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늑대에게 사로잡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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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늑대에게 사로잡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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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늑대에게 사로잡힌
2022.07.25.
“참느라 진짜 죽을 것 같았거든.”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아델은 오싹해졌다. 엄청난 파도가 서서히 발목을 잠식해오는 기분.
이대로라면…….
벽난로 불꽃이 눈동자에 반사되어서였을까? 푸른 눈동자가 붉게 이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델은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깨달았다.
“자, 잠깐, 크리스……!”
얼른 바닥에 떨어진 로브를 주워 입으려는데, 크리스틴이 아델을 번쩍 안아 든 것이 더 빨랐다.
그가 직진하고 있는 곳에는 당연하고, 당연하게도 침대가 놓여 있었다.
옅은 복숭앗빛의 침구에 하늘거리는 레이스 캐노피가 드리워진 침대는 그야말로 로맨틱함의 극치로서 첫날밤을 치르기에 아주 적합한…….
자, 잠깐, 이게 아니잖아!
“크리스, 난 아직 준비가…….”
“깨끗이 씻었잖아. 또 무슨 준비가 필요하지?”
순식간에 침대 앞에 도착한 그는 살며시 미간을 모았다. 제지당한 게 상당히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었다.
“너…… 넌 안 씻었잖아.”
맙소사! 이 순간 생각나는 구실이 그것뿐이라니.
“얼른 씻고 오면 돼?”
이글거리는 눈을 하고도 그는 순진하게 물었다.
아델은 결국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래, 그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목숨 걸고 지키고 싶은 모든 것.
이 순진한 짐승의 뺨을 감싸며 그녀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오늘만 봐 줄게.”
와인을 마신 그의 입술이 평소보다 더 붉고 촉촉해 보였다. 아델은 참을 수가 없어서 그 섹시한 입술 위에 조심스럽게 제 입술을 겹쳤다.
그래, 이건 다 취해서 그래.
어쩌면 그녀도 크리스틴만큼이나 안간힘을 다해 참아왔던 걸지도.
***
서로의 입술이 쉴 새 없이 겹쳐지고, 숨결이 뒤엉켰다.
그때마다 아델은 기분 좋은 열감에 온몸이 노곤해지고, 머릿속이 흐물대며 녹는 기분이었다.
초옥.
그의 입술이 아쉬운 듯 떨어져 나가자, 아델은 어느새 침대 위에 눕혀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양 무릎과 양팔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는 것도.
이렇게 된 이상 물릴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물론 물리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이 너무 뜨거워 이 압박감에서 도망치고 싶어진 것뿐.
마치, 거대한 짐승 앞에 놓인 사냥감이 된 것 같았다. 고요하고 푸른 눈동자에 그대로 삼켜지고 갈가리 찢길 것만 같았다.
그게 두려웠지만 그 이면엔 야릇한 호기심으로 가슴이 쿵쿵 울렸다.
그는 여자를 어떻게 안을까?
안기면 어떤 기분일까?
“왜, 겁이 나?”
그는 여전히 위압적으로 내려다보았지만 목소리는 다정했다.
아델의 시야 가득 그의 어깨가 들어왔다.
이렇게 넓은 어깨였던가?
“겁, 겁이 나긴…….”
하지만 아델은 말을 더듬고 목소리의 끝마저 갈라져 버렸다.
젠장.
그녀가 입술을 깨물자,
“상처 나면 곤란해. 이제 내 거니까.”
크리스틴이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빨아당겼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촛불의 심지를 비벼서 껐다.
***
“왜, 왜, 불은……?”
어둠 속에서 아델은 당황해 물었다.
“부끄러워할 거 같아서. 다시 켤까?”
“아, 아니…… 번거로우니까.”
아델은 얼른 머리를 흔들었다.
벽난로의 불꽃이 타올랐지만 크리스틴의 커다란 등에 막혀서 그녀에게까지 불빛이 닿지 않았다. 어두운 침대 위에 이 혈기왕성한 짐승과 단둘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은밀한 분위기가 숨 막히긴 했지만, 차라리 어두운 게 나을지도 몰랐다.
이런 상태로 침대에 둘이 있으려니 시선을 어디다 두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무엇보다 얼굴이 너무 빨개진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그였는데 지금은 낯선 남자처럼 느껴졌다.
부끄럽고, 민망하고, 긴장되고…….
