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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한스 부인의 초대 (6/155)

6화. 한스 부인의 초대20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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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8760785669.jpg“폐하께서 부인의 디저트를 아주 흡족해하셨습니다. 해서 정기적으로 황실에 디저트를 납품하도록 하십시오. 이건 상세 내용을 적은 계약서입니다.”

마차에서 내린 황제의 시종 장은 아델에게 납품 계약서를 내밀었다.

1654876078568.jpg“아가씨!”

옆에서 지켜보던 타냐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황실에 정기적으로 납품한다면 이제 먹고 살 걱정은 없었다. 게다가 이 소문이 퍼지면 다른 귀족들도 앞다투어 주문할 게 분명했다. 이미 황실 마차 뒤에는 다른 귀족들의 마차가 줄줄이 서 있었다.

1654876078568.jpg“일단 들어 오세요.”

시종 장과 귀족들을 집 안으로 들인 아델은 계약서의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그녀가 원하는 양만큼 원하는 디저트를 납품하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별다른 독소조항도 없었기에 아델은 흔쾌히 사인했다. 시종장이 돌아간 후, 기다리고 있던 다른 귀족들도 다가왔다.

16548760785669.jpg“그날 쿠키는 정말 맛있었어요.”

16548760785669.jpg“집에 가서도 자꾸 생각나지 뭐예요.”

아델은 어리둥절했다. 귀족들에게 이토록 호의적인 반응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으니까.

1654876078568.jpg“이것도 드셔보세요. 조금 전 구운 쿠키인데 겉은 바삭, 안은 촉촉하다니까요!”

미아도 신나서 아델이 구운 쿠키를 맛보라며 내밀었다.

16548760785669.jpg“그런데 부인, 바이스 백작님과는…… 어떤 사이세요?”

그때 손님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은 이게 본론이었다.

1654876078568.jpg“백작과 제 사이요?”

아델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표정 따윈 상관하지 않았다.

16548760785669.jpg“그날 연회장에서 두 분 정말 잘 어울렸어요.”

16548760785669.jpg“그러게요. 검은 드레스가 그렇게 예쁠 일이냐고요.”

16548760785669.jpg“며칠 전 백작님께서 방문하셨다면서요?”

정말이지 그린힐의 소문은 소름이 돋을 만큼 빨랐다.

16548760785669.jpg“백작님께서 곧 근위대장이 되실 거라던데, 폐하와 알현을 주선해 주시면 안 될까요?”

16548760785669.jpg“우리 아들은 근위대 시험에서 세 번이나 떨어졌어요. 꼭 좀 붙었으면 좋겠네요.”

그들은 모두 속내가 있어서 온 것이었다. 황제를 호위하는 근위대. 그 근위대를 지휘하는 근위대장은 칼을 찬 채로 유일하게 황제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사람. 그러다 보니 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자였으며, 황제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1654876078568.jpg“뭔가 단단히 오해들 하신 모양이네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아델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대로 두면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크리스틴은 곧 황녀와 혼담이 오갈 텐데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큰일이었다.

1654876078568.jpg“바이스 백작이 여기 온 건 맞지만, 단지 인사를 하러 들른 것뿐이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싱싱하게 꽂혀 있는 화병의 꽃을 보며 야릇하게 웃었다.

16548760785669.jpg“그러니까 백작님이 방문했던 게 맞긴 맞네요.”

16548760785669.jpg“어쩜. 꽃 가게 하나를 다 털어오셨나 보네. 한겨울에 이렇게 많은 꽃이라니.”

아델은 울상이 되었다.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방향으로 해석해버렸다. 그리고 그게 곧 진실이 되었다.

1654876078568.jpg“저와 백작은 오해하시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사실 저와 백작은…… 그러니까 백작은 제게……….”

아델은 숨을 고른 후 좀 더 명확하게 말했다.

1654876078568.jpg“네, 백작은 제 동생이에요!”

16548760848665.jpg“……!”

다들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타냐와 미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1654876078568.jpg“어렸을 때부터 가족처럼 지냈어요. 그러니 백작은 친동생이나 다름없죠.”

여전히 다들 믿지 않는 눈치였다. 어느 모로 봐도 크리스틴이 훨씬 더 오빠 같았으니까.

1654876078568.jpg“한 살 차이라서 그래요. 예전엔 훨씬 더 작고 귀여웠는데.”

더욱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아델은 헛기침했다.

1654876078568.jpg“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저는 아버님이 계신 그릴스 백작가로 들어갔어요. 그 후 서로 관계가 소원해졌죠.”

16548760785669.jpg“정말 백작님과 교제하는 게 아니란 말이죠?”

사람들은 여전히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날 두 사람이 춤을 추는 모습이 꽤 야릇했으니까. 그리고 백작은 그 뒤로 누구와도 춤을 추지 않았다. 그러니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많은 소문을 만들어내는 것도 당연했다. 아델이 그를 침실로 유혹했다는 것도 모자라서, 조만간 숨겨둔 아이 얘기까지 나올 기세였다. 아델은 그런 소문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친동생이 아닌 이상 이걸로 잠잠해지지 않는다는 것도.

