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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당신 집에 들어오려고 (13/155)


13화. 당신 집에 들어오려고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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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같이 있어 주면 안 될까? 꼴불견인 건 알지만 그래도 잠시만 같이…… 응?”

그를 올려다보며 애원하는 눈.

그 눈동자가 너무 애처로워서 크리스틴은 시선을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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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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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아델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는 다시 웃어 보였다. 하지만 주저앉은 채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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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앉아 있다가 일어날게. 다리에 좀 힘이 없어서.”

순간 아델의 몸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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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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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말 하려면 입 다물어. 정말…… 가버릴 거니까.”

아델을 안아 올린 그는 심통 난 얼굴로 위협했다.

예전부터 줄곧 보아온 익숙한 표정에 아델은 조금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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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안 할게.”

그러고는 양팔로 두툼한 목을 꼭 끌어안았다.

잔뜩 겁을 먹었던 터라 아직도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의 두근거림이 가라앉을 줄 몰랐다. 하지만 넓은 품에 안겨 있으니 생각보다 더 든든하고 마음이 놓였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마음껏 의지해보는 건.

두근두근.

심장 박동이 왠지 조금 더 빨라진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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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벌어졌잖아.”

아델을 침대에 내려놓은 그는 그녀의 손부터 치료했다.

저번에 단검을 휘두르다가 생긴 상처가 다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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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상처 아니라서 괜찮아.”

크리스틴은 할 말을 삼키는 듯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불을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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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말고 한숨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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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 올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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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라도 줘?”

마침 벽난로 위에 와인이 있었다.

그녀의 침실은 저택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아담하고 아기자기했다. 묵직한 오크 색 가구에 수를 놓은 하얀 목면 침구가 깔려 있었고, 화사한 태피스트리와 말린 꽃이 벽을 장식했다.

벽난로 위의 와인은 이 방 안에서 조금 이질적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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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속에 마시면 속 아파.”

열심히 파이를 굽고 손님들을 대접하다 보니 정작 그녀는 빈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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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거라도 갖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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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지만, 뭐가 넘어갈 것 같진 않…….”

그러다 크리스틴의 사나운 눈과 마주친 아델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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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까다롭게 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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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긴 아는군.”

크리스틴이 몸을 홱 돌려 침실을 나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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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거…… 아니지?”

놀란 아델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애처로운 목소리에 그가 안심하라는 듯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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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돌아올게.”

 

***

다시 방으로 돌아온 크리스틴의 손에는 나무 트레이가 들려있었다.

그 위에 포장되어 있던 애플파이와 우유 그리고 몇 가지 과일들이 제법 보기 좋게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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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대충 치우라고 시켰어. 그런데 먹을 거라곤 이것뿐이더군.”

빈곤한 살림을 지적하는 것 같아서 아델은 민망해졌다.

최근에 가진 돈을 전부 털어서 디저트 만들 재료들을 산 것이다. 그러니 식재료는 거의 바닥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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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식사 준비 전이라서 그래. 찾아보면 감자랑 버섯도 있고…….”

크리스틴은 세모꼴로 잘린 파이 한 조각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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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먹어. 뼈밖에 없어서 안고 오는데 덜거덕 소리가 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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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우읍!”

크리스틴이 그녀의 입에 파이를 집어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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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는 소리야. 놈들에게 한 대만 제대로 맞았어도 몇 군데는 부러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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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읍……! 그렇…… 약골…… 아니…… 야.”

아델은 입안에 파이를 잔뜩 물고 있어서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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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안 들리는데?”

그녀의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대던 크리스틴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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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내 말이 다 맞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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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대로…… 지어…… 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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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너무 고마워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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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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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정 그렇게 고마우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던가.”

크리스틴은 그녀의 마음이 약해지도록 예쁘게 눈웃음을 쳤다.

겨우 파이를 꿀꺽 삼킨 아델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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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거라면.”

신세를 졌으니 뭔가 답례를 하긴 해야 할 것이다. 절대 그의 눈웃음에 마음이 흔들린 건 아니었다.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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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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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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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집에 들어오려고.”

아델은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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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들어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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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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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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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근위대를 맡게 될 것 같아. 그래서 영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황궁 근처에 머무르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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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집은 황궁에서 멀어. 너라면 얼마든 근처에 좋은 저택을 구할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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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구했어. 황궁 바로 앞에. 그런데 수리도 해야 하고 고용인도 구해야 하니 당분간 지낼 곳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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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집엔 네가 머물 곳도 마땅치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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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은 안 쓰는 것 같으니 거길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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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말했잖아. 나와 얽혀서 좋을 게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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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 마. 당신 남자에게 오해 사게 만들진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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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뜻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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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라면 걱정 마. 에이프릴은 충분히 이해할 테니.”

에이프릴…….

그래, 그에겐 황녀가 있었지?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는.

그러니 다른 의도 따윈 없으리라.

나 혼자서만 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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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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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일이 또 생긴다면?”

아델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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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칼을 차고 다닐 만큼 위험을 느끼는 거 아닌가? 설마 그 위험한 상황을 즐기는 건 아닐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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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아니야.”

그런 일을 당했으니 이튼이 다시 오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또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조금 전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델은 온몸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때 만일 크리스틴이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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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넌 어떻게 다시 돌아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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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가 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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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간 지 한참 됐잖아. 멀리 간 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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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가 좀 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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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어쨌든 오늘 같은 날 그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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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집수리를 마칠 때까지만이야.”

