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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굉장한 집착녀세요 (15/155)

15화. 굉장한 집착녀세요202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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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델이 막 아침 식사를 시작하려는데 타냐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1654876381466.jpg“죄송해요, 아가씨! 어제 보니타 부인 집에서 술을 마셨는데 깜빡 잠들어 버려서…….”

그러다 전날과 심하게 달라진 집 안 풍경을 보고 당황했다.

1654876381466.jpg“근데 밤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거실에선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지하 창고의 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집 안 풍경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집 밖의 담장도 온통 뜯겨 나가 있었으니까.

1654876381466.jpg“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좀 많이 다녀갔어.”

다행히 아델은 평소처럼 태연했다. 김이 나는 버섯 수프와 구운 감자를 먹고, 차를 마시는 모습이 아무 일 없었던 것만 같았다.

1654876381466.jpg“……손님이요?”

1654876381466.jpg“됐으니까, 얼른 식사부터 해.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좀 많아.”

1654876381466.jpg“옙!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세요! 어젯밤 외박한 죄로 창고 문이라도 만들어 볼 테니까.”

1654876381466.jpg“창고 문은 됐고. 2층 청소를 해줘.”

1654876381466.jpg“예? 2층을요?”

타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난방비를 줄이기 위해 2층 계단부터 막아놓았다. 그런데 겨울이 지나려면 몇 달은 더 있어야 할 텐데 2층 청소라니.

1654876381466.jpg“손님이 쓰게 될 거야.”

그때였다. 창밖으로 눈에 익은 마차가 나타났다.

1654876381466.jpg“설마 그 손님이…….”

정원으로 들어오는 마차에는 바이스 백작가를 상징하는 늑대 문장이 찍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차 뒤로 짐과 사람을 실은 수레가 줄줄이 따라 들어왔다.

1654876381466.jpg“설마 저 사람들이 다 손님은 아니죠?”

타냐가 울상이 되어 중얼거렸다. ***

16548763843584.jpg“무슨 일이래요?”

마을 외딴곳에 있는 낡은 저택. 남편을 독살한 악녀가 산다는 소문에 평소에도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그런데 오늘은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고 있었다. 반나절 만에 헌 집이 새집으로 변신하는 마법 같은 일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하늘을 찌를듯한 높은 철제 담장 사이로 집 안을 기웃거렸다. 다 쓰러져가던 나무 담장이 이렇게 바뀐 것도 불과 한두 시간 전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소박하던 정원엔 조경석이 놓이고 정원수가 심어졌다. 집으로 들어가는 낡은 계단은 대리석으로 바뀌었고, 금이 가고 군데군데 외장재가 떨어져 나갔던 외벽은 금방 최고급 벽돌로 덧대어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삐걱거리던 지붕도 교체되고, 창문에도 덧창이 달렸다. 저택 내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닥에 고급스러운 카펫이 깔리고, 창고를 비롯한 모든 문이 육중한 마호가니 문으로 교체되었다. 벽은 온통 현란한 꽃무늬 벽지로 도배가 되고, 금장 테두리의 커다란 액자가 걸렸다.

1654876381466.jpg“샹들리에는 이쯤이 좋겠지요?”

짐머가 아델을 향해 물었다. 크리스털이 주렁주렁 매달린 거대한 샹들리에가 거실 한가운데에 자리 잡으려고 할 때였다.

1654876381466.jpg“그, 그만!”

참다못한 아델이 소리쳤다. 순간 짐머를 비롯해 집 안팎에서 일하던 수십 명의 인부가 일사불란하게 동작을 멈췄다.

1654876381466.jpg“짐머 경.”

1654876381466.jpg“예, 말씀하십시오.”

아델은 아랫배에 힘을 주며 간신히 미소를 유지한 채 말했다.

1654876381466.jpg“덕분에 낡은 집이 새집처럼 변한 건 너무 감사해요. 하지만 왠지 지금까지 살던 제집에서 강제로 쫓겨난 기분이 드는군요.”

짐머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짓더니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1654876381466.jpg“아아, 죄송합니다. 저희 단장님께서 편하게 지내시도록 신경을 쓴다는 게 불쾌하게 해드렸나 봅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의 예의 바른 태도에 아델도 금방 부드럽게 웃었다.

1654876381466.jpg“아니에요. 백작을 생각하시는 깊은 마음에 제가 더 감사드려요. 하지만 그분께선 잠시 머물다가 가실 건데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1654876381466.jpg“제가 워낙 완벽주의자라서 이렇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린답니다. 하지만 부인의 뜻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여긴 부인의 집이니까요.”

1654876381466.jpg“그 점 잊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델은 자신의 말이 제대로 먹힌 것에 안도했다.

1654876381466.jpg“하지만 백작께서 쓰실 2층은 마음대로 해도 괜찮겠지요? 원하신다면 돌아가실 때 원상복구 해놓겠습니다.”

