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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그게 동생을 보는 얼굴이었을까? (7/155)

7화. 그게 동생을 보는 얼굴이었을까?202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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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8761435198.jpg“너무하네. 함께 온 친구의 기분 좀 맞춰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미아와 한스 부인이 사라지자 세이라가 비아냥거렸다.

16548761435198.jpg“이 모든 일의 배후가 바로 너겠지?”

아델은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16548761435198.jpg“어머, 궁지에 몰리면 내 탓을 하는 건 여전하네요, 어머니.”

세이라는 죽은 오스월드 후작의 영애였다. 아델이 한때 오스월드 후작의 부인이었으니 세이라에겐 어머니인 셈이었다. 나이가 동갑인 어머니. 그러니 세이라가 부르는 ‘어머니’라는 호칭은 빈정거림의 의미였다. 그 뒤에서 아델을 비웃던 잔당들도 기다렸다는 듯 말을 보탰다.

16548761435211.jpg“어쩜. 나 같으면 미안해서라도 세이라 양 앞에 나타나지도 못할 텐데.”

16548761435211.jpg“우리 같은 사람이랑 똑같다고 생각하면 안 되죠. 사람을 독살하고도 이렇게 뻔뻔스러운데.”

부채로 입을 가린 채 들으라는 듯 수군거리던 여자들은 아델과 눈이 마주치자 흠칫했다.

16548761435198.jpg“뒷담화는 본인이 안 듣는 곳에서 하는 게 예의랍니다. 그럼 이만.”

아델은 정중히 고개를 숙인 후 그녀들을 지나쳐갔다.

16548761435198.jpg“바이스 백작!”

순간 세이라의 외침이 들려왔다. 멈칫하는 아델에게 그녀가 다가와 물었다.

16548761435198.jpg“동생이라는 거 정말이야?”

짐작했지만, 그 소문이 이미 그린힐에 파다하게 퍼졌을 것이다. 물론 크리스틴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고. 씁쓸한 기분을 감추며 아델은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16548761435198.jpg“그래, 친동생이나 다름없어.”

아델의 입으로 직접 듣자, 다들 눈을 반짝이며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바이스 백작의 옆자리가 비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러자 세이라는 주변에 있던 잔당들을 모두 물렸다.

16548761435198.jpg“둘이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들어가셔도 괜찮아요.”

둘만 남게 되자 그녀는 본론을 꺼냈다.

16548761435198.jpg“그럼 나하고 맺어주는 것도 가능하겠네?”

16548761435198.jpg“뭐?”

아델은 최근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세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도록 뻔뻔했다.

16548761435198.jpg“바이스 백작과 결혼하게 도와준다면 나도 당신을 도와줄 수 있어. 당신도 살인자라는 누명을 벗고 싶잖아. 안 그래?”

16548761435198.jpg“이제 와서 누명을 벗는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16548761435198.jpg“잘 생각해봐. 당신은 누명을 벗고 백작은 전통 있는 오스월드가의 일원이 되는 거지. 그러면 귀족 원로회에도 들어갈 수 있을걸?”

귀족 원로회의 얘기가 나오자 아델은 혀를 찼다.

16548761435198.jpg“너도 잘 생각해봐, 세이라. 황제께서 그를 그토록 신뢰하는 이유를 모르겠니?”

16548761435198.jpg“신뢰하는 이유……?”

곰곰이 생각하던 세이라는 그제야 깨달은 얼굴이었다.

16548761435198.jpg“설마 황제께서 부마로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야?”

아델은 시치미를 떼며 모른 척했다.

16548761435198.jpg“글쎄, 고귀하신 분의 뜻을 내가 어찌 알겠어. 하지만 너라면 황녀와 후작의 딸, 둘 중 누구의 손을 잡고 싶을까?”

세이라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니 아델은 속이 후련했다. 하지만 세이라는 순순히 포기하지 않았다.

16548761435198.jpg“괜찮겠어? 당신도 그에게 마음이 있을 텐데?”

예상외로 정곡을 찔렸다. 아델은 뜨끔했지만, 표정을 숨기는 데는 능숙했다.

16548761435198.jpg“잘못 짚었어. 난 이미 교제하는 사람이 있어.”

세이라의 새빨간 입술이 야릇하게 올라갔다.

16548761435198.jpg“그날 백작과 춤추는 당신을 봤어. 난 알아. 가면 속에 숨겨진 당신의 진짜 얼굴. 그게 정말 동생을 보는 얼굴이었을까?”

잠시 말이 없던 아델은 조용히 웃었다.

16548761435198.jpg“세이라, 넌 나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16548761435198.jpg“무슨 미친 소리지?”

