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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첫날 밤,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정 (37/155)


37화. 첫날 밤,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정
2022.06.10.


너무나 다정한 손길이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뺨을 어루만지는 손이 참 부드러웠다.

누군가에게 무척 소중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델은 다시 엄마의 보살핌을 받는 어린 소녀로 돌아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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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

그 어떤 마법보다 강력했던 주문.

배고플 때에도, 겁이 날 때도, 아프고 서러울 때도, 화가 날 때도 ‘엄마’ 그 단어만 외치면 모두 해결됐으니까.

하지만 이제 다시는 쓸 수 없는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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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엄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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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 나야…….”

귀에 익은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그 순간 아델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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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그러고 보니 오늘 그와 약혼을 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노곤해서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샤워 후 로브만 대충 걸치고 머리도 덜 마른 채로 침대에 쓰러져 잤던 것이다.

그리고 언제 돌아왔는지 침대 옆에 크리스틴이 앉아서 그녀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잠을 깨우려는 듯 부드럽게…….

그러고 보니 공식적인 연인으로서의 첫날 밤.

그걸 의식하자 잠결에 참 다정하다고 여겼던 이 손길이 묘하게 뜨겁고 간질거렸다.

그의 손이 뺨을 간질이다가, 턱을 쓰다듬고,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머리카락이 덜 마른 탓에 목덜미 뒤쪽은 아직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젖은 살갗을 쓰다듬는 손가락의 느낌이 기묘하고, 은밀했다.

두근. 두근.

아델은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져서 가쁜 숨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가까스로 숨을 고르며 계속 잠든 척을 했다.

그의 이 손길이 담고 있는 의미가 뭔지 알 것 같았으니까.

그녀는 아직 함께 밤을 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등에 있는 스톤의 표식을 그가 보기라도 한다면……?

그건 절대 안 될 일!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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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잘 거야? 아델 양, 응?”

마치 일어나라는 주문처럼 그가 달큼하게 속삭였다.

하는 수 없이 아델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두근.

그윽하게 내려다보는 청회색의 눈동자와 마주치자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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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크리스…… 언제 왔어?”

막 잠에서 깬 사람처럼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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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피곤해?”

그렇게 물으면서 사람을 녹일 것처럼 사르르 눈웃음을 치면 어쩌자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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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아직 회복이 덜 됐나 봐. 몸이 좀 안 좋아…….”

아델은 최대한 아픈 사람처럼 힘없이 대답했다. 그에게 거짓말을 들킬까 봐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상한 손길로 아델의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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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은 없는 것 같은데.”

당연히 없겠지.

아니, 이렇게 함께 침대에 있으려니 열이 조금씩 오르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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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슬으슬한 게 몸살 기운이 좀 있는 것 같아.”

아델은 한기를 느끼는 것처럼 제 어깨를 문지르며 몸을 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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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를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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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좀 쉬면 될 것 같아. 네가 옆에 있어 주면 더 좋고…….”

이대로 크리스틴을 그냥 보내기가 미안해서 아델은 살며시 웃었다. 물론 그와 함께 있고 싶기도 했고.

지금처럼 담백한 보호자의 노릇만 해준다면 오늘 밤은 같이 있어도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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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의 입매가 놀리듯 야릇하게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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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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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차림으론 진정성이 좀 의심스러워서.”

아델은 짙어진 시선을 따라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입고 있던 로브가 반쯤 흘러내려 한쪽 어깨가 드러나 있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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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꺅!”

당황해서 얼른 앞자락을 여몄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로브 하나만 걸치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그대로 벗겨져 버릴 뻔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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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한이 된 기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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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라, 창피해서. 목욕하고 나오자마자 깜박 잠든 거란 말이야.”

아델이 허겁지겁 변명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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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어? 우리가 이제 어떤 사이인지.”

그는 키스할 것처럼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며 아델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의 손끝이 닿는 것만으로 얼굴에 열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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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우린 아직 약혼만 했을 뿐이야.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면 곤란해, 크리스…….”

