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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복수는 나의 것 (9/155)

9화. 복수는 나의 것202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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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델이 분수대에서 돌아오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모였다. 그녀를 찾으러 갔더니 벌거벗은 남자만 묶여 있었으니까. 게다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다가 그렇게 된 이튼은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다들 이 일의 전말은 아델만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16548762032293.jpg“아델, 어디 갔다 온 거야?”

미아가 얼른 달려와 물었다.

16548762032293.jpg“술기운이 올라서 산책 좀 하고 왔어.”

아델의 대답은 태연하기만 했다. 그 남자의 일 따윈 전혀 모른다는 듯.

16548762032293.jpg“오스월드 부인?”

그때 아직 앳된 얼굴의 아가씨가 다가왔다.

16548762032293.jpg“황녀님이시래.”

미아가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아델도 연회 때 황녀 에이프릴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인사를 나눈 것은 처음이지만.

16548762032293.jpg“고귀하신 황녀님을 뵙습니다.”

치맛자락을 살며시 들어 올리며 공손히 예를 갖췄다.

16548762032293.jpg“반가워요, 부인!”

에이프릴은 귀염성 있는 얼굴로 웃으며 아델의 손을 덥석 잡았다.

16548762032293.jpg“지금 돌아가려던 참인데 못 보고 가는 줄 알고 무척 서운했어요.”

에이프릴이 너무 친근하게 굴자 아델은 당황스러웠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어리둥절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사교계의 왕따 아델을 황녀가 이토록 좋아할 줄은 몰랐으니까.

16548762032293.jpg“송구합니다. 제가 너무 오래 산책을 했나 봅니다.”

그때였다.

16548762032293.jpg“잠시만, 에이프릴.”

에이프릴의 옆으로 크리스틴이 다가왔다. 그는 아델에게 벗어주었던 재킷을 다시 입고 있었다. 그녀가 짐머를 통해 돌려주었던 것이다. 크리스틴은 에이프릴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에이프릴도 그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두 사람의 그 모습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에이프릴의 발그레한 뺨이 더 발그레해진 것만 빼고는. ***

16548762032293.jpg“이제 돌아가야 할 것 같네요.”

크리스틴과 귓속말을 끝낸 에이프릴은 사람들을 향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아델에게는 특별히 당부했다.

16548762032293.jpg“나중에 초대해도 되죠? 우리 그때 좀 더 많은 얘기를 나눠요.”

초대라는 말에 아델은 어리둥절했다. 초대라면 황실로, 나를? 그 순간 에이프릴은 아델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였다.

16548762032293.jpg“백작님 얘기를 좀 들려주세요.”

그러고는 수줍게 볼을 붉히는 앳된 얼굴.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16548762032293.jpg“예, 얼마든지.”

아델은 이 사랑스러운 황녀에게 조용히 웃어 보였다. 모종의 공모자라도 된 것처럼 에이프릴도 눈을 찡긋하며 돌아섰다. 그 뒤에서 크리스틴이 한쪽 팔을 내민 채 기다리고 있었다. 에이프릴은 당연하게 그의 팔짱을 꼈다. 그 뒤로 황녀의 시녀와 크리스틴의 수하들이 줄을 지어 따라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은 직감했다.

16548762068593.jpg“곧 황실 결혼식이 있겠네요.”

16548762068593.jpg“아쉽지만 잘 어울리긴 하네요.”

아델은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계속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랑스러운 황녀와 제국의 영웅. 그녀가 보기에도 눈부시게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래선지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에.이.프.릴……. 그리고 황녀의 이름을 부르던 크리스틴의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토록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는 건 처음 들었다. 그런데 왜 자꾸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까?

16548762032293.jpg“아델, 손 다쳤어?”

그녀를 현실로 끌고 온 건 미아였다. 크리스틴이 황녀와 함께 떠난 후 아델에게 남은 건 손에 묶인 그의 손수건뿐이었다.

16548762032293.jpg“아아, 산책하다가 넘어져서.”

16548762032293.jpg“어쩌다가. 약은 발랐어?”

16548762032293.jpg“집에 돌아가서 바르면 돼. 이제 그만 돌아가자.”

아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그걸 깨달은 미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16548762032293.jpg“그러자. 그런데 정말 괜찮아? 얼굴이 창백해.”

16548762032293.jpg“쉬면 좋아질 거야. 너야말로 무슨 일 있었어? 얼굴이 안 좋아 보여.”

대답 대신 미아는 조금 웃어 보일 뿐이었다.

16548762032293.jpg“오늘은 운이 좋았네요, 어머니.”

세이라의 목소리에 아델이 돌아보았다.

16548762032293.jpg“넌 운이 나빴고, 세이라.”

