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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느닷없이 결혼하자 (31/155)


31화. 느닷없이 결혼하자
202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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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 시체인가?”

크리스틴의 목소리가 서늘한 지하실을 울렸다.

그는 지금 시체 안치실에 와 있었다.

황궁의 북쪽에서도 가장 외지고 오래된 검은 성에는 납골당, 화장터, 안치실이 위치했다.

그중에서도 안치실은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지하에서도 제일 추운 맨 아래층에 있었다. 오래전에는 고문실로 사용했다는 소문 때문인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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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검시관은 주의를 시키며 시신을 덮고 있던 누런 아마포를 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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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

크리스틴과 동행한 짐머는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짐승에게 뜯어먹힌 시신의 상태는 전쟁터에서 이골이 난 짐머마저 고개를 돌릴 정도로 참혹했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유심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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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 자국이 다섯 개군.”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얼굴에서 목까지 선명한 다섯 개의 발톱 자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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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게 이상합니다. 근처에 서식하는 발톱이 다섯 개인 짐승은 곰이나 족제빗과 정도죠. 하지만 곰의 흔적이라기엔 작고, 족제빗과 짐승이라기엔 커요. 발자국에 발톱이 있고, 송곳니가 길지 않은 걸 보면 늑대일 확률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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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늑대는 발톱이 네 개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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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상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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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자네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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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이건 그냥 제 생각일 뿐인데…….”

여기까지 말하던 검시관은 망설이듯 말꼬리를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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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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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사람이 한 짓 같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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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생각을 했지?”

크리스틴의 목소리가 한층 더 서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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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은 대개 먹이를 구하기 위해 사냥을 하는데, 놈은 몸을 찢어 놓기만 했지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급소를 제일 마지막에 공격했거든요. 숨이 끊어질 때까지 사냥감은 모든 고통을 느낀 거죠. 놈은 즐기기 위해, 혹은 힘을 과시하기 위해 사냥을 한 것 같이 보입니다.”

크리스틴은 끔찍해서 인상을 썼다.

이건 결코 자신의 사냥 패턴이 아니었다. 게다가 만일 아델의 어머니가 같은 놈에게 당한 거라면 그토록 끔찍하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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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다. 하지만 폐하께선 황궁에 더이상 흉흉한 소문이 도는 걸 원치 않으시네. 늑대에게 당한 거로 처리하고 화장하게. 자세한 검시 보고서는 정리해서 내게 올리도록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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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백작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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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셨습니까, 폐하.”

검은 성을 나온 크리스틴은 얀의 부름을 받고 집무실로 들어갔다.

책상에 앉아있던 얀은 막 사인을 한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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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후 근위대 임관식 일정표네.”

무심결에 서류를 읽던 크리스틴은 미간 사이에 주름을 접으며 얀을 응시했다. 임관식 마지막 일정에 자신의 약혼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멋대로 에이프릴과의 약혼을 진행하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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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님에게서 아무 얘기도 못 들으셨습니까?”

얀은 더 생각하기도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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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의 얘기 따윈 중요하지 않아. 문제는 온 나라 사람들이 그 애가 자네 아이를 임신했다고 믿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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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잘못을 바로잡는 건 부모의 몫입니다.”

크리스틴은 바닥날 것만 같은 인내심을 억지로 그러모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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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분명히 그랬지? 밤늦게 에이프릴을 찾아간 행동에 대한 처벌은 달게 받겠다고. 그러니 그 애를 책임지는 거로 처벌을 대신하지. 소문이 괜히 난 게 아니니까.”

근엄하게 선언하던 얀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자세를 낮춰 크리스틴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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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게. 설령 사실이 아니더라도 혼전 잉태를 했다는 소문이 난 여인을 어느 가문에서 데려가겠나? 나는 내 딸이 귀족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건 절대로 볼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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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제 사정이 아닙니다.”

끝까지 뻣뻣하게 구는 크리스틴에게 얀은 결국 노화를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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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우리 에이프릴의 어디가 그렇게 싫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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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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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이미 자네의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게 문제겠지.”

크리스틴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얀은 비아냥거리듯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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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영웅이 남편을 독살한 악녀 따위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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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누명을 쓴 것뿐입니다.”

얀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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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랬다고 하면 그런 거네.”

순간 크리스틴은 잠시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제국의 황제. 마음만 먹으면 그 누구도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힘을 가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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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군. 곧 교수형 당할 여자에게 마음을 줘버리다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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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크리스틴이 험악하게 인상을 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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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나가보게.”

얀은 다시 펜을 쥐고 바쁘다는 듯 쌓인 서류에 사인하기 시작했다.

슈칵!

순간 얀이 쥐고 있던 펜대가 잘리고, 검은 잉크가 서류에 흩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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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이 진정……!”

분노한 황제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푹!

하지만 크리스틴은 사죄 대신 그의 책상에 검을 깊이 박아 넣었다.

서늘한 은빛 블레이드가 파르르 흔들리며 노기에 찬 황제의 얼굴을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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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저는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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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를 물어뜯기라도 할 건가?”

얀은 두려움으로 떨면서도 황제다운 위엄으로 크리스틴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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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요. 칼라임의 귀족인 제가 그런 짐승 같은 짓을 하겠습니까?”