아델은 조심스럽게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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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땐 붙잡아도 안 있을 거야.”

그리고 크리스틴은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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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셔. 잠이 잘 올 거야. 설탕도 탔어.”

아델은 조금 놀랐다.

어렸을 때 잠이 안 와서 뒤척이면 어머니는 설탕을 탄 따뜻한 우유를 주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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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알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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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려줬잖아. 잠이 안 올 때 즉효라고.”

그랬던가? 용케 기억하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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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마실게.”

아델은 양손으로 우유 컵을 받아들었다. 따끈한 온도가 손안에 전해지는 것만으로도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우유를 홀짝거리다가 빤히 보는 크리스틴과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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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어렸을 때로 돌아간 기분이네. 너도 좀 먹어봐, 크리스.”

우유 컵을 내려놓은 아델은 조심스럽게 파이 조각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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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만든 것만큼은 아니지만 맛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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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다른 사람 주려고 만든 걸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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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너를 초대하려고 계속 애플파이를 구웠어. 엄마가 만들어준 것과 똑같은 맛이 나는 파이를 만들어서 초대하고 싶었거든.”

크리스틴이 눈을 가늘게 뜨자 그녀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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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싫으면 관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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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게 만들어 봐.”

그의 진지한 목소리에 아델은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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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나…… 지금까지 애플파이는 일부러 안 만들었어. 그러면 옛날 생각이 너무 나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질까 봐.

불가능한 일을 원하는 건 너무 불행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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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크리스틴이 입을 벌렸다. 먹여달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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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여 줬으니 당신도 먹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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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여준 게 아니라 집어처넣은 거겠지.”

그러면서도 아델은 순순히 크리스틴의 입에 파이를 넣어주었다.

덥석!

그 순간 그는 아델의 손목을 움켜쥐더니 파이를 크게 베어 물었다. 그 바람에 아델의 손가락까지 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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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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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것이 훑는 느낌에 아델은 깜짝 놀라 손을 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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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맛있네.”

크리스틴은 아무것도 모르는지 열심히 파이를 우물거렸다.

하지만 아델은 그의 혀가 스친 손가락이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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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안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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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머, 먹어…….”

아델이 우유를 홀짝일 때였다.

갑자기 우유컵이 스르르 손안에서 빠져나갔다. 크리스틴이 그녀가 마시던 우유컵을 빼앗아 마신 것이다.

게다가 하필 아델의 입술이 닿았던 쪽을 머금었다. 컵 가장자리에 묻어 있던 우유가 그의 입술 사이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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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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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봐?”

이상하다는 듯 그가 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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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하네. 입가에 우유 묻히고 먹는 거.”

아델은 아직도 열감이 느껴지는 손가락으로 그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어렸을 때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러나 그의 입술에 손가락이 닿은 것만으로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 입술이 생각보다 훨씬 부드럽고 말캉해서인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열기에 뺨이 달아올라서 혼란스러웠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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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우유 효과가 나타나나 봐. 졸려.”

아델은 얼른 이불을 끌어당기며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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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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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금방 잠들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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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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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오늘같이 있어 줘서 정말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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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가능한 한 빨리 가져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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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아델은 졸린 사람처럼 스르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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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와 함께 지내도 괜찮을까?’

그를 볼 때마다 이상해지는 마음을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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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말이야…….”

순간 코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델은 놀라서 눈을 떴다.

그는 얼굴이 맞닿을 것처럼 가까이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윽한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아델은 얼른 고개를 돌렸지만 소용없었다.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며 그가 자신을 바라보게 했으니까.

내게서 눈 돌리지마, 아델.

그렇게 말하듯 온건하면서도 강압적인 손길이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고개를 숙여 입맞춤해올 것만 같았다.

주술이라도 걸린 것처럼 그녀의 온몸에 힘이 풀렸다. 알 수 없는 열기에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만일 그가 입맞춤해온다면 어쩌면…….

초옥.

그의 입술이 아델의 뺨에 가볍게 내려앉았다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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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먹었던 그 맛이야. 당신이 내게 처음 주었던.”

아델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동안 크리스틴은 그대로 돌아섰다.

저벅저벅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탁!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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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아……!”

아델은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내쉬며 움켜쥐었던 이불을 놓았다. 어느새 손안에 땀이 촉촉했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틴에게 처음 건네준 것이 애플파이였다.

그 맛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

저벅, 저벅…….

어둠 속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울려왔다.

정신을 잃었던 이튼은 그 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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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읍! 읍!”

그는 자신이 의자에 결박된 걸 깨닫고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입에 재갈이 물려 있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델의 집에서 도망치자마자 무언가가 목덜미를 내리치는 바람에 정신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눈을 뜨니 이렇게 묶여 있었다.

한스 부인의 파티에서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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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바이스 백작이 또?’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끌려왔다는 것.

사방이 캄캄하고 여기저기 깨진 오색 유리를 보면 버려진 종교 시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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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날 이런 곳에?’

그동안에도 어둠 속을 울리며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마침내 깨진 창틈으로 들이치는 달빛에 부츠를 신은 긴 다리가 드러났다.

겁에 질린 이튼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위로 들어 올렸다.

바이스 백작!

역시 그자였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크리스틴의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흩날렸다.

그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지만 섬뜩해서 소름이 돋았다. 아까 아델의 집에서 봤을 때와는 분위기가 또 달랐다.
아름답지만 웃음기 하나 없는 서늘한 표정.

만일 사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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