그리고 아델은 세이라에게 바싹 다가가 서늘하게 노려보았다.

16548762032293.jpg“너에 대한 마음의 부채는 오늘 일로 청산할게. 다음부턴 나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조심해.”

16548762032293.jpg“갑자기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세이라는 시치미를 뗐지만, 조금 긴장한 얼굴이었다. 아델에 관한 나쁜 소문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아델에게는 확실히 꺼림칙한 무언가가 있었다.

16548762032293.jpg“한스 부인에게도 인사 전해줘. 잊지 못할 파티였다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델은 한스 부인의 저택을 나왔다. ***

16548762032293.jpg“아까 세이라한테 한 얘기가 뭐야?”

마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미아가 궁금한 듯 물었다.

16548762032293.jpg“별일 아니야.”

16548762032293.jpg“혹시, 혹시 말이야…… 아까 내가 준 술 마시고 괜찮았어?”

16548762032293.jpg“…….”

아델이 빤히 쳐다보자 미아는 울먹이며 사실을 털어놓았다.

16548762032293.jpg“그 술을 마신 후, 난 춤추다가 갑자기 쓰러졌어. 독한 술이라서 취한 건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술이 이상했던 것 같아.”

아델은 깊게 신음했다. 자신만 약을 탄 술을 마신 줄 알았더니 미아의 술에도 약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하기야 둘 중에 누가 어떤 잔의 술을 마실지 몰랐을 테니까.

16548762032293.jpg“그래서 넌 별일 없었고? 다치진 않았어?”

미아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6548762032293.jpg“눈을 뜨니까 응접실에 누워 있더라고. 다행히 금방 좋아지긴 했어.”

16548762032293.jpg“다행이다.”

미아가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16548762032293.jpg“아델, 넌 별일 없었어?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널 노린 것 같아서. 이튼 자작이 그런 거야? 아님 세이라?”

16548762032293.jpg“세이라와 이튼 자작, 한스 부인의 합작이라고 해야겠지.”

16548762032293.jpg“진짜! 내 이것들을 그냥!”

미아는 당장 마차를 돌려 그들의 머리채라도 잡으러 갈 기세였다.

16548762032293.jpg“흥분 가라앉혀. 다행히 별일은 없었으니까.”

16548762032293.jpg“그럼 이튼 자작을 그렇게 만든 게 정말 너야?”

아델은 잠시 망설였지만, 크리스틴의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16548762032293.jpg“……응.”

16548762032293.jpg“대단해, 아델! 그럴 것 같긴 했지만 설마 했어. 꼴 좋다! 널 그렇게 괴롭히더니 한동안 고개도 못 들고 다니게 생겼네.”

아델에게 나쁜 짓을 하려다가 호된 꼴을 당했으니 그는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으리라. 게다가 황녀에게 그런 꼴까지 보였으니 가문의 수치는 물론이고, 한동안 그 얘기로 사교계가 시끄러울 것이 뻔했다.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다.

16548762032293.jpg“다 자업자득이지.”

16548762032293.jpg“……미안해 아델.”

미아가 갑자기 울 것 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16548762032293.jpg“무슨 말이야?”

16548762032293.jpg“만일 네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더라면 난…… 난…….”

16548762032293.jpg“괜찮아, 미아. 아무 일도 안 생겼잖아.”

16548762032293.jpg“하지만 나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 모두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분수도 모르고 이런 파티에 오고 싶다고 고집을 부려서. 아아, 진짜 무쓸모 허영덩어리!”

소리가 나도록 제 머리를 쥐어박는 미아를 아델이 말렸다.

16548762032293.jpg“그러지 마, 미아. 넌 적당히 허영심 있는 게 더 매력 있으니까.”

울 것 같던 미아가 아델을 살짝 째려보았다.

16548762032293.jpg“뭐라고?”

16548762032293.jpg“그리고 오늘 파티가 나빴던 것만은 아니야. 덕분에 황녀님과 친해질 기회가 생겼으니.”

미아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아델을 꼬옥 끌어안았다.

16548762032293.jpg“우와아앙! 아델, 넌 정말 좋은 친구야! 내가 사교계에 다시 발을 들여놓으면 사람이 아니다! 진짜 다시는 안 갈 거야!”

미아는 사교계에 오만 정이 다 떨어진 것 같았다. 아델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이용당한 것이었으니까. 오늘 일은 미아에게도 적지 않은 상처였으리라. 아델은 훌쩍거리는 친구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16548762032293.jpg“난 정말 괜찮다니까.”

그렇게 한동안 훌쩍거리던 미아는 갑자기 눈물을 닦더니 씩 웃었다.

16548762032293.jpg“그래서 내가 나름 복수란 걸 하긴 했어.”