크리스틴은 사르르 눈웃음을 쳤다. 이런 상황에서 그 웃음이 너무 아름다워서 오히려 더 악마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내 크리스틴은 책상에서 검을 뽑아 휘리릭 검집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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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 여자가 남편을 독살했다면 그 뒤엔 제가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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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얀은 놈의 속셈을 알 수가 없어 가늘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길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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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는 이 모든 배후에 폐하가 있었다고 진술할 겁니다. 폐하께서 오스월드 후작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그녀는 단지 폐하의 명에 따랐던 게 되는 거죠.”

생각만으로도 재미있다는 듯 크리스틴은 나직이 소리 내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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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귀족 원로회가 어찌 나올지 볼만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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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원로회의 싸움을 붙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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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시작하신 싸움입니다. 물론 폐하께서 그만두실 수도 있고요.”

눈앞의 남자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얀은 섬뜩함에 식은땀이 흘렀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난폭하고 어리숭한 짐승 녀석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적당히 이용해 먹기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느새 이 관계의 주도권을 크리스틴이 가져가고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리숭함마저 계획적인 게 아니었을까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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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문서부터 찾아오게. 협상은 그때 다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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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하신 판단에 깊이 감읍하옵니다, 폐하.”

크리스틴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과장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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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짐머!”

황제의 집무실을 나오는 크리스틴의 발걸음이 급했다.

밖에서 불안하게 대기하고 있던 짐머가 얼른 쫓아오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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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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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러 남작의 진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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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길 다시 가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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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포즈할 생각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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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캐슬러 남작에게 프러포즈를……!”

그러다 섬뜩한 크리스틴의 눈과 마주치자 짐머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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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하실 리 없으시겠지요. 그런데 후작 부인이 받아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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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수를 써서라도 받아들이게 만들어야지.”

아델이 자신의 약점이라는 걸 알아차린 황제가 이대로 물러날 리 없었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모든 사람에게 공표해야 했다. 아델이 제 여자라는 걸 알게 되면 그 누구도 섣불리 건드리지는 못할 테니까.

지금까지 충분히 불행하게 살아온 여자.

그녀를 예전처럼 행복한 얼굴로 웃게 해주고 싶었다.

더는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못하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을 것이다.

급한 크리스틴의 발소리가 황궁 회랑을 벗어나 정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

저녁 무렵 마크는 아델이 쉬고 있는 진료실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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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좀 어때요, 아델?”

침상에 앉아 물끄러미 창밖을 보던 아델이 돌아보며 조용히 웃었다.

마침 저물녘 창밖에는 하늘이 다홍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웃는 얼굴이 유난히 평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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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그런데 당신이 더 환자 같네요, 마크.”

아델의 웃음 때문이지, 자신을 알아주는 말 때문인지 마크는 조금 울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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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요? 요 며칠 정말 힘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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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을 거 같아요. 좀 앉아서 쉬었다가 가요.”

아델은 침상 옆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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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좀 머물다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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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요.”

의자에 앉은 마크는 조금 전 아델이 바라보던 창밖 풍경을 보았다. 그의 저택 담장 너머로 보이는 넓은 들판은 평화로웠다. 마른 가지를 드리운 몇 그루의 나무들 사이로 붉게 명멸하는 태양이 그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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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감상하는 노을이네요. 몇 년 동안 마음에 여유가 없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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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가 살아나서 그런지, 저도 오늘 노을은 유독 마음에 와닿네요.”

마크가 능청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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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누가 살려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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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요. 평생 은인으로 모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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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인보다 남편은 어떤가요?”

그는 당황하는 아델을 진지하게 응시하다가, 이내 불그레해진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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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핫, 제가 어떻게 됐나 봅니다. 방금 말은 못 들은 거로 해주십시오.”

허둥지둥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그를 보며 아델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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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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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면 넣어두세요.”

아델이 난처한 표정일 짓자 마크는 조금 울상이 된 눈으로 억지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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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습니다. 당신 마음에 누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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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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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사경을 헤매면서 그 이름을 수십 번도 더 불렀으니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당신에게 내 마음을 전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아델.”

돌아서는 마크에게 아델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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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마크. 이제 보니 당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 멋진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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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멋진 사람을 놓쳤으니 후회할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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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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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진료실 벽에 기대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크리스틴은 기가 차서 웃었다.

이 상황을 기뻐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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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할 거면 단호하게 할 일이지, 멋진 사람은 또 뭐야?’

하지만 지금은 둘만 있도록 해줄 생각이었다. 그게 아델의 은인인 마크에게 베푸는 마지막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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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사경을 헤매면서 그 이름을 수십 번도 더 불렀으니까.”

 
뭐, 들은 것도 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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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시관은 만나봤어?”

크리스틴이 병실로 들어오자 아델이 다급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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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좀 돌리고 말하면 안 될까?”

그는 장갑과 케이프를 벗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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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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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케이프를 의자에 걸쳐놓고 버릇처럼 아델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이제 열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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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다 나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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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좀 먹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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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프만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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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잘 먹어야 금방 회복되지.”

그는 보호자처럼 엄격하고도 자상하게 굴었다. 이러고 있자니 아델은 왠지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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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목이 아파서 먹기가 힘들어.”

그래서였을까? 조금 어리광 섞인 대답이 흘러나왔다. 열은 내렸어도 아직 목과 입안이 온통 헐어서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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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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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입안을?”

아델이 당황하자, 크리스틴은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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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아픈지 알아야 제대로 병간호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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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왜 내 병간호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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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될 거니까.”

순간 아델은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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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설마 네가, 나의?”

되물으면서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아델의 침상에 걸터앉으며 그녀의 창백한 손을 보듬어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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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자, 아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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