정이 안 좋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얼굴이 창백했다. 깊은 녹색 눈동자는 줄곧 바이스 백작에게 고정된 채였다. 아마 저 머리카락 때문일 것이다. 저토록 아름다운 은빛 머리카락은 흔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아무리 봐도 백작은 그 아이와 너무 닮았다.

16548759531538.jpg‘크리스…….’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이름을 떠올리자 조금 울컥해졌다. 차마 가지 말라는 말은 못 하고, 그녀의 앞을 가로막던 소년. 긴 속눈썹에 그렁그렁하게 눈물을 매달고 그녀의 소매 끝을 끌어당기던 갈라 터진 손.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아델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16548759531538.jpg‘말도 안 돼!’

저 사람은 바이스 백작이었다. 백작은 전쟁의 영웅이기도 했지만, 다이아몬드와 금광, 그리고 여러 은행을 소유한 대부호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알던 소년은 평범한 광부의 아들. 지금쯤이면 광부가 되었을 것이고, 일찍 결혼했다면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으리라. 그리고 자신 따윈 까맣게 잊은 채 살고 있겠지. 무엇보다 저렇게 얼음장 같은 눈빛은 크리스일 리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예쁘게 웃는 아이였으니까.

16548759531538.jpg‘그래, 저 사람은 바이스 백작. 그저 닮은 사람일 뿐……….’

*** 잠시 후 연회장에 무도곡이 흐르기 시작했다. 여인들은 앞다퉈 바이스 백작에게 다가가 눈을 반짝였다. 그가 춤을 신청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오늘 그의 파트너가 된다면 한동안 사교계의 부러움을 사게 되리라. 하지만 백작은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성큼성큼. 부츠를 신은 긴 다리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아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 설마 하며 바라보았고, 아델 역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속으로는 그럴 리 없다고 수십 번 생각했으면서도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16548759531538.jpg‘크리스…… 정말 너…… 아니지?’

그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반반이었다. 그렇게 떠나와 놓고 이런 모습으로 만나는 건 너무 비참했다. 하지만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다. 언제나 자신의 편이었던 그 아이. 그녀의 행복했던 시간 속에는 늘 그 아이가 함께였었다. 우뚝. 마침내 아델의 앞에서 멈춘 그는 정중히 한쪽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커다란 오른손을 내밀어,

16548759531538.jpg“파트너가 돼 주시겠습니까?”

춤을 신청했다. 일순 아델의 세계가 멈춘 것 같았다. 아무 소리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부신 은백색 머리의 남자를 넋 놓고 바라보다가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올렸다.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꽈악! 크고 단단한 손이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긴 팔로는 가는 허리를 휘감아 바싹 끌어안았다. 아델은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순식간에 넓고 탄탄한 남자의 품 안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것이다. 그 순간 부드러운 중저음이 속삭이듯 들려왔다.

16548759531538.jpg“오랜만이야, 아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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