그때 커다란 손이 아델의 젖은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긴장 풀어, 아델.”
하지만 그의 숨소리도 거칠었다. 어깨도 눈에 띄게 들썩이는 것 같고.
“당신도 긴장 한 것 같은데?”
“아니, 흥분한 거야.”
“뭐?”
그의 엄지손가락이 아델의 눈썹 결을 따라 지그시 문질러왔다.
아델은 어두워서 그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어쩐지 그녀를 전부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니 관찰당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그는 어둠 속에서 아델을 바라보기만 했다.
“뭐, 뭐 해?”
당장이라도 흥분해서 달려들 것 같이 굴던 크리스틴이 생각 외로 뜸을 들이자 결국 아델이 물었다. 그가 활시위를 잔뜩 당긴 채로 겨누고만 있는 기분이었으니까. 차라리 뭔가라도 하면 좀 나을지도.
“왜 빨리 안아달라고?”
“바보. 무슨 소리야.”
“기다려. 당신을 어떻게 먹어치울지 생각 중이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사냥감이 된 것 같아.”
“이제 알았어?”
하지만 아델은 쿡쿡 웃었다.
“사실은 당신도 잘 모르는 거 아냐?”
“모르다니?”
“처음…… 이지?”
조심스러운 아델의 물음에 그는 움찔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델도 조금 놀랐다. 그럴 것 같기는 했지만 저 인물에, 저 능력에 지금껏 여자가 없었다니.
크리스틴이 변명하듯 말했다.
“처음이라서 이러는 거 아니야. 당신을 다치게 할까 봐. 잘못해서 끔찍한 기억을 주면 안 되니까…….”
“그럴 리 없잖아.”
아델은 크리스틴의 뺨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조금 긴장되긴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크리스, 바로 당신과 사랑을 나누는 거니까.”
초옥.
크리스틴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아델의 손을 감싸며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그러다 손목에 맥박이 뛰는 곳을 길게 혀로 핥았다.
간지럽다는 듯 아델이 가늘게 웃음을 터트렸지만 그 웃음은 곧 그의 입술에 먹혀 버렸다.
그의 키스는 조금 전보다 더 뜨거웠고, 더 격정적이었다. 숨결마저 모두 가져가 버릴 것처럼 집요해졌다.
아델이 몽롱해진 사이 그의 손은 자연스럽게 슈미즈의 아래로 들어와 몸을 어루만졌다. 그가 스치고 지나간 살갗이 기분 좋게 간질대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델은 입술 사이로 이상한 신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그때마다 크리스틴이 모두 삼켜버렸다.
그의 손길이 점점 더 은밀하고 과감해졌다. 처음이라더니 어설프면서도 묘하게 야하고 관능적이었다.
아델은 절로 발가락이 옴츠러들며, 견딜 수 없는 기분에 침대의 시트를 잡아 비틀었다.
그 순간, 크리스틴이 슈미즈 위로 살을 크게 베어 물었다.
“앗…… 응……!”
저도 모르게 신음을 지르다가 당황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크리스틴도 멈칫하며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아델이 흘린 신음이 민망할 정도로 침실에 야릇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그, 그냥 좀 긴장돼서…….”
부끄러워서 얼른 변명했다.
“귀여운 소리네.”
얼굴에 닿는 그의 숨이 뜨거웠다.
“무슨 말이야…….”
“더 들려줘.”
그는 조금 전 베어 문 그곳을 거침없이 다시 탐닉해왔다.
“크리…… 흡!”
놀란 아델이 그의 어깨를 때렸지만 꿈쩍하긴커녕 오히려 손만 아팠다.
거칠고 자극적인 느낌에 아델은 조금씩 무너져 갔다. 어느새 그의 머리카락 사이에 손가락을 파묻고 이 낯설고도 기묘한 쾌락에 녹아들었다.
그러는 사이 크리스틴은 슈미즈를 끌어올리고 그녀의 몸에 남김없이 입술을 내렸다.
초옥, 초옥…….
열기에 휩싸인 하얀 피부가 분홍빛으로 달아올랐고, 그의 입술이 지나간 자리마다 붉은 꽃이 피어났다.
온몸의 신경들이 올올이 예민하게 일어서서 아델은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흘러나오는 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게 민망했지만 어느 순간엔 신경 쓸 수가 없게 돼 버렸다.