몸을 뒤로 물리며 아델은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하지만 돌처럼 단단하고 넓은 근육을 느끼는 순간 핫! 놀라서 얼른 손을 빼냈다.

그게 또 기분을 상하게 한 걸까?

크리스틴이 아델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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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렇게 곤란하지?”

위험스러운 시선과 부딪치자 아델은 당황해서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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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야! 눈이 꼭 불타오르는 것 같잖아.’

그의 열기에 두 뺨이 점점 더 달궈지는 것만 같았다. 머릿속도 뜨거워진 생크림처럼 형체 없이 흐물거리며 이성이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이대로라면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말 것이다. 함께 있는 건 너무 위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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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아직 몸이 아파서 쉬어야 할 것 같아. 너도 그만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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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머리 위에서 크리스틴이 이를 갈 듯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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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아델이 불렀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콰앙!

고막이 아프도록 세차게 문을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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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지금 내가 거절했다고 화를 낸 거야?’

아델은 어이가 없었다.

하기야 그는 이 시간을 잔뜩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프다는 핑계로 자꾸 밀어내니 화가 날 법도…… 그래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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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제 겨우 병석에서 일어났단 말이야. 오늘 일정을 다 소화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몸이 안 좋다는 건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아델의 입장을 조금도 이해해주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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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아프다고 했는데도 저렇게 화를 내며 나가버리다니!’

아델은 아델대로 서운하고, 화가 났다.

***

콰앙!

사납게 문을 닫고 나오는 크리스틴을 본 짐머가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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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 벌써……?”

그가 아델의 침실로 들어간 지 십여 분도 지나지 않은 것이다.

짐머는 사실 며칠 동안 저 문이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와의 첫날밤이 늑대 일족인 크리스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았으니까.

이날을 위해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힘겹게 인내해 왔던가?

두 사람이 오롯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침실이 있는 2층에는 아무도 얼씬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짐머 역시 2층을 막 내려가려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설마 벌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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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를 부르도록.”

갑작스러운 크리스틴의 명령에 짐머는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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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델 양이 혹시 잘못되기라도 한 겁니까?”

그가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폭주라도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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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크리스틴은 인상을 쓰며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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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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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이 아직 몸이 덜 회복된 모양이다. 당분간 진료를 잘 받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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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예. 알겠습니다.”

한시름 놓으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짐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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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아직……?”

콰앙!

크리스틴은 사납게 자신의 침실 문을 닫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제야 짐머는 그의 심기가 사나운 이유를 충분히 이해했다.

***

하지만 짐머가 이해하지 못한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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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침실로 들어온 크리스틴은 제 뒷머리를 벽에 부딪쳤다.

쿵, 쿵, 쿵……!

마치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털어버리려는 것처럼.

하지만 조금 전 보았던 아델의 모습이 점점 더 선명해질 뿐이었다.

로브 자락 한쪽이 어깨에서 흘러내리며 봉긋한 가슴이 얼핏 보였던 것이다. 워낙 피부가 하얀 아델이었지만 소담스럽고도 아스라이 드러난 살결은 숨이 막혔다.

가뜩이나 발달한 그의 감각들이 전부 날 선 칼날처럼 예민해지며 그녀를 원했다.

단숨에 집어삼켜서 모조리 제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다.

며칠 동안 끊임없이 탐닉하고 또 탐닉해도 성에 차지 않을 것만 같았다.

원 없이 보고, 만지고, 맛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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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그는 인상을 쓰며 가늘게 신음했다.

그 순간 아델의 침실을 박차고 나오지 않았다면 참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몸 상태 따윈 상관없이 짐승의 본능대로 달려들었을지도 몰랐다. 너무나 급박한 상황이라 얼마나 난폭하게 문을 닫았는지 신경 쓸 겨를 따윈 없었다.

하지만 아델의 침실을 나온 지금도 어디선가 그 달큼한 체향이 흘러드는 것 같았다.