16548762032293.jpg“복수?”

16548762032293.jpg“응!”

  같은 시각.

16548762068593.jpg“어머 세이라양, 머리에 그게 뭐죠?”

16548762032293.jpg“제 머리요?”

세이라는 의아해하며 곱게 손질된 금발 머리와 장신구를 어루만졌다. 그러다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졌다. 끈적거리는 뭔가가 만져진 것이다.

16548762068593.jpg“어머, 이거 캐러멜 아닌가요?”

16548762032293.jpg“캐러멜이라고요?”

세이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캐러멜이 왜 머리에……?

16548762068593.jpg“가만있어 봐요. 누가 먹다가 붙여놨는지 머리카락이랑 엉겨 붙었네요.”

16548762068593.jpg“잘라야 할 것 같아요.”

  ***

16548762032293.jpg“오늘 고생 많았어요, 백작.”

황궁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에이프릴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턱을 괸 채 무심히 창밖을 보던 크리스틴의 시선이 그녀에게 옮겨졌다.

16548762032293.jpg“아닙니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하나도 즐겁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에이프릴은 그의 이런 무심한 얼굴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은빛 속눈썹에 감싸인 저 청회색 눈동자는 무심할 때조차 아름다웠으니까.

16548762032293.jpg“아까는…… 제 이름을 불러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정말이지 그때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16548762032293.jpg“죄송합니다. 별 뜻은 없었습니다.”

크리스틴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16548762032293.jpg“아뇨, 괜찮으시다면 앞으로도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16548762032293.jpg“…….”

그가 대답 없이 바라만 보자, 에이프릴은 조금 잦아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16548762032293.jpg“둘만 있을 때라도…….”

16548762032293.jpg“노력해보죠.”

16548762032293.jpg“핫! 정말이죠?”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다짐을 받으려 했지만, 크리스틴은 이미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후였다.

16548762032293.jpg“그런데 생각보다 더 아름다운 분이셨어요.”

16548762032293.jpg“…….”

16548762032293.jpg“그분, 오스월드 전대 후작 부인이요.”

아델의 얘기가 나오자 크리스틴이 다시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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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은 불쾌한 듯 살며시 미간을 모았다. 하지만 에이프릴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16548762032293.jpg“아까 부인이 손에 묶고 있던 손수건 말이에요. 그거 백작 거잖아요. 올 때 가슴에 꽂고 있었던 거…….”

16548762032293.jpg“그녀가 손을 다쳤기에 상처를 감싸라고 빌려준 것뿐입니다. 괜한 상상은 삼가주십시오.”

칼날처럼 서늘한 목소리.

16548762032293.jpg“아아, 죄송해요.”

에이프릴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16548762032293.jpg“그리고 황녀님도 아름답습니다.”

뜻밖의 말에 그녀가 깜짝 놀라 바라보았다.

16548762032293.jpg“……정말…… 인가요?”

하지만 크리스틴은 다시 무심하게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차 안에는 무료한 정적이 흐르고, 말발굽 소리와 바퀴 구르는 소리만 들려왔다. 하지만 에이프릴은 조금 전 그의 말뜻을 해석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무심한 남자에게서 그런 찬사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16548762032293.jpg‘바이스 백작도 내게 조금은 마음이 있는 걸까?’

어느새 창밖으로 황궁의 화려한 불빛이 보였다. 멀리서 경비병들이 성문을 열며 외치는 소리, 창검을 들고 경례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이프릴은 안타까워서 한숨이 나왔다. 이제 곧 크리스틴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사실 오늘 그의 에스코트는 황제에게 간곡하게 부탁해서 얻어낸 기회였다. 덜컹! 마차가 멈추자 에이프릴은 드레스 자락을 꼭 움켜쥐며 용기를 내었다.

16548762032293.jpg“키스…… 해줄래요, 바이스 백작?”

그의 시선이 머무는 것만으로도 에이프릴은 가슴이 미친 듯이 떨렸다. 드레스 자락을 더 꽉 움켜쥐며 조금 더 용기를 내었다.

16548762032293.jpg“잘 자라는 굿나잇 키스도…… 안 될까요?”

하지만 그는 듣지 못한 사람처럼 무심하게 마차의 문을 열고 내렸다. 그리고 에이프릴을 에스코트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16548762032293.jpg‘역시 안 되는구나.’

쓰게 웃으며 에이프릴은 그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그 순간이었다.

16548762032293.jpg“좋은 꿈 꾸십시오, 황녀님.”

에이프릴의 손등 위에 크리스틴의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

16548762032293.jpg“예, 배, 백작도요…….”

그녀는 새빨개진 얼굴로 겨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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