1654876381466.jpg“그건…… 휴우, 좋을 대로 하세요.”

아델도 그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1654876381466.jpg“양해 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럼.”

공손하게 인사를 한 짐머는 1층에 있던 인부들을 일사불란하게 2층으로 올려보냈다. 그제야 아델은 조용해진 1층을 둘러보며 겨우 안도했다.

1654876381466.jpg“왜 그러셨어요? 집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녀와 달리 타냐는 매우 아쉬워했다.

1654876381466.jpg“낡았어도 내 집이야. 그동안 내가 가꿔온 소중한 보금자리고. 이렇게 남들이 함부로 바꾸는 건 싫다고.”

1654876381466.jpg“가만 보면 아가씨는 굉장한 집착녀세요.”

1654876381466.jpg“집착녀라고? 내가?”

1654876381466.jpg“소중한 보금자리라서가 아니라, 그냥 오래된 것에 집착하시는 거잖아요.”

1654876381466.jpg“근거 없는 비난은 사절이야.”

1654876381466.jpg“오래된 물건 하나도 잘 못 버리시면서.”

1654876381466.jpg“그건…….”

아델은 뜨끔해서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1654876381466.jpg“이건 그 문제랑은 달라! 내 집인데 내 취향이 전혀 반영 안 됐다고. 저 왕 꽃무늬 벽지는 정말이지 싫거든!”

1654876381466.jpg“그건 저도 동감요!”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이 다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때였다.

1654876381466.jpg“집을 잘못 찾은 건가?”

서늘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크리스틴이 미간을 모은 채 서 있었다. *** 토옥, 토옥, 톡……. 소파에 앉은 크리스틴은 검집에 든 레이피어를 살며시 들어 올렸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그의 손목이 움직일 때마다 검집 끝이 바닥에 부딪혀 토옥, 토옥, 소리가 났다. 검에 장식된 보석들은 햇빛을 반사하며 눈부시게 반짝였다. 그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다웠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은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긴장했다. 그가 금방이라도 검을 빼서 앞에 있는 짐머를 베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1654876381466.jpg“그러니까 네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느릿하고 서늘한 목소리로 크리스틴이 물었다.

1654876381466.jpg“예, 제 임무는 단장님을 불편함 없이 모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지내실 곳이니 최선을 다해 신경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짐머는 바싹 긴장한 얼굴이었지만 소신껏 자신의 임무를 주장했다.

1654876381466.jpg“그럼 네놈의 최선에 대한 답을 들려주지.”

스릉. 크리스틴의 레이피어가 순식간에 검집에서 튀어나왔다. 그 순간 아델이 얼른 짐머의 앞을 가로막으며 뛰어들었다.

1654876381466.jpg“내가 요청한 거야! 네가 이 집에서 지내는 조건으로 집을 고쳐달라고 그랬어! 내가 그랬다고!”

크리스틴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 표정에 아델은 조금 긴장했지만, 눈을 질끈 감았다.

1654876381466.jpg“너는 부자니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그래서 이 기회에 집을 싹 뜯어고치고 싶었어!”

1654876381466.jpg“저 촌스러운 왕 꽃무늬 벽지도 당신이 원한 건가?”

1654876381466.jpg“그래 왕 꽃무늬 벽지도!”

1654876381466.jpg“정말인가?”

크리스틴은 짐머에게 확인했다.

1654876381466.jpg“아닙니다.”

1654876381466.jpg“헉!”

정직한 대답에 아델은 황당해하며 짐머를 돌아보았다.

1654876381466.jpg“아니라는데?”

1654876381466.jpg“짐머 경, 잘 생각해봐요. 날 감쌀 생각 말고요. 내가 분명히 요청했잖아요.”

얼른 그렇다고 대답하라며 아델이 눈을 찡긋해 보였다. 하지만 짐머는 열중쉬어 자세를 고수하며 정직하게 고했다.

1654876381466.jpg“아닌 건, 아닌 겁니다. 후작 부인.”

1654876381466.jpg“이 머저리! 고집불통!”

발끈하며 중얼거리는 아델에게 크리스틴이 물었다.

1654876381466.jpg“왜 그렇게 짐머를 감싸는 거지?”

1654876381466.jpg“그야, 생명은 소중하니까. 짐머 경은 다 널 생각해서…….”

1654876381466.jpg“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델?”

1654876381466.jpg“어?”

1654876381466.jpg“내가 이걸 휘두르기라도 할까 봐?”

크리스틴은 황당해하며 자신이 들고 있는 레이피어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검을 휘두르는 법조차 모르는 것 같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1654876381466.jpg“……아니야?”

1654876381466.jpg“대체 나를 뭐로 본 거지? 고작 이까짓 일로 사람을 벤다고?”

1654876381466.jpg“예, 단장님은 아무 때나 칼에 피를 묻히시는 분이 아닙니다.”