그에게서 잠시 놓여났을 때는 흐물거리는 촛농이 된 것만 같았다. 무력해진 기분으로 겨우 숨을 몰아쉬는 동안, 크리스틴이 몸을 일으켜 침대 앞에 섰다.
그는 잔뜩 흐트러진 아델을 바라보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날카롭고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이 비릿하게 몸을 훑는 기분에 아델은 야릇한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유혹적인 자세를 취해보았다. 정말 요부라도 된 것처럼 야하고 색정적인 몸짓으로. 침대 위가 어두워서 다행이었다.
후드득.
순간 셔츠의 단추를 풀던 크리스틴이 옷을 잡아 뜯어 버렸다. 단추들이 저만치 날아가고, 그가 휙 벗어 던진 셔츠가 바닥에 내려앉았다.
“뭐, 뭐야…….”
“당신을 보고 있으니 못 참겠어.”
아델은 가슴이 철렁해서 얼른 몸을 움츠렸다.
“무슨 소리야. 내가 뭘 했다고!”
젠장,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었다.
“글쎄, 뭘 했을까?”
크리스틴은 무릎 걸음으로 아델에게 다가왔다.
그가 가까워져 올 때마다 짐승처럼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고 침대가 출렁였다.
아델은 멀미라도 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벽난로 불빛을 등진 남자의 실루엣이 너무나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오르내리는 어깨와 힘줄이 일어서며 단단해지는 근육들은 은밀한 분위기로 인해 몹시 야하게 느껴졌다.
사람의 살결인데도 손가락 하나 들어갈 것 같지 않게 단단한 느낌이었다.
만져보면 어떤 느낌일까?
이내, 그녀의 무릎 사이에 그의 무릎이 들어와 멈췄다.
어둠 속에서 눈빛이 마주쳤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끈적한 열기가 서로를 얽어매는 기분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 날뛰었다.
“만지고 싶어?”
그가 물었다.
“어? 어…….”
기묘한 호기심.
야릇한 기대감.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
아델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두툼한 가슴을 어루만졌다.
“아델, 더는 한계야.”
잔뜩 잠긴 목소리가 애원하듯 들려왔다.
그 순간 아델 안의 모든 것들도 일시에 펑 터져버리는 기분이었다.
“날 안아, 안아 줘…… 크리스…….”
어둠 속에서 그의 근육들이 일제히 곤두서는가 싶더니 그대로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그 이후 아델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귓가에서 둥둥 북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 심장을 마구 주무르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거대한 파도에 휩싸여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저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매달렸다.
끔찍한 고통과 미칠 것 같은 쾌락이 번갈아, 그리고 동시에, 그녀를 엄습해왔다.
그러다 등줄기로 찌릿한 전율이 흐르면 절로 몸이 들썩이며 이성이 증발해 버렸다.
아델은 울면서 그를 때리다가, 흐느끼며 원했다.
마치 다른 누군가에 의해 멋대로 영혼을 조종당하는 기분이었다.
제 안에 이렇게 뜨겁고 격정적인 감정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분명한 건,
이 모든 게 크리스틴과 함께라서…… 다행이었다.
***
타오르는 정염을 토해내며 크리스틴은 으스러지도록 아델을 끌어안았다.
하얗게 명멸하는 환희.
두근.
두근.
맞닿은 가슴에서 심장의 맥동이 느껴졌다.
박자를 맞춰 함께 뛰는 심장의 고동을 느끼자 완벽하게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크리스틴은 가슴이 뻐근하도록 벅찬 기분에 휩싸였다.
침실은 온통 그녀의 달큼한 체향으로 가득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갈증 나게 만들던 다디단 살 냄새가 이제 그에게 자연스럽게 배어들었다. 아델에게서도 자신의 체취가 나는 것이 몹시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온전히 서로의 것이 되었으니까.
그럼에도 자꾸 더 탐이 나서 놓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죽을 때까지 놓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숨이 막히는지 아델이 품속에서 바동거렸다.
“후우!”
길고 나직한 숨을 토해내며 아쉬운 듯 놓아주자, 아델은 그대로 침대 위에 풀썩 쓰러졌다.
“진짜 죽는 줄 알았…… 어…….”
마지막 말은 제대로 내뱉지도 못한 채 그녀의 눈꺼풀이 스르르 감겼다.