16548761435198.jpg“나에 대한 관심이 지나칠 정도라고 생각 안 하니? 항상 내 주변을 맴돌고 있잖아.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불쌍한 어린 애처럼.”

16548761435198.jpg“이게!”

세이라가 결국 아델의 뺨을 후려치려 손을 들었다. 하지만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아델이 그 손을 잡아챘다.

16548761435198.jpg“이제 그만 어른답게 굴어, 세이라!”

세이라는 찔끔하며 손을 잡아뺐다. 그러면서도 사납게 소리쳤다.

16548761435198.jpg“잘난 척하지 마! 당신은 반드시 나랑 바이스 백작을 이어주게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 세이라 오스월드. 사실 칼라임의 사교계는 그녀의 손아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처세술로 사람들을 제 편으로 만드는 데 능숙한 여자. 세이라의 눈 밖에 나면 그녀를 따르는 잔당들은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곤 했다. 그러면 아무리 무고한 사람이라도 사교계에서 매장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델이었다. 아델이 남편을 독살한 악녀가 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세이라였다. 그러니 웬만한 명문가의 여인들도 다들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아델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도 세이라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한 것이다. 물론 아델 역시 이런 곳에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대놓고 비난만 듣지 않아도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오늘 파티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연회장 곳곳에 검은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아델이 입었을 때만 해도 다들 상복 같다며 수군거리지 않았던가? 게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까지 있었다.

16548761435211.jpg“그날 쿠키는 정말 맛있었어요, 부인.”

16548761435198.jpg“감사합니다.”

그 후로도 몇 명의 귀부인들이 와서 말을 걸었다. 물론 쿠키로 시작해서 바이스 백작으로 끝나는 얘기들이었지만. 요즘 대세는 바이스 백작이었으니 그와 친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델의 위상이 달라진 것이다. 평소 세이라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람들까지 은근슬쩍 와서 험담하기도 했다.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는지 세이라가 이따금 매서운 눈으로 아델 쪽을 응시했는데, 그때마다 여인들은 재빨리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희극이 따로 없었다. 아델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16548761435198.jpg“아델!”

그 무렵 옷을 갈아입은 미아가 다가왔다. 시원스럽게 파인 네크라인에 하얀 모피가 장식된 푸른 드레스였다. 머리와 화장까지 고치고 나니 무척 아름다웠다.

16548761435198.jpg“예쁘다, 미아.”

16548761435198.jpg“미안해, 아델. 나 때문에 곤혹스러운 파티에 참석하게 만들어서.”

16548761435198.jpg“아니야. 오늘은 그런대로 재밌어.”

16548761435198.jpg“아까 그대로 돌아갔으면 왠지 패배한 기분이 들 거 같아서 그랬어. 그러니까 우리 오늘은 세이라 저 계집애가 열 받을 정도로 마음껏 즐기자!”

유쾌한 성격답게 미아가 아델의 손을 끌고 연회장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마침 시종 한 명이 쟁반에 술잔을 받쳐 들고 와서 건넸다. 미아는 자신의 것과 아델의 것을 집어 들었다.

16548761435198.jpg“자 마시자, 짠!”

기분 좋게 잔을 부딪친 그녀는 인파 속에 섞여 춤을 추기 시작했다. 쾌활한 미아의 주위로 사람들이 금방 몰려들었다.

16548761435198.jpg‘다행이네. 잔뜩 기대했던 만큼 즐거워해서.’

흐뭇하게 미아를 바라보던 아델은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

16548761435198.jpg‘오랜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와서 그런가?’

하지만 몸 상태가 점점 더 좋지 않았다. 급기야 눈앞이 몽롱해지면서 사람들의 말소리도 아득해져 갔다.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든 게 마치 술에 잔뜩 취한 것만 같았다.

16548761435198.jpg‘설마 조금 전 마신 술 때문일까?’

그럴 리가. 겨우 한 잔 마셨을 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술이 뭔가 이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술잔을 든 시종은 미아와 아델에게 술을 건넨 후 바로 돌아갔다. 마치 그녀들이 목적이었던 것처럼.

16548761435198.jpg‘설마 술에 약이라도 탄 걸까?’

대체 누가?

16548761435198.jpg‘일단 나가자.’

아델은 밖으로 나가 찬 바람을 쐬기로 했다. 복도를 지나는데 팔다리에 힘이 빠져서 겨우 벽을 짚고 걸어야 했다.

16548761435211.jpg“도와드릴까요, 부인?”

맞은편 복도에서 다가온 남자가 말을 건넸다.