1654876078568.jpg“그리고 저는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뜻밖의 말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1654876078568.jpg‘누구?’

심지어 미아까지 놀라서 눈이 동그래지자, 아델은 입 모양으로 ‘미안’ 하고 속삭였다.

1654876078568.jpg‘헉, 설마 마크?’

그동안 다른 여인들이 일제히 다가와 축하를 해주었다.

16548760785669.jpg“축하해요, 오스월드 부인! 하긴 후작님이 돌아가신 지가 언젠데, 재혼할 때도 됐죠.”

그들은 정말로 진심이었다. 이로써 바이스 백작은 만인의 것으로 돌아갔으니까. 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한스 부인이 다가왔다. 그녀는 오스월드가와 먼 친척뻘로 재력이 상당한 집안이었다.

16548760785669.jpg“재혼 축하해요, 부인.”

1654876078568.jpg“아직 재혼하겠다고는 안 했어요!”

아델이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16548760785669.jpg“이번에 저희 집에서 신년 파티를 열어요. 참석하셔서 소식을 전해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한스 부인은 붉은 리본이 달린 초대장을 내밀었다. 아델은 생각할 여지도 없이 정중히 거절했다.

1654876078568.jpg“초대는 감사합니다만 제가 가면 다들 불편해질 거예요.”

16548760785669.jpg“아니요. 사실 다들 부인과 친해지고 싶어 해요. 오해가 있다면 풀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그러자 미아가 작게 속삭였다.

1654876078568.jpg“아델, 초대를 수락해. 다시 사교계에 들어갈 좋은 기회잖아.”

1654876078568.jpg“그러고 싶은 생각 없어.”

아델이 고개를 젓는데 한스 부인이 덧붙였다.

16548760785669.jpg“친구분도 함께 오세요!”

1654876078568.jpg“저요?”

미아는 놀라서 자신을 가리켰다.

16548760785669.jpg“예, 친한 지인이 함께한다면 오스월드 부인도 마음이 좀 편할 테니까요.”

감격으로 미아의 두 눈이 글썽거렸다.

1654876078568.jpg“말씀만으로도 감사해요. 하지만 제가 워낙 바빠서 시간이 될지 모르겠네요. 호호홍!”

그녀는 마음에도 없는 점잖을 떨면서 아델을 흘끗거렸다. 사실 미아는 예전부터 사교계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남작 부인을 불러주는 사교계 파티는 없었다. 진작부터 그걸 알고 있던 아델은 미아의 간절한 표정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16548760785669.jpg“꼭 와주세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교류를 했으면 좋겠네요.”

상황을 눈치챈 한스 부인이 미아의 손을 꼭 잡고 정중히 부탁했다.

1654876078568.jpg“글쎄요…….”

미아는 다시 한번 혼신을 다해 아델을 간절하게 바라보았고,

1654876078568.jpg“알겠습니다.”

마지못해 아델이 수락했다. ***

1654876078568.jpg“좋다가 말았네요. 백작님과 잘 되시길 은근히 기대했는데. 동생이라니요…….”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후 타냐는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

1654876078568.jpg“좋다가 말긴. 황실에 디저트를 납품하면 이제 돈 걱정이 없이 살 수 있는데.”

꽃 화병에 물을 갈아주며 아델이 위로했다.

1654876078568.jpg“그래도 아가씨가 백작님과 잘 돼서 오스월드가 코를 납작하게 해줬으면 했어요.”

1654876078568.jpg“걱정 마. 보란 듯 잘 사는 거로 복수할 테니까.”

1654876078568.jpg“그런데 백작님 같은 동생이 있었으면 진작 도와달라고 하지 그러셨어요? 그랬음 오스월드 가에서 그런 일은 안 당하셨을…….”

1654876078568.jpg“아!”

나직한 비명과 함께 아델의 손가락에 빨갛게 피가 맺혔다. 화병의 꽃을 정리하다가 장미 가시에 찔린 것이다.

1654876078568.jpg“죄송해요. 괜한 얘기를 꺼내서.”

타냐는 손수건으로 얼른 아델의 피를 닦아주었다.

1654876078568.jpg“아니야. 내가 딴생각을 좀 했어. 오스월드가에서의 일은 다 잊었으니까 걱정 마.”

아델은 아무렇지 않게 웃었지만 타냐는 알고 있었다. 오스월드가에서의 일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거라는 걸.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 며칠 후. 한스 부인의 저택 앞.

1654876078568.jpg“아델, 나 괜찮아?”

마차를 타고 저택까지 오는 동안 미아는 그 소리를 수십 번도 더 했다.

1654876078568.jpg“응, 예뻐.”

1654876078568.jpg“입술 색을 좀 더 진하게 할 걸 그랬나 봐.”

1654876078568.jpg“지금도 충분히 진해.”

1654876078568.jpg“그럼 조금 지울까?”