짐머까지 편들고 나서자 아델은 어이가 없었다.

1654876381466.jpg“그럼 그 칼은 왜 빼 든 거야?”

1654876381466.jpg“닦으라고.”

크리스틴이 검을 내밀자,

1654876381466.jpg“예, 단장님은 제가 한 일이 마음에 안 들면 항상 검을 닦으라는 벌칙을 내리십니다.”

짐머는 고이 접은 실크 손수건을 펼쳐서 검을 닦기 시작했다. 둘 사이에서 아델만 왠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조용히 지켜보던 타냐도 아델의 기분이 기분 탓만은 아니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1654876381466.jpg“정말이지 당신들…….”

아델은 숨죽이며 지켜보던 인부들을 향해 소리쳤다.

1654876381466.jpg“당장 저 촌스러운 왕 꽃무늬 벽지부터 떼어주세요! 저 번쩍이는 액자도, 정신 사나운 샹들리에도, 먼지 제조기가 될 게 분명한 이 카펫도 전부 가져가고요! 아 참, 그리고 2층과 1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막아주세요! 강철판으로!”

그녀의 사나운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두 남자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1654876381466.jpg“살기가 단장님을 압도할 것 같습니다.”

1654876381466.jpg“하고도 남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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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짧은 겨울 해가 사라지자 금방 어둠이 찾아왔다. 하루종일 인부들과 아델 사이를 오가며 심부름을 했던 타냐는 녹초가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아델도 몹시 피곤했지만, 부엌으로 들어가 앞치마를 둘렀다. 황실에 납품할 디저트를 만들려면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어제부터 시작했어야 했는데 어제, 오늘 정신없는 일들로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이제 정말 서두르지 않으면 납품기일을 못 맞출 수도 있었다. 제일 먼저 찬장 서랍에서 레시피 북을 꺼냈다. 지금껏 그녀가 개발하고 연구한 그녀의 보물이었다. 처음 납품이니 제일 자신 있고 무난한 메뉴로 구성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1654876381466.jpg“먼저 숙성시킬 반죽부터 해놓고…….”

그 순간 아델은 밀가루가 아직도 지하 창고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냐에게 꺼내 달라고 해놓는 걸 깜빡했다. 어제 그 일 때문에 지하 창고에는 더 들어가기가 싫었다. 이럴 때 크리스틴이라도 있으면 도움이 되었으련만, 그는 황궁으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오늘은 못 돌아올지 모른다는 말과 함께. 아직 직책을 맡은 것도 아닌데 황궁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그것도 밤늦게까지. 그럼 잠은 어디서 자지? 그 순간 왜 갑자기 에이프릴이 떠올랐는지 몰랐다.

1654876381466.jpg‘헉, 무슨 말도 안 되는!’

아직 혼인도 안 한 황녀님에게 그런 불경스러운 생각이라니.

1654876381466.jpg‘잡념은 금물. 일 생각이나 하자!’

  아델은 등불을 들고 조심스럽게 지하 창고의 문손잡이를 밀었다. 끼이익. 새로 달아놓은 묵직한 마호가니 문의 무게가 왠지 더 두렵게 했다.

1654876381466.jpg‘괜찮아, 오늘은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아무 일도…….’

문이 열리자 어둡고 습한 공기가 그녀를 엄습했다.

1654876381466.jpg“후우우!”

깊게 심호흡한 아델이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데, 저벅, 저벅……. 등 뒤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잘못 들은 건가 싶은데 곧 시커먼 그림자가 일렁이며 집어삼킬 듯 가까워졌다. 아델은 그대로 온몸이 굳는 것 같아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그녀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1654876381466.jpg“악, 제, 제발……!”

졸도할 것만 같은 얼굴로 소리치는데,

1654876381466.jpg“괜찮아?”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1654876381466.jpg“하아아!”

긴장이 탁 풀려서 그녀가 휘청거렸다. 그런 아델을 크리스틴이 잡아주었다. 창백하게 굳어진 그녀를 보고 오히려 크리스틴이 더 놀란 얼굴이었다.

1654876381466.jpg“왜 그렇게 놀래?”

1654876381466.jpg“아니야, 아무것도. 오늘 못 들어 온다더니.”

1654876381466.jpg“못 들어올지 모른다고 했지, 못 들어온다고는 안 했는데?”

1654876381466.jpg“아아, 그랬나…….”

그동안에도 아델의 몸은 가늘게 떨고 있었다.

1654876381466.jpg“……도와줄까?”

1654876381466.jpg“응, 지하에서 밀가루 포대를 좀 갖다 줘.”

1654876381466.jpg“그거 말고.”

1654876381466.jpg“어?”

크리스틴의 눈빛이 너무 깊게 들어와서 아델은 당황스러웠다. 이럴 때는 꼭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무얼 두려워하는지 아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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