16548761435198.jpg“하아, 괜찮습니다.”

식은땀이 흐르는 얼굴로 겨우 대답했다.

16548761435211.jpg“아니요. 제 도움이 필요하실 것 같은데요.”

16548761435198.jpg“……!”

갑자기 섬뜩한 기분이 들어서 아델은 고개를 들었다. 시야가 너무 흐릿하고 눈앞이 온통 빙글빙글 돌아서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남자가 누군지 겨우 알아보았다.

16548761435198.jpg“당신은……?”

그는 이튼 자작이었다. 오스월드 후작의 장례가 끝나기도 전에 청혼했던 남자. 거절당한 뒤로는 이따금 그녀의 집 담장에 끔찍한 낙서를 해놓고 도망가곤 했다.

16548761435198.jpg“비켜주세요!”

아델이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남자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은 채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 연회장의 모든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 한가운데에 스무 살 남짓의 앳된 금발 머리 아가씨가 서 있었다. 발그레한 장밋빛 뺨이 사랑스러운 그녀는 황제의 장녀 에이프릴이었다.

16548761435198.jpg“황녀님을 뵈어 영광입니다.”

세이라가 앞으로 나와 예를 올리자 에이프릴은 귀여운 얼굴로 웃었다.

16548761435198.jpg“반가워요, 세이라 양.”

16548761435198.jpg“저희 어머니 오스월드 부인도 황녀님을 뵙고 싶어 했는데…… 어디 가셨는지 안 보이네요.”

세이라는 아델을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16548761435198.jpg“피곤해서 쉬고 계신가보네요. 나중에 인사하면 되죠.”

에이프릴이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세이라와 눈빛을 교환한 한스 부인이 앞으로 나왔다.

16548761435211.jpg“오스월드 부인이라면 조금 전 저쪽 복도의 방으로 들어가는 걸 봤습니다.”

16548761435198.jpg“제가 가서 어머니를 모셔오겠습니다.”

그러자 에이프릴은 조심스럽게 웃었다.

16548761435198.jpg“그럼 저도 같이 가요.”

제국의 다른 여인들처럼 에이프릴 역시 크리스틴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러니 그와 여러 가지 소문에 휩싸인 아델이 궁금했다. 정말로 두 사람이 오누이 같은 사이라면 환심을 사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16548761435211.jpg“그럼 이쪽으로.”

한스 부인이 앞장서서 사람들을 안내했다. 그 뒤를 세이라와 에이프릴, 여러 사람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따라갔다. 그들은 조금 전 아델이 비틀거리며 걷던 복도를 지났다. 그러자 어두컴컴하고 구석진 방문 안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은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야릇한 신음이었다.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얼굴을 붉혔다.

16548761435211.jpg“부, 분명 저 방이었는데…….”

한스 부인은 붉어진 뺨을 감싸며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세이라의 잔당들이 기다렸다는 듯 소곤대기 시작했다.

16548761435211.jpg“역시 제 버릇 어디 가겠어요?”

16548761435211.jpg“어쩜, 여기까지 와서 그러고 싶을까요?”

처음엔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던 에이프릴도 당황해서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16548761435198.jpg“인사는 다음에 하는 게 좋겠네요.”

하지만 세이라는 단호했다.

16548761435198.jpg“아뇨, 이건 오스월드가의 명예가 걸린 일이에요. 어떻게 된 상황인지 분명히 알아야겠어요!”

그러더니 거침없이 방문을 확 열어젖혔다. 벌컥! 순간 사람들이 전부 놀라서 비명을 질러댔다.

16548761435211.jpg“꺄아악!”

16548761435211.jpg“이게 무슨 일이래요!”

방 안에는 벌거벗은 남자가 의자에 꽁꽁 묶여 있었다. 속옷으로 입이 틀어막힌 채 신음을 질러대다가, 수많은 사람을 보고는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

16548761539735.jpg“아델…… 정신 차려, 아델…….”

귀에 익은 목소리에 아델은 가까스로 눈을 떴다. 시야가 흐릿해서 느리게 눈을 깜박이다가,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청회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녀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이 남자는 분명…….

16548761435198.jpg“크리스?”

16548761435198.jpg“이제 정신이 들어?”

크리스틴이 혀를 차며 물었다.

16548761435198.jpg“크리스 정말 너야?”

16548761435198.jpg“왜 다른 남자가 아니라서 아쉬워?”

아델은 힘없이 웃었다.

16548761435198.jpg“말을 예쁘게 하는 걸 보니 너 맞네.”

아델이 주위를 둘러보자 그녀는 서재로 보이는 방의 카우치 소파에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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