평소답지 않게 잔뜩 긴장한 미아를 보며 아델이 웃었다. 그러고는 미아의 손에 들린 분첩을 들고 요란한 눈화장과 입술 화장을 살며시 눌러주었다. 미아에겐 오랜만의 사교계 모임이었다. 오늘을 위해 그녀는 시내의 의상실에서 비싼 드레스와 외투를 빌렸다. 할머니의 유품으로 받은 장신구들도 정성스럽게 닦아서 걸치고, 큰마음 먹고 비싼 화장품도 샀다.

1654876078568.jpg“아델 너도 화장 좀 해. 내 옷 빌릴 때 네 것도 빌릴 걸 그랬다.”

하지만 한껏 치장한 미아와 달리 아델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차림이었다.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운 칙칙한 양모 원피스 위에 낡은 잿빛 코트를 걸치고, 머리는 길게 풀어내려 리본을 두른 모습이었다.

1654876078568.jpg“난 괜찮아. 오히려 치장하고 나타나면 사람들이 더 수군댈걸? 그리고 너도 사람들이 하는 소리 귀담아듣지 않겠다고 약속해. 알았지?”

1654876078568.jpg“당연하지! 내가 어디 쉽게 기죽을 사람인가?”

쾌활하게 대답한 미아는 마차에서 우아하게 내렸다. 하지만 눈앞에 웅장하게 불을 밝힌 대저택을 보는 순간 움찔했다. 그뿐 아니라 저택 주변으로 시종들이 모는 크고 화려한 마차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16548760785669.jpg“무슨 일로 왔어요?”

조그만 역마차에서 내리는 두 사람에게 한 남자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고급스러운 비로드 재킷을 입은 시종이었다. 아델이 초대장을 보여주자, 그는 두 사람을 힐끔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16548760785669.jpg“정말 초대받아서 왔어요?”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아델이 대답했다.

1654876078568.jpg“초대를 안 받았다면 올 이유가 없었겠죠.”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길을 비켜주었다. 그러다 미아와 함께 저택으로 들어가려는 아델을 붙잡았다.

16548760785669.jpg“하녀는 저쪽 문으로.”

앞서가던 미아가 돌아와 불같이 소리쳤다.

1654876078568.jpg“이봐요, 하녀라니요!”

그때였다.

1654876078568.jpg“어머,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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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하고 기분 나쁜 목소리에 아델이 돌아보았다. 풍성한 모피 외투를 걸친 아름다운 여인은 잘 차려입은 시종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제국의 보석’, ‘사교계의 꽃’이라는 별명답게 햇살처럼 눈 부신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미녀였다. 어느새 그녀의 주위로 서너 명의 귀부인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녀들 역시 값비싼 모피를 두른 차림이었다. 세이라와 잔당들. 아델은 그녀들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16548760785669.jpg“오셨습니까, 영애!”

아델을 하녀 취급했던 저택의 하인은 허리가 땅에 닿도록 고개를 조아렸다. 그를 무시한 채 세이라는 아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훑었다. 그리고 생글거리며 말하기를…….

1654876078568.jpg“얘기 못 들었나 봐요. 오늘 드레스 코드가 모피라는걸.”

1654876078568.jpg“……!”

미아가 당황해서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모피를 걸치고 있었다.

16548760785669.jpg“어머, 와주셨네요!”

그때 한스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아는 울 것 같은 얼굴을 겨우 감추며 말했다.

1654876078568.jpg“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인. 그런데 오늘 드레스 코드를 말씀 안 해 주셨네요.”

16548760785669.jpg“그게…… 미리 얘기했으면 부담스러워서 못 오실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한스 부인이 난처한 얼굴로 대답하자, 주변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말했어도 너희는 모피를 구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뜻이었으니까. 모피는 워낙 값이 비싸고 귀해서 웬만한 귀족들도 쉽게 구하기 어려웠다.

1654876078568.jpg‘역시 이러려고 부른 건가?’

그러고 보니 한스 부인도 세이라의 잔당 중 한 명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1654876078568.jpg“부인…….”

보다 못한 아델이 입을 열 때였다.

16548760785669.jpg“그래서 제가 두 분을 위해 모피가 달린 드레스를 준비했어요! 하녀들에게 얘기해 놨으니 얼른 갈아입고 나오세요.”

아델과 미아의 손을 덥석 잡으며 한스 부인이 선심 쓰듯 말했다.

1654876078568.jpg“됐습니다. 저희는 이만 돌아가는 게…….”

아델이 단호하게 말하는데 미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 표정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몰랐다. 오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며칠 동안 공을 들이며 들떠 있던 미아였다. 그걸 알기에 아델은 매정하게 돌아갈 수가 없었다.

1654876078568.jpg“저는 됐으니 보니타 부인만 갈아입을 옷을 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델은 한 발 물러나기로 했다.

16548760785669.jpg“그러시겠어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스 부인이 미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 뒤에 대고 아델은 조용하지만 서늘하게 경고했다.

1654876078568.jpg“부디 즐겁게 돌아갈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후작을 독살했다는 명성이 자자한 아델이었다. 그러니 한스 부인도 조금 긴장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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