그녀를 어루만졌던 손끝에는 아직도 그 보드라운 감촉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자신을 가슴을 밀어대던 그 손은 어찌나 앙증맞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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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의 심장이 아프도록 욱신거렸다.

이럴 땐 이토록 발달한 감각들이 저주스러웠다.

벌컥!

결국, 참지 못한 그는 침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그때 막 핸리가 의사를 데리고 아델의 침실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녀에게 갈 수 없게 되자 크리스틴은 잔뜩 인상을 썼다. 한편으론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그대로 아델에게 달려들었을 테니까.

타다닥!

그는 방향을 바꿔 2층 계단 아래로 날 듯이 뛰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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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십니까, 단장님!”

짐머가 쫓아왔지만, 별궁을 나간 그는 훌쩍 말에 올라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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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랴 핫!”

창밖에서 크리스틴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어딜 가는 거지?

설마 나 때문에 화가 나서 나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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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핸리가 부르는 목소리에 아델은 얼른 눈앞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핸리와 의사가 상냥한 얼굴로 아델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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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라고 하셨죠?”

의사는 후덕한 생김새답게 조금 전에 했던 말을 친절하게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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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홍열은 완치되었지만, 당분간 충분히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후유증으로 고생하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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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이라면 얼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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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정도는 아무 생각 말고 푹 요양하십시오. 몸이 쇠약해진 상태라 두 분이 사랑을 나누는 것도 삼가는 것이 좋고요. 그동안 제가 계속 들르며 상태를 살피겠습니다”

아델은 조금 민망했지만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보름 동안은 의사의 말을 핑계 삼아 크리스틴을 피해도 될 테니까. 등의 표식을 지울 시간을 벌게 된 것이다.

물론 그동안 혈기 왕성한 크리스틴을 설득하는 게 고역이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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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님께는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양해하실 겁니다.”

의사는 마치 아델의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도움을 줄 생각으로 한 말이겠지만 조금 당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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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감사합니다. 그러나 백작님과의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델은 온화하면서도 그가 쓸데없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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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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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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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요. 칼라임의 영웅께서 아끼는 분이라면 당연히 달려와야죠. 백작님 덕분에 저와 제 가족이 무사했는걸요. 그럼.”

핸리와 의사가 침실을 나가자 아델은 창가로 갔다.

칼라임의 그 대단한 영웅께선 어디로 사라졌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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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무슨. 밴댕이 소갈딱지!”

 

***

마빈은 황궁 진료실에 근무하면서 주로 황궁에 온 손님들을 진료했다. 그러니 마블 궁에 머물게 된 아델과 크리스틴도 그가 진료할 환자에 속했다.

후덕한 체격에 사람 좋은 웃음, 뛰어난 실력으로 그는 환자들에게 제법 인기가 많은 의사였다. 덕분에 재산도 쏠쏠하게 모았다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소문일 뿐.

실상 그는 노름에 빠져 오래전부터 빚에 허덕이고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저택도 조만간 고리대금 업자들에게 넘어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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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됐죠?”

마블 궁을 나온 마빈은 나직한 여자의 목소리에 얼른 걸음을 멈췄다.

달빛도 닿지 않는 나무 그늘 속에서 한 여자가 그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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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다퉜는지 백작이 별궁을 나갔습니다. 그의 약혼녀는 쇠약해 보였지만 건강에는 크게 지장이 없어 보이고요. 하지만 일단 둘이 잠자리는 못 하게 막아뒀습니다. 그리고 보름 정도 계속 들르기로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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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어요. 드나들면서 계속 보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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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염려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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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마세요. 그분께서 당신의 빚보증을 서고 계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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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입니다.”

짤그랑.

그리고 여자는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를 그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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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감사드립니다.”

주머니를 받아든 마빈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얼른 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후 여자도 나무 그늘에서 나와 뒤편에 세워져 있는 마차로 향했다.

그녀